ⓒ연합뉴스행정법원의 징계처분 효력 집행정지 신청 인용에 따라 업무에 복귀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2월25일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2020년 연말 법원발 2연타를 맞고 크게 휘청거렸다. 지난 12월23일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1심에서 징역 4년 형을 받았다. 15개 혐의 중 11개가 유죄로 인정됐다. 판결문을 보면 1심은 정 교수의 몇몇 범행에 조국 전 장관도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이튿날인 12월24일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2개월 정직 징계가 법원에서 효력이 정지됐다. 윤 총장은 직무에 복귀했다. 징계를 밀어붙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치명상을 입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법무부의 징계 추진 과정에서 추 장관을 측면 지원했다. 고기영 법무부 차관이 12월1일 사퇴해 징계위원회를 열 수 없게 되자 하루 만에 후임 차관을 임명했다. 12월16일에는 이날 나온 법무부 징계를 즉시 재가했다. 법원이 징계 효력을 정지시키자 대통령도 상처를 입었다. 문 대통령은 다음 날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라고 메시지를 냈다.

대통령의 사과는 청와대와 여당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장면이다. 대통령이 사과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 자체가 국정운영의 실패를 뜻한다. 법원의 두 판단에 대한 의견은 정부·여당과 지지층 내에서도 갈린다. 하지만 대통령의 사과가 중대한 실패라는 대목만은 어떤 시각에서 보든 부인하기 어렵다. 이 실패는 어디서 왔나. 실패 이후 정부·여당은 어떤 선택을 할까.

가장 먼저 분출한 건 ‘윤석열 검찰총장 탄핵론’이다. 추미애 장관이 주도했던 강경 노선을 민주당이 이어받아 더 밀어붙이자는 얘기다. 행정부의 징계를 법원이 꺾었으니, 더 밀어붙이려면 국회가 할 수 있는 건 탄핵 추진이다. 강경론이다. 주류 의견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 둘 다 시큰둥하고, 의원들 사이에서도 소수의견이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당내에서 탄핵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누구냐면, 추미애 장관이 징계 드라이브를 걸 때 당에서 호응해 같이 달린 사람들이다. 추 장관이 판사 출신인데 법원에서 꺾이게 일을 하겠나, 적어도 정직 2개월은 확실하다, 그러면 윤 총장도 못 버틴다, 윤석열은 청와대를 치려고 한 정치검찰인데 어떻게 그냥 놔두나, 이런 논리로 당을 끌고 간 사람들이다. 그렇게 ‘돌격 앞으로’를 외쳤는데 결과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더 ‘돌격’을 외치는 거다. 여기서 후퇴하면 책임을 져야 하니까.”

이 말에는 이번 실패를 이해하는 몇 가지 힌트가 들어 있다. 첫째, 윤 총장 징계 카드는 근본적으로는 정부·여당이 변수를 통제할 수 없는 곳, 법원이 결정하는 게임이다. 결정권을 남의 손에 넘기는 것은 집권세력의 방식이 아니다. 내 손으로 결정할 수 있는가? 결정은 다른 곳이 하더라도 결과를 통제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이 불확실하다면, 집권세력은 그런 게임에는 처음부터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엔 들어갔다. 심지어 대통령을 베팅했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020년 9월21일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강성 지지층 왜 윤 총장에게 몰입했나

“추미애 장관이 판사 출신인데”라는 말은 취재 과정에서 여러 번 들을 수 있었다. 게임의 운명을 법무부 장관의 개인기에 사실상 맡겨뒀다는 얘기다. 집권세력 최대 자산인 대통령을 직접 베팅하는 건 게임의 변수를 완전히 통제했을 때만 가능한 선택이다. 대통령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으려면 참모진은 징계가 법원에서 꺾일 가능성을 검토하여 선택에 반영해야 한다. 징계 재가,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 대통령 사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그래서 보좌 기능의 파산을 보여준다. 12월30일 노영민 비서실장과 김종호 민정수석이 사의를 표명했다. 불확실하고 통제할 수 없는 전장에 대통령을 직접 베팅한 책임 라인이 여기다. 대통령의 사과는 1차로 전장 선택의 실패에서 왔다.

둘째, 전장 선택은 왜 실패했는가. 왜 정부·여당은 법원이 최종 결정자인 게임에 무모하게 돌진했는가. ‘돌격 앞으로’가 법무부와 여당에서 강력한 단일 대오를 형성했다. 핵심 지지층에서 ‘돌격 앞으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력했고, 이를 업고 달리는 강경파는 당내에서 거의 제어받지 않았다. 결과가 난 후에 평가해보면 터무니없이 불확실한 근거, “추미애 장관이 판사 출신인데”라는 근거 하나에 정부·여당이 위태롭게 올라탔다. 근거가 탄탄해서가 아니라 ‘돌격 앞으로’의 기세가 하도 강해서였다. 이 노선에 동의하지 않는 의원들도 제동을 걸기보다는 그저 비켜서 있었다. 강경파의 질주와 온건파의 방조가 결합해 만든 이 흐름은 대통령을 위험에 직접 노출시키는 결과로까지 나아갔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는 ‘노무현의 비극’을 가슴에 새긴 사람들이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득권에 맞서 시민을 수호하려 한 개혁가였고, 그 때문에 기득권 동맹의 첨병인 검찰의 역습에 목숨을 잃었다는 서사. 지지층 대부분이 공유하는 서사다. 이 맥락에서 검찰개혁은 단순한 권력구조 개혁을 뛰어넘어 ‘노무현 서사’의 완성을 뜻한다. 여러 개혁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지위를 부여받는다. 이 장대한 서사에서 윤 총장은 ‘마지막 악역’으로 등장했다. 간명한 선악 구도가 일단 자리를 잡자, 윤 총장을 공격하지 않는 이들은 ‘기득권 동맹’의 일원이 된다. 민주당 온건파들을 침묵시킨 메커니즘이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정도만 예외적으로 고비마다 추미애 장관을 비판했다. 대통령의 사과는 2차로 아군 관리의 실패에서 왔다.  

강성 지지층은 왜 그토록 윤 총장 낙마에 몰입했을까. 강경파가 아닌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윤 총장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폭넓게 합의되고 있다. 2019년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했어야 하느냐 철회했어야 하느냐는 의원들 사이에서도 판단이 갈린다. 하지만 조국 후보자에 대한 검찰 수사는 대통령 인사를 흔들려 한 것이라는 판단은, 강경파와 온건파가 공유한다. 조국 장관 부부의 유죄 여부 이전에, 검찰이 특정인을 타깃 삼아 전방위 수사를 펼친 과정을 정상적이라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곧이어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가 터진다. 총선을 앞둔 시점이었다. 여기서부터 여당과 검찰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여당 의원들은 총선 결과를 흔들 목적으로 검찰이 사실상 범죄를 ‘창조’했다고 본다. 단기적으로는 조국 장관 임명 강행에 맞선 검찰의 투쟁이었고, 장기적으로는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려는 포석이었다는 게, 여당의 주된 기류다. 이때부터 수면 아래에서는 사실상 전면전이 시작된 셈이다. 이후 유시민 작가를 표적으로 한 ‘검언 유착’ 의혹, 검찰의 탈원전 수사 등이 어지럽게 얽힌다. 윤 총장을 직접 노리는 추미애 장관의 기조는 이 맥락에서 등장했다. 법무부는 감찰을 통해 판사 사찰(재판부 분석 문건 작성) 등 몇 가지 비위를 확인하여 윤 총장에게도 상처를 냈다. 12월24일 법원은 징계는 집행정지하면서도, 재판부 분석 문건 작성은 “매우 부적절하고 차후 이런 문건이 작성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판단했다.

추미애 장관은 2020년 1월에 취임했다. 1년 동안 추 장관의 강력한 개성은 검찰개혁 이슈를 ‘추미애 대 윤석열’ 이슈로 바꿔놓았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첫 대변인을 지낸 박수현 민주당 홍보소통위원장은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여전히 높은데 윤 총장 징계에 대한 지지는 그렇지 않다. 윤 총장 징계가 왜 검찰개혁과 직결되는지를 우리 당이 설득해내지 못했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전직 의원은 “이슈가 왜소해졌다”라고 말했다. “추미애 대 윤석열 구도로 가면서 검찰개혁이라는 권력구조의 문제가 사람 대 사람 문제,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문제로 바뀌어버렸다.”

ⓒ시사IN 이명익2019년 10월5일 제8차 검찰개혁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장 선택, 아군 관리, 상징 관리 실패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노선은 뚜렷한 두 상징적 인물로 출발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핍박받던 검사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전면 배치했고, 대중 인지도가 높던 조국 서울대 교수를 민정수석으로 발탁했다. 두 상징은 그러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계기로 정면충돌한다. 조국 장관이 사임한 2019년 10월14일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메시지를 낸다. “저는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인 조합에 의한 검찰개혁을 희망했습니다. 꿈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상징이 실질을 압도했다. 조국 전 장관의 상징성은, 부인에 대한 1심 판결 이후, 그만큼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윤 총장은 검찰개혁의 상징에서 검찰 기득권의 상징으로, 정권 지지층이 보는 상징성이 180도 뒤집어졌다. 그 결과 검찰개혁과 윤 총장 징계가 동일시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구원투수로 투입된 추미애 장관이 또다시 검찰개혁 노선의 상징으로 지지층에서 떠올랐다. 세 인물이 엮어내는 드라마가 검찰개혁의 본류로 떠오르자, 후퇴와 우회와 전선 재정비 등 여러 선택지가 사실상 봉쇄됐다. 한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검찰개혁을 공성전이라고 생각하면, 우리 정부가 이미 성과를 많이 냈다. 검찰의 성벽이 숭숭 뚫려 있다. 그런데 정문을 윤석열 총장이 지키고 있다. 이럴 땐 우회하면 된다. 제도를 바꿔서 성벽을 무너뜨리면 되는데 자꾸 정면돌격만 하니까 쓸데없는 희생이 나온다.” 대통령의 사과는 3차로 상징 관리의 실패에서 왔다.  

상징 관리에 실패하다 보니 특정 인물의 성패가 검찰개혁과 동일시됐다. 그러다 보니 인물을 꺾겠다는 의지가 정치인과 지지층을 과몰입시켜 아군 관리의 실패를 불렀다. ‘돌격 앞으로’를 누구도 제어하지 못한 결과는 전장 선택의 실패로 돌아왔다. 그 결과는 대통령의 사과라는 대형 사고였다. 법원발 쇼크 이후 민주당의 노선은 대체로 이런 상황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검찰개혁은 추진하지만, 그것을 특정 인물의 문제로 치환하지 않는다. 탄핵론을 내건 강경파는 지지층의 마음을 달래는 역할을 하지만, 당분간 당 노선을 틀어쥐기는 어려워졌다. 대신에 검찰개혁을 입법과 제도의 문제로 풀어낸다. 법원과 달리 이 전장은 174석 여당이 통제할 수 있는 전장이다. 지난 12월29일 민주당은 이를 논의할 검찰개혁특별위원회를 띄웠다. 그러나 이번 실패가 검찰개혁 이슈의 피로도를 높인 탓에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대가는 별수 없이 치러야 한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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