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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라제네카는 ‘진보 백신’이고, 화이자는 ‘보수 백신’이란 우스개가 떠돈다. ‘전자’는 비교적 빨리, ‘후자’는 늦게 도입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적 득실로 백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생긴 모양이다. 한쪽이 지난 총선의 기억을 떠올리며 아스트라제네카를 응원한다면, 다른 쪽은 화이자·모더나 백신의 도입 시기가 늦다며 ‘정부가 국민들 다 죽인다’고 부르짖는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을 주제로 커버스토리를 내놓게 되어 마음이 무겁다. 한편으론 자랑스럽다. 〈시사IN〉은 2020년 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코로나19 관련 기사들을 게재했지만, 그중에서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비판하거나 인기 검색어에 편승해 조회수나 올릴 목적으로 작성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 개인적으론 2020년 가을 대다수 언론들이 쏟아낸 ‘독감 백신’ 기사들에 많이 놀랐다. 독감 백신과 사망의 ‘시간적 전후 관계’를 ‘인과관계’로 바꿔서라도 K방역을 타격하고 말겠다는 뜨거운 에너지가 넘실거렸다.

〈시사IN〉의 이번 표지 기사들에서 긴 호흡의 시사주간지가 필요한 이유를 느끼시게 될 것이다. 사실 일간지나 인터넷의 단편적 정보만으로는,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한 ‘백신의 세계’를 알거나 시시비비를 가리기 힘들다. 그러니 매체들은 마음 놓고 가짜뉴스를 남발한다. 메인 기사인 ‘코로나19 백신 A to Z’는 백신의 기초 정보를 정확하고 쉽게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코로나19 기사만 쓰다 보니 전문기자 비슷하게 진화해버린 김연희·최예린 기자가 글과 그림으로 구성했다. 일독하신 다음부터는, 본지나 다른 매체의 백신 기사들을 한결 편하게 훑어보시게 될 것이다.

‘A to Z’가 입문서라면, ‘남재환 가톨릭대 교수 인터뷰’는 ‘심화 과정’이다. 최근의 백신 이슈들이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 백신의 간략한 역사, 부작용, 공공 행정 시스템의 책임 배분 문제까지…. 이 기사의 궁극적 화두는 ‘과학’이다. 가설을 세우고, 데이터를 모아 검증하면서, 현실 세계에 대한 지식을 축적해가는 작업. 2020년 초까지만 해도 인류는 코로나19로 면역이 생기는지 여부도 알지 못했다. 지금은 과학적 지식의 축적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남 교수는 관련된 다른 일부 사안들에 대해 “모른다”고 거듭 말한다. 지금까지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고방식의 기본 중 하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상당수의 한국 언론들이 ‘모른다는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정치적 편견에 맞춰 가짜뉴스를 퍼뜨려왔다. 파스퇴르는 “과학엔 조국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감히 한마디 덧붙이자면, 과학적 사고방식을 무시하면 조국을 해치게 된다. 

기자명 이종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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