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지난 12월17일, 통계청·금융감독원·한국은행이 2020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매년 전국 2만 가구를 표본으로 가계의 재무건전성과 소득·자산 분배를 점검하는 지표다. 조사 기간이 2020년 3월까지라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은 거의 반영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지니계수가 줄어들고 있다(소득불평등 완화)’는 결과가 주목받았다(2019년 기준 0.339). 지니계수가 클수록 소득불평등 정도가 심하다. 0에 가까울수록 균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빈부격차가 심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번 조사 결과에서 상대적 빈곤율도 하락(2019년 16.3%로 0.4%포인트 하락)했다.

그런데 세부 내용 가운데 눈에 띄는 불안요소가 있다. 바로 청년층의 부채와 재무건전성 문제다. 2020년 3월31일 기준, 29세 이하 가구주의 ‘자산 대비 부채비율’은 32.5%로 그 전해보다 3.4%포인트 증가했다. 분모인 자산이 줄었거나 분자인 부채가 늘었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큰 변화가 없던 40대(0.5%포인트 증가)나 50대(0.6%포인트 증가)와 달리, 팬데믹 직전까지 청년층에서 부채비율이 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축액 대비 금융부채 비율’도 청년층, 특히 20대(29세 이하 가구주)에서 급증했다. 2019년 112.3%였는데, 2020년 131.8%로 19.5%포인트 상승했다. 금융기관에서 빌린 빚이 저축액의 1.3배 수준이라는 뜻이다. 반면 50대(75.7%), 60대 이상(47.9%)은 저축액이 금융부채보다 많았다.

저축할 만한 소득 자체가 줄어든 것도 청년층의 재무상태 악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기준 연령별 가구당 처분가능소득은 30대 이상 연령대에서 모두 전년 대비 증가했지만 유독 29세 이하에서만 감소했다. 여기까지가 정부 공식 지표에서 드러난 팬데믹 직전 상황이다.

2020년 봄, 이미 경고등이 켜진 청년 부채에 팬데믹까지 더해졌다. 청년이 단기 소득을 올리던 서비스업종에서 실업이 늘었고, 청년층의 구직활동에도 악영향을 미쳤다(〈시사IN〉 제692호 ‘현재 25~29세 청년을 10년간 유심히 보자’ 기사 참조). 소득 감소는 부채 문제를 악화일로로 접어들게 한다. 사회 초년생 계층인 20대의 빚 문제가 매우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위험을 감지할 만한 지표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하는 청년이 증가했다. 2020년 10월12일 국회 기재위 국정감사에서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에만 학자금 대출 신규 연체 인원이 1만1000여 명에 달했다. 2018년과 2019년은 상하반기를 통틀어 각각 8000여 명, 1만5000여 명이었다. 2020년 하반기 팬데믹의 영향을 고려하면 ‘2020년 연간 신규 연체자’ 수는 2019년 기록을 훌쩍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고정생활비 항목인 통신요금 연체도 20대 부채의 단면이다. 2020년 9월23일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8월 기준 무선통신(스마트폰 등) 연체 건수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연령대가 20대였다. 전체 35만여 건 가운데 20%가량인 7만1311건이 20대 이용자들에게서 발생했다. 연령대별 1인당 연체 금액도 20대(10만8010원)가 30대(10만9120원) 다음으로 많았다.

금융기관 자료를 통해 감지되는 청년 부채는 어느 정도 규모일까.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살펴보면 제1금융권과 제2금융권에서 청년 금융부채의 비중이 늘고 있다. 국내 6개 시중은행(국민·우리·신한·하나·SC· 씨티)의 연령대별 가계대출 현황을 살펴보자(〈그림 1〉 참조). 2020년 1월 말 기준 20대가 시중은행을 통해 빌린 신용대출 잔액은 5조2253억원이었다. 같은 해 11월엔 이 수치가 7조3258억원으로 늘어난다. 불과 10개월 동안 40% 이상(2조1005억원) 증가한 것이다. 물론 모든 연령대가 이 10개월 동안 대출을 늘렸다. 중앙은행이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유동성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 모든 연령대의 신용대출 잔액 증가율이 약 20% (105조8069억원에서 126조9706억원으로)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20대의 부채 증가 추세가 매우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에서는 아예 20대가 주 고객일 정도다(〈그림 2-1〉 〈그림 2-2〉 참조). 2020년 상반기 저축은행 마이너스통장 신규 고객의 약 47.2%가 29세 이하 연령층(5491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저축은행 대출 잔액도 유독 29세 이하 연령층에서만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했다. 반면 30대 이상은 오히려 대출 잔액이 전년에 비해 줄어드는 추세다.

정책금융 찾다가 대부업체에 닿는다

금융 상담 현장에 있는 전문가들은 ‘악성 채무 문제로 찾아오는 청년이 늘었다’고 말한다.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광주드림청년은행은 2018년부터 청년 부채에 관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은 최근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북적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상담 신청은 30%, 실제 내방은 20% 정도 증가했다. 특히 방문객 가운데 3개월 이상 빚을 연체하고 있는 ‘신용 유의’ 비율도 26%에 이른다.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이 비율은 10% 정도에 그쳤다.

특히 빈번하게 접수되는 사례가 불법 사기대출 피해다. 대표적인 수법이 ‘작업 대출’과 ‘내구제 대출(나를 구제하는 대출의 준말)’이다. 작업 대출은 위변조된 소득증빙자료를 통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게 해주는 대신 고액의 수수료를 떼어가는 것을 말한다. 내구제 대출은, 급한 돈이 필요한 사람이 자기 명의로 스마트폰, 자동차 등을 할부 구입한 뒤 대부업자에게 넘기고 그 판매대금의 일부를 현금으로 받는 방식이다. 모두 불법이지만 급하게 소액을 빌리려는 이들이 여전히 이들 업체의 문을 두드린다.

팬데믹 이후 불법 사기대출은 오히려 진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기존 사기대출에 다단계 판매와 취업 사기를 결합하는 방식이다. 최근 광주드림청년은행을 찾은 한 청년은 “친구가 취업을 시켜준다며 ‘내구제 대출’ 업체를 소개해주었다. 업체에서는 콜센터 업무를 할 것이라며 ‘앞으로 네가 일하려면 업무용 스마트폰이 필요하니 개통해야 한다’는 이유로 신규 개통을 유도했다”라고 하소연했다. 광주드림청년은행에서 상담을 총괄하고 있는 주세연 센터장은 “피해자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이었다. 불법에 연루되었다며 경찰에 신고조차 못하는 이도 있다. 최근 청년층에서 발생하는 사기대출 문제는 가해자가 청년인 경우도 많다. 청년 세대 내부가 정글 같은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부채 문제는 청년 내에서도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된다. 부모로부터 안정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채무자로 접어드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기준선으로 작동한다. 대학 재학 여부, 소득 유무 여부, 제1금융권 거래 가능 여부도 청년층의 부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기준선이다. 청년 부채 문제를 두고 ‘빚투(빚내서 투자) 하느라 대출이 늘었다’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생활이 어려워졌다’는 상반된 시선이 있다. 둘 중 하나에서 정답을 찾을 게 아니라 둘 다 서로 다른 청년 계층에서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문제로 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청년층에서 등장한 ‘비대면의 일상화’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통상 기성세대는 대출이 필요하면 시중은행 같은 제1금융권부터 방문해 대출이 가능한지 상담받는다. 그런데 비대면 환경에 익숙한 세대는 대출이 필요할 때 은행을 찾기보다는 스마트폰 검색창부터 연다. 이때 온라인 광고 신청을 한 대출 상담사나 대출모집 법인(저축은행 대출을 광고해주고 알선해주는 업체)의 정보가 먼저 등장한다. 고금리 대출에 더 쉽게 노출되기 마련이다.

앞서 설명한 20대의 저축은행 마이너스통장 개설이 늘었다는 통계도 이와 맞닿는다. 이 통계에서 20대의 1인당 신규 대출 금액(평균)은 550만원 수준이다. 30대(2350만원), 40대(6000만원), 50대(1억1830만원)에 비해 확연히 적은 금액이다. 20대 소액 대출자가 많은 까닭은 저축은행이 모바일 환경에 맞추어 영업하고 있어서다. 저축은행이 직접 만든 앱, 웹페이지뿐 아니라 이들로부터 일종의 홍보·모집 대행을 떠맡는 대출모집 법인도 온라인 광고를 집행한다. 이 자료를 분석한 장혜영 의원실 관계자는 “비대면 소액 대출에 특화된 몇몇 저축은행에서 대출자가 급증한 게 전체 저축은행 마이너스통장 개설량 데이터에 영향을 미쳤다”라고 설명했다.

청년 부채 문제에 도움이 되는 정책금융 관련 정보는 온라인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청년을 위한 정책금융인 ‘햇살론 유스’는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 고통을 겪는 대학생·청년에게 최대 1200만원까지 대출해주는 제도다. 그런데 이 제도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민금융진흥원(www.kinfa.or.kr)에서 만든 앱을 통해 비대면으로 신청해야 한다. 종전에는 지역별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오프라인 상담도 받았지만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전면 온라인 접수로 체계를 바꿨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정책금융 정보를 찾기는 매우 힘들다. ‘햇살론’ ‘서민금융진흥원’ 등을 검색하면 유사 검색 업체가 쏟아져 나온다. 일반 대부업체나 대출모집 법인들도 마치 정부 공식 기구인 것처럼 ‘정부지원금융센터’ ‘서민금융지원센터’ 등을 내세우며 광고하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서민금융진흥원’을 검색해보면 유사 페이지만 37개,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햇살론’을 검색하면 관련 앱만 50개 이상 등장한다. 정책금융을 찾은 끝에 대부업체에 도달하게 된다.

일반 대부업체나 대출모집 법인이 마치 정부 공식 기구인 것처럼 광고를 하고 있다.

유동성 정책만으로는 어렵다

금융계에서는 종종 청년층을 ‘신 파일러(Thin Filer:신용정보 파일이 얇다는 뜻)’라고 부른다. 금융거래 기록이 없거나 적기 때문에 개인의 신용정보를 판별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안정적인 직장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제2금융권, 대부업체를 통해 생애 첫 대출을 이용하는 이들은 장기적으로 신용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을 경험하게 된다. 청년 부채는 해당 젊은이의 장기 신용도를 낮추는 결과로 이어진다.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 등에서는 소액 여신 고객이 늘어나는 것이 이익일 수 있지만 청년층과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오히려 손해다.

가계부채 문제 대책으로 보통 ‘서민을 위한 저금리 유동성 공급’이 거론된다. 최근 정부가 법정 최고 금리를 24%에서 20%로 낮추고 햇살론 같은 정책금융의 규모를 늘린 것이 대표적이다. 저신용 가계의 이자 부담 고통을 경감시키려는 목적이다. 그런데 청년 부채 문제는 단순 유동성 정책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청년층 내에서도 금융 정보와 재무 지식의 정도가 다르고 장기적으로 ‘자립’의 기틀을 마련해주는 것이 더 중요해서다.

특히 고려해야 할 점이 ‘경제적 자존감’과 ‘경제적 통제능력’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악성 채무에 시달리는 청년들은 대개 경제 기반을 회복하기 위한 동력을 상실한다. 최악의 경우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으로 채무를 탕감받을 수 있으나 어떤 빚은 이런 방법으로도 피해가기 어렵다. 청년 부채의 대표 격인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의 경우, 대출을 받은 개인이 파산하더라도 전액 상환해야 한다. 국회에서 법 개정이 논의 중이지만, 한번 빚이 연체되는 문제를 겪은 청년들은 ‘회복할 수 있는 의지’가 꺾이기 마련이다.

이를 회복시키고 채무자의 재무 상황을 점검해 다시 경제적 주도권을 찾아오게 만드는 상담 절차가 중요하지만, 아직 지자체별 청년 부채 상담 채널은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주빌리은행이 2020년 9월 발표한 전국 금융복지상담센터 지도에 따르면, 충북·충남·경북·울산 등에는 서민층과 청년이 채무 문제를 상담할 만한 기관·단체가 없다. 2020년 12월8일 열린 서울시청년보장포럼에서 최봉석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상담관은 “청년 부채 사례를 들여다보면 예비비를 쌓아두지 못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재무 상담을 통해 돈의 통제와 관리능력을 향상시켜줘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코로나19 피해 회복을 이유로 청년 부채 관련 예산이 삭감되는 경우도 있다. 광주시는 2021년도 예산안을 시의회에 제출하면서 광주청년드림은행의 예산을 25% 삭감하는 안을 포함해 논란을 일으켰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다른 예산을 증액하기 위해 이 예산을 ‘삭감’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청년드림은행을 찾는 사람은 더 많아졌지만 관련 예산은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시의회의 예산 심의 과정에서 예산 동결 결정이 내려졌지만, 이 해프닝에서 청년 부채 문제에 대한 지자체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서울시도 2021년 청년자율예산을 18% 삭감했다. 청년수당, 청년 월세지원사업, 청년 희망키움통장, 청년 공공일자리 등 유관 사업도 예산 축소의 영향을 받게 됐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빚을 떠안는 청년이 점차 늘고 있다. 그 직간접 사회적 비용은 결국 전체 사회 구성원이 부담하게 될 것이다. 청년 부채 문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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