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2020년 10월13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내원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걸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의 예상처럼 한국에도 코로나19의 겨울 대유행이 닥쳐왔다. 병원에 가지 못한 채 집에서 사망하는, 다시 발생하지 말았어야 할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다. 결국 지난해 12월18일 중앙사고수습본부(보건복지부)가 병상을 확보하기 위한 행정명령을 내렸다. 상급종합병원과 국립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중증환자 전담 치료병상을 신속히 확보하고자 내린 행정조치다. 그간의 ‘협조 요청’으로는 도저히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정부와 병원 양쪽 모두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겨울 대유행을 맞아 한국이 겪고 있는 병상 문제는 사실 ‘인력’ 문제다. 코로나19 환자가 입원할 병상이 부족하다고들 하지만 생활치료센터든, 병원이든 공간 자체를 구하는 것은 비교적 어렵지 않다. 정 상황이 어려우면 중국이나 영국에서 했던 것처럼 빈 부지에 임시병원을 지을 수도 있다. 인공호흡기가 모자란 뉴욕에서처럼 의료기기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의료 인력은 상황이 다르다. 여러 단위에서 코로나19 대응에 참여할 의료인을 모집하고 있고, 이들의 기여는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하지만 중환자를 치료하는 상황에서는 치료에 참여하는 의료인에게 특수한 능력이 필요하다. 가장 중증의 환자가 받게 되는 체외막 산소요법(ECMO)은 말할 것도 없고, 인공호흡기만 해도 훈련받은 의료인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이런 의료인 대부분이 평소에 중증환자를 치료하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 일하는 병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무작정 빼올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의료계라고 해서 가르치지 않아도 당장 투입 가능한 경력 있는 신입이 있을 리 만무하니, 인력을 더 뽑는다고 바로 중환자 치료 인력이 확보되는 것도 아니다. 전담 병원을 지정하라는 일각의 주장과 달리, 적어도 중환자 치료와 관련해서는 정부가 기존 병원에 의존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병원으로서도 곤란했을 것이다. 정부가 병원의 속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환자를 받기 위해서는 감염 전파를 막기 위한 추가적 조치가 필요하다. 기본은 코로나 환자가 치료받는 구역과 그 외 구역을 구분하는 일이다. 각 구역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동선이 겹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대구의료원이 허가 병상의 4분의 3 정도만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일하는 사람 처지에서도 어렵다. 우주복 같은 레벨 D 방호복을 입고, 머리 뒤쪽에 호흡 보호장치를 부착한 채 환자를 돌보는 일은 당연히 일반 환자를 보는 것보다 몇 배는 힘들다. 병원 내부의 의사결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병원들이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의료진이 아무리 소명의식이 투철하다고 해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라’고 명령받는 것처럼 느낄 수밖에 없다.

병원을 경영하는 처지에서도 병상을 선뜻 내어놓기 어렵다. 민간병원 역시 생존을 위해 수지를 맞춰야 하는 일종의 기업이라고 보면, 이들의 수익은 환자 진료에서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환자를 일단 받으라는 이야기는 병원에 손해를 감수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된다. 병원이 일반 기업보다 더 큰 사회적 책무를 져야 한다는 데 동의하더라도, 병원 역시 코로나19 유행으로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와 비슷한 처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연합뉴스안수경 보건의료노조 국립중앙의료원 지부장이 2020년 12월23일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의료인력 소진·이탈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급한 불만 끄지 말고 긴 호흡 가져야

보건복지부가 전례 없는 결단을 내렸음에도 행복한 결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지금 우리가 부닥친 진짜 어려움이다. 지금 방식으로는 유행이 더 커져 상급종합병원 허가 병상의 1%가 넘는 중환자실이 필요해져도 병상을 빠르게 확보할 수 없다. 협의가 아니라 명령을 통해 일을 해결하면 급한 불은 끄는 것처럼 보여도, 긴 호흡에서 잘 관리해야 할 관계가 손상된다는 문제도 있다. 문제가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공공병원을 비우면서 갈 곳 없는 환자를 쫓아냈던 일이 상급종합병원에서 더 큰 규모로 재현될 공산이 크다.

무엇을 할 것인가? 중앙정부가 이번 겨울 유행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갖추기 위해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코로나19 환자와 그 외의 환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건강 당국(health authority)으로서 ‘환자 흐름’을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 방역은 물론 중요하지만, 지금처럼 비(非)코로나19에 관한 의료를 병원이 알아서 할 일로 방치하면 안 된다. 환자들이 지금처럼 치료받을 곳을 알아서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은 곤란하다. 열이 나는 폐렴 환자, 심장마비 환자, 출산이 다가오는 임신부, 투석을 받아야 하는 만성신부전 환자, 맹장염으로 응급수술을 받아야 하는 사람 등이 모두 코로나19 감염 여부와 무관하게 안전하게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정부는 이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둘째, 병원이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동참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코로나19 환자를 보든 보지 않든 공동의 과제를 수행한다면, 2021년에 각 병원이 올릴 것으로 기대되는 수익의 총액을 보장해주자. 어떤 병원은 코로나19 환자를 위한 병상을 내줄 수 있지만, 다른 병원은 ‘의료급여 수급권자’ 등 소외된 이들을 위한 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각자가 어느 정도 역할을 나누고 최소한의 수익이 보장된다면 지금처럼 모든 병원이 코로나19 환자도, 비코로나 응급환자도 모두 꺼리게 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정부는 이런 조정 기능을 맡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가 투자비용을 중앙정부가 세금으로 직접 지원하자. 여기에는 음압격리병실, 인공호흡기, 개인보호장구 등의 시설·장비·소모품은 물론이고 진료에 참여하는 보건의료 노동자를 추가로 고용하고 보호하는 비용과 위험수당이 포함되어야 한다. 의사나 간호사 같은 의료인은 물론 환자를 이송하고, 돌보는 이송 인력, 간병인 같은 사람까지 포괄해야 한다는 점을 덧붙인다. 병원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구조도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7000억원 규모의 ‘의료 질 평가 지원금’을 코로나19 환자를 많이 보는 순서대로 줄 세워 나눠주는 대신 협력 촉진을 위한 연대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환자를 분담해 진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해를 채워주면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다.

셋째, 위기에 대응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변화를 설명하고, 이후에도 필요할 때마다 설득해나갈 필요가 있다. 앞의 제안들이 전면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현장은 언제나 나름의 방식으로 혼란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중앙정부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소란은 당연하다. 그러나 위기를 극복하고 사람들을 구해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지금까지 상상해보지 못한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다. 일이 되기 어려운 1000가지 이유를 각자 내놓는 대신,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모두가 손을 잡고 일이 되게 하는 좁은 길로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이 절실한 때다.

기자명 김진환 (예방의학 전문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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