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21세기 들어 가장 기묘했던 1년이 저물어간다. 삶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흔들렸다. 코로나19는 우리를 어떻게 바꿔놓았나?

올해 상반기에 〈시사IN〉과 KBS는 이 거대한 질문에 답을 찾는 공동기획을 꾸렸다. 서울대 사회학과 임동균 교수, 여론조사 전문업체 한국리서치와 공동으로 228문항 웹조사를 설계해 5월에 조사했고, 6월에 세 차례 연속 보도했다.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 시리즈다. 가장 눈에 띄는 결론은 이랬다. 한국인들의 적극적 방역 참여는 권위주의·순응주의·집단주의와 같은 이른바 ‘동아시아적 가치’와는 무관했다. 통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변수는 ‘민주적 시민성’이었다. 이것이 높은 사람일수록 방역 참여 성향이 강했다(〈시사IN〉 제663호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의외의 응답’ 참조). 이 시리즈는 뜨거운 반응과 활발한 후속 토론을 이끌어냈다.

반년이 흘렀다. 11월에 〈시사IN〉과 KBS는 다시 한번 대규모 웹조사를 기획했다. 261문항을 썼다. 첫째, 상황이 달라져도 우리의 결론이 유효한지 궁금했다. 5월은 코로나19 안정기로 긴장감이 낮을 때다. 2차 조사가 들어간 11월23~25일은 확진자가 300명대로 치솟으며 3차 유행이 시작된 시기다. 둘째, 조사 결과가 한국 특유의 상황인지 다른 나라도 그런지 비교가 필요했다. 우리는 같은 문항으로 일본에서도 조사했다. 일본 조사의 문항 수는 239개, 조사 업체는 라쿠텐인사이트다.

세 번째가 가장 중요했다. 5월까지만 해도, ‘한국은 왜 방역에 성공했나’라는 질문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반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 사회가 받아든 질문은 훨씬 더 복잡하고 까다로워졌다. 방역전에서 가장 큰 희생은 누가 치르나? 사회는 누구의 희생부터 돌봐야 하나? 그러려면 누구 주머니에서 돈이 나와야 하나? 한국 정치는 이 문제를 제대로 감당하고 있나, 얼버무리나?

일본과의 비교로 시작해보자. 10만명당 확진자는 12월9일 현재 일본이 129명, 한국은 76명이다. 일본이 한국보다 1.7배쯤 많다. 상황이 나쁜 국가인 미국은 10만명당 확진자가 4427명, 스페인은 3669명, 프랑스는 3444명, 브라질은 3109명이다. 일본도 국제 기준으로 보면 ‘선방 중인 동아시아 그룹’으로 묶이는 나라다.

첫눈에 들어오는 차이는 방역전의 사령탑인 정부에 대한 평가다(〈그림 1〉). 한국이 월등히 높다. 정부가 대응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매우 잘하고 있다’와 ‘대체로 잘하고 있다’ 합산)은 한국에서 67%, 일본에서는 28%였다. 정권의 지지율 격차 때문도 아니다. 국정수행 지지도는 한국이 44%, 일본이 35%였다. 한국이 높기는 하지만 압도적이지는 않다. 한국 시민들은 정부 지지도보다 방역정책 평가가 1.5배쯤 높다.  

정부 평가의 차이는 다음 문항에서도 확인된다. 방역과 경제는 상충한다. 따라서 방역과 경제의 균형을 잡는 문제가 중요하다. 우리는 이렇게 물었다. “정부가 방역과 경제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고 있다고 보십니까?” 한국 시민들은 66%가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잡고 있다’고 답했다. 일본은 29%다. 한국 시민들은 정부의 균형감각을 신뢰한다. 일본 시민들은 정부가 경제에 신경 쓰느라 방역을 놓쳤다고 생각한다(‘과도하게 경제로 기울었다’ 57%).

인간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인간은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하고, 중요한 공적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한다. 공동의 목표를 두고 함께 싸워나가는 경험, 공동체의 중요한 일에 참여하는 경험은 사람들의 마음을 고양시킨다. 극단적인 사례는 전쟁이다. 전시에 사람들이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느끼는 힘은 널리 알려져 있다. 방역은 국가 자원을 총동원하는 ‘저강도 전쟁’이다.

ⓒEPA11월23일 일본 도쿄 아사쿠사의 거리가 방문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이날 일본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총 1520명을 기록했다.

방역전에서 시민들은 일종의 전시 고양감을 경험하는 것 같다. ‘마스크를 쓰는 이유’로 여러 문장을 제시하고, 얼마나 공감하는지 물었다. 분석을 총괄한 임동균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마스크를 쓰는 이유로 모두 7개 문장을 제시했습니다. 그중에 ‘국내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는 문항이 유일하게, 방역 참여 정도와 통계적으로 유의했습니다.” 즉, 마스크를 공동체에 대한 기여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할수록, 방역에 더 열심히 참여했다. 이 맥락에서 마스크는 감염 예방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넘어서서 어떤 상징이 된다. 마스크는 공동체의 중요한 싸움에 기여하고 있다는 경험, 무언가 공적으로 중요한 일에 참여한다는 경험을 상징한다. 이제 마스크는 감염 예방을 넘어 의미가 확장된다. 그것은 공동의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매일 수행하는 의례다.

방역을 대하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

전시 고양감은 방역전에 대한 놀라운 집중력으로 이어진다. 한국 시민들은 확진자 숫자와 방역 지침 정보에 매우 관심이 많다(〈그림 2〉). 확진자 숫자를 ‘매일 확인한다’는 응답이 66%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현재 몇 단계인지 신경 쓰고 확인한다’에는 91%가, ‘지침에 따라 행동한다’에는 96%가 ‘그렇다’고 답했다.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알고 있다’는 응답은 96%다. 사는 지역의 거리두기 단계를 실제로 물어봤더니 정답률이 매우 높았다.

이제 우리는 상반기 조사의 핵심 키워드인 ‘민주적 시민성’에 도착했다. 5월 조사에서 우리는 ‘민주적 시민성’의 측정 문항으로 아래의 일곱 문항을 주고 이게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 결과, 아래 문항을 중요하게 보는 성향이 강할수록 방역에 참여하는 성향이 높다는 결론을 얻었다.

1. 선거 때 항상 투표한다.
2. 법과 규칙을 항상 잘 지킨다.
3. 정부가 하는 일을 늘 지켜본다.
4. 사회단체나 정치단체에서 적극 활동한다.
5.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6. 조금 비싸더라도 정치, 윤리, 환경에 좋은 상품을 선택한다.
7. 나보다 못사는 사람들을 돕는다.
(8. 지역 혹은 동네의 발전이나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참여한다. -11월 조사에 추가)

이 문항들은 민주적 시민성 중에서도 특히 ‘시민적 의무’를 측정한다. 전시 고양감은 특히 시민적 의무감을 자극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시민적 의무감이 높은 사람들이 공동의 과제인 방역에 더 적극 참여한다. 11월 조사에서도 이 경로는 그대로 재현되었다. 〈그림 3〉을 보면, 시민적 의무감이 높을수록 방역 참여 점수(방역 지침 10개를 주고 응답 결과를 지수화했다)가 더 높다. 5월에 이어 11월에도 둘의 관계는 통계적으로 유의했으니, 한국의 방역 성공을 설명하는 매우 유력한 경로다.

일본은 이런 경로가 나타나지 않았다. 시민적 의무감은 방역 참여 정도와 유의하지 않았다. 이것은 일본이 한국보다 시민적 의무감이 더 낮다는 직접 비교가 아니다. 좀 더 적절해 보이는 설명은 이렇다. 일본 사회에 비해 한국 사회가, 시민적 의무감을 발휘할 공동의 도전과제로 방역전을 받아들이는 성향이 더 강하다. 즉, 지금을 저강도 전시로 인식하는 경향이 한국이 더 크고, 일본은 더 작다.

“반면에 일본은 여기에서 아주 흥미로운 차이를 보입니다.” 임동균 교수는 ‘Right 1(권리 1)’이라고 임시로 이름을 붙여둔 데이터 꾸러미를 지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시민적 권리의식 문항이다.

우리는 5월 조사에서 민주적 시민성이 한국의 방역을 이해하는 열쇠라는 답을 얻었다. 5월에는 시민적 의무 문항만 넣었다. 11월에는 여기에 더해 시민적 권리의식 9개 문항과, 시민적 참여 경험 6개 문항을 더 넣었다. 시민성의 요소로 시민적 ‘의무’ ‘권리’ ‘참여’를 모두 측정하여 더 입체적인 그림을 얻었다. 일본에서는 권리 문항의 두 꾸러미 중 하나인 ‘권리 1’이 높을수록 시민들은 방역에 덜 참여했다.

“권리의식이 약할수록 정부 말을 잘 듣고 방역도 잘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의 방역은 일부 서구 지식인들이 말하는 ‘동아시아적 모델’로 설명할 여지가 있어요.” 임 교수가 말했다. “한국은요?” “한국은 아닙니다. ‘권리 1’과 방역 참여는 무관해요. 아주 뚜렷하게 작동하는 건 시민적 의무감, 그중에서도 ‘Duty 1(의무 1)’입니다. 이게 높을수록 시민들은 방역에 더 참여합니다.”

ⓒ연합뉴스11월27일 코로나19 확진 학생이 나온 세종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과 교직원이 전수조사를 받기 위해 운동장에 줄지어 있다.

이번 조사에서 ‘의무 1’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 매우 강력하면서도 효과가 폭넓은 재료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의무 2’는 효과가 약하거나, 때로 반대이기도 했다. 시민적 의무감, 시민적 권리의식, 시민적 참여가 엮여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우리가 찾아낸 핵심 발견이자 다음 차례에 다룰 2부의 중심 주제다. ‘의무 1’과 ‘의무 2’, ‘권리 1’과 ‘권리 2’의 차이도 거기서 다룬다. 2부를 미리 요약하면 ‘좋은 시민’ 이야기다.

여기서는, 한국은 시민적 의무감이 높을수록 방역에 적극적인 경향이 있고, 일본은 권리의식이 낮을수록 방역에 적극적인 경향이 있다는 점만 확인하고 넘어간다. 이것은 이른바 ‘국민성’에 대한 묘사가 아니다. 한국은 시민적 의무감이 높아서 방역에 성공하고, 일본은 권리의식이 낮아서 방역에 성공했다는 결론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한국 사회에서는 시민적 의무감 수준이 방역 참여를 결정하는 변수로 의미가 있고, 일본 사회에서는 시민적 권리의식이 변수로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일본과의 비교는 비교적 뚜렷한 결론 하나를 보여준다. 방역이라는 도전을 받아들자, 이를 공동체의 과제로 사회 전체가 몰입하는 일을 한국이 더 잘 해냈다. 전쟁의 비유를 계속 사용하면, 전시 총동원 역량은 한국이 더 높았다. 한국 사회는 방역에 더 몰입하고, 마스크를 일종의 공동체 의례로 받아들이며, 시민적 의무감을 무기로 더 잘 동원했다. 이 과정을 이끈 사령탑은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람들을 공동체의 과업에 몰입하도록 이끄는 전시 정치가 제대로 작동했다.

여기까지가 우리 이야기의 동화 같은 대목이다. 어쩌면 전시 총동원은 지나치게 성공한 것인지도 모른다. 불길한 변화 하나를 먼저 보자.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은 정부가 적발해 처벌해야 한다’는 문장을 주고 찬반을 물었다(〈그림 4〉). 일본은 43%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국은 무려 89%다. 5월 조사 때는 47%였다. 반년 전 한국 시민들은 지금 일본 시민들과 의견이 같았다.

전시 총동원의 정치가 너무 많은 것을 압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전시 정치의 책무는 총동원 말고 또 있다. 보급이다. 전시에는 최전방에 나선 총알받이들이 고립되고, 취약한 구성원들은 후방에 낙오된다. 고립과 낙오 문제를 해결하려면, 안전한 본진에 있는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어려운 곳으로 보내줘야 한다. 방역과 같은 저강도 전시 국면에서 보급이란, 방역정책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로 지원이 흐르도록 만드는 일이다. 전시 총동원의 정치와는 다른 맥락에서, 전시 보급의 정치가 작동했는지 따져봤다.

우리는 더 팍팍해지고 있다

누가 최전방에 고립돼 있는가. 또, 누가 후방에 낙오되고 있는가. 우리는 사회 각 부문의 손실에 대해 정부가 얼마나 지원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림 5〉는 ‘전적으로 지원’과 ‘상당 부분 지원’을 합친 응답 비율이다. ‘적극 지원’으로 표기했다. 한국 시민들이 적극 지원에 찬성하는 대상은 자영업자(45%), 비정규직 노동자(44%), 청년 구직자(35%), 중소기업(30%), 정규직 노동자(23%), 전문직 종사자(16%), 공공부문 노동자(13%), 대기업(9%) 순서다. ‘지원 대상 빅3’는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년 구직자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방역전 최전방의 무기인데, 그 무기는 사실상 자영업자의 손실과 고통을 연료로 굴러간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경기 후퇴의 영향을 온몸으로 받는다. 정규직 노동자와 달리 이들은 일감이 줄어들면 바로 수입이 줄어든다. 청년 구직자는 채용 빙하기를 지나고 있다. 한국은 노동시장이 괜찮은 일자리와 불안정 일자리로 양극화된 나라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라고 부른다. 이런 이중구조에서 청년기의 기회를 놓쳤다가는 평생 불안정 일자리 트랙에 머무르는 일이 생긴다. IMF 외환위기 시절에 한 세대가 통째로 이런 좌절을 겪었다. 비정규직과 청년 구직자는 방역전 후방에서 낙오하는 중이다.

한국은 일관되게 일본보다 지원 의사가 박하다. 자영업자는 45%(한국) 대 72%(일본), 비정규직은 44%(한국) 대 69%(일본), 청년 구직자는 35%(한국) 대 56%(일본), 중소기업은 30%(한국) 대 66%(일본)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지원 의사가 가장 인색해지는 대상은 대기업인데, 이마저도 한국은 9%이고 일본은 33%다. 이것은 한국 사회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징후일까, 아니면 그저 한국과 일본의 뿌리 깊은 문화적 차이가 드러난 것일까?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5월의 1차 조사로 돌아간다. 그때도 한국 사회의 지원 성향이 박했다면 이것은 한·일 고유의 차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지난 반년 동안 지원 성향이 내려갔다(〈그림 6〉). 5월의 1차 조사에서는 청년 구직자와 공공부문은 빠져 있다(당시 조사를 설계한 우리도 청년 구직자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못했다는 증거다). 자영업자는 5월 57%에서 11월 45%로, 비정규직은 58%에서 44%로, 중소기업은 51%에서 30%로 적극 지원 응답이 낮아진다. 변화의 방향이 일관되고 변화의 크기도 크다. 우리는 더 팍팍해지고 있다.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힘들어서 지원 자체를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일까. 우리는 이런 질문도 던졌다.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사람도 있고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둘 중 어디에 가까우십니까?” ‘도움을 받아야 하는 편’이라는 응답은 51%였다. ‘도움을 줄 수 있는 편’ 응답은 49%였다(〈그림 7〉). 49%는 우리 예상보다 꽤 높았다. 한국 시민 중 절반은 그래도 이 재난에서 여유가 있고 도움을 줄 위치에 있다고 느낀다(일본은 ‘도움을 줄 수 있는 편’ 58%).

전체 응답자 중 54%가 코로나19 이후 소득이 줄었다고 답한다(일본은 ‘줄었다’ 32%). 둘 중 한 명이 소득 감소를 경험하는 힘든 현실에서도 우리 사회는 ‘도움을 줄 위치라고 인식하는 절반’을 가졌다. 중요한 자산이다. 하지만 이 중요한 자산은 실제 지원 의사와 충분히 연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코로나19 피해자를 돕기 위해 정부가 내 세금을 올린다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그림 8〉). 누군가를 도왔으면 좋겠다는 평가를 넘어, 그 비용을 내가 지불할 의사가 있느냐고 직접 물어본 것이다. 찬성은 29%, 반대가 56%였다. 놀랍게도, 찬반 의견은 소득수준과는 무관했다. 월소득 200만원 미만 그룹에서 찬성은 24%, 700만원 이상 그룹에서 찬성은 25%였다. 그러니까 비용을 지불할 역량과, 비용을 지불할 의사는 신기할 만큼 상관이 없었다. ‘코로나19 피해자를 돕는다’는 명분을 명시적으로 제시한다 해도, 세금 인상에 동의하는 비율은 제한적이었다(일본은 더 낮아서 18%만 찬성했다).

임동균 교수는 세금 변수를 분석하다가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스트레스가 높거나, 경제 상황에 불안감이 높거나, 정치 성향이 보수이거나, 국내 확산세가 위험하다고 느낄수록 세금 인상에 부정적입니다. 대체로 상식적인 결과이지요. 그런데 여기다가 정부 신뢰도 변수(공적제도 신뢰. 10점 만점으로 측정했고, 한국은 4.8점, 일본은 4.1점이다)를 추가하면 앞의 부정적인 영향력이 다 사라집니다.” 무슨 뜻일까. “불안감이 높거나 확산세를 위험하게 느낀다고 곧바로 세금에 적대적이 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런 원인들이 정부 신뢰를 낮추고, 그 결과로 세금에 적대적이 되는 겁니다. 따라서 정치가 잘 작동해서 정부 신뢰를 높일 수 있으면 이런 부정적인 연쇄반응을 중간에서 끊을 수 있습니다. 결국 정치가 중요하다는 얘기죠.”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여 정부 신뢰가 높아지면, 시민들은 자원을 배분하자는 제안에 더 호의적으로 바뀐다. 심지어 당신의 주머니를 더 열라는 제안마저도 그렇다. 인간이 그저 경제적 동물이기만 하다면, 세금 인상은 어떤 변수도 작동하지 못하는 굳건한 반대의 대상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공동체에 중요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우리의 데이터는, 정치가 신뢰를 받을수록 사람들이 코로나19 피해자들에게 주머니를 열 가능성이 올라간다고 시사한다. 이것은 전시의 보급 정치가 작동할 사실상 유일한 경로다. 더 걷어야, 더 줄 수 있다.

하지만 정치가 성공한 결과로 얻어지는 게 신뢰인데, 바로 그 신뢰가 성공을 위해 필요한 전제다. 이런 선순환은 쉽지 않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악순환이 전형적이다.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어디서 걷어서 누구에게 주자는 식의 전시 보급 정치는 작동하지 않는다. 전시 보급 정치가 작동하지 않으므로 고립되고 낙오된 피해자들은 정치를 신뢰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시기에 세금과 관련하여 어떤 주장이 더 적절한가?”라고 물었다. “증세할 때다”는 12%에 그친다. “감세할 때다”는 42%, “세금을 건드릴 때가 아니다”는 47%다. 정부가 보급 정치를 제대로 해낼 것이라는 신뢰가 부족할 때, 시민들은 차라리 감세를 통해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는 방식으로 위기를 돌파하고 싶어 할 수 있다. 그러나 감세는 불평등을 완화하고 피해자를 지원할 국가의 역량을 분명 떨어뜨린다. 이런 여론 지형에서 전시 보급의 정치는 고장 난다. 이 경로에서 최전선의 고립과 후방의 낙오는 그대로 방치될 것이다.

여기에다 악순환 고리 하나가 더 중첩되어 있다. 전시 보급의 정치가 작동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사령탑의 선택은 전시 총동원 정치로 한층 더 기우는 것이다. 방역 총동원이 대단히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방역이 다른 모든 가치를 뛰어넘는 최우선 순위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정부가 방역과 경제 중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중 87%가 방역을 우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영업자들도 81%가 경제보다는 방역이 우선이라고 답해 차이가 크지 않았다. 서구 국가들과 달리, 한국에서는 임대료 투쟁이 정치 이슈로 거의 올라오지 않는다.

정치적 결단과 준비 없이 흘러간 시간

이 구조는 안정적인 듯 보이지만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전시 총동원의 정치는 지속적인 방역 성과를 유지해야 하는데, 전시 보급의 정치가 고장 나면 바로 그게 문제가 된다. 확산세가 심상치 않던 11월19일,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를 2단계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1.5단계로 어정쩡한 선택을 했다. 자영업자 피해가 이미 한계선상이라는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결정적인 순간에 제약됐다. 그 결과는 코로나19 발발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인 현재의 3차 유행으로 돌아왔다. 안정기인 여름 동안에 전시 보급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위기의 초입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급진적으로 높일 때 정부가 느낄 부담은 지금보다 줄었을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악순환이다. 보급의 정치가 취약하면, 사령탑의 선택은 총동원 정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총동원 정치는 보급의 정치가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무너진다. 방역이라는 단일 목표에 공동체를 집중시키고 거기서 일종의 ‘전시 고양감’을 주는 총동원 정치는 한국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그 대성공 덕분에, 전방의 고립과 후방의 낙오를 돌볼 보급의 정치가 긴급하다는 압력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해서 보급선이 취약해지자, 이제 거꾸로 총동원 정치를 제약하기에 이르렀다.

ⓒ시사IN 신선영수도권에서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된 가운데 12월7일 밤 서울 신촌 일대가 한산한 모습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잘못된 질문에 매달려 있었는지 모른다. 분명 방역과 경제는 상충관계가 있다. 경제를 위해 방역을 완화할지, 방역을 강화해야 결국 경제에도 좋은지, 이 둘 사이의 선택이 코로나19 시대 한국의 공적 논쟁을 지배했다. 여기서 방역 우선이라는 강력한 합의가 최전방에 고립된 자영업자들까지 납득시키며 한국 사회를 지탱해왔다.

우리의 데이터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것은 두 차원의 정치를 다루는 문제다. 방역이라는 공동의 과업에 시민을 몰입시키는 동시에, 방역전의 희생자들을 돌보는 자원 배분에 시민이 동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상충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선순환 관계다. 자영업자와 같은 최전방을 넉넉히 지원할수록(‘전시 보급의 정치’), 결정적인 시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다(‘전시 총동원 정치’). 하지만 이 선순환은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았다. 여름의 안정기는 사실상 정치적 결단과 준비 없이 흘러가버렸다. 이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하면, 두 정치는 서로를 갉아먹는 악순환으로 진입한다. 11월의 데이터는, 한국 사회가 이 악순환의 입구에 서 있는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우리의 질문 중에 이런 게 있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지금 중에 언제가 더 어려운 시기라고 생각하나?” 응답자 중 62%가 코로나19 위기를 더 어려운 시기라고 꼽았다(〈그림 9〉). 외환위기를 직접 경험한 40대 이상으로 갈수록 오히려 코로나19 위기를 더 심각하다고 봤다(40대 67%, 50대 66%, 60세 이상 72%). IMF 위기 대응도 공동체의 고양된 일체감으로 출발했다. 그게 금모으기 운동이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사회가 낙오자들을 챙기지 않는다는 나쁜 사례를 남겼다. 이후 한 세대 동안 각자도생의 원리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다시피 했다. 이번엔 다를까? 우리는 이번엔 제대로 된 경로를 잡고 있나? 5월의 데이터보다는 11월의 데이터가 더 심각하게 던지는 질문이다. 악순환을 빠져나올 방법이 있을까. 그 답을 찾는 이야기가 2부 ‘좋은 시민’의 주제다.
 



1) 조사 개요:한국 5월
모집단: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표집틀:한국리서치 마스터샘플 49만명
표본크기:1000명
표본오차:95% 신뢰수준에서 ±3.1%(무작위추출 전제)
조사 방법:웹조사
협조율:조사 요청 5672명, 조사 참여 1307명, 조사 완료 1000명(요청 대비 완료율 17.8%, 참여 대비 완료율 76.5%)
조사 일시:2020년 5월7~8일

조사 기관:한국리서치

2) 조사 개요:한국 11월
모집단: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표집틀:한국리서치 마스터샘플 54만명
표본크기:1050명
표본오차:95% 신뢰수준에서 ±3.0%(무작위추출 전제)
조사 방법:웹조사
협조율:조사 요청 7167명, 조사 참여 1295명, 조사 완료 1050명(요청 대비 완료율 14.7%, 참여 대비 완료율 81.1%)
조사 일시:2020년 11월23~25일
조사 기관:한국리서치

3) 조사 개요:일본 11월
모집단: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표집틀:라쿠텐인사이트 일본 온라인패널
표본크기:1000명
표본오차:95% 신뢰수준에서 ±3.1%(무작위추출 전제)

조사 방법:웹조사
협조율:조사 요청 1만5454명, 조사 참여 1458명, 조사 완료 1000명(요청 대비 완료율 6.5%, 참여 대비 완료율 68.6%)
조사 일시:2020년 11월27~30일
조사 기관:라쿠텐인사이트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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