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 중인 지난 12월18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의 폐업 상점.

같은 바이러스가 일으킨 위기지만 한·일 양국은 위기의 성격을 꽤 다르게 인식한다. 단적으로 말해, 한국은 경제 위기를 가장 심각하다고 본다. 일본은 보건 위기가 가장 심각하다고 본다. 코로나19는 복합 재난이다. 우리는 위기를 종류별로 9개 제시하며 각각이 얼마나 심각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건강 위기, 의료시스템 위기, 자영업 위기, 일자리 위기, 신규고용 위기, 기업 도산 위기, 재정 위기, 교육 위기, 인권 위기다. 이 9개 위기는 크게 셋으로 묶을 수 있다. 보건 위기, 경제 위기, 그리고 권리 위기다.

〈그림 1〉은 양국 시민들이 “매우 심각하다”라고 답한 비율을 보여준다. 한국은 자영업 위기(51%), 청년고용 위기(47%), 실직 위기(45%) 순으로 위기감이 높다. 그 뒤를 기업 도산 위기(40%)와 국가재정 위기(38%)가 이었다. 5위까지가 다 경제 위기다. 다음은 권리 위기에 속하는 교육 위기(36%)다. 7, 8위에 가서야 보건 위기에 속하는 건강 위기(36%)와 의료시스템 위기(31%)가 나온다. 마지막은 다시 권리 위기인 인권 위기(20%)다.

일본 시민들의 체감은 꽤 다르다. 보건 위기가 나란히 1, 2위다. 의료시스템 위기(47%)와 건강 위기(45%)를 가장 심각하게 본다. 경제 위기는 그다음이다. 실직 위기(40%), 자영업 위기(39%), 기업 도산 위기(39%), 청년고용 위기(36%), 국가재정 위기(30%) 순이다. 권리 위기는 일본도 체감이 낮다. 교육 위기(19%), 인권 위기(17%) 순이다.

왜 한국은 경제 위기 인식이 일본보다 높을까? 양국 데이터를 더 비교하면서 답을 찾아보자. 우리는 코로나19 이후로 소득이 어떻게 변했는지 물었다(〈그림 2〉). “소득이 줄었다”라는 응답은 한국이 54%, 일본이 32%였다. “매우 줄었다”만 따로 떼어보면 한국은 23%, 일본은 9%다. 경제적 타격을 받은 비율이 한국이 더 크고, 체감하는 타격의 강도도 더 세다. 앞서 5월 조사에서도 한국 시민들은 55%가 “소득이 줄었다”라고 답했다(“매우 줄었다” 25%). 11월 조사 결과와 거의 같다. 6개월 시간이 흘렀지만 코로나19로 받은 경제적 충격이 개선된 흔적은 없다.

소득이 줄면 여윳돈으로 버틸 수도 있지만, 그마저 안 되면 지출을 줄여야 한다. 이럴 때 경제적 고통을 절박하게 느낀다. 한국은 47%가 지출을 줄였다고 답했다(5월에도 49%였으니, 역시 6개월 동안 별다른 개선이 없다). 일본은 26%다. 한국 시민은 코로나19 위기로 거의 두 명 중 한 명이 지출을 줄였다. 일본은 네 명 중 한 명만 그렇게 했다.

코로나19 위기는 1997년 IMF 외환위기와 자주 비교된다. 둘은 한국이 겪은 가장 큰 경제 재난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두 재난은 충격파의 방향이 다르다. 외환위기는 대기업의 줄도산으로 출발했다. 정규직 노동자처럼 비교적 안정적인 계층이 도산이나 정리해고로 급작스러운 추락을 겪었다. 코로나19 위기는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먼저 때렸다. 취약계층이 더 취약한 상태로 내몰렸다.

일본보다 덜 관대하고 더 절박하다

따라서 이번 위기에서 중요한 변수는 소득수준 그 자체보다도 ‘소득의 불안정성’이다. 소득이 불안정하고 들쭉날쭉한 사람들이 위기에 직격당할 가능성이 더 높다. 우리는 소득수준과 별개로, 소득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와 “불안정하고 들쭉날쭉하다” 중 스스로 어느 쪽이라고 느끼는지 물었다(〈그림 3〉). 일본은 ‘안정적’ 66%, ‘불안정’ 34%였다. 대략 2대 1 비율이다. 그런데 한국은 ‘안정적’ 54%, ‘불안정’ 46%로 둘이 비슷했다. 스스로 체감하는 소득의 불안정성이 한국에서 더 컸다. 직업 안정성의 차이일 수도 있고,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의 차이일 수도 있다.

이제 한국의 ‘안정적’ 그룹과 ‘불안정’ 그룹이 코로나19로 받은 피해가 얼마나 다른지 확인해보자(〈그림 4〉). ‘안정적’ 그룹은 36%만 “소득이 줄었다”라고 답했다. 반면 ‘불안정’ 그룹에서는 75%에 이른다. 타격을 특히 크게 받은 “소득이 크게 줄었다” 응답으로 좁혀보면 차이는 더 인상적이다. ‘안정적’ 그룹에서는 10%, ‘불안정’ 그룹에서는 39%다. 네 배 차이다.

소득의 불안정성은, 객관적인 소득수준 그 자체보다 오히려, 재난의 충격을 더 잘 설명하는 것 같다. 객관적 소득수준을 상하 두 그룹으로 나눠보면, “소득이 줄었다” 응답은 각각 59%(하층)와 47%(상층)다. 차이가 있다. 하지만 소득의 불안정성에 따른 격차만큼 뚜렷하지는 않다. 소득수준이 높다고 반드시 소득이 안정적인 건 아니다. 월소득 700만원 이상인 고소득자 그룹에서 “불안정” 응답은 31%다. 하지만 대체로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소득이 더 불안정한 경향은 분명하다. 월소득 200만원 미만인 저소득자 그룹에서 “불안정” 응답은 70%다.

소득의 불안정성은 두 사회가 재난에 대처하는 마음가짐의 차이도 만들어낸다. 우리는 “코로나19 재난에서 당신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편과 도움을 줄 수 있는 편 중 어느 쪽에 속하는가?”라고 물었다. 한국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편 51%, 도움을 줄 수 있는 편 49%였다. 둘이 거의 비슷하다. 일본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편 42%, 도움을 줄 수 있는 편 58%다. 한국이 일본보다 덜 관대하고, 더 절박하다. 한국에서 ‘불안정’ 그룹은 72%가 도움을 받아야 하는 편에 자신이 속한다고 답한다. ‘안정적’ 그룹은 33%가 그렇게 답한다. 역시 객관적 소득수준보다 소득의 불안정성이 더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