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2020년 4월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산재사망대책마련공동캠페인단 주최로 ‘2020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이 열렸다.

“어떻게 보면 구호성 이슈였던 게 갑자기 실제 법이 되니까….” 더불어민주당 관계자가 말했다. 산재로 사람이 죽으면 기업과 경영진을 처벌하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법)’ 제정 운동은 14년 전 시작되었다. 7년 전에도, 3년 전에도 비슷한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진지하게 논의된 적은 없었다. 산재 피해 유가족의 단식은 국회가 ‘구호성 이슈’를 사실상 처음으로 ‘실제 법’으로 다루게 만들었다.

공수처법 등 굵직한 법도 속속 통과시키는 거대 여당이 중대법은 왜 망설이는 것일까? 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중대법도 여러 개인데, 이 중에서 여당이 가장 난색을 표하는 조항은 박주민·이탄희 의원 안에 포함된 ‘인과관계 추정’이다. 예컨대 어떤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사고로 숨졌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업주나 경영진이 이번 사고가 나기 전 5년 동안 세 번 이상 안전 법규를 어겼다. 또는 증거를 인멸하거나 현장을 훼손하는 등 사고 조사를 방해했다. 이런 경우는 사업주나 경영진이 위험을 방지할 의무를 어겼기 ‘때문에’ 그 노동자가 죽은 것으로 ‘추정’한다는 내용이다. ‘의무 위반’과 ‘죽음’ 사이에 법률적으로 인과관계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 ‘인과관계’를 둘러싼 논란은 ‘산재가 왜 일어나는가’에 대한 두 세계관의 충돌을 보여준다. 박주민·이탄희 의원이 낸 중대법 법안은 노동자가 재해를 입지 않도록 ‘위험을 방지할 의무’가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 등에게 있다고 규정한다. 그 의무를 위반해서 노동자가 사망하면 2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5억원 이상 벌금에 처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 임우택 안전보건본부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에서 위험방지의무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라고 말했다. 사업주 입장에서 볼 때 “어떠한 규정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어떻게 법규를 잘 지켜야 처벌을 면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 본부장은 해당 법안이 “명확성의 원칙과 책임주의의 원칙에 위반된다”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2020년 12월2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회관에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마이크 앞)이 중대법 제정에 대한 경제단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깔끔한’ 산안법은 실제 현실을 담고 있는가

‘명확성의 원칙’에 따르면, 법률은 어떤 행위를 처벌할지에 대해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시민들이 해당 법률을 감안해서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다. ‘책임주의 원칙’은 어떤 행위가 형벌의 대상이더라도 도덕적으로 비난할 만하지 않으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첫눈에 중대법의 처벌 규정은 이런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처럼 보인다.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모를 ‘위험방지의무’를 위반해 사람이 죽으면 최소 2년 이상 징역이라니, 대체 위험방지의무가 무엇이란 말인가. 설령 그런 의무를 위반했더라도, 형사처벌을 하려면 정말 사업주가 그 의무를 위반한 것 때문에 사망자가 나왔는지 인과관계를 따져봐야 한다. 게다가 기업의 의사결정엔 수많은 사람이 개입되는데, 대표이사를 콕 집어 책임을 묻겠다니. ‘근대 형법이 아니’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중대법이 필요한 것이다.” 최정학 방송통신대 교수(법학)가 말했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으로는 대표이사 등 경영진 처벌이 잘 안 된다. 산안법의 처벌 규정은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사람을 죽게 한 ‘행위자’를 처벌하도록 되어 있는데, 형법의 시각에서 보면 직접 법을 위반한 사람이 행위자다. 사고가 나면 현장에 있던 노동자 개인이나 그를 감독하는 중간관리자를 행위자로 본다. 그들이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는 등 세세한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아서 사고가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면 (그 현장에 없었던) 대표이사는 ‘행위자’에서 빠진다. 심지어는 대표이사에게 안전의무가 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그동안 검찰과 법원은 산안법이 규정한 안전조치를 직접적으로 어긴 사람에게 형사책임을 물어왔다. ‘명확성의 원칙’과 ‘책임주의 원칙’이 구현된 깔끔한 세계다. 그러나 이 세계가 실제 현실을 담아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예컨대 “공사 기간을 단축하라는 경영진의 요구나 안전예산을 삭감해버리는 기업의 결정은 현장에서의 안전의무 준수 의지를 무색하게 만들어버린다. 안전의무를 지키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킬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책임이 과연 현장의 노동자나 안전관리자에게 있는 것인가”(최정학,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 필요성과 그 내용〉). 경영진이 공사 기간 단축이나 안전예산 삭감을 지시했다고 해도, 대규모 기업일수록 해당 지시와 사고 발생 간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어렵다. 이러면 산재 범죄의 ‘구조적인 책임’은 사라져버린다.

산재 사망에 대해 현장 행위자의 책임(‘행위 책임’)과는 별개로 ‘구조적인 책임’을 물으려는 시도가 중대법이다. 이때 구조적인 책임은 산안법상의 세세한 안전조치보다 포괄적일 수밖에 없다. ‘위험방지의무’ 같은 다소 추상적으로 보이는 조항이 나온 배경이다. 1974년 제정되어 현재까지 시행 중인 영국의 산안법은 “모든 사업주는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한 범위에서(so far as is reasonably practicable)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 및 복리를 보장해야 한다”라고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형사처벌한다.

다만 중대한 차이가 있다. “영국에서 위험을 관리할 구조적 책임을 지는 1차적 주체는 대표이사가 아니라 기업이다. 영국은 기업에 위험관리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고, 대표이사가 기업의 법 위반을 동의·묵인·방치하면 공범으로 처벌한다.”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말했다. 이때 ‘기업’은 ‘법인’, 즉 대표이사 같은 ‘자연인’이 아니면서 법률상 권리와 의무를 갖는 주체를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주식회사 같은 법인은 자연인과 달리 죄를 범할 능력이 없다고 간주되어왔다. 형사처벌은 개인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하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기업 법인 그 자체는 사람이 아니므로 도덕관념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법인이 차지하는 경제적 지위와 영향력은 계속 커져왔다. 이에 따라 영국 등 영미법 국가뿐 아니라 대륙법 국가도 점점 법인의 범죄능력을 인정하는 추세다. 한국은 기업 등 법인의 범죄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에 속한다. 그 때문에 기존 산안법에서는 노동자나 안전관리자 같은 자연인이 법을 위반하고, 기업이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했다고 검사가 입증해야만 법인에 2차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법인은 늘 개인의 잘못과 ‘세트’로만 처벌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양벌규정’이라고 한다.

현재 발의된 중대법들은 경영책임자 등이 위험방지의무를 위반해 사람이 죽었을 경우 법인에 대해 1억원 이상 20억원 이하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이에 대해 ‘법인의 범죄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법체계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경총뿐 아니라 민주당 정책의원총회에서도 나왔다. 그러나 중대법이 법인의 범죄능력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법인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양벌규정’에 경영책임자 등을 새로 집어 넣은 것에 가깝다. 김재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존 양벌규정은 종업원의 법 위반에는 법인 책임을 물으면서도 대표이사 등 경영책임자의 법 위반에는 법인 책임을 묻지 않았다. 양벌규정의 본질상 경영책임자가 법을 위반했다면 당연히 법인 책임도 인정되어야 하는데 이게 아예 빠져 있었던 것이다. 중대법의 법인 처벌 규정은 기존 양벌규정을 보완한 일종의 ‘3벌규정’으로, 법인의 범죄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조항이다”라고 말했다.

현장 행위자의 ‘행위책임’을 넘어서 경영책임자 등의 ‘구조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 경영책임자 등을 비로소 ‘과실범’이 아닌 ‘고의범’으로 규율할 수 있다. 최정학 교수의 설명이다. “기존에는 대표이사 등 경영자의 산안법 위반을 입증하기 어려워 검찰이 형법의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했다. 반면 중대법은 경영자에게도 안전의무가 있고, 이를 어기면 처벌받는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형량(징역 2~3년 이상)이 무겁다고 하는데 과실범과 비교해서 그렇다.”

ⓒ연합뉴스2020년 12월17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한정애 정책위 의장(오른쪽), 유동수 정책위 수석부의장(가운데)과 대화하고 있다.

중간관리자와 다른 경영자의 형사책임

그렇다면 중대법이 제정되면 산재 사망 시 대표이사 등 경영진의 구조적 책임을 실제로 물을 수 있을까? 이는 사업주나 경영진이 지켜야 할 ‘위험방지의무’의 내용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박주민·이탄희 의원 안은 ‘위험방지의무’에 산안법상 각종 안전조치가 포함된다고 명시했다. 박범계 의원 안은 ‘위험방지의무’가 이 법 또는 각 개별법이 규정한 안전의무라면서, 구체적인 의무의 종류와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했다.

전형배 교수는 “경영자의 형사책임은 필요하다. 다만 그 책임의 내용이 현장에서 안전보건을 직접 관리하는 중간관리자와는 달라야 한다. 직접 관리하는 책임으로 규정하면, 분명 대기업의 대표이사는 업무 분장이나 위임을 통해 중간관리자 등 다른 사람에게 의무와 책임을 떠넘길 것이다. 누가 봐도 대표이사가 직접 챙겨야 할 것 같은 의무조항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징역형을 강화했는데 그 대상이 중간관리자가 된다면, 중대법이 겨누는 대표이사의 책임은 묻기 어렵다. 반면 안전계획 작성 같은 대표이사의 의무조항을 따로 만들면 이를 위반했을 때의 형량은 높지 않겠지만, 대표이사를 콕 집어 처벌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무엇보다 사고 발생과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더라도 의무 위반 자체로 처벌할 수 있다. 그래서 전형배 교수는 징역형 강화에는 회의적이다. 대신 “법인의 형사책임 능력을 인정해서 포괄적인 위험방지의무를 어긴 법인을 먼저 처벌하고, 그에 대한 벌금은 상한을 폐지해야 한다. 이게 어렵다면 과징금과 징벌적 손해배상 형태로 경제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법인은 범죄능력이 없다는 것이 절대적 진리인가? 인과관계 입증이 어려운 기업의 범죄를 어떻게 규율하는 게 최선일까? 세계 각국은 수십 년 전부터 이런 의문에 나름의 답을 발전시켜왔다. 이제 한국 사회가 답할 차례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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