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일주일 재택근무하는 동안 쌓인 재활용 폐기물 사이에 둘러싸인 송지혜 기자.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에 육박한 2020년 12월14일,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컴퓨터와 책, 각종 문서가 좁은 방 안에 널부러졌다. 재택근무 중이던 배우자도 떡이 진 머리를 하고 옆방으로 출근했다. ‘집콕’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생존’이다. 일주일 동안 아침 식사는 거르고 점심과 저녁은 최대한 간단하게 해결하기로 했다. 집에서 밥을 먹으면 쓰레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배달음식을 삼가고, 되도록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재활용을 ‘정확하게’ 하기로 약속했다.

아침에는 커피를 마셨다. 카페에 텀블러를 가져갔다. 텀블러 사용을 거절당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외부에서 들여온 용기를 쓰지 않는단다. 따뜻한 커피는 일회용 종이컵에, 아이스커피는 플라스틱 일회용 컵에 담아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쓰레기가 벌써 두 개가 생겼다. 카페에서 쓰는 종이컵은 액체에 젖지 않도록 내부에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에틸렌(PE)을 바른다. 이 플라스틱 때문에 일반 종이로 분류할 수 없다. 재활용이 되는 종이를 확인하려면 끄트머리를 찢어보고 코팅이 돼 있으면 재활용할 수 없다.

아이스커피를 담은 일회용 컵은 플라스틱이다. 컵 바닥을 보니 플라스틱 재질인 페트(PET)와 폴리스타이렌(PS)이 섞여 만들어졌다. 폐기물은 단일 재질로 만들어졌을 때에만 재활용할 수 있다. 설령 단일 재질로 만들어져 있다고 해도 플라스틱 일회용 컵마다 사용된 재질이 모두 다르고, 이를 확인하기가 까다로워서 재활용품 선별장에서 모두 버려진다. 빨대는 가져오지 않았다. 빨대는 폴리프로필렌(PP) 단일 소재지만,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라 선별되기 어렵다. 명함, 칫솔, 볼펜, 병뚜껑 등도 워낙 작은 탓에 재질이 아무리 좋아도 선별할 수 없다.

가급적 배달음식을 줄이자던 다짐은 다음 날 바로 무너졌다. 예정에 없던 저녁 약속이 생겼다. 친구 두 명이 집에 찾아오면서 중화요리를 배달시켰다. 볶음밥과 짬뽕, 양장피 세 가지 음식에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10개가 나왔다. 음식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에는 PP라고 적혀 있다. 비우고 깨끗이 세척해서 분리배출하면 재활용이 잘 되는 재질이다. 다만 밀봉을 위해 압착된 비닐포장이 잘 떨어지지 않아서 그 부분을 가위로 오려 쓰레기로 버렸다. ‘이 정도면 재활용 강박이 아닐까’ 하고 자문했다.

짬뽕 국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두른 랩은 PVC 재질이다. 소시지 포장재, 교과서 비닐 커버, 휴대전화 케이스 등에 쓰인다. 플라스틱의 종류이지만 종량제봉투에 버려야 한다. PVC는 염소 성분이 많아서 태울 때 염화수소 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주문하지 않은 일회용 수저도 딸려왔다. 무상 제공이 금지되어 있지만 배달이나 포장을 할 때는 예외로 적용된다. 이사할 때마다 새 일회용 수저 수십 개가 쏟아져 나왔다. 한꺼번에 모아서 배달음식점에 주었지만, 업주는 별로 내켜 하지 않았다.

배달음식 문화가 확산되면서 대부분 업소에서 플라스틱 용기를 쓰고, 소비자는 제대로 씻지 않고 배출한다. 코로나19 이후 음식배달 서비스 이용이 늘면서 2020년 상반기 플라스틱 폐기물은 2019년 대비 15.6%가 증가했다. 예전처럼 다회용기를 쓰고 수거하면 안 될까? ‘일회용 용기가 다회용기보다 더 위생적’이라는 건 고정관념이라는 근거도 있다. 일회용품 대체 서비스인 트래쉬 버스터즈가 오염도를 테스트한 결과를 보면, 포장재를 바로 뜯은 일회용기의 세균이 세척 후 살균한 다회용기보다 20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백 가지가 넘는 플라스틱 재질 중에 일상생활에서 페트, PP, PE, PS, PVC를 가장 많이 쓴다. 생수병은 페트, 음식 포장용기가 PP, 락스 등 세제 통은 PE, 요구르트 등 통 얇은 재질은 PS다. 플라스틱은 쉽게 재활용될 거라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재질이 섞여서 만들어진 제품은 재활용품 선별장으로 가더라도 찬밥 신세다. 마트에서 삼겹살이나 생선을 포장한 플라스틱, 배나 사과를 감싼 스펀지 같은 느낌이 나는 플라스틱도 재활용되지 않는다. 샌드위치나 딸기, 포도를 담은 투명한 플라스틱도 여러 재질이 섞여 재활용되지 않는다. 복합 재질이나 기타 플라스틱 재질은 OTHER로 표시되는데, 이 역시 쓰레기로 처리된다. 한 차례 논란이 일었던 즉석밥 용기가 바로 이 경우다.

ⓒ연합뉴스2020년 9월24일 부산의 한 재활용품 선별장에서 각 가정에서 배출한 재활용 폐기물 분류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OTHER’ 표시 제품

하지만 소비자가 플라스틱 소재까지 일일이 구분해야 한다면 너무 피로한 일이다. 애초에 플라스틱, 캔, 유리병에 분리배출 표시가 있다면, 기업이 생산 단계에서 재활용이 되는 제품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에 따라 기업은 포장재 재활용사업 공제조합에 돈을 내고 재활용을 위임한다. 분리배출 표시가 있는데도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면, 정부와 생산자가 제품 및 재질을 바꾸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기업은 분리배출 표시만으로 재활용이 될 것처럼 얼렁뚱땅 넘겨왔다. 2020년 12월 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기업들의 이런 행위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며 “재활용이 원천적으로 불가한 OTHER로 만든 모든 제품·포장재에 분리배출 표시를 없애달라”는 글이 등록되었다.

친구들이 사온 케이크 상자를 뜯었다. 여섯 종류의 조각 케이크가 한 상자에 담겨 있었다. 케이크 상자는 종이류일 것 같지만 찢어보니 얇게 코팅이 돼 있었다. 100% 종이일 것 같았는데, 배신감이 들었다. 큰 케이크 상자를 10리터 종량제봉투에 버리려면 가위로 작게 잘라야 한다. 가만 보니 고양이 장난감을 담은 포장재, 종이 가방 등 코팅된 ‘짝퉁’ 종이가 너무 많았다. 불필요한 포장은 재활용을 방해하고 쓰레기를 늘리지만, 아직 재질에 대한 규제가 없다. 기름기가 묻은 피자와 치킨 상자도 분리배출하면 안 된다.

케이크에 우유를 곁들여 먹었다. 우유팩은 잘 씻어서 종이에 섞어 배출하면 될까? 우유팩은 고급 섬유라서 티슈를 만드는 펄프를 대신한다. 일반쓰레기도, 종이류도 아니다. 아파트의 경우 우유팩만 모아서 배출하고, 단독주택에서는 종이류에 넣지 말고 다른 재활용품에 섞어 배출하는 게 낫다. 선별장에서 따로 선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주민센터에서 보통 우유팩 500ml 30개당 휴지 1개로 교환해준다.

다른 이들은 케이크를 안주 삼아 소주 한 병을 땄다. 대다수 소주병은 제조사에 상관없이 똑같이 생겼다. 2009년 제조사들과 환경부는 환경보호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소주병 공용화 자발적 협약’을 맺었다. 소주병의 디자인(초록색)을 통일해서 어떤 회사든 다른 회사의 폐기된 병을 재활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데 하이트진로에서 2019년 4월 다른 회사의 소주병과 모양 및 색깔이 다른 진로이즈백(하늘색)을 출시해버렸다. 다른 회사들은 폐기된 진로이즈백의 병을 재활용할 수 없게 되었다. 기존 초록색 병이 아니라고 해서 당국이 진로이즈백의 판매를 강제로 막을 수는 없다.

배달음식을 시키지 않기로 했더니 끼니마다 어려움에 부닥쳤다. 일하면서 밥을 해먹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재료까지 모두 손질된 간편조리 식품을 사서 대충 조리해서 먹었다. 반찬 개수를 줄이고 ‘메인 요리’ 하나만 먹는데도 비닐 서너 개가 나왔다. 간편조리식 마라샹궈는 숙주, 쇠고기, 배추 한 줌이 각각 압축 포장돼 있었다. 모두 비닐류 OTHER 재질이라 분리배출이 불가능했다. 편할수록 쓰레기양이 어마어마해졌다. 샴푸나 화장품 용기는 내용물과 펌프 마개를 제거하기가 힘들고, 각양각색 디자인과 색깔로 제작되어 재활용이 어렵다. 그 때문에 비누 형태로 된 고체 샴푸를 써왔다. 유리병에 든 화장품은 거의 쓰지 않았다. 그러나 먹는 일에서 쓰레기를 줄이려는 ‘노력’은 노동시간과 주변 환경이 여의치 않으면 거의 실현 불가능했다.

재활용 분리배출 원칙은 잘 비우고 헹구며 이물질을 제거한 뒤 버리는 것이다. 단독주택의 경우엔 종이와 스티로폼, 비닐을 각각 나누어 담고 페트와 플라스틱, 유리, 캔 등은 비닐봉지에 넣어 배출하면 된다. 재활용품 선별장에서 비닐봉지를 하나하나 뜯는 것도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가정에서는 페트병 등도 투명하고 큰 봉지에 한꺼번에 넣는 게 좋다. 아파트에서는 재활용품을 종류별로 마대에 넣되, 우유팩이나 페트병 뚜껑도 재활용될 수 있도록 따로 수집하는 것이 좋다. 잘 모으면 훌륭한 재활용 자원인데, 규정이 없어서 아무렇게나 버려지고 있다. 쓰레기종량제와 재활용품 분리배출 정책이 1995년부터 시행되었는데도 아직까지 관련 규정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재활용 폐기물을 참 많이 배출해왔다. 2017년 환경부가 발표한 ‘전국폐기물통계조사’에 따르면 재활용이 가능한 자원 중 69%가 분리배출됐다. 재활용률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만하다. 국가마다 산정 방식이 다르지만, 한국 재활용률은 62%에 달해, 67%인 독일 다음으로 세계 2위다. 하지만 이는 실제 재활용률이 아니라 재활용품 선별장에 반입된 비율일 뿐이다. 실질 재활용률은 이보다 낮은 40% 수준이라는 게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의 분석이다. 나머지 60%는 쓰레기로 처리돼 소각하거나 매립된다.

그러다 보니 분리배출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시민은 재활용품 분리배출을 잘하는 듯 착각하고, 지자체는 쓰레기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처리 시설이 부족한 상황을 맞게 되었다. “현재 상황에서는 재활용품 분리배출을 열심히 해서 종량제 쓰레기봉투 사용을 줄일 게 아니라 분리배출을 정상화시키고 쓰레기 발생 현황을 정확히 인식하는 캠페인이 필요하다”라고 홍 소장은 말했다.

2020년 12월15일, 수거된 재활용품을 따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 선별장으로 가 보았다. 컨베이어벨트 위로 페트, 플라스틱, 캔, 유리병 등이 빠르게 지나가면 페트, PS, PP, PE, 백색 유리병, 갈색 유리병, 녹색 유리병, 알루미늄, 캔 등 각 담당자가 나란히 서서 자기가 맡은 품목을 골라냈다. 재활용품의 상태는 선별 노동자의 위생이나 안전과 직결되어 있다. 분리배출이 잘 안 된 쓰레기더미를 헤치고 작업자들이 직접 품목들을 만져서 골라내야 하기 때문에 분리배출 전에 음식물이나 내용물을 반드시 비우고 씻어야 한다. 또 제대로 씻지 않은 재활용품은 다른 재활용품을 오염시키고, 재활용품으로 만든 원료인 재생 원료의 품질도 떨어뜨린다. 작업환경이 열악한 민간 선별장에서는 주로 이주노동자가 작업하고 있었다. 재활용품 선별장 업체 대표는 “지난여름까지만 해도 수용할 수 있는 재활용품 양의 20%가 초과되어서 쌓아두고 매일 잔업을 해야 했다. 그마저 60%는 전부 쓰레기로 처리되었다. 재활용품 가격은 떨어지는데 쓰레기 처리비는 오르고, 선별 작업에 드는 비용까지 더하면 지출이 더 많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홍수열 소장은 “분리배출을 정상화시키고 쓰레기 발생 현황을 정확히 인식하는 캠페인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25년간 누적된 문제 한꺼번에 터지는 중

국내 재활용품 가격은 국제 유가와 연동된다. 가령 비닐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배출된 비닐의 70%는 자르고 압축해 석탄을 대체하는 고형연료(SRF)로 만들어진다. 열병합발전소나 시멘트 공장 등 열이 필요한 사업장에서 이용한다(이를 ‘에너지 회수 재활용’이라고 한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원료가 SRF보다 저렴해졌고, 굳이 폐비닐을 활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게다가 SRF를 태울 시설도 부족하다. 현재로서는 SRF의 수익성이 매우 낮아 재활용품 선별장에 폐비닐이 쌓이고만 있다. 만약 충격완충재(일명 뽁뽁이)나 제과점에서 빵을 담는 비닐류 등 투명하고 깨끗한 비닐만 따로 선별되면 비닐도 재활용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회수할 방안이 없다. 결국 소각해야 한다.

플라스틱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석유 가격이 떨어지면 석유로 만드는 플라스틱 원료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재생원료를 쓰는 것보다 새 플라스틱을 쓰는 게 유리해졌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생산과 소비가 위축되어 수출길이 막힌 탓에 재생원료가 포화상태에 달했다. 2020년 5월, 정부가 재생원료를 급히 사들이면서 한숨을 돌렸지만 “응급수술 받은 것일 뿐, 2018년 쓰레기 대란 사태가 또 언제 어떻게 재연될지 모른다”라고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말했다.

그나마 투명 페트는 수익성이 높은 편이라서 수출 흐름이 회복되는 동시에 국내에서 소진되었다. 하지만 한국은 비닐 라벨을 떼지 않거나 담배꽁초 같은 이물질을 넣어 배출하는 경우가 많아서 재생원료의 질이 떨어지는 편이다. 이물질이 거의 없는 재생원료는 다시 페트병을 만들거나 녹여서 섬유로 재활용한다(이를 ‘물질 재활용’이라고 한다). 2020년 12월10일 문재인 대통령이 ‘2050 대한민국 탄소중립 비전’을 발표하며 착용한 넥타이가 바로 이 원료로 만들어졌다. PE는 하수도관, PP는 자동차 내장재와 수출용 받침대(팔레트) 등으로 재활용된다. 그밖에 캔과 고철은 가격이 높지만 양이 적고, 유리병은 간신히 적자를 면하는 수준이다.

2013년 고유가 시절에는 재활용품은 ‘돈 되는’ 시장이었다. 민간에 의존한 재활용 시스템이 수익성을 기반으로 굴러갔다. 하지만 2018년 중국이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고 유가가 하락하자 그동안 가려져 있던 문제가 드러났다. 지금껏 해온 재활용품 분리배출은 틀렸다. 분리배출 표시가 있어도 재활용되지 않는다. 환경부는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을 시행하고 포장재 재질의 등급평가와 표시를 의무화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2021년 3월부터 생산자는 재활용 용이성에 따라 최우수, 우수, 보통, 어려움 등 4개 등급을 제품에 표시해야 한다. ‘어려움’으로 분류되면 생산자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분담금을 지금까지 내온 것보다 최대 20% 추가 부담해야 한다(화장품 용기만 ‘재활용 어려움’ 등급 표시가 5년간 면제되어 환경단체의 비판을 받고 있다). 홍수열 소장은 “쓰레기종량제와 재활용품 분리배출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 25년간 누적된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지금껏 아파트에 민간 재활용 수거 업체가 들어가고, 고물상과 폐지 줍는 노인 덕분에 지자체가 재활용품 관리 비용을 줄여왔다. 전면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쓰레기를 덜 배출하는 ‘좋은 제품’ 생산업체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구조로 개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