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번에 시작되는 이야기가 좋다. 바로 사건 한복판으로 데려가는 이야기. 그런 동화를 만나면 횡재를 한 것 같다. 〈5번 레인〉을 읽을 때도 그랬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는 수영 대회 결승전 관중이 되어 있었다. 나루는 그간 열심히 훈련했고 경기에 진지하게 임했으며, 수영부 친구들의 전폭적인 응원을 받았고 최선을 다했지만 라이벌 초희에게 큰 차이로 졌다. 30초 안에 시합의 승자가 가려진 것처럼, 단 두 페이지만으로 분명해졌다. ‘나는 이 책이 좋다.’

나루는 승리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가진 어린이다. 추진력도 대단하다. 경기에 진 다음 날도 새벽같이 수영장에 간다. 나쁜 기억을 지우려 레인을 열 바퀴 돌고 생각도 물 위에 누워서 한다. 코치는 이기고 지는 게 수영의 전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나루는 “시합은 이기려고 하는 거잖아요. 저는 이기고 싶어요”라고 대꾸한다. 동화의 주인공이 현실의 어린이를 대변하듯 솔직하고 뚜렷하게 원하는 것을 말할 때 독자는 그의 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나루가 수영에서 믿을 것이라곤 자기 몸과 물뿐이다. 그래서 집중력이 중요한데, 자기보다 늦게 시작했으면서 좀처럼 1위 자리를 내놓지 않는 초희가 나루를 흔들어놓는다.

그러는 사이 나루의 마음에 또 한 사람이 파고든다. 전학생이자 수영부 신입인 태양이다. 경기 직전에 나루에게 “나도 파이팅 해줘”라며 웃는 태양이 때문에 나루는 전속력으로 레인을 왕복했을 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린다. 태양이가 나루더러 인어 공주보다 돌고래가 더 어울린다고 해놓고는 “나는 인어 공주보다 돌고래가 좋아”라고 말할 때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나루가 채팅 앱의 프로필을 돌고래로 바꿀 때도, 둘이 비밀 데이트를 할 때도. 치열한 경쟁과 설레는 사랑이라니. 책 읽는 속도를 늦출 수가 없다.

나루에게 위기는 한꺼번에 닥쳐온다. 태양이와의 연애 사실이 밝혀지며 수영부 안팎에서 곤란한 처지가 되는 한편, 얼결에 승리의 부적이라는 초희의 수영복을 훔친 것이 탄로 날 상황이 된 것이다. 시합을 코앞에 두고, 나루는 수영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읽는 내내 부풀어 오르던 마음은 두 여자 어린이가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대통령배 결승에서 나란히 날아오르는 순간 터질 것만 같아진다.

어떤 작품은 읽은 다음에야 내가 이런 것을 읽고 싶어 했구나, 깨닫게 된다. 나는 여자 어린이의 운동 이야기, 신중하고 섬세한 연애 이야기, 어린 시절의 한 부분을 멋지게 완성하는 이야기를 읽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나와 친구들은 마치 경기장의 관중처럼 들떠서 연락을 주고받았다. 우울한 날이 많았던 2020년이지만, 우리 동화는 여기까지 왔다.

기자명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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