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12월8일 국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악이다(민주노총).”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조합과 관련된 일련의 법 개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뭐가 달라지기에 노사 모두가 만족하지 못할까? 그 전에, 왜 법을 바꾸었나?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준(동의)하기 위해서다. ILO는 노동을 전문으로 다루는 유엔 산하기구다. 187개국이 가입했다. ILO는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차별 금지’ 등 4개 분야 8개 협약을 모든 회원국이 비준하고 이행해야 할 ‘기본협약’으로 분류한다. 한국은 1991년 유엔에 가입하면서 ILO 회원국이 되었는데, 그간 수차례 국제사회에 약속하면서도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관련 4개 협약을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이걸 모두 비준하겠다는 게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국정 과제에도 포함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집권 4년 차가 다 지나도록 공약을 이행하지 못했다. ‘국가 간 약속’이라 할 수 있는 조약을 비준하고 나면, 그 조약의 내용을 국내에서도 시행해야 한다. 문제는 ILO 협약과 국내법이 충돌한다는 점이다. 법을 바꿀 수 있는 건 국회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총선 승리로 거대 여당이 된 뒤에야 ‘결사의 자유’ 협약 관련 법 개정을 겨우 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한국·EU FTA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한다’는 규정을 어겼다고 유럽연합(EU) 측이 분쟁해결 절차를 개시한 데 따른 압박이 작용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뀌나? 해고자나 실업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제한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법 규정을 없앴다. ILO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제87호)’은 “노동자 및 사용자는 어떠한 차별도 없이 사전 인가를 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해 단체를 설립하고 그 단체의 규약에 따를 것만을 조건으로 해서 그 단체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라고 선언하는데, 해당 규정은 국내법과 정면충돌한다. 지금까지의 국내법에서는 해고자나 실업자가 기업별 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고 해석되어왔다. 그러나 국제노동기준에서는 이들을 노조(기업 단위든 산별이든)에 가입시킬지 말지는 ‘노조가 스스로 정할 문제’라는 원칙이 확립되어 있다. 해외 입법례를 보더라도 특별히 해고자나 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막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이번 법 개정으로 달라지는 것은 한국에서도 산업별·직종별·지역별 노동조합이 아닌 ‘기업별 노동조합’에 해고자나 실업자가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기업별 노동조합의 임원이나 대의원은 해당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 중에서 뽑도록 법으로 정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런 규정은 ILO 기준에 맞지 않는다. 노조 임원의 자격은 노조 스스로 자유롭게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별 노조가 보편적인 한국의 현실을 고려했다는 게 정부·여당의 설명이다. 또한 해고자나 실업자도 기업별 노조에 새로 가입할 수 있게 된 만큼, 해당 기업에 종사하지 않는 조합원도 ‘사용자의 효율적인 사업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게 했다.

‘노조 조합원의 자격’과 관련한 변화는 또 있다. 공무원 중에서는 현직 공무원이자 6급 이하 일반직만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는 법 규정이 있었는데 이를 없앴다. 이제 해고된 공무원뿐 아니라 5급 이상 공무원, 소방공무원 등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현직 교사에게만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는 교원노조법도 개정되었다. 조합원 6만명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해직자 9명을 조합원에 포함시켰다는 이유로 ‘노조 아님’ 통보를 받게 했던 근거 조항이다. 물론 이 통보는 이미 지난 9월 대법원 판결을 통해 위헌이라고 결론 났다.

‘개악’은 아니지만 ILO 기준에 못 미쳐

“‘태산명동 서일필(태산을 울려 세상을 떠들썩하게 움직였는데 나타난 것은 쥐 한 마리)’이다. 이 문제로 3년 동안 논란이 되어온 점을 감안하면, 입법의 성과라고 평가하기엔 많이 아쉽다. 대법원 판결 등에서 이미 확인된 권리를 법에 반영한 것 외에, 이전 상황을 ‘개혁’한 지점을 따로 찾기 어렵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노동법)의 말이다.

ⓒ시사IN 조남진9월3일 법외노조 처분이 위법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만세를 부르는 전교조 조합원들.

오히려 협약 비준과 무관한, 사용자들에게 비준을 양해해달라고 호소하는 것 같은 법 개정도 함께 이뤄졌다. 노사가 맺는 단체협약 유효기간의 상한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한 것이다. 한국의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외국보다 짧아서 교섭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된다는 고용주 단체의 요구를 반영했다고 한다.

물론 3년이라는 기간 자체가 국제 기준에 위반된다고 하기는 어렵다. “ILO는 매우 장기간의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설정하는 게 노동자의 이익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몇 년인지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박귀천, 〈국제노동기준에 비추어본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 평가〉).”

바뀐 법에 따라 모든 노조가 3년 단위의 단체협약을 맺어야 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상한’이다. 다만 한국은 노조가 여러 개 있는 기업의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를 통해 ‘교섭대표 노조’를 정하게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길어지면 소수 노조(가입자가 적은 노동조합)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권 교수는 “(교섭대표 노조가 3년짜리 단체협약을 체결하면 그 기간에) 소수 노조의 단체교섭권이 실질적으로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당초 정부의 법 개정안은 파업 시 직장점거를 전면 금지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이 내용은 기존 판례에 따라 수정되어 파업 시 직장점거 관련 규정이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듯하다. ‘노동조합은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해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로 쟁의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신설되었는데, 이는 ‘전면적이고 배타적인’ 직장점거가 아닌 ‘부분적이고 병존적인’ 직장점거는 정당하다고 보는 대법원 판례를 입법화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이번 법 개정은 ILO의 기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을까? 박은정 인제대 교수(노동법)는 “개헌보다 어렵다는 노조법 개정을 시도해 관철한 것에는 의미를 부여한다. 일부 합리적 우려를 감안하더라도 노동계에서 말하듯 ‘개악’이라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번 법 개정이 ILO 기준에 부합하진 않는다. ILO가 강력하게 요구한 조항들을 조금씩 건드린 것에 불과하다. 협약 비준이라는 국정 과제 달성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자 타협이다”라고 평가했다.

이번 법 개정이 ILO 기준에 미달한다고 볼 만한 대목은 무엇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조 4호 ‘라’목을 그대로 남겨둔 점이다. 노조법 제2조 4호 ‘라’목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ILO는 이 규정을 폐지하라고 지속적으로 권고해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 규정은 남겨두고 해고자와 실업자의 기업별 노조 가입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단서’만 삭제하는 길을 택했다. 왜?

노조법 제2조 4호 ‘라’목은 왜 살아남았나

12월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 심사소위 속기록에 답이 있다. ‘노조법 제2조 4호 ‘라’목을 아예 삭제하면 어떤 점이 우려되느냐’는 질문에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은 이렇게 답한다. “특고도 아닌 순수 자영업자, 1인 자영업자 같은 경우에 (중략) 예를 들면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같은 경우인데 그분이 ‘근로자가 아니다’ 하는 데는 다툼이 없는데 그런 분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어떻게 될까. (중략) 과연 그런 단체까지 노동조합성을 인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있고….”

ⓒ청와대제공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9월4일 가이 라이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특고’란 ‘특수고용 노동자’의 줄임말이다. 택배기사,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처럼 자영업자 신분이지만 임금노동자의 성격을 강하게 띠는 사람들을 말한다. 특수고용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는 판례상 점점 인정되는 추세다. 박 차관의 말은, 노조법 제2조 4호 ‘라’목을 삭제하면 이런 특수고용 노동자뿐 아니라 자영업자 일반에까지 노동 3권이 전면 인정될 수 있고 이는 문제가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임금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자영업자 여부를 구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자영업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등 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법)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를 조금이라도 폭넓게 인정하기 위해서는 노조법 제2조 4호 ‘라’목 전체를 폐지해야 한다. 해당 규정이 실제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했을 때 행정관청 심사에서 반려되는 이유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노조법상 근로자인지 여부가 다퉈지는 사람이나 근로자가 아닌 사람이 일부 노조에 가입하고 있더라도, 그로 인해 노조의 자주성이 침해되지 않는다면 이는 노조 내부적으로 결정할 문제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노조 설립신고 제도도 개선되어야 한다. 최소한 반려제도를 폐지해서 신고제도 본연의 의미를 되살려야 한다. 현행법은 허가주의처럼 운영되고 있다.”

사실 ‘신고제’라면, 노조를 설립했다고 신고했는데 행정관청에 의해 ‘반려’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박귀천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독일의 경우, 노동조합 설립이나 쟁의행위를 규율하는 성문법은 전혀 없다. 단지 헌법상 단결권 조항과 단체협약법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노동 3권은 매우 폭넓고 강하게 인정되고 있다. 거대한 산별노조 중심의 노사관계에서 노동조합이 강한 교섭력과 정치력을 가지고 있고, 법원도 헌법상 단결권을 매우 적극적으로 해석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의 현실은 많이 다르다. ILO 기본협약 비준은 말 그대로 노동자에게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 내용을 정립한 것이고,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후의 변화는 결국 한국의 노사 또는 노사정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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