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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3월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기쁘다. 내년 상반기 중엔 지긋지긋한 팬데믹 상황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을 터이니. 그러나 몇 달은커녕 지금 당장 하루하루가 힘든 사람들이 있다. 취업자 중 무려 25%(2019년 기준)를 차지하는 자영업자들이다. 이미 10개월여 동안 나갈 돈(임대료, 사회보험료 등)은 그대로인데 들어오는 돈은 없는 기막힌 상황을 버텨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2월 들어 ‘사회적 거리두기’의 단계가 상향되었다. 비명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특수고용 노동자나 청년 등 고용 취약계층도 천재지변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이다.

나는 우리 사회 전체가 이 피해자들에게 큰 빚을 졌으며, 정부는 통상적 예산 편성을 크게 뛰어넘는 지출을 통해서라도 그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가게 문을 닫거나 일자리를 잃은 것은 정부의 방역 조치를 따른 결과였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K방역은 우리 사회를 코로나19로부터 지켜냈다. 이런 사회 전체적 편익의 비용을 피해자들에게만 떠넘기는 것은 절대 공정하지 않다. 또한 정부의 경기정책으로 유동성이 크게 늘어나면서 시중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올해 엄청난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자산 보유자들도 만만찮은 재미를 봤다. 천재지변과 ‘전례 없는’ 통화정책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화로 시중은행들은 횡재하는데, 왜 자영업자와 불안정 노동자들은 능력이나 노력과 관계없이 고통받아야 하는가?

지금 상황을 방치하는 만큼 우리 경제의 생산능력은 훼손된다. ‘인적자본(고용 취약계층)’과 ‘물적자본(자영업자들이 투자한 돈)’이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이든 구멍가게든 일단 망하고 나면 되돌리는 데 훨씬 큰 사회적 비용이 든다. 시장논리를 앞세우며 ‘망할 업체는 망해야 한다’라는 분들도 있지만, 피해자들은 시장경쟁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다. 지금 같은 강도로 수요·공급이 차단되는 상태를 시장경제라 불러서는 안 된다.

물론 큰 규모의 정부지출은 국가부채를 늘릴 것이다. 그러나 ‘미래의 불확실한 위험’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진행 중인 공정성과 생산능력의 파괴를 방치하자는 주장은 공허하고 무책임하다. 지금은 정부가 역사상 가장 낮은 이자율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시기다. 경제성장률이 예전 수준으로 회복된다면 큰 세율 인상 없이 재정건전성을 개선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국가부채비율이 가장 양호한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더 이상 선의의 피해자들에게 ‘조금만 더 견디라’고 강요하면 안 된다. ‘정부지출’이란 단어만 나오면 ‘나라 빚 늘어난다’고 되풀이하는 앵무새들이야말로 시장경제 체제가 회복될 때까지만이라도 입을 다물어주기 바란다.

기자명 이종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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