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4월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이주노동자 단체와 민주노총이 이주민 보호와 노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11월27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코로나19 이주민 인권 상황 모니터링 결과’를 공개했다. 코로나19 관련 정책·제도에서 이주민으로서 차별 경험이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 307명 중 73.8%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없었고(37.8%),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재난 문자를 받을 수 없었으며(26.7%), 공적 마스크를 구매할 수 없었다(18.9%). 코로나19라는 감염병 위기는 신분을 가리지 않았지만, 이주민들은 선주민들에 비해 덜 보호받았다. 이주인권은 행정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셈이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이주민들에게 2020년은 어땠을까. 행정만큼 사법부의 판단도 차가웠을까. 이주인권사례연구모임이 선정한 ‘올해의 이주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26건을 통해 코로나 시대에 법정에 서야 했던 이주민들의 삶이 드러났다. 난민 불인정 처분, 산업재해, 결혼이주민의 불안한 체류자격 등 여러 위기 속에서 법에 호소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주민을 대하는 재판부의 태도는 얼음처럼 냉정하지만은 않았다. 예년과 달리 디딤돌 판결 수가 걸림돌 판결 수를 처음으로 능가했다. 출입국·외국인청(이하 출입국)의 기계적이고 일률적인 처분에 제동을 건 의미 있는 판결도 많았다.

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법무부의 내부 지침을 거스르는 재판부의 판결들이다. 필리핀 국적 여성이 몸이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한국에 결혼이주한 언니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 방문동거(F-1) 체류자격으로 한국에 입국했으나 출입국 행정에 가로막혔다. 다른 베트남 국적 남성이 겪은 일도 비슷했다. 누나의 자녀를 돌보기 위해 입국했으나 ‘남자라서’ 체류가 거부되었다. 법무부의 ‘결혼이민자 가족체류 관리지침’에 따르면 두 사람은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두 사례에 대해 각 법원은 출입국 처분이 위법하다는 비슷한 판단을 내놓았다. 법무부 내부 지침대로 내린 처분이라도 재량권을 일탈, 남용했다면 ‘위법’이며, 중요한 것은 지침의 형식적 요건이 아니라 실질적 요건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적시한 것이다(수원고등법원 2019누13400, 서울고등법원 2018누78253). 두 판결 모두 올해의 디딤돌 판결로 선정되었다.

법무부 지침에 제동을 건 판결은 또 있었다. 법무부 장관이 정한 ‘난민인정 심사·처우·체류지침’에 따르면 난민인정 신청자가 체류기간이 경과한 상태라면 무조건 출국명령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체류기간을 9일 넘긴 난민 신청자에 대해 출국명령을 내린 출입국의 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박해의 이유가 국적국 또는 상주국을 떠나온 이후 발생하는 경우, 이른바 ‘체재 중 난민(본국에 돌아가면 박해받을 가능성이 높은 난민)에 해당하는 경우’ 등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난민 지침에 따라 내린 출입국이 재량권을 일탈, 남용했다고 판단했다(서울행정법원 2019구단63044). 일률적으로 난민 지침을 적용하는 출입국 행정을 경계해야 한다고 판시한 사례다.

국가·민족·종교적 탄압 등을 이유로 본국을 떠나야 하는 일들이 있는가 하면 결혼과 취업 등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한국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나 이주민으로서 한국 사회에 정착하여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주민이 국내에 체류하기 위해서는 정부로부터 ‘체류자격’을 받아야 한다. 체류자격의 종류와 어떤 사람이 각각의 체류자격에 해당하는지, 체류자격을 받은 사람이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지는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이 규정한다. 법무부는 이러한 체류자격을 200종류로 구분하여 관리하고 있다. 이주민이 체류자격을 변경하거나 체류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거주지 출입국·외국인청장 또는 출입국·외국인사무소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개인이 처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정

출입국은 ‘내국인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이주민 체류자격을 부여할 때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한다. 법원도 출입국 행정에 대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개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이 처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정을 해명할 기회도 없이 출입국에서 문전박대를 하거나 출국명령 혹은 강제추방 명령을 처분할 때 문제가 된다. 단 한 번의 실수와 오해를 용납하지 않는 무관용 행정으로 인해 이주민들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기도 한다. 재판부가 법무부의 내부 지침이라고 해서 반드시 적법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한 판결들은 의미가 크다.

이와 비슷하게 출입국의 처분을 무효라고 선고한 판결도 나왔다. 13년 전 난민 불인정을 받은 후 재입국해 난민 신청을 한 이란 국적 외국인에게 ‘사정변경 없는 난민 재신청자’로 규정한 출입국 처분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기본적인 사실조사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점을 위법성이 중대하고 명백해서 ‘무효’라고 선고했다(2019구단64429). 13년 동안 중대한 사정변경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에도, 이주민 당사자가 제출한 난민인정 신청서 내용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점을 꼬집었다. 유흥접객원으로 불법취업 활동을 한 것으로 경찰에 적발된 난민 신청자에 대해 강제퇴거 명령을 내린 출입국의 행정도 과하다고 지적했다. 인천지방법원은 난민 신청자가 불과 몇 시간 동안 일한 사실만으로는 이주민의 반사회성이 충분히 드러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2019구단50684). 두 판결 모두 올해의 디딤돌 판결로 선정되었다.

결혼이주여성의 불안한 체류는 계속된 숙제로 남았다. 단기방문(C-3) 체류자격으로 입국한 베트남 국적 여성은 한국인 남성과 혼인하여 결혼이민(F-6) 체류자격으로 변경 신청했지만 부산출입국·외국인청장이 거부했다. ‘임신, 출산 예정, 자녀 양육 등 인도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체류자격 변경을 허용’한다는 내부 지침에 따랐다. 부산지방법원은 이를 적법하다고 판단했다(2019구합22867). 체류기간 만료 직전에 혼인한 것을 두고 혼인의 진정성이 의심되며 이주민이 한국에 재입국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출국 이후 초청 입국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출입국 지침 탓에 외국인 배우자가 본국으로 출국하자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고 이혼소송을 진행한 사례들이 존재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주인권에 걸림돌이 되는 판결이다. 이미 2018년 선정된 디딤돌 판결 중에는 출국 후 재입국하지 않고 체류자격 변경이 가능하다고 설시한 판결도 있었다(부산지방법원 2016구합24589).

이주민이 처한 취약한 노동환경도 판결로 드러났다. 대법원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해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업주에 대해 법원이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2018도3690). 파견업체를 통해 간접고용한 것으로 출입국관리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결국 단속을 통해 인력 파견업체는 형사처벌을 받았고 해당 이주노동자는 강제추방되었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파견근로를 허용하지 않음에도 파견업체로부터 알선받아 일을 시켰다는 사업주의 책임회피식 주장을 재판부가 그대로 받아들인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외국인 인력수급에 혼란을 초래해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커 보여 걸림돌 판결로 선정했다.

ⓒ시사IN 윤무영8월2일 집중호우로 물에 잠긴 강원도 삼척 산양리 인근 농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비닐하우스 안에 설치된 컨테이너를 숙소로 사용한다.

기소유예 남발 검사는 이주인권의 걸림돌

대한민국은 하루 평균 3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여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선주민 노동자가 기피하는 노동 현장에 투입되는 이주노동자들은 깨지고, 부러지고, 잘리고, 쓰러지는 위험에 더 빈번하게 노출된다. 산재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사업주는 이주노동자가 교육받은 대로 기계를 다루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주노동자의 산재사고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충분한 안전교육을 하지 않은 사업주의 잘못을 확인한 판결(인천지방법원 2019가단242761)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디딤돌 판결이다. 인천지방법원에서 내린 유사한 판결이 하나 더 있다. ‘잘 알지 못하는 기계를 다루면서 동료 직원의 말만 듣고 함부로 손을 넣었다’는 이유로 이주노동자의 과실을 30% 인정한 판결은 디딤돌이 아닌, 주목할 판결로 선정했다(2019가단246473).

이주민이 형사사법 절차의 당사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이주민의 경우 더욱 힘겨운 과정이다. 피해 이주민들의 진술이 구체적인 부분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는 법원의 판단과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고 보고 실체적인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 없이 기소유예를 남발하는 검사의 처분은 이주인권에 걸림돌이 된다.

부산지방법원의 판결은 한국어가 서툰 이주민이 처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결혼이주여성을 넘어뜨려 상해를 입힌 남편에 대해 1심 판결을 뒤집고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수사기관에서 통역 없이 진술하는 과정에서 생긴 다소 표현의 차이가 무죄판결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명시했다(2019노2140). 또 헌법재판소는 성매매 피해자를 뚜렷한 증거 없이 성매매특별법 위반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검찰에 대해 이주민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며 처분을 취소하는 결정을 재판관 전원이 내렸다(2018헌마1224). “청구인은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곤란하고 한국 내 사회적 지지기반도 없으며 한국 법제도에 대한 이해 및 접근성이 낮은 외국인 여성으로 (…)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두 판결은 형사사법절차의 기본을 재확인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

대단히 전향적인 판결은 없었으나, 이주인권을 드높인 디딤돌 판례들이 다양하게 쌓인 한 해였다. 법원의 판결은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을 심리하고 선고하는 법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 올해 선정된 디딤돌 판결에 담긴 온도가 다른 법관에게도 영향을 주고 전향적인 판결이 더 많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기자명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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