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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자신의 페이스북 홈페이지에 ‘죽창가’를 소개했다가 두고두고 곤욕을 치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위를 정치적 음모의 차원으로 해석했다. 그들에 따르면, 당시 정부·여당은 일본의 대(對)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를 오히려 호재로 삼아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조 당시 수석의 죽창가 역시 그런 맥락하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죽창가는 동학농민혁명을 기린 1980년대 ‘민중가요’다.

사실은 나도 그날 비슷한 시간에 죽창가를 유튜브로 검색해서 듣고 있었다. 동학농민혁명을 극화한 〈녹두꽃〉의 종영일. 녹두장군과 그의 동지들이 사형당하는 장면에서 죽창가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는데, 울컥해버렸다. 애절하면서도 장엄한 대단한 명곡이다. 스스로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비아냥거리면서도 소주까지 기울이며 찔끔거렸다. 동학농민군들이 내걸었던 국권 수호와 인권, 사회·경제적 평등 같은 당대의 대의(大義)들은 지금도 보편적 가치다. 국권과 민권을 짓밟는 국내외의 적들에 대항하는 ‘죽창이 되자’는 노래의 메시지 역시 불온하기는커녕 너무나 멀쩡한 근대적 의식이다. 이런 드라마와 노래에 공감하거나 SNS에 올린 것이 크게 부끄럽거나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 당시 수석 역시 무슨 거창하고 치밀한 선전·선동 전략 아래 죽창가를 소개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이 ‘죽창가 에피소드’가 최근까지도 이른바 ‘586(나아가 문재인 정부)’을 공격하는 소재로 즐겨 사용되고 있는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다. 아마 ‘586’이 젊은이들에겐 빼도 박도 못하는 기득권자이며 ‘꼰대’로 인식되어버렸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공격도 가능해지지 않았을까? ‘기득권이 된 급진’만큼 웃기는 것은 없다. 예컨대 노동가치론의 대중적 버전(‘모든 가치는 노동에서 나온다’)은, ‘못 배우고 빽 없고 가난해서 이렇게 산다’고 자조했던 1980년대의 저임금 노동자들에겐 굉장히 급진적 논리였다. 임금 인상 투쟁에 불을 붙여 당시의 소득격차 해소와 경제성장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노동가치론 역시 ‘우리 회사의 수익은 우리 소속 노동자들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우리의 임금을 높이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정규직 대형 노조만의 단기적 수익 추구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게 된다.

나 자신이 그 세대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갖는 왜곡된 애정인지는 모르겠으나, 586이 통상적 의미의 기득권자로 남지 않기 바란다. 연금, 노동시장, 복지, 경제성장 등의 부문에서 단기적으로는 자신에게 손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론 ‘후배’들과 국가 전반의 선순환을 촉진할 수 있는 변화에 기여하면 좋겠다. 젊은 시절에 불렀던 노래들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자명 이종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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