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일기
박은봉 지음, 돌베개 펴냄

“오십. 나는 그 나이에 모든 것을 잃었다.”

어린이 역사책 〈한국사 편지〉를 쓴 밀리언셀러 작가. 쉰 살 어느 날 한순간에 삶이 무너졌다. 심장이 튀는 소리가 머리까지 울렸다. 지하철을 타려다 돌아서 나왔다. 그날 이후 잠을 잘 수 없었다. 불안증·우울증·협심증에 시달렸다. 산부인과·안과·치과·피부과를 들락거렸다. ‘불안감을 느끼거나 감정선이 어떤 이유에서든 흔들렸을 때, 저 밑에서부터 뱃속에서부터 떨림이 분출해 온몸이,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진땀이 나고 눈물이 솟구친다. 의지로 제어할 수가 없다. 2010. 10. 9.’ 저자는 치유 일기를 썼다. 무너진 순간을 다시 세우는 데 9년이나 걸렸다. 긴 시간 동안 도움을 준 것은 마음의 고통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였다. 자신의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510일
유경순 지음, 홈플러스일반노조 기획, 봄날의박씨 펴냄

“엄마 좀 대단하데. 몸도 조만하면서 성격은 대차다.”

KTX, 기륭전자, 뉴코아, 그리고 이랜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이라고 쓰인 머리띠를 질끈 묶었던 곳이다. ‘아줌마들이 해봤자지…’라는 냉소를 받았던 곳이다. 그 아줌마들이, 그 여성 노동자들이 한국 노동운동사에 획을 그었다. ‘510일 장기 파업’을 벌인 이랜드홈에버 여성 노동자들의 싸움은 영화 〈카트〉로도 제작되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가장 많이 울었던 510일’로 기억한다. “아줌마” “멸치 언니” “황태 언니”로 불리던 당사자들에게 이 싸움은 어떻게 기억될까? 파업 노동자 39명의 구술이 담겼다. 방대한 기록사인데 구술 특유의 찡함과 애틋함, 그리고 열정과 당당함이 읽힌다. 이들의 싸움 덕에 이제 마트 노동자들은 “황태 언니” 대신 “○○님”으로 불린다.

 

BTS 길 위에서
홍석경 지음, 어크로스 펴냄

“BTS는 세계 속으로,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고 있다.”

BTS는 이제 케이팝 대표선수를 넘어 팝음악의 선두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대체 지난 몇 년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한류 연구자’인 저자는 팬덤 밖에 있는 이들이 품을 법한 궁금증에 답변하는 책을 내놓았다. BTS는 동아시아 아이돌 문화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그들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어떻게 세계적 팬덤 ‘아미’를 구축하게 됐는지부터 출발한다. 팬덤 중심인 청년 세대의 특질과 그들이 놓여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BTS의 음악이 어떤 구실을 했는지도 분석한다. 특히 흥미로운 논의는 인종과 젠더 부문이다. 동양인 아이돌이 국제적 아이콘이 되면서 타 인종·문화권과 빚어진 마찰을 다룬다. BTS식 ‘새로운 남성성’이 새로운 젠더 정체성을 제시한다고도 썼다.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사계절 펴냄

“밑에 모래 있으면 떨어져도 안 아파요.”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어른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어린이에게 습관처럼 하기 쉬운 말 중 하나는 ‘착하다’이다. 어린이가 포도알 칭찬 스티커처럼 모으느라 애쓰는 그 말은 어른 마음에 들어야 나오기 십상이다. 저자는 ‘착하다’는 말에서 어른의 요구를 거스르지 못하게 만드는 위계를 본다. 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어딘가 멍들고 깨진다. 책을 읽는 동안 내 안의 어린이가 자꾸만 고개를 내밀었다. 책은 그 과거의 어린이까지 위로한다. 그리고 양육자든 아니든 우리 주변 어디에나 어린이라는 존재가 있음을 단단히 인식시킨다. 한 사회가 나아갈 길은 “어린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고심하면서” 정해진다는 것도. 무엇보다 모든 어린이에게 저자 같은 어른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은 중요하다. 이 책을 읽은 어른은 마땅히 김소영이 되어야 한다.

 

서울 해법
김성홍 지음, 현암사 펴냄

“도시와 건축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대립한다.”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인 저자의 ‘도시 건축’ 3부작 가운데 마지막 책. 서울에만 집중했다. 지난 60년 동안 서울에서는 녹지를 제외한 면적의 70%가 갈아엎어졌다. 이 도시는 무질서와 질서가 끌어당기는 팽팽한 장력에 붙들려 균형을 잡는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서울에는 다양하고 치열한 욕망이 넘실거린다. 그래서 오히려 서울은 질긴 생명력을 얻는다.
도시와 건축은 대립하며 서울을 곧추세우는 양 갈래의 힘이다. ‘도시의 외적 힘’은 법과 제도, 비용 등 밖에서 안으로 가해지며 건축을 제약한다. ‘건축의 내적 원리’는 공간, 형태, 구조를 통합해 안에서 밖으로 건축을 생성하는 원리다. 저자는 이 두 가지 프레임을 통해 서울을 해부한다.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허태준 지음, 호밀밭 펴냄

“우리는 점점 예외적인 존재가 되어 사회의 가장 구석진 자리로 밀려났다.”

특성화·마이스터고등학교 학생, 현장실습생, 산업기능요원.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것부터 버거운 일이었다. 대학생, 사회초년생, 군인이라는 이름은 있어도 일하는 청년, 대학생이 아닌 20대를 부르는 이름은 없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데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잇따르는 현장실습생 사망사고 앞에 저자는 당사자처럼 느껴졌다. “내가 사회적 약자라고, 내 친구가 차별받고 있다고, 우리는 억울하고 위험하고 불공평하다고.” 잊어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열아홉부터 스물셋까지 3년7개월간 저자가 살아온 ‘경계의 시간’을 써내려갔다. 현장실습생으로서 불안과 꿈, 노동 현장에 대해 생생하게 증언한다. 여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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