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성원 그림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중 〈청결하고 불빛 밝은 곳〉이란 작품이 있다. 이 작품에는 늦은 밤 아무도 없는 카페에서 홀로 술을 마시는, 지난주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는 노인이 등장한다. 마감 시간이 지났는데도 카페를 떠나지 않는 노인을 보며 젊은 직원이 중얼거린다. “지난주에 자살해버리지 그러셨어요.” 아마도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와 아기 생각으로 마음이 바쁘다 못해 분노가 치밀었으리라. 그런 그를 옆에 있던 동료가 보고 나무란다. “난 카페에 늦게까지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 하나야.”

삶의 허무와 두려움, 거기 잠식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고뇌와 슬픔을 그려낸 이 단편은 여러모로 인상 깊은 수작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다름 아닌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젊은 직원을 먼저 보내고 홀로 가게를 마감한 나이 든 웨이터는 그대로 집으로 향하지 않고 여기저기 다른 술집들을 기웃거리다가 마지못해 돌아가 잠을 청한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을 비추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데 마지막 문장은 이러하다. “결국 불면증일 뿐이야,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시달리고 있지,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넘겼던 이 장면이 얼마 전 매슈 워커의 책을 읽은 뒤로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이자 수면 전문가인 매슈 워커는 선진국 성인 중 3분의 2가 하룻밤 권장 수면 시간인 8시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다면서,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피로한 다음 날’이라는 단편적인 결과로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음을 강조했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는 그런 워커가 잠과 건강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500여 쪽에 걸쳐 풀어낸 책이다.

워커는 각종 실험과 연구에서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잠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총체적 활동임을 증명한다. 잠은 면역계를 조절하여 우리 몸을 질병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보호하며, 뇌세포를 관리하는 활동을 통해 기억력에 총체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상상력과 창의력 등 뇌에서 일어나는 각종 창조적 활동이 모두 양질의 수면을 밑거름으로 삼고 있다. 그렇기에 잠을 제대로 자지 않으면 뇌의 시스템이 조금씩 손상을 입게 되는데, 불행히도 한번 손상된 뇌는 이후의 수면으로 결코 복구할 수 없다고 한다. “평일에는 비록 무리하지만 주말에 몰아서 자니까 괜찮다”라는 명제가 성립하지 않는 이유다.

워커는 현대인이 앓는 신체적·정신적 질병의 대부분이 어쩌면 전부 잠이 부족한 데서 기인했을지 모른다고 추측한다. 실제로 잠이 부족하면 체중이 늘어나고, 당뇨의 위험이 급격히 증가하며, 부정적인 감정을 방어하는 호르몬의 수치가 가파르게 떨어진다. 결국 원인 모를 두통이나 심혈관 질환, 각종 암 등 신체적 증상을 비롯하여 그 모든 우울과 번뇌·허무·고통·분노 등 정신적 문제들이 어쩌면 잠만 충분히 잤더라도 예방되었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닭과 달걀 중 무엇이 먼저인지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잠을 자지 않아 아픈 것인지, 아파서 잠을 못 자는 것인지에 대해 아직까지 명확히 구분 지을 수는 없다. 실제로 질병을 앓아서 몸이 아픈 경우 흔히 불면증이 동반되곤 하며, 우울증에 걸리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 역시 불면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분명한 사실은 수면 부족과 각종 질병 사이에는 대단히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허무와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결국 불면증일 뿐”이라고 끝맺은 헤밍웨이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야간 노동은 ‘생명’을 판매하는 행위

그렇다면 새벽배송이나 야간배송 등 수면을 취해야 마땅한 시간에 이루어지는 노동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원시시대 수렵 생활을 했던 인간의 신체는 대부분 낮에 일하고 밤에 자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평상시 자고 있어야 할 시간에 일하는 것은 하루의 수면 리듬을 흐트러뜨리는 대단히 위험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한번 깨진 수면 리듬은 잘 회복되지 않으며 쉽게 불면증으로 이어진다. 최근 택배 기사들 관련 안 좋은 소식이 연달아 들려오곤 하는데, 이는 수면 부족이 야기한 필연적인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잠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일종의 ‘산업재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새벽배송이나 야간배송 또한 그들의 소중한 일자리라고, 새벽배송이나 야간배송을 제한하는 것은 그들의 소중한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누구나 마음껏 일할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 일자리를 택한 것 역시 그들의 선택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야간배송이나 새벽배송에 대한 정당한 변명이 될 수 없다. 수면은 우리의 건강에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치며, 따라서 잠을 잘 ‘시간’을 판매하는 것은 ‘건강’을 판매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신체의 장기를 내다파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누군가 경제적으로 궁핍하다고 하여 그의 장기 등을 시장에 내다팔 수 있도록 허가하지 않는다. 장기 매매를 제한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다. 새벽배송이나 야간배송을 비롯하여 야간에 이루어지는 각종 노동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그저 낮 시간보다 조금 더 궂은 일 정도가 아니다. 잠을 잘 시간에 활동하는 것은 조금씩 자신의 ‘생명’을 판매하는 행위인 것이다. 단지 ‘편리하다’는 이유로 이와 같은 위험한 노동을 마냥 방치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마음껏 일할 ‘자유’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자명 한승혜 (작가·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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