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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 인수’ 발표 이후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11월16일 산업은행은 ‘아시아나 인수를 위해 (대한항공의 모회사인)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1988년 아시아나(당시의 서울항공)가 발진한 이래 32년간 양강 체제를 바꿔놓을 대형 뉴스였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를 인수하는 절차는 이렇다. ①산업은행이 대한항공 모회사인 한진칼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5000억원을 투입한다. 한진칼이 신주를 발행해서 ‘제3자’인 산업은행에게만 5000억원을 받고 매각한다는 의미다. 이로써 산업은행은 한진칼의 대주주로 등극한다. 또한 산업은행은 한진칼이 발행하는 300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매입한다(=한진칼에 3000억원을 빌려준다). ‘교환’사채인 만큼, 산업은행은 한진칼로부터 빌려준 돈에 상응하는 대한항공의 주식으로 바꿔 받을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한진칼에 8000억원(신주·교환사채)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지분 10.7%를 확보한다. ②한진칼은 산업은행 지원 자금을 대한항공에 투입한다. 대한항공이 2조5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발행·매각(유상증자)하는데, 그중 7300억원 상당을 한진칼이 매입한다는 의미다. 나머지 1조7700억원은 기관투자자 등 민간에서 끌어오겠다는 계획이다. ③대한항공은 아시아나의 신주(1조5000억원)와 영구채(3000억원) 등을 매입한다. 이 과정에서 대한항공으로부터 아시아나로 1조8000억원 정도가 흘러들어 간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의 최대주주(63.9%)로 올라선다.

이로써 한진칼이 대한항공을, 대한항공이 아시아나를 지배하는 구조(한진칼→대한항공→아시아나)가 형성된다. 계획대로라면 여객·화물 운송 규모에서 세계 7위권 항공사가 탄생한다. ‘통합 항공사’는 보유 항공기 대수가 259대(대한항공 173대, 아시아나 86대)로 에어프랑스(225대) 등을 앞지른다. 대한항공의 진에어, 아시아나의 에어부산·에어서울 등 3개 저비용항공사(LCC)도 단계적으로 통합될 예정이다.

아시아나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무리한 확장 실패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에 대우건설, 2008년에 대한통운을 인수해 몸집을 불렸다. 박삼구 회장은 두 회사를 인수하면서 ‘자금 동원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그룹의 유동성 위기에 맞닥뜨렸다. ‘승자의 저주’였다. 2010년 1월 아시아나는 자율협약에 따른 채권단 관리체제에 들어갔고, 2014년 12월 자율협약을 마치고 정상화되었다.

그런데 2019년 3월 또다시 위기가 불거졌다. 삼일회계법인이 아시아나와 금호산업의 2018년 재무제표에 대해 감사 의견으로 ‘한정’을 제시했다. 두 기업이 불안정한 재무 상태를 감춘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다. 이로써 아시아나의 재무건전성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9년 4월 아시아나의 매각이 결정되었고, 2019년 11월 HDC현대산업개발이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인수 일정을 미루며 재실사를 요구했지만 채권단과 금호산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지난 9월에 HDC현대산업개발의 인수는 ‘노딜’로 끝이 났다. 인수가 무산되고 아시아나가 채권단 관리체제에 들어선 지 2개월 만에 ‘대한항공의 인수’가 확정된 것이다.

한진칼의 아시아나 인수는 산업은행의 고육책에 가깝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인수가 무산된 이후 산업은행 측은 국내 7개 그룹에 아시아나 인수 의향을 타진했다. 한진을 제외하고는 다들 거절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해외에서 인수자를 구하기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항공산업이 국가 기간산업인 만큼 해외 매각은 애초부터 고르기 어려운 선택지였다. 그렇다고 아시아나를 채권단 관리체제에 두기도 어렵다는 게 산업은행의 판단이었다. 11월19일, 기자간담회에서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체제가 계속 유지되면 내년 말까지 항공업계에 4조8000억원의 공적자금을 더 투입해야 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2017년 파산한 한진해운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았다"고 말했다. ‘최선의 방법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현 HMM)의 합병이었는데,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국내 해운업의 기반이 붕괴됐다’는 것이다. 예전 상황을 돌이켜보면,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해운 경기가 악화됐다.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은 2013년 1445%까지 치솟았다. 2014년 조양호 당시 한진그룹 회장이 자금 지원을 하고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유상증자 등을 통해 1조원의 자금을 투입했지만 자금난으로 2016년 4월에는 한진해운 경영권을 채권단에 넘기고 자율협약을 신청해야 했다. 이후 법정관리를 거쳐 2017년 2월 ‘세계 7위’ 한진해운은 파산했다.

한진해운이 파산한 후에 한국 해운산업은 위축됐다.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운송 서비스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0년 4.7%에서 2019년 2.6%로 하락했다. 운송 서비스 수출 순위도 세계 5위에서 11위로 밀려났다. 10월1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진해운 파산’에 대한 질의가 있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한진해운 지원을 포기하면서 파산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한진해운 파산과 관련해서는 정말 안타깝게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이번 ‘빅딜’에서 문제는 한진칼이 경영권 분쟁에 휩싸여 있다는 점이다. 대한항공은 한진칼의 자회사이므로, ‘한진칼 경영권 분쟁’은 ‘대한항공 경영권 분쟁’이기도 하다. 올해 3월에 열린 한진칼 주주총회에선 조원태 회장 측이 경영권을 지켰다. 3자 연합은 주총 이후 지속적으로 지분을 늘리며 내년 3월 주총을 대비해왔다. 조원태 회장 측의 한진칼 지분은 41.4%(우호 지분 포함). 조 회장 측과 갈등하고 있는 이른바 ‘3자 연합(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KCGI·반도건설)’은 지분 46.7%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번 ‘아시아나 인수’로 조원태 회장에게 유리한 국면이 펼쳐졌다. 조원태 회장은 ‘3대 주주’로 등장하는 산업은행(10.7%)을 우군으로 얻게 된 셈이다. 아시아나 인수 이후에 조원태 회장 측 지분은 37.7%, 3자 연합의 지분은 41.7%로 재편된다. 인수 발표가 있고서 3자 연합 측은 즉각 반발했다. 3자 연합 측의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강성부 펀드’)는 ‘조 회장이 단 1원의 사재 출연도 없이 오직 국민 혈세만을 이용해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방어하고 아시아나까지 인수하려는 시도를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인수 방안을 두고 여당 일부와 시민단체에서도 ‘특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민형배·오기형·이정문·이용우 등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국회의원 7명은 11월17일 이 인수 방안에 이의를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산업은행은 국회 정무위원회의 피감기관이다). 이들은 ‘왜 대한항공이 아닌 경영권 분쟁이 있는 회사인 한진칼에 자금을 투입하는가’라고 지적하며 ‘결과적으로 경영권 분쟁에 있는 총수 일가를 지원하는 거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민단체 경제개혁연대도 ‘산업은행 등 채권단 관리하에 있는 아시아나의 매각을 추진하면서 인수 주체인 대한항공이 아닌 모회사 한진칼에 자금 지원을 결정한 점’을 문제 삼았다.

이런 비판에 대해 산업은행 측은 ‘한진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한진칼에 자금을 투입해야 혈세 조달을 최소화할 수 있고, (대한항공에 직접 지원할 경우엔) 한진칼의 대한항공 지분이 지주사 요건(20% 이상 지분 보유)에 미달하게 된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한진칼이 지켜야 할 7대 의무조항 등이 담긴 투자합의서 내용을 공개하며 ‘특혜 시비’를 차단하려 했지만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한진칼의 아시아나 인수·합병에는 몇 가지 고비가 있다. 첫 번째 난관은 KCGI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이다. KCGI는 3자 배정 유상증자를 위한 신주 발행을 막아달라는 내용의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기존 주주인 3자 연합이 유상증자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데도 배제했다는 것이다. 11월25일 KCGI가 신청한 가처분 심문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재판부는 늦어도 12월1일까지는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12월2일이 산업은행의 한진칼 유상증자 납입일(한진칼에 5000억원을 주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이 기사는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 전에 작성되었다).

ⓒ연합뉴스왼쪽부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강성부 KCGI 대표.

아시아나 인수·합병, ‘산 너머 산’

법원의 결정은 이번 유상증자의 목적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달려 있다. 법원이 한진칼의 신주 발행에 대해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하고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을 방어할 목적’으로 판단하면 ‘인용’ 결정을 내린다. 그렇지 않다면 ‘기각’한다. 법원이 3자 연합의 주장을 받아들여 가처분 ‘인용’ 결정을 내리면 한진칼 측의 아시아나 인수는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법원이 ‘기각’ 결론을 내린다면) 두 번째 난관은 ‘독과점 문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결합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결합한 회사의 시장점유율이 50%를 넘으면 경쟁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지난해 말 수송객 점유율 기준으로 국내선의 경우 대한항공은 22.9%, 아시아나는 19.3%를 차지했다. 양사의 3개 저비용항공사 점유율까지 더하면 62.5%에 이른다. 다만 인수·합병이 무산될 경우에 (피인수) 기업의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예외적으로 기업결합을 허용할 수 있다. 4월 공정위는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를 승인했는데, 그때 이스타항공을 ‘회생 불가능 기업’으로 판단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수를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했기 때문에 공정위가 불허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은 11월19일 기자간담회에서 “각국의 항공사 간 기업결합을 관계 당국이 불허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인수·합병이 될 경우에 코로나19로 인한 항공산업 위기와 고용 문제가 남는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2021년 항공업계 전체 매출이 2019년(8380억 달러) 대비 46% 감소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두 회사의 부채 규모도 크다. 아시아나가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유동부채만 4조7979억원이다.

산업은행이나 대한항공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라고 말하지만 ‘고용 유지’가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두 회사의 국제선 여객 노선이 상당히 겹친다. 총 115개 중에서 48개 노선(42%)이 겹쳐 조정이 불가피하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임직원 수는 각각 1만8600여 명, 9000여 명인데 국내 직원의 70%가량이 휴직 중이다. 고용과 관련해 피인수 기업인 아시아나 직원들의 불안감이 더 크다. 아시아나는 10월에 기간산업안정기금 2400억원을 지원받았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을 받게 되면 6개월 동안 최소 90% 이상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 시한이 내년 4월까지다. 그때쯤 고용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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