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조 바이든(가운데)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카멀라 해리스(맨 오른쪽) 부통령 당선자가 11월24일 차기 행정부에서 일할 외교·안보 진용을 소개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비난과 조롱을 받던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막을 내리고 동맹을 중시하는 다자주의 외교가 재등장할 조짐이다. 특히 바이든 당선자는 북핵 해결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선호해온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 대신 공식 외교 채널을 통한 실무협상을 중시해 향후 비핵화 협상에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바이든 당선자는 내년 1월20일 제59대 미국 대통령에 공식 취임하는 대로 ‘미국 우선주의’가 남긴 대표적 폐단이라 할 수 있는 ‘파리기후변화협약 및 세계보건기구(WHO) 탈퇴’를 즉각 취소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트럼프가 파기한 이란 핵 협정도 되살리는 등 다자주의 외교로 급선회할 전망이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당선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동댕이친 국제협정과 국제기구에 재가입해 미국을 신뢰받는 동맹으로 재정립하는 데 최우선 역점을 둘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바이든 당선자는 자신의 세계관을 실천할 외교·안보진을 11월24일 공식적으로 밝혔다. 우선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토니 블링컨을 국무장관으로, 이란 핵 협정 회담에서 수석대표를 맡은 바 있는 제이크 설리번을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했다. 유엔 대사 지명자인 린다 토머스그린필드는 아프리카 전문 외교관 출신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안보 수석 부보좌관을 지낸 애브릴 헤인스는 첫 국가정보국(연방정부 상하 정보기관을 총괄) 국장을 맡게 된다.

특히 주목받는 사람은 외교 사령탑인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블링컨(58)과 최연소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인 설리번(43)이다. 블링컨은 외교관 집안 출신이다. 부친이 헝가리 주재 미국 대사를 지냈다. 그는 하버드 대학과 컬럼비아 법대를 나온 뒤 한동안 기자, 변호사 등으로 활동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인 1994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바이든 당선자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2년이다. 당시 바이든 상원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던 상원 외교위원회 참모국장을 맡은 것이다. 그러다 2009년 1월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자 당시 부통령이던 바이든 밑에서 국가안보보좌관으로 4년을 근무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한 뒤에는 국무부 부장관으로 일했다. 흥미롭게도 당시 그가 영전하면서 공석이 된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에 오른 사람이 설리번이었다. 블링컨과 설리번은 외교·안보 문제에 관한 한 바이든과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최측근 외교 참모라 할 수 있다.  

블링컨은 바이든처럼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배격한다. 그는 지난 7월 비영리 민간연구센터인 허드슨 연구소가 주최한 강연에서 “기후변화든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든 나쁜 무기의 확산이든 우리가 국가로서 당면한 중대 문제들을 일방주의로 해결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미국이 강력한 국가라고 해도 글로벌 차원의 문제들을 홀로 타개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는 과거 바이든 당선자의 부통령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내는 동안 특히 이라크 문제 해결에 심혈을 기울였고, 종파 분쟁으로 심한 내홍을 겪던 이라크 내 3개의 자치구 설정안을 기획한 인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2013년 당시 바이든 부통령은 〈워싱턴포스트〉에 “블링컨의 힘든 노력이 없었다면 미국은 이라크 정부의 난맥상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두터운 신임을 드러낸 바 있다.

블링컨은 특히 북한이 세 차례 핵실험을 단행한 오바마 행정부 시절(2009~2017) 바이든 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 및 국무부 부장관을 지냈기 때문에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비교적 소신이 뚜렷하다. 북한은 신뢰할 수 없는 만큼 미국은 ‘무제한적이고 임의 사찰이 가능한 검증체계’를 통해 북한의 핵 활동을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북·미 평화협정 문제와 관련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핵무기를 포기하기도 전에 북한의 평화조약 협상 요구에 순응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미국의 오랜 대북정책의 기조와 정반대다”라는 점을 뚜렷이 했다. 블링컨이 국무장관에 지명된 만큼 바이든 새 행정부가 일단 ‘선 핵 해결, 후 평화협정’ 협상 기조를 예고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한 설리번(왼쪽)과 국무장관으로 지명한 블링컨.

“북한은 이미 핵무기 보유 국가”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와 호흡을 맞출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도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파다. 그는 1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두 달 전인 2018년 4월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협상이 실속 없다고 주장했다. “향후 북한은 미국이 경제적 숨통을 터주는 대가로 일련의 약속을 하겠지만 나중엔 파기할 것이다. 그 경우 중기적으로 전쟁을 불러올 수도 있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결국 북핵 문제에 관한 한 바이든 새 행정부의 최고위 외교참모인 블링컨, 설리번 모두 북한을 크게 불신하는 데다 트럼프 행정부의 북핵 협상 결과에 대한 불만도 높다. 바이든 시대의 북핵 협상에 난항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물론 북핵 협상이 재개될 경우 협상 진전 여부에 따라 중간 단계의 ‘과도 협정’이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블링컨은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북한에 부분적 경제제재 완화를 제공하는 대신 ‘모든 핵 시설 공개’ ‘국제사찰을 통한 농축 우라늄 시설 및 핵 재처리 시설 동결’ ‘일부 핵탄두와 미사일 파괴’ 등을 골자로 하는 ‘과도 협정’이 가능할 수는 있다”라고 말했다. 일단 ‘과도 협정’을 통해 협상 시간을 번 다음 최종적으로 포괄적인 비핵화 로드맵 청사진이 담긴 협정을 추구하자는 게 그의 구상이다. 그러면서 그는  “오바마 행정부 때 타결한 이란 핵 협정은 바로 이 같은 접근을 통해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블링컨이 제시한 이란식 핵 해법에도 문제는 있다. 무엇보다 북한과 이란의 구체적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란의 경우 핵 개발 단계에서 미국과 협상이 이뤄졌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핵국가’다. 미국 국무부 정보조사국(INR)에서 30년 이상 남북한 문제를 분석해온 존 메릴 박사는 〈시사IN〉에 “이란 핵 모델을 북핵에 적용하자는 블링컨의 주장은 난센스다. 북한은 이미 상당한 핵무기 능력을 보유한 나라이고, 이란의 검증체계를 그대로 북한에 적용할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상당한 현금과 경제제재 해제 혜택을 받은 이란과 달리 미국이 비핵화 대가로 북한에 제시한 인센티브는 뭐가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블링컨이 언급한 ‘부분적 제재 완화’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표시했다. “바이든 당선자는 물론 블링컨, 설리번 모두 대북 제재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 같지만 제재는 오히려 북한의 반발만 불러올 것이다.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출범한 만큼 바이든 새 행정부는 출범 초기에 오히려 핵 군축 및 신뢰 구축 협상에 나서는 게 더 나은 접근 방식이 될 것이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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