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리TV 갈무리11월20일 방송인 사유리 씨는 유튜브 채널 ‘사유리TV’에 지난 1년간 임신 과정을 담은 영상을 올렸다.

방송인 사유리 씨의 비혼 출산 소식이 화제다. 이에 대해 보도한 11월16일자 KBS 뉴스는 유튜브에서도 인기 급상승 탭에 올랐다. 240만 조회수를 훌쩍 넘긴 이 영상에는 벌써 댓글이 1만3000개 이상 달렸다. 그야말로 폭발적 관심을 받은 이 영상 속 인터뷰에서 사유리 씨는 “한국에서는 (비혼 출산에 관한) 모든 게 불법이었다. 결혼한 사람만 시험관이 가능하다”라면서 비혼자도 아이 낳을 권리를 인정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고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에서도 비혼 출산이 불법은 아니며 시험관 시술이 가능하다. 다만 건조하게 법리적으로만 따졌을 때만 그렇다. 실제로는 의료 현장에서 비혼 여성에겐 시술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 일단 사유리 씨만 해도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출산을 하고 싶었으나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지 않던가? 꼭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비혼 출산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사유리 씨 소식이 보도된 후 비혼 출산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졌다. 정치권도 이 문제에 대해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며 발 빠르게 공론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임신과 출산의 권리는 여성들 개인에게 있다. 그 권리를 침해하는 제도는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단순히 시술 문제를 해결한다고 근본적인 상황이 얼마나 개선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비혼 출산 논의들을 보며 불과 한 달 전에 있었던 사건을 떠올렸다. ‘당근마켓 20만원 신생아 입양 게시물’ 사건이다. 한 20대 여성이 인터넷에 갓난아기 사진과 함께 ‘20만원에 아이를 입양 보내겠다’는 글을 올려 파장이 일었다. 물론 범죄행위다. 후에 그녀는 반성한다는 말과 함께 ‘입양 상담을 받다가 홧김에 글을 올렸다’고 밝혔다. 비난 여론 못지않게 동정 여론도 상당했다. 문화적으로 제도적으로, 비혼모가 처해 있는 열악한 상황을 사람들이 알기 때문이었다.

사유리 씨의 경우 아이를 낳는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있었지만, 막상 아이를 낳는다 해도 양육은 더 큰 문제다. 임신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가족과 출산에 대한 한국의 사회문화와 제도가 소위 ‘정상 가족’이라고 하는 ‘이성으로 구성된 부모와 자녀’에게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한부모가족지원법을 근거로 비혼모가 아이를 직접 키울 때 정부에서 20만원 정도를 매달 지원한다. 그런데 그나마도 월 소득이 155만830원보다 적어야 받을 수 있다. 즉 한부모 가정의 소득이 최저임금 기준 월급(179만원)보다 낮은 수준이어야 지원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어지간히 고소득 가정이어도 양육비 부담이 상당하고, 심지어 한부모 가정은 일과 육아를 혼자 병행해야 한다. 최저임금보다 소득이 적어야 지원해준다는 건 사실상 한부모 가정엔 육아 지원을 하지 않는 셈이다.

아이를 입양할 때는 이보다 더 많은 지원을 해준다. 사실상 비혼모가 아이를 양육할 때보다 아이를 포기할 때 아이에게 더 많은 지원이 돌아가는 구조다. 입양된 아이들은 대부분 비혼 출산 아동이다. 입양 절차가 잘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비혼 출산 아동은 버려지기도 하는데, 이 아이들을 돌보는 일 역시 국가 공동체의 책임 바깥에 있다. 적잖은 비혼 출산 아동이 해외로 입양된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해외 입양을 보내는 나라이기도 하다.

ⓒ당근마켓 어플리케이션 갈무리10월16일 중고거래 플랫폼에 신생아를 20만원에 입양 보내겠다는 글이 올라 파장이 일었다.

낳으라면서 못 낳게 하는 부모 세대

사정이 이러니 비혼 출산율이 낮은 건 당연한 일이다. 지난 11월18일에 통계청이 내놓은 ‘2020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 13세 이상 남녀 30.7%가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이 응답을 쫓아가지 못한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의 혼외 출산율은 2.2%로, OECD 평균인 40.7%와 비교했을 때 턱없이 낮다. 비혼 출산율만 낮은 게 아니다. 출산율 자체가 세계에서 최저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합계출산율(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이 0명대인 국가다. 저출산 예산으로 연간 4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붓는데도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의 기성세대, 그리고 한국 사회의 접근은 고루할 수밖에 없다. 그 점 역시 이해해야만 한다. 한국 사회는 매우 급속히 발전해왔기 때문에, 우리가 부모 세대와 대화한다는 것은 미국으로 치면 2세기 전인 남북전쟁 세대의 사회문화적 인식과 대화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혼인과 출산이 너무나 당연한 의무이며 인간의 도리라고 여겨지는 시대를 산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부모 세대의 접근법, 그 세대가 정치와 정책의 주요 의사결정권자로 있는 한국 사회의 접근법으로는 청년 세대의 불만을 담아내기 힘들다. 자꾸 ‘결혼을 한다면’ ‘아이를 낳는다면’을 전제로 한 지원정책이 제시되기 때문에 서로의 말이 엇갈리는 상황이 된다. 청년 세대는 부모 세대와 길게 얘기해봤자 말이 통하거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SNS에서나 불만을 떠들 뿐이다.

그러나 청년 세대에게도 아이를 낳고 싶다는 소박한 욕망은 존재한다. 사유리 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만 봐도 여전히 아이를 양육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다. 사유리 씨는 KBS 인터뷰에서 출산을 결심한 직접적인 계기로 신체검사 결과 임신이 어렵다는 진단을 받은 일을 꼽았다. 개인적으로 나도 주변에서 30~40대 여성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현실적으로 아이를 낳기 어려운 상황을 인지하는 것과 막상 생물학적으로 출산이 어려운 몸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사유리 씨와 비슷한 검사 결과를 받아들면 충격을 받는 듯했다. 출산에 별 관심이 없었던 이들도 본인이 조금 있으면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된다는 진단을 받으면 출산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본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은 0.9 언저리의 출산율을 조금이라도 복구하고 싶다면, 이런 이들의 소박한 욕망이 현실적인 문제들을 따져보고 좌절하지 않을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문제는 많은 여성들이 출산과 양육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보다 그로 인한 손해와 고통이 더 크게 다가온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출산과 육아를 선택했을 때 감수해야 할 경력단절 같은 문제가 그렇다. 말하자면 삶과 욕망에 대한 문제인데, 단지 예산을 얼마나 쓰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삶을 욕망하는지 파악하고 그 욕망에 따르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줄여주는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KBS 보도가 나오고 며칠 뒤, 사유리 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직접 임신 과정을 담은 영상을 올렸다. ‘사유리, 엄마가 되었습니다 [엄마, 사유리_1화]-사유리TV’라는 제목이 붙은 이 영상 역시 유튜브 인기탭에 올라갔고 조회수도 수백만 회에 이르렀다. ‘1화’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니 아마도 ‘엄마, 사유리’ 영상을 시리즈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올릴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가 계속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다. 사실 그녀의 영상은 온갖 콘텐츠들이 즐비한 유튜브에서도 흔치 않은 이야기다. 유튜브 채널이 아니었으면 좀처럼 공유할 수 없는 경험이기도 하다. 사유리 씨의 출산을 축하하며, 더 많은 이들이 유튜브에서 그녀와 같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세상이 되길 희망한다.

기자명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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