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부고를 들은 여자가 있다. 부녀 사이는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어서 오랫동안 왕래도 연락도 없었다. 시신은 그의 집 앞 벤치에서 발견되었다. 빈 우편함을 매일 확인했다는 그의 집 문 아래 연필로 ‘돌아올게요’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그의 외롭고 쓸쓸한 죽음을 모두가 오래전부터 예상했지만 여자는 지금 깊은 슬픔을 느낀다. 그녀의 슬픔은 상실보다는 연민에 가까운 것이다. 부모가 되고 나이가 들면서 여자는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사는 동안 끝내 살아가는 법도, 사랑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을. 여자는 책상 앞에 앉는다. 연필을 깎고 낡은 종이들을 꺼낸다. 빈 종이 위로 늦여름의 오솔길이 그려진다.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다.

생의 마지막 날을 맞은 노인이 있다. 그의 삶은 단출하다. 세간은 모두 짝이 없이 하나뿐이고, 하루 종일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오래도록 창밖을 바라보거나 오솔길을 따라 떡갈나무 그늘 아래 늘어선 마을 공동 우편함에 찾아가는 것뿐이다. 아침부터 남자는 자신의 몸이 평소보다 무겁고 둔해졌다고 느낀다.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의 무한했던 시간이 이제 끝에 다다랐다는 것을. 그는 자신이 좋아했던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익숙한 실망 속에서도 버릴 수 없었던 기대를 안고 매일 찾아가던 우편함도 마지막으로 열어본다. 마지막으로 문 아래 작별 인사를 남기고 집 앞 벤치에 앉는다. 등을 기댄 벽에는 아직 여름의 열기가 남아 있고, 다정한 고양이는 그의 손길을 너그러이 받아준다. 평화롭고 고요하고 따뜻한 풍경 속에서 남자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첫 번째 이야기는 두 번째 이야기인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를 읽고 내가 상상한 것이다. 둘 사이에는 작가 요안나 콘세이요가 책의 말미에 쓴 헌사가 있다. ‘나의 아버지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딸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잘 몰랐던 모든 아버지에게.’ 사는 방법도, 사랑하는 방법도 모르는 아버지를 둔 것은 분명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앙리는 외롭고 쓸쓸한 노인이었다. 집안의 살림들은 모두 하나뿐이고 ‘진짜 편지’가 오기를 기다렸던 그의 우편함은 마지막 날까지도 비어 있다. 그러나 앙리의 마지막 하루는 어쩐지 외롭지 않았다. 여름의 마지막 날이 그와 함께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마당의 푸른 안개가 그를 웃게 했고 길가의 수레국화가 그에게 추억을 선물했으며,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마지막 순간 부드러운 온기를 나눠주었다. 모두 콘세이요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에게 선물한 것들이다.

마지막 장의 얼굴과 표지의 얼굴

헌사를 읽고 난 뒤 나는 내내 한 사람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어떤 슬픈 하루를 빈 종이 위에 새로 쓰는 여자였다. 많은 이야기가 지나간 시간을 구하기 위한 시도로 쓰인다. 책 곳곳에는 실제 앨범을 보고 그렸음직한 스케치들이 있고 마지막 장의 노인은 화가 난 듯 무뚝뚝한 얼굴이다. 반면 표지의 앙리는 환하게 웃고 있다. 사랑을 가득 받은 사람처럼,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처럼. 고양이에게 기댄 노인의 푸른 머리카락과 상냥한 눈주름과 부드럽게 웃는 입매를 그리는 일은 어쩌면 사랑이 아니었을까. 작가는 닿을 수 없었던 것들을 이야기 속에서 잇고 그렇게 슬픔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한 것은 아니었을까.

기자명 무루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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