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코로나19 전담 의료진은 무거운 개인 보호구 착용, 높아진 노동강도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보건의료기관은 치료와 돌봄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위험의 공간’이기도 하다. 2002~2003년 사스(SARS) 유행 당시, 전 세계 감염 확진자의 약 21%가 보건의료 종사자였으며, 캐나다는 그 비중이 43%나 되었다. 2015년 국내 메르스 감염자의 약 21.5%도 보건의료 종사자였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폭발적으로 환자가 발생했던 해외에서 이러한 상황은 반복되었다. 영국과 미국의 공동연구에서 보건의료 노동자의 코로나19 감염 확률은 일반 시민들에 비해 11.6배나 높았다. 런던의 한 병원에서 시행한 항체검사에서 보건의료 종사자의 31.6%가 양성을 보였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난 4월 초까지의 감염자 직업 통계를 살펴본 결과 19%가 보건의료 종사자였다. 국내에서는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선별진료소를 운영하여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무차별 감염을 막을 수 있었지만 지역사회 감염이 폭증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 코로나 전담 간호사는 왜 수세미를 떴을까

보건의료 현장은 여느 작업장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만일 공장이나 콜센터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난다면 당장 작업을 중지하고 일정 기간 작업장을 폐쇄한 다음, 노동자들을 격리하거나 재택근무로 전환한다. 불편함과 경제적 손해가 뒤따르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보건의료 현장은 다르다. 병원에 감염병이 집단 발병했다고 해서 당장 작업을 중지할 순 없다. 작업장을 전면 폐쇄할 수도, 노동자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다. 그곳에 사람이, 돌봄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원래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보호하는 제1원칙은 일터에서 유해 요인을 없애거나 덜 위험한 물질로 대체하는 것이다. 사용하는 재료 중 발암물질이 포함되어 있다면 사용을 중단하거나 더 안전한 화학물질로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유해 요인을 몸에 품고 있는 환자를 ‘제거’하거나 ‘대체’하는 방식으로 보건의료 노동자를 보호할 순 없다.

노동자들의 감염이 그들만의 피해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도 보건의료 부문의 중요한 특징이다. 먼저 의료진한테서 환자에게로 감염병이 전파될 수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는 4월 말 기준으로 코로나19 사망자의 70% 이상이 장기요양 시설과 노인 거주 시설에서 발생했는데 간병 노동자의 감염이 중요한 매개가 되었다.

또한 보건의료 종사자가 감염되어 인력이 줄어들면, 감염병 치료는 물론이고 다른 필수보건의료 서비스 제공까지 타격을 입는다. 지난봄에 대구에서 의료진의 잇따른 격리 조치는 ‘인력대란’을 가져왔다. 시민건강연구소와 의료연대본부의 연구에 참여했던 대구의 한 방사선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응급촬영실 12명 근무인데 5명이 자가격리 들어갔어요. 7명이 근무하다 보니 주 52시간을 못 지키고, 계속 십 며칠 연속근무를 했어요. 전부 다 우왕좌왕하고, 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일만 계속했던 거죠.” 환자의 의료서비스에 차질이 생길 뿐 아니라, 나머지 노동자의 업무 부담도 덩달아 폭증한다.

ⓒ시민건강연구소 제공·감자 그림시민건강연구소 연구보고서 ‘보건의료 노동자, K방역을 말하다’에 실린 삽화.

코로나19 전담 의료진은 무거운 개인보호구 착용, 높아진 노동강도 때문에 심신의 소진과 피로, 극심한 정신건강 악화를 경험하고 있다. 코로나19 병동에 인력이 집중 배치되면서 나머지 병동이나 부서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업무 부담도 덩달아 커졌다. 이들은 병원 바깥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본인이 가족이나 지인들을 감염시킬까 봐, 혹은 이들로부터 본인이 감염되어 병원에 전파를 일으킬까 두려워 자발적으로 사회적 고립을 선택하고는 했다. 부모님이 만성질환자이기 때문에 집을 나와 기숙사에서 생활한다는 간호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집에 가도 두세 시간만 앉았다 오고. 저희 아버지가 택시를 하거든요. 환자들 택시 이용하잖아요. 부모님과 식사 같이 안 하고, 집에서 항상 마스크 쓴 채 지내고, 방에만 있어요.” 중년의 요양보호사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가서도 애들이랑 밥을 못 먹겠더라고. 제 수저는 따로 소독하고 따로 밥그릇도 쓰고. 혹시나 싶어서.”

이런 생활이 벌써 10개월째다. 몸과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코로나19 중증 환자를 전담하는 간호사는 “무기력감과 우울감, 지치는 것, 끝이 보이지 않아요”라고 털어놓았다. 업무가 힘들지만 휴일에 누군가를 만나 회포를 풀 수도, 사람 많은 곳에 놀러나갈 수도 없다. 그는 수세미 뜨기로 시간을 보낸다며, 인터뷰 장소에 수세미를 잔뜩 들고 나왔다. 그가 선물로 건네준 알록달록한 수세미를 아직도 서랍에 모셔두고 있다. 감히 물을 묻히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다.

■ ‘코로나 전사’ 영웅주의 서사가 만들어낸 함정

보건의료 종사자들이 직면한 여러 건강 문제들이 말 그대로 직업안전보건 이슈였다. 하지만 그렇게 다뤄지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이들이 노동자보다는 ‘전문가’로 간주되기 때문일 것이다. 병원에는 의사와 간호사 외에도 여러 직종의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며, 이들의 지식과 역량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아무리 전문성이 높다 한들, 안전수칙을 준수할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써먹을 수가 없다. 비옷을 입고 일반 마스크를 쓴 채 환자를 진료하던 미국과 이탈리아 의료진은 전문성이 부족해서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이 아니다.

보건의료 종사자들은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환자 돌봄이라는 직업윤리와 본인 혹은 가족의 건강 보호라는 중요한 가치를 두고 갈등한다. 영국에서는 코로나19 유행 초기, 충분한 보호구가 지급되지 않으면 일을 그만두겠다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집단행동을 벌인 바 있다. 스페인에서는 보건의료·돌봄 노동자들이 대거 작업장을 이탈하며, 방치된 요양시설에서 다수의 노인 환자들이 사망한 채로 발견되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국내 한 요양병원에서도 코로나19 집단발병이 일어나면서 간호사 39명 중 26명이 사직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나오기도 했다.

ⓒ시민건강연구소 제공·감자 그림시민건강연구소 연구보고서 ‘보건의료 노동자, K방역을 말하다’에 실린 삽화.

이런 뉴스를 접하면 대중은 ‘의료인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비난하거나 실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초래되는 위험과 부담의 크기가 의무의 크기를 압도한다면, 보건의료 노동자의 작업 거부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치료에 대한 의무’라는 사회적 계약을 통해 보건의료인이 되는 것은 맞지만, 어떤 보건의료인 개인도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에서 환자를 치료해야 할 적극적 의무는 없는 것이다. 이들은 노동과 안전보건의 권리를 가진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대한다. ‘코로나 전사’라는 영웅주의 서사는 이러한 기대를 극대화한다. 영웅이란 모름지기 주어진 의무를 넘어서는 것을 실천하며,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개인의 위험, 치러야 할 대가를 알고도 자발적으로 감내한다. 영웅주의 서사로 상황을 바라보면,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선 방법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돌봄 의무가 어디까지인지, 사회나 개별 의료기관이 이들에게 제공해야 할 보상은 무엇인지 합리적 토론을 가로막고, 노동자 입장에서도 개인적 위험을 감수하고 일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숭고한 자기희생을 하는 영웅이 보호장비가 부족하다고 불평하고 위험수당을 요구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보자면 영웅주의는 정부나 의료기관의 책임을 덮어버릴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이 ‘코로나 전사’나 ‘덕분에 챌린지’에 대해 분노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들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표현을 했다. “닥치면 그냥 일하는 사람” “그냥 이렇게 던져놓고 일하는 것 같아요” “부속품 취급당하는 느낌” “던져놓고 끝인 거예요” “니들이 해야지 어쩌겠어, 이렇게 막 굴리는 건 그냥 착취죠” 등등. 현실에서 노동자에 대한 존중은 없었지만, 전문가로서 직업윤리와 의무는 강조하는 역설적 상황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보건의료 종사자를 특별한 영웅, 어떤 난관이 닥쳐도 스스로 척척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한편으로는 노동과 안전보건의 권리를, 다른 한편으로는 치료와 돌봄 의무를 가진 노동자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 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현실적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코로나19라는 위험 요인의 제거와 대체가 불가능하고, 집단 발병이 일어나도 작업 중단과 노동자 대피가 불가능하며, 또한 노동자들이 감염되거나 과로로 소진되면 보건의료 시스템 전체에 파급효과를 가져오니, 우리에게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어떻게든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최대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 인력 문제 해결 않고는 ‘백약이 무효’

코로나19 방역의 목표는 단기간 종식을 염두에 둔 ‘총동원’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 핵심에 보건의료 노동자 보호가 자리 잡아야 함은 물론이다. 무엇이 필요할까? 충분한 보호장비, 안전한 동선 설계와 환기장치, 빠짐없는 교육훈련, 더욱 상세한 지침, 적절한 보상, 안전보건 규제 강화, 노동자가 참여하는 민주적 거버넌스. 이 모두가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원칙을 잘 세우고 좋은 대비책을 마련해도,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몇 년 전에 국제노동기구 의뢰로 보건의료 부문의 노동시간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해외 논문들은 노동자의 건강과 안녕을 생각한다면 교대근무를 안 하는 것이 제일 좋지만, 보건의료 분야처럼 24시간 가동이 필수적인 일터에서는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식의 근무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예컨대 오전-저녁-야간의 순서로 근무시간을 배치하는 전방순환 방식이 생체의 일과 리듬에 더 낫고, 8시간 3교대보다는 12시간 2교대 근무를 해서 야간근무 횟수를 줄이는 것이 좋다는 제안이다. 그런데 현장의 간호사와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이러한 제안에 코웃음을 쳤다. 전방순환 방식이 좋다는 것은 자신들도 이미 알고 있지만, 인력이 빠듯해서 3개 교대조를 규칙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4개 팀이 도저히 꾸려지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명만 갑자기 아파서 결근해도 모든 스케줄이 꼬여버리기 때문에, 일단 출근해서 ‘링거 맞으면서 누워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강도가 너무 세서 8시간 근무 뒤엔 완전히 탈진해버리는데, 12시간 근무는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면서 밤샘 공사를 통해 음압병실을 뚝딱 만들어내고 중환자실을 단기간에 늘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일할 수 있는 인력, 특히 숙련된 간호사를 확보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병원에서는 기계만 (준비)하고 나니까 인력에 대한 교육 부분이라든지 그런 건 아예 생각하지 않고 환자를 보게 됐고, 중환자실도 인력이 엄청 빠듯했어요…. 결국에 환자가 꾸역꾸역 들어왔을 때쯤에는 중환자실 오프(OFF·비 근무시간) 다 잘려가면서 코로나19 병동 쪽으로 파견을 왔고요.” 이미 평소에도 고질적인 인력 부족을 겪던 병원에서 코로나19는 문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인력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사실 ‘백약이 무효’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7월14일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스마트 의료는 환자의 가래 배출을 도울 수 없다

정부는 7월에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감염병 위험으로부터 의료진과 환자를 보호하고 환자의 의료 편의를 제고하기 위한 ‘스마트 의료 및 돌봄 인프라 구축’ 사업이 10대 과제에 포함되어 있다. 2022년까지 국비 1000억원, 2025년까지 총 2000억원을 투자하여 일자리 2000개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비대면 상담이 가능한 호흡기 전담 클리닉 1000개소를 구축하는 것과 더불어, ‘디지털 기반 스마트병원’을 18개소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5G, IoT 기술을 이용해서 격리병실이나 집중치료실 입원 환자의 영상 정보를 의료진에게 실시간으로 전송하고, 감염내과 전문의가 없는 병원에서도 전문의가 있는 병원과 협진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한다. 또한 건강 취약계층 12만명에게 IoT 센서와 AI 스피커를 보급하여 맥박·혈당·활동 등을 감지하고 말벗과 인지기능을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만성질환자 20만명에게는 웨어러블 기기를 보급하여 질환 관리를 하겠다고 한다. 일명 ‘디지털 돌봄’이다.

건강과 대안, 의료연대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진료에 참여한 간호사의 업무 부담이 대부분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본인의 손씻기나 보호구 착용은 제쳐두더라도, 간호사는 환자 돌봄의 최전선에서 그야말로 ‘온갖’ 일을 한다. 환자의 혈압과 맥박을 점검하고, 투약과 검사를 지원하고, 환자의 배변을 돕고 체위를 변경해주며, 가래 배출과 산소 공급을 살피고, 식사 보조와 세면 등 위생을 관리하고, 환자에게 정서적·심리적 지지를 제공하며, 환자나 보호자와의 상담, 낙상 예방 교육과 조치, 병실 환경 관리, 간호기록과 병동 입퇴실 절차 같은 행정업무까지.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는 격리병실 안에서 사망 환자의 관리나 병실 청소 같은 일까지 간호사들이 맡아야 했다. 그런데 스마트 의료라니! 영상정보를 감염내과 전문의한테 실시간으로 전송하지 못했던 것이 코로나19 진료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단 말인가? 대체 스마트 병원의 어떤 부분이 현장 노동자들의 고된 업무와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까? 또한 묻고 싶다. 건강 취약계층에게 필요한 것이 과연 IoT 센서와 AI 스피커일까, 아니면 왕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나 가정방문 간호사일까? 우리에게는 디지털 기기 보급을 위한 뉴딜이 아니라, 환자를 위한, 보건의료 노동자를 위한 뉴딜이 필요하다.

시간이 없다. 이미 10개월의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 정부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 말고 당장 보건의료 노동자를 보호할 방안을 세우고, 보건의료 인력 확충에 나서야 한다. 코로나19 대응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고, 에밀레종 제작은 더더욱 아니다. 보건의료 노동자를 갈아 넣는 K방역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기자명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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