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새벽부터 서둘러 경북 상주에서 서울로 온 그는 옷차림새가 평범했다. 자주색 셔츠에 짙은 회색 재킷을 입고 손에는 서류 가방을 들었다. 검은색 테로 된 안경까지, 어느 모로 봐도 튀는 구석이 없는 중년 남성. 그가 서류 가방을 열어 형광 주황색 조끼를 꺼냈다. 조끼의 앞면과 뒷면에는 각각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공무원노조 해직자 원직복직’ ‘문재인 대통령은 복직 약속 이행하라’. 11월18일 〈시사IN〉 편집국에서 공무원노조 해직자 왕준연씨(59)를 만났다. 노조 조끼를 챙겨 와달라고 미리 부탁한 것은 아니다. 왕씨는 “늘 가방에 들어 있다”라고 말했다.

공무원으로 24년, 해직자이자 노조 활동가로 16년을 살았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공무원의 면모가 짙게 배어 있었다. 1980년 임용돼 상주시청과 관할 지역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다. 시청 기획감사실과 시의회 의장 비서실을 오가며 근무했다. 공직 사회에 밝은 사람이라면 그 경력을 보고 왕씨가 핵심 부서를 거치며 인정받는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챌 것이다. 2004년 해직될 당시 징계 문건에도 ‘혐의자의 평소 소행’ 난에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며 대인관계 원만함”이라고 적혀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2002년 법외노조로 출범했다. 2004년 11월15일 총파업은 공무원의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는 정부와 노동자로서 권리를 인정받겠다는 공무원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사건이었다. 총파업에 참여한 공무원 530여 명이 해직 처리되었다. 공무원노조 대경본부 상주시 지부장을 맡고 있던 왕준연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징계가 청구된 사유는 ‘(11월15일) 무단결근을 하고 불법파업 중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공무원노조는 2007년 법내 설립신고가 되었으나 2009년 다시 법외가 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2018년에서야 고용노동부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왕준연씨는 왜 노조를 하게 됐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공무원노동조합이 생겼다고 할 때 ‘왜 노동자가 되어야 하지? 공무원이 더 좋은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근로기준법이나 노동관계법을 보게 되었는데 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권리가 공무원에게는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거예요. 기획실은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하는 게 기본이에요. 시간외수당 같은 건 없었어요. 그렇게 일하는 게 당연한 줄 알았죠.”

2020년까지 복직하지 못한 공무원 해직자들은 136명이다. 정확히는 131명이다. 교통사고로, 암으로 5명이 세상을 떠났다.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18대 국회부터 시작해 19대, 20대 국회에 연이어 ‘공무원노조 해직자 복직 법안’이 제출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는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왕준연씨는 올해 한국 나이로 예순이다. 복직 가능한 시간이 1년도 남지 않았다. 서류 가방에 주황색 조끼 대신 ‘공무(公務) 서류’를 넣는 날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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