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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5일 아시아·태평양 15개국 정상들이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인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협정문에 서명했다. 참여국은 아세안(ASEAN) 10개국과 한국·일본·중국·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서방 언론들은 새로운 자유무역지대가 구성되면 ‘글로벌 경제 성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를 표명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 RCEP에 대해서는 대체로 ‘FTA로서는 수준 이하’라며 평가절하한다. ‘관세 인하에만 초점을 맞춘 야심 없고(unam-bitious) 열등한(inferior) 20세기형 무역협정’이라는 것. 이와 함께 RCEP에 참여한 중국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표시했다. RCEP이 ‘중국이 아시아를 지휘하는 신세계 질서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뉴욕타임스〉의 해당 기사 제목은 “미국에 도전하는 중국 주도 무역협정”이다.

RCEP은 ‘야심 없고 열등한’ 협정으로 보일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미국이 주도해온 ‘21세기형의 강한 FTA(그중 하나가 한·미 FTA)’와 비교하면 그렇다. ‘강한 FTA’는 관세는 물론 상대국의 국내 제도(노동, 환경, 공기업)까지 바꾸려 든다. 그 나라의 노동자와 환경을 걱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어떤 나라 기업이 노동·환경 규제로 큰 비용을 들이는데 다른 체약국 기업은 그러지 않는다면, 이른바 ‘공정한’ 국제경쟁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약한 FTA’라는 RCEP에서는 환경, 노동, 공기업 등의 의제가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관세를 제거하는 기간도 20년이다. 또한 각국은 ‘국내 정치에서 민감한’ 품목들에 대해 상당 기간 높은 관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받았다. ‘투자자-국가 분쟁해결 절차(ISDS)’도 빠졌다. 그러나 서방 언론은 15개국 사이의 교역이 활발해지면 아시아에 대한 중국의 지배력이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이 자초한 사태다. RCEP 협상이 개시된 2012년,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이미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12개국을 묶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추진하고 있었다. ‘중국 포위 작전’의 일환이었던 만큼, 중국은 당연히 제외되었다. TPP는 2015년에 타결되었지만, 주도국인 미국은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2017년 초) 직후 탈퇴하고 만다. 서방 언론들은 이로 인해 창출된 ‘힘의 진공지대’에 중국이 RCEP을 통해 진입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들에게 RCEP은 ‘야심 없는 FTA’인 동시에 ‘중국의 야심으로 가득한’ 무역협정이다. 한반도 전문 남문희 기자가 이번 호에 쓴 커버스토리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에 중국을 협력자로 끌어들일 가능성이 높다. 서방 언론들의 시각과 남문희 기자의 판단이 모두 옳다면, 중국은 아시아에서 경제와 평화 문제의 주도권을 쥘 호기를 잡은 셈이다. 중국은 모르겠지만 한반도에도 바람직한 시나리오일까?

기자명 이종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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