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영국의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

대개 범죄에는 이유가 있다. 배가 고파서 물건을 훔친다든지, 누군가를 격렬히 증오해 흉기를 휘두른다든지, 돈을 노리고 다른 이의 뒤통수를 친다든지. 하지만 우리는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핑계조차 댈 수 없을 만큼 불가사의한 범죄와 종종 맞닥뜨리곤 한다. 재미와 쾌락을 위해 살인을 즐겼던 부류들, 다른 이의 고통에 공감하기는커녕 고통을 주는 자체에 짜릿함을 느끼고 죄책감은 터럭만큼도 없는 기이한 존재들. 우리가 ‘사이코패스’라고 부르는 이들 말이다.

이 괴물 같은 존재를 가려낸 최초의 임상 전문가는 19세기 초 프랑스인 정신과 의사 필리프 피넬이야. “그는 철저하게 잔혹하고 자제력이 완전히 결여된 행동 패턴을 ‘정신착란 증세 없는 정신이상’이라 정의하면서 ‘일반인이 저지르는 범죄’와 구별했다(로버트 D. 헤어 지음 〈진단명 사이코패스〉).” 19세기 중엽 이후 이른바 ‘문명국’을 자임하던 서구인들은 수시로 출몰하는 정체불명의 범죄자들을 보며 경악했다. 1888년 8월7일부터 11월10일까지 빈민굴로 유명했던 영국의 이스트엔드 지역에서 매춘부 여러 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찢어 죽이는 잭)’의 등장이 대표적 사례지.

비슷한 시기 미국 시카고에서는 허먼 머젯이라는 이름의 의사가 나타난다. 매우 친절하고 화술도 좋아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인물이었지. 그는 시카고에 정착한 이후 이름을 바꾼다. 새 이름은 ‘헨리 하워드 홈스(H. H. 홈스)’.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지? 홈스에 대한 논픽션을 쓴 에릭 라슨은 책 〈화이트 시티〉에 이렇게 적고 있어. “1886년 7월 아서 코넌 도일 경이 셜록 홈스를 세상에 소개했고 머젯은 그때부터 자신의 이름을 홈스로 기재하기 시작했다.”

명탐정 셜록 홈스는 단편소설 〈해군 조약〉에서 이런 말을 내뱉은 바 있어. “목적 없는 범죄를 추적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네.” 그런데 셜록 홈스의 이름을 따라한 것으로 보이는 미국인 H. H. 홈스는 바로 셜록 홈스가 말한 이런 부류의 범죄자였다. 의사 자격증을 딴 직후부터 그는 기괴한 사업에 맛을 들이고 있었지. 변사체를 구해 병원에 해부용으로 팔아넘기는 일이었어. 각지의 이민자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오던 미국의 빈민굴에서 무연고 시신을 구하는 건 일도 아니었고 홈스는 꽤 재미를 본다. 점차 사업을 확장한(?) 그는 새롭지만 극악한 수익모델을 개발하지. 누군가를 표적 삼아 보험에 들게 한 후 아예 죽여서 보험금을 가로채고 시신은 해부용으로 팔아넘기는 수법이었다. 양심의 가책 따위 애초에 없는 이 괴물은 겉보기엔 매우 친절한 신사여서 순진한 희생양들을 손쉽게 낚아챘다. “홈스는 옷을 잘 입었고 말솜씨가 좋았다. 그의 시선은 순진하고 솔직했다. 대화를 나누면 어찌나 집중해서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지 다른 일은 잊어버릴 지경이었다(〈화이트 시티〉).”

ⓒEPA잭 더 리퍼의 살인 도구로 알려진 칼.

그즈음 시카고에서는 거대한 박람회가 열렸어. “미국은 1889년 프랑스가 만국박람회를 개최하여 (···) 전 세계인들의 경탄을 자아낸 것에 자극받았다. 유럽에 질 수 없다는 미국인들의 애국심이 갑자기 불붙었고, ‘콜럼버스의 신세계 발견 400주년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세계박람회가 시카고에서 열리게 됐다(〈프레시안〉 ‘건축가와 연쇄살인마, 사실은 이란성 쌍둥이?’ 2013년 1월4일).”

시카고는 1893년 박람회 개최까지 단 3년 안에 파리 박람회의 영광을 뛰어넘을 도시로 탈바꿈해야 했다. 광기 어린 건설 과정에서 시카고에 몰려든 수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 목숨을 잃었지. 살인마 홈스는 이 박람회 기간에 성(城) 같은 호텔을 지어놓고 자신만의 사업을 벌였어. 호텔의 손님 중 운 나쁜 이들은 가스실과 화장터까지 갖춘 홈스의 호텔을 영원히 나가지 못했다. 그의 보험사기를 끈덕지게 추적하던 형사가 덜미를 잡아채고 그의 범죄 행각을 밝혔을 때 미국인들은 심한 충격을 받아. 홈스의 호텔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최대 200명으로 추정되었으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홈스가 주도면밀했던 이유도 있겠으나 더 큰 이유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나도 모르게 사이코패스와 가까워진다

“시카고에서 실종은 마치 오락처럼 보였다. 곳곳에서 실종 사건이 너무 많이 일어나 적절한 조사를 할 수 없었고 (···) 사라진 사람들의 계층이 그들의 시각을 어둡게 했다. 가장 흔히 일어나는 폴란드 소녀들, 도살장의 소년들, 이탈리아 노동자들, 흑인 여자들의 실종에 대해서는 찾으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았다(〈화이트 시티〉).” 홈스의 호텔이 아니더라도 시카고에서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속절없이 죽어갔다. 그들의 몸은 병원에 해부용으로, 머리카락은 가발 공장으로 갔으며, 옷은 사회복지시설에 기부됐다. 이런 형국에 “시인이 영감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나 역시 내 안의 살의를 어쩔 수 없다”라고 내뱉었던 자칭 ‘사탄’ 홈스는 자신의 악마적 쾌락을 즐기고 있었던 거야.

ⓒWikimedia미국의 연쇄살인범 헨리 하워드 홈스.

이런 사람들이 왜 태어나는지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어렵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들의 뇌 구조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보통 사람과는 판이한 사고와 판단을 한다고 하더구나. 언젠가 아빠가 취재하던 문제 아동을 관찰한 한 의사가 “우리끼리 얘기지만 이런 애들은 그냥 영원히 격리해야 돼요”라고 말할 만큼 ‘다른’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빠는 의사의 말에 격렬히 반대하고 싶었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나오는 걸 막을 순 없겠지만, 그들을 ‘어쩔 수 없는 존재’로 치부해버리는 것 역시 사악하도록 게으른 일이기 때문이야. 살인마 잭이 설치던 영국의 이스트엔드는 미국 작가 잭 런던이 개탄했던 대로 “음란한 행위와 사람 형상의 짐승 같은 상스러움이 넘쳐나며 (···) 악함이 선함을 타락시키고 함께 신속하게 곪아 썩어 들어가는” 곳이었다. 홈스의 시카고 역시 사람이 죽든 실종되든 그저 박람회에 미쳐 돌아가던 도시였고 말이야. 홈스 자신은 심각한 아동학대의 피해자였고, 또래 사이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한 사람이기도 했지.

사이코패스 성향 자체는 선천적이겠으나 그 안에 도사린 악마성을 구현하도록 도운 것은 바로 ‘외부의 악마’일 수 있다. 서로에 대한 배려를 잃고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라면 사이코패스는 더 빈번하고 뜨거운 간헐천으로 우리 발밑을 뚫고 뿜어 오르겠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고 다른 사람의 고통과 슬픔을 외면한다면 우리들은 사이코패스의 피해자이기 이전에 그들의 공범일 수밖에 없다”라는 사이코패스 연구가 로버트 D. 헤어의 말을 명심해야 하는 이유다.

요즘 우리는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얼마나 나왔나 하는 뉴스에 가슴을 졸인다. 그런데 한국에서 하루에 몇 명이 목숨을 끊는지 아니? 2019년 하루 평균 38명꼴이었다. 올 한 해 세상을 뒤흔든 코로나로 죽은 사람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496명(11월18일 기준). 2019년 자살 사망자 수는 1만3799명이었다. 내가 걸릴지 모를 코로나에는 민감하지만 1만3000명이 죽음을 선택하는 전쟁 같은 현실에 둔감하다면, 그들의 아픔에 마냥 덤덤하다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사이코패스와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잭 더 리퍼와 H. H. 홈스가 우리 속에서 음산하게 웃고 있는 건 아닐까?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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