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 질병, 돌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도 없다. ‘존엄한 죽음’은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을 발견하고 해석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시사IN〉은 의사·의료인류학자·환자·보호자·간병인 등 죽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의식과 목소리에서 출발해 ‘죽음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현장까지 두루 살펴봤다. 기사는 총 5회 연재된다.

① 당신은 어디에서 죽고 싶습니까
② ‘아픈 몸’을 거부하는 사회에게
  - ‘아픈 몸’도 아픈 대로의 삶이 있음을

③ 의학은 돌봄을 가르치지 않았다
  - “환자 집에 가면 질병이 작아 보여요”
④ 존엄한 죽음은 존엄한 돌봄으로부터
⑤ 죽음의 미래를 찾아서

 

ⓒ시사IN 신선영매주 토요일 서울 은평구의 밥풀꽃 가게에서 치매 노인과 보호자가 이용하는 ‘서로돌봄카페’가 운영된다.

병원에서 이뤄지는 돌봄은 보호자 처지에서는 ‘층층시하’나 마찬가지다.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간병사의 돌봄은 통합적이지 않고 쪼개져 있다. 특히 실질적으로 환자 돌봄을 담당하는 요양보호사와 간병사는 전국적으로 60만명에 이르지만 이들의 노동은 존엄과는 먼 거리에 있다.

문재인 정부가 시행 중인 커뮤니티케어(지역사회 통합돌봄)는 병원에 치중된 돌봄을 지역사회와 ‘나누는’ 시도 중 하나다. 톱다운 형식으로 이뤄지기에 문제점도 있지만 시작 단계임을 감안해 한국형 커뮤니티케어가 얼마만큼 왔는지는 짐작해볼 수 있다. 한쪽에서는 정부가 나서기 전에 지역사회에서 출발해 커나간 경우도 있다. 두 사례 모두를 살펴봤다.

함께 늙어가던 이웃들은 하나둘 동네를 떠났다. 거동이 불편해지자 자식이 있는 곳 가까이로 이사하거나 요양병원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떠난 이웃들은 부고로 소식을 알려왔다. 경기도 부천시 고강본동의 한 연립주택. 이곳에서 30년을 산 송영화씨(80)에게 남은 이웃들은 “모르는 얼굴들”뿐이다. 송씨는 젊은 시절 남편과 헤어진 후 홀로 아들을 키웠다. 먹고사느라 노후를 준비할 새도 없었다. 7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로 집안에서도 벽을 잡지 않고는 걷기가 어렵다. 오른쪽 귀는 들리지 않는다. “늘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어요. 자식 고생 안 시키고 갈 수 있으면 감사하죠.” 홀로 사는 송씨의 바람은 집에서 임종하는 것이다.

돌볼 사람이 없는 집은 자주 위험했다. 7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지던 날도 송씨 혼자였다. “교회에 가려고 성경책을 찾는데 머리부터 목 뒤쪽이 뻐근한 게 ‘아 큰일 났다’ 싶더라고.” 앞집 문을 급하게 두드렸지만 그날따라 집이 비어 있었다. 평소 연락하던 이웃 전화번호도 생각나지 않았다. 의식을 잃기 전 송 할머니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현관문을 열어두는 것이었다. “사람이 보여야 날 끌어내든지 할 테니까. 시간과의 싸움 아니에요?” 그 덕분에 아래층에서 쿵 하는 소리를 들은 2층 주민이 현관 앞에 쓰러져 있는 할머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 달간 병원 생활을 한 뒤로 송씨에게 죽음은 풀어야 할 숙제가 되었다. 간병비부터 재활 운동비까지 하루 15만원이 넘는 돈이 부담스러웠다. 그가 머리맡 서랍 속에 넣어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지난해 보건소에서 ‘임종 과정에서 인공호흡기 장착, 심폐소생술 등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거부한다’는 의향서에 사인을 했다. “나 쓰러지고 나서 아들이 살리려고 어떻게 할까 봐….” 강릉에 사는 아들은 상의도 없이 결정했다며 매우 속상해했다. 송씨 아들은 어머니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철회하기 원한다. 하지만 송씨는 죽는 것보다 아프면서 오래 사는 게 두렵다.

ⓒ시사IN 조남진10월23일 돌봄활동가 한영희씨가 홀로 살고 있는 송영화씨 가정을 방문했다.
ⓒ시사IN 조남진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왼쪽)과 돌봄 시간이 축적되는 마을 화폐 통장(오른쪽).

2017년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령자 88.6%가 ‘계속해서 현재 집에 거주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57.6%는 ‘건강 악화로 거동이 불편해져도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나 노인 가구의 72%는 노인 단독가구다(독거 23.6%, 노인 부부 48.4%). 집에는 노인을 돌볼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그 결과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들은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 평균 707일을 보내다 생을 마감한다(국민건강보험공단, 2018년). 노인복지학에서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노인의 지역사회 계속 거주)’를 노인복지의 새로운 지향점으로 제시하는 이유다. 201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에이징 인 플레이스를 이렇게 정의한다. ‘노인이 거주하기를 희망하는 집 또는 장소에서 거주하면서 친숙한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적절한 지원과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며, 좋은 죽음(well-dying)을 맞이하는 것.’

적절한 돌봄을 받을 수 없을 때 집은 감옥이 된다. 죽음이 숙제가 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2018년부터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커뮤니티케어 사업도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살던 곳에서 나이 들 수 있도록 주거·보건의료·요양·돌봄 등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케어안심주택 등 맞춤형 주거 인프라 확충 △방문건강 및 방문의료 실시 △재가 장기요양 및 돌봄서비스 확충 △민관 서비스 연계를 4대 중점 과제로 잡고 2019년 6월부터 16개 지자체에서 선도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시범사업 1년 6개월, 〈시사IN〉은 정부의 커뮤니티케어 사업 이전부터 ‘에이징 인 플레이스’를 논의해온 두 지역을 찾았다.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과 서울시 은평구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다. 전자는 노인 비율이 높고 후자는 1인 가구 비율이 높다. 지역 조건도, 인구구성도 다르지만 두 지역은 공통적으로 돌봄의 관계망을 만드는 것이 커뮤니티케어의 숨은 공식이라고 말한다. 존엄한 죽음 이전에 돌봄이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70만8808건, 연명의료계획서 5만1832건에 이르는 시대에 두 지역이 갖고 있는 질문과 고민을 들어야 하는 이유다.

부천 고강종합사회복지관
돌봄은 공동체를 만든다

10월16일 오전 9시30분. 경기도 부천시 고강종합사회복지관(복지관)에 들어서자 밥 짓는 냄새가 났다. 도시락 240인분이 조리되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무료 급식소가 중단되면서 10개월째 자원봉사자들이 도시락과 반찬을 직접 배달하고 있다. “밥 먹으러 오는 게 유일한 운동인데 코로나 이후로는 집에만 꼼짝 없이 갇혀 계세요. 누구 하나 말 걸어주는 사람 없이 외롭잖아요.” 돌봄활동가 한영희씨(55)는 이전보다 어르신들 안색이 어두워졌다고 염려했다. 반찬은 구실이다. 아픈 데는 없는지, 밥을 거르지는 않았는지, 곰팡이가 피거나 전등이 나가지는 않았는지 살핀다. 대면이 어려워질수록 돌봄이 절실했다.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어도 방문은 끊긴 적이 없다.

ⓒ시사IN 조남진경기도 부천 고강종합사회복지관에서 활동 중인 돌봄활동가들. ‘타임뱅크’ 제도를 통해 봉사 시간만큼 본인이 돌봄을 받을 수 있다.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과 성곡동 일대는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20%에 육박하는 고령화 지역이다. 현재 한씨 같은 돌봄활동가 26명이 노인 단독 가구 100여 곳을 돌아다닌다. 송영화씨가 코로나19 유행에도 고립되지 않은 것도 이웃 주민인 한씨가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방문한 결과이기도 했다. 독거노인 다수가 가족관계가 끊겨 있는 데다 노화 또는 지병으로 문자나 전화를 못 받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돌봄활동가 박정숙씨(64)는 집에 방문하면 한 사람 삶의 전부를 본다고 말한다. “올여름에 비가 지독하게 왔잖아요. (어르신 집) 천장에 물이 새서 곰팡이가 슬어 있고, 장판은 축축하지.”

자식에게 신세 지기 싫어서 아프다는 사실을 숨기는 이들도 많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인데 팔에 멍이 시퍼런 거야. 자기가 선점한 지역에 넘어왔다고 다른 노인이 때렸는데, 2주가 넘도록 병원을 안 갔더라고.” 물이 샌 집을 수리하도록 복지관에 연계하고, 폐지 줍는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간 것도 가족이 아닌 박씨였다.

지난해 6월 경기도 부천시는 보건복지부의 커뮤니티케어 추진 계획에 따라 선도사업(노인 대상) 지역으로 선정됐다. 이후 보건소(방문약료 서비스), 가톨릭사회복지회(커뮤니티 홈) 등 정부와 민간 사업자가 통합돌봄 체계에 참여했다. 고강종합사회복지관은 지역사회의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일대일로 관계 맺을 돌봄활동가를 가장 먼저 육성했다. 현행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나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행정체계가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계속 발생했기 때문이다.

고강종합사회복지관 최종복 관장은 커뮤니티 케어의 핵심이 ‘관계망’에 있다고 본다. “최근에 인천 ‘라면 형제’ 화재 사건을 두고도 보호자를 비난하는 여론이 컸잖아요. 근데 왜 보호의 책임이 가족에게만 있습니까. 지역사회 안전망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물어야 하죠.” 치매 노인 돌봄 문제도 다르지 않다. 2016년 노인장기요양보험 통계에 따르면 가족 중 여성이 73%(38만명), 자녀 중에는 딸과 며느리(86%)가 노인을 돌본다. 커뮤니티케어가 구현된다는 것은 사각지대에 놓인 주민을 도와줄 수 있는 이웃관계망을 만드는 일이라고 최 관장은 말했다. 그가 돌봄활동가 사업을 기획하게 된 배경이다.

ⓒ시사IN 조남진10월23일 돌봄활동가 한영희씨가 왼손과 왼다리를 쓰지 못하는 김은중씨 가정을 방문했다.

돌봄활동가 한영희씨가 방문하는 집 가운데에는 저소득층 노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 목사였던 김은중씨(69)는 24년 전 뇌출혈이 발생한 이후 왼손과 왼다리를 전혀 쓰지 못한다. 아내가 온종일 그를 돌보기에 벅차다. 일주일에 한 번 한씨가 방문해 김씨의 관절운동을 돕고 있다. “자식이 돈이 있거나 집을 소유하고 있어서 복지 혜택을 못 받는 분들도 있는데 돌봄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누구나 필요하거든요.”

어르신들도 집에 앉아 돌봄을 ‘받기만’ 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고강동에서는 장애가 있는 노인이 홀로 사는 이웃들에게 안부 전화를 한 통씩 돌리면서 돌봄 품앗이를 한다. 가난하고 불쌍해서 돕는다는 낙인이 없고,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자부심이 생긴다. 최종복 관장은 공동체가 있기 때문에 돌봄이 생기는 게 아니라 돌봄이 순환되면서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돌봄활동가가 받는 경제적 보상은 한 달 교통비 1만2000원이 전부다. 현재 돌봄활동가 26명 중에는 요양보호사, 장애인 활동지원사를 겸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고강동과 성곡동에서 돌봄 활동의 대가는 돈이 아니라 ‘시간’으로 적립된다. 돌봄이 필요할 때 쓸 수 있고, 빌려줄 수 있고, 마이너스 통장처럼 빼서 쓸 수 있다. 돌봄이 지역 화폐인 셈이다. 한영희씨의 계좌에는 지난 3월부터 64시간이 저축되어 있었다. 아직 시간을 써본 적은 없다. “저도 아프고 늙으면 누군가의 케어가 필요할 텐데 그때 좀 더 당당하게 (돌봄을)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돌봄은 한씨의 노후와도 맞닿아 있었다.

서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기계가 아니라 관계로 건강해진다

서울 지하철 6호선 구산역을 나오자 11층짜리 건물에 ‘살림의원·치과·운동센터’라고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목 좋은 자리를 의도했던 건 아니다. 100군데를 넘게 봤지만 휠체어로 진입 가능한 건물이 이곳밖에 없었다. ‘눈에 보이는 계단이나 문턱에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까지, 진입을 망설이게 할 법한 것들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살림의료사협)의 주치의인 추혜인 원장의 에세이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심플라이프, 2020)에 나오는 이야기다. 살림의료사협은 누구나 올 수 있는 병원을 지향한다. 임대료를 내기 위해 조합원들이 십시일반 출자금을 더 모았다.

서울 은평구 살림의료사협은 정부보다 앞서 2012년부터 커뮤니티케어를 고민해왔다. 내가 아프고 병들면 누가 나를 돌볼까. 병들고 장애가 있더라도 존엄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나답게 살다가 아는 얼굴들 사이에서 죽을 수 있을까…. 친한 친구들끼리 모이면 자주 하던 얘기들이 시작이었다. 비혼 여성주의자, 의료인, 은평구 주민 300여 명이 모여 살림의료사협을 창립했다. 마을에서 안심하고 나이 들기 위해서는 나를 잘 아는 의사(주치의)가 필요했다. 2012년 가정의학과인 살림의원을 시작으로 2013년 다짐건강센터, 2016년 살림치과까지 조합원 출자를 받아 빚 없이 개원했다. 조합원끼리는 나이, 결혼 여부,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해 묻지 않는다. 차별과 혐오 없는 진료실을 찾아 살림의원으로 내원하는 타 지역 조합원도 늘고 있다. 올해로 9년째, 조합원의 숫자는 3300명, 출자금은 12억여 원이다.

1차 의료기관인 만큼 돌봄의 관계망을 짜는 데 주력했다. 병원 한쪽 벽에는 ‘기계가 아니라 관계로 건강해진다’라고 쓰여 있었다. 유여원 살림의료사협 상무는 이 문구가 “살림의 스피릿(정신)”이라고 소개한다. 의사가 병을 치료한다면 이웃은 병을 예방할 수 있다. 살림의료사협이 7월부터 운영하는 ‘서로돌봄카페’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매주 토요일 오후 1~5시 살림의원 1분 거리의 ‘밥풀꽃’ 카페를 대관해 서로돌봄카페를 운영한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어려워지자 치매 어르신과 보호자가 ‘마실 나오듯’ 들를 수 있는 거점 공간이 필요해졌다. “독박 돌봄에 치이고 있는 가족들에게도 힘든 시기잖아요.” 살림의료사협의 초창기 조합원인 차익수씨(58)도 10월31일 건강돌봄자원활동가(돌봄활동가)로 이곳을 찾았다. 그가 어르신들과 윷놀이나 화투를 하는 동안 다른 테이블에서는 보호자들이 잠시 쉴 수 있다.

ⓒ시사IN 신선영서울 은평구의 밥풀꽃 가게. 치매 가족을 돌보는 김명렬씨(왼쪽)는 ‘서로돌봄카페’를 매주 방문한다. 살림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은 2012년부터 커뮤니티케어를 고민해왔다.

오후 1시30분 희끗한 머리에 패딩 차림을 한 김명렬씨(74)가 서로돌봄카페를 찾았다. 지난 7월부터 매주 이곳을 방문하는 단골손님이다. 김씨는 동갑인 아내와 49년을 함께 살았다. 사업을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한 아내에게 늘 미안했다. 그런 아내의 치매 증세가 심해진 건 지난해 6월부터였다. 처음에는 했던 얘기를 반복하다가 주차장과 동네에서 길을 잃었다. “나이 들어서 깜빡하는 줄 알았어. 딸내미가 와서 엄마 이상하다고 병원에 한번 가보자고 하더라고.”

치매는 완치되는 병이 아니었다. 약물 치료로는 치매 진행을 늦출 뿐이다. 큰 병원을 찾아 인천 강화도에서 서울 은평구로 이사를 왔다. 아내의 기억은 일주일에서 사흘로, 이틀로, 하루로 줄어들었다.

구청부터 주민센터, 보건소, 보건복지부까지 문을 두드리지 않은 곳이 없다. 치매센터와 주간보호센터는 예기치 못한 감염병 유행으로 문을 닫았고, 병원에서는 두 달 치 약봉지만 수북하게 받아왔다. 인터넷에는 설거지를 시켜라, 콩나물을 길러라 하는 조언들뿐이었다. “24시간 붙어 있으니 혼자 감당이 안 돼. 이럴 땐 (보호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른 가족들은 어찌 사는지 해결책을 묻고 싶은데 아무데서도 연결이 안 돼.”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김명렬씨는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우연히 열어본 동네 소식지에서 서로돌봄카페 기사를 봤다. “보자마자 뛰어왔지.” 건강돌봄 자원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에야 수렁에 빠져 있던 건 아내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호자도 돌봄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몇 개월간 묵혀둔 응어리가 씻겨내려 갔다.

‘아무나 붙들고 시비 걸고 싶은 심정’이었던 김씨를 구한 건 다른 가족 돌봄 당사자들을 만나면서다. 98세 아버지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 딸, 치매에 걸린 남편을 4년간 홀로 돌보고 있는 아내를 이곳에서 만났다. 노인 돌봄 대부분이 가족 내 여성에게 내맡겨져 있다. 정진화씨(60)는 아버지 정우갑씨(98)를 위해 주 5일 간병사와 주말 간병사를 고용하느라 월 300만원을 넘게 쓴다. 아버지는 2005년 알츠하이머를 진단받은 후에도 ‘집에서 가고(죽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다. 딸 역시 아버지의 말년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장기요양등급을 받아도 하루 3시간 요양보호사가 오는 걸로는 어림도 없어요.” ‘어디 데이케어센터가 좋다더라’ 하는 정보를 공유하고 ‘보호자도 혼자만의 시간을 꼭 가져야 한다’며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곳에서 살림의원 가정의학과를 연계받은 김씨는 처음으로 의사를 20분 동안 대면했다. “(의사가) 들어만 주는데도 위안이 되더라.”

이날 돌봄활동가 차익수씨가 ‘목포의 눈물’을 기타로 연주하자 정우갑 할아버지가 어깨춤을 들썩였다. “집에서는 혼자 천장만 보고 있는데, 여기 오면 옆에서 (노래 부르는 거) 보기만 해도 좋아.” 김명렬씨가 패티김의 ‘그대 없이는 못살아’를 부를 때는 박수를 치던 돌봄활동가 몇몇이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5년 차 조합원인 김은영씨(49)도 보호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노화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늙고 병드는 게 당연한데 우리는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당황스럽기만 할까요. 선생님(김명렬) 얘기 들으면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일을 먼저 겪은 선배라고 생각해요.” 김명렬씨는 ‘앙코르’ 요청에 아리랑까지 부르고 나서야 급히 서로돌봄카페를 나왔다. 데이케어센터에 맡겨둔 아내를 데리러 가기 위해서다.

ⓒ살림의료사협 제공8월1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교육을 받은 살림의료사협 조합원들.

‘우리가 돌봐주자’ 말해놓았다

내가 늙고 아프면 누가 돌볼까. 살림 조합원인 손주영씨(가명)는 비혼 1인 가구다. 부모님과 친한 친구들 모두 타지에 있다. “제가 다쳤을 때 10분 이내에 달려와줄 수 있는 그런 관계들이 필요한 거잖아요.” 매주 독서모임에서 만나던 조합원들끼리 ‘우리가 돌봐주자’ 하고 말해두었다. 최근 그 말이 실제가 되었다. 같은 모임에 참여하던 이웃 한 명이 항암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1인 가구인 그를 위해 6개월째 조합원들이 순번을 짜서 돌보고 있다. 말벗, 반찬, 약 타오기, 산책, 청소 등 각자가 잘하는 분야를 나눠서 맡았다. 장미옥씨(56)는 “항암 치료를 받으면 입맛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실장아찌와 물김치를 해다 주었다. “우리끼리 모이면 농담으로 그래요. 여든 살이 되어도 지금처럼 같이 책 읽고 노래 부르고 서로 돌보면서 늙어가면 나이 드는 게 좀 덜 두려워지지 않을까?”

장미옥씨는 올해 6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썼다. 살림의료사협이 사전연명의료 등록기관으로 지정된 이후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제공한다. “친정아버지가 지난해(2019년) 돌아가셨는데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연명치료 하고 싶은지 여쭤보고 싶었는데 못 여쭙겠더라고요.” 장씨의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3개월 입원해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다고 해도 실제 임종기(사망이 임박한 상태)를 판단하기 어렵고 가족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기도 한다. 쓰는 것보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 누구와 이야기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 장씨는 두 딸이나 남편이 아닌 동모임에서 만난 친구들 4명과 교육을 받았다.

임종을 앞두고 ‘나에겐 말하는 것과 먹는 것 중 어떤 게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마주할 수도 있다. 임종기에 이르러 기도 삽관이나 식도 천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장미옥씨는 교육을 통해 ‘내가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하는 낯선 질문에 답했다. ‘나는 대소변은 끝까지 남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 ‘콧줄은 절대 끼고 싶지 않다’ ‘음식은 내가 끝까지 삼키고 싶다’처럼 각자가 지키고 싶은 존엄한 죽음의 모습은 모두 달랐다. 차익수씨는 그래서 유언장 대신 ‘돌봄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중에 치매에 걸리면 이런 음악을 들려주세요, 목욕은 며칠에 한 번만 시켜주세요…. 이런 말을 주변에다 미리 해두고 싶어요.” 고독사 이전에 고독생이 있다. 그래서 존엄한 죽음 이전에 존엄한 돌봄이 필요하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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