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이 책에 대해서 아직까지 안 썼다니. 이건 내 인생 그림책인데. 당신의 인생 그림책이 뭐냐는 그림책 심리학자의 질문에 어떤 사람은 한참을 머뭇거리고, 어떤 사람은 자꾸 바꾸고, 어떤 사람은 끝내 찾아내지 못할 때 나는 0.5초도 지체하지 않고 〈부엉이와 보름달〉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20여 년 전 이 책을 처음 만난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흔들림이 없었다.

대체 뭘까. 내 뇌리에 가장 강력히 박힌 장면은 클로즈업된 부엉이 얼굴이다. 내 뇌리에서는 실제 그림보다 훨씬 큰 부엉이 얼굴이 실제 그림과 달리 정면을 향해 있고, 부엉이의 커다랗고 노란 눈은 내 눈과 정통으로 만나고 있다. “일 분/ 이 분/ 어쩌면 백 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부엉이와 우리는 서로 바라보았습니다”라는 글에는 우리가 서로 바라보는 순간이 영원처럼 남아 있다. 대체 뭘까. 눈 쌓인 겨울밤 아빠와 함께 부엉이 관찰에 나선 한 여자아이가 추위와 두려움과 실망감을 혼자 이겨내는 과정인 이 이야기가 왜 내 안에 이토록 깊이 박히게 된 걸까.

눈(雪)과 눈(眼)의 이야기  

인간이 이야기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뇌과학 기반의 스토리텔링 이론가가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할 말을 대신 해주는 글귀에는 밑줄을 쳤노라는 시구도 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부엉이를 보러 간 소녀가 그와 마주보게 되는 그 장면은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하고 싶던 말을 대신 해주는 것이었다. 눈 덮인 겨울 숲 추위, 밤의 두려움, 혼자 이겨냄. 나는 이런 것들을 나의 배경으로 여기며 영원 같은 부엉이와의 눈 맞춤을 내 삶의 목표와 완성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눈(雪)과 눈(眼).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나를 가장 강력하게 사로잡았던 이야기도 그 눈과 눈의 이야기였다. 핀란드 작가 토펠리우스의 〈별의 눈동자〉. 늑대에게 쫓겨 달리던 마차에서 떨어진 갓난아기가 눈밭에 누워 있는데 그 눈 속으로 별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몰려든 늑대들은 그 빛에 눌려 아기를 해치지 못하고 돌아간다. 지나던 농부에게 입양돼 자란 아이는 열 겹 헝겊으로 눈을 싸매 지하실에 넣어두어도 바깥세상 모든 일, 인간의 모든 마음을 보아낸다. 겁에 질린 양모가 아이를 다시 겨울밤 숲속 늑대 무리 사이에 버리고 오는데, 아이는 늑대와 함께 떠났던가, 별빛 속으로 사라졌던가…. 확실치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눈 쌓인 겨울 숲, 늑대와 부엉이, 아이 눈으로 쏟아지는 별빛. 서로 연결고리가 없어 보여도 이 이미지들은 내게 강력한 하나의 세계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화려하고 풍요로운 도시보다 황량하고 쓸쓸한 자연에 늘 끌리는 편이다. 그 안에는 어떤 소망이 있어 보인다. 그것도 〈부엉이와 보름달〉에서는 대신 말해준다. “부엉이 구경을 가서는 말할 필요도, 따뜻할 필요도 없단다. 소망 말고는 어떤 것도 필요가 없단다.” ‘저렇게 눈부신 보름달 아래를, 침묵하는 날개에 실려, 날아가는 소망’을 아빠 품에 폭 안긴 아이는 생각한다. 언제 봐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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