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awit Kuwawattananont 제공10월19일 타이 치앙마이에서 고등학생 시위대가 시위의 상징인 ‘세 손가락 인사’를 하고 있다. 맨 오른쪽 시위자가 수삣차 차일롬.

2019년 홍콩과 2020년 타이는 닮았다. 헬멧과 마스크를 쓴 시위대, 광장을 가득 채운 우산과 휴대전화 플래시 물결 그리고 물대포를 동원하는 시위 진압 방식까지. 시위 주체도 학생을 중심으로 한 10·20 세대다. 홍콩 시위대가 ‘일국양제’를 무너뜨리는 중국 정부에 분노했다면 타이 시위대는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와 왕실에 분노한다. 아시아의 젊은 세대들은 자신을 대변하지 못하는 대표자가 물러나기를 바란다.

팬데믹 와중에 타이는 그 어느 때보다 어두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청년들의 지지를 받고 의회에 제3당으로 진출한 미래전진당(퓨처포워드당)이 정권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고(2월), 반정부 활동가가 실종되었으며(6월), 경찰이 타이 시위의 구심점이 된 텔레그램 채널 접속 차단을 시도했다(10월). 10월15일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5인 이상 집합을 금지하는 비상 포고령을 내렸다. 다음 날인 10월16일 경찰은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방콕에 모인 시위대를 향해 발사했다. 11월 초까지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거나 기소된 사람은 최소 173명에 이른다. 21세 대학생인 분끄아눈 빠오통은 10월14일 집회 현장을 지나가던 수티다 왕비의 차량을 향해 ‘세 손가락 인사’를 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2020년 타이 시위의 상징이 된 ‘세 손가락 인사’는 세 가지 요구를 담고 있다. ‘쁘라윳 짠오차 현 총리 퇴진, 군부가 만든 헌법 개정, 군주제 개혁’이다(〈시사IN〉 제681· 682호, ‘타이 사상 초유의 외침, 왜 왕이 필요한가’ 기사 참조).

빠오통에게는 타이 형법 제110조 왕비에 대한 폭력죄가 적용되었다. ‘왕비의 자유에 해를 끼쳤다’고 판단될 경우 최소 징역 16년에서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다. 11월2일 빠오통 씨에게 연락했다. 그는 “개인적·법적 문제로 인해 인터뷰를 잠시 쉬고 싶다. 내가 지금 처한 곤경을 이해해주길 바란다”라는 짧은 답변을 보내왔다.

ⓒ시사IN 조남진11월11일 ‘아시아 활동가 화상 회담’이 1시간30분 동안 열렸다. 홍콩 활동가 네이선 로도 참석했다.

‘밀크티 동맹’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최근 몇 년 사이 아시아에서는 젊은 층이 중심이 된 민주화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들은 서로의 운동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SNS로 타국의 시위 상황을 공유한다. 무엇이 이들을 분노케 했고, 무엇이 이들을 연대하게 만들었을까. 〈시사IN〉은 중화권 인권운동가들로 구성된 연구단체 ‘다이얼로그차이나’ 한국대표부, 5·18기념재단 등과 함께 ‘아시아 활동가 화상 회담’을 공동 기획했다. 국경 너머에 있는 현장을 전해줄 타이와 홍콩의 활동가를 화상회의 플랫폼 ‘줌’으로 초대했다. 11월11일 저녁에 진행된 화상 회담은 1시간30분 동안 진행되었다.

타이에서는 ‘민주주의를 위한 치앙마이 학생 동맹(이하 학생동맹)’ 소속 고등학생 분락사 분찐과 수삣차 차일롬이 참여했다. 치앙마이 지역 고등학생 50여 명으로 구성된 이 단체는 교육개혁의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여왔다. 학생동맹이 지난 10월 처음 주최한 반정부 집회에 3000명이 모였다. LGBT(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패션 워크’ 행사를 기획하는가 하면 총리·차관·장관의 얼굴로 영화 〈기생충〉을 패러디했다. 분찐이 당시 낭독한 발언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망설임 없이 통치자에게 반기를 들 수 있을 때 이 땅에서 자유가 승리할 때라고 할 수 있다.”

홍콩 데모시스토당 전 주석 네이선 로도 회담에 참석했다. 2014년 우산혁명 당시 조슈아 웡과 함께 운동을 이끌었다. 2016년 홍콩 입법회 최연소 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홍콩에 충성을 맹세하는 의원 선서를 거부해 자격을 박탈당했다. 네이선 로는 지난 7월1일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후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홍콩에서 국가 분열·선동·외세 결탁 등의 혐의로 지명수배된 상황이다.

네이선 로는 현재 ‘밀크티 동맹’에도 참여하고 있다. 타이, 홍콩, 타이완을 주축으로 한 온라인 연대운동이다. 2010년대 이후 민주화 바람이 불어온 이들 국가가 공통적으로 밀크티를 즐겨 먹는다는 점에 착안했다. 홍콩과 타이완의 활동가들은 ‘타이와 함께한다(#StandWithThailand)’ ‘밀크티 동맹(#MilkTeaAlliance)’ 해시태그를 달고 타이 시위 상황을 시시각각 알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5·18기념재단 유인례 국제연대부장과 다이얼로그차이나 한국대표부 이다은 선임연구원이 함께했다.

ⓒSirawit Kuwawattananont 제공10월18일 타이 방콕에서 플래시몹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평화롭게 진행되던 시위가 물대포로 진압되었다. 시위 참여자는 대부분 대학생, 고등학생들이었다. 타이의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당장 한 달 뒤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분찐이 집회에 참여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코로나19로 집회가 어려워지자 2~3시간씩 모였다가 흩어지는 플래시몹 형태의 시위가 타이 전국에서 발생했다. 미래전진당 해산 결정이 난 2월 이후 분찐은 100회 넘게 시위를 목격했다.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주의여 영원하라’ ‘봉건주의를 타도하고, 시민들이여 영원하라.’ 이번 시위에서 가장 많이 외치는 구호다.

이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데는 교육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다. 지난 9월 고등학생으로 이뤄진 단체가 방콕의 교육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우리의 첫 독재자는 학교다’라는 피켓을 들고 나타폰 띱수완 교육부 장관 퇴진을 요구했다. 이들은 스스로 ‘나쁜 학생들’이라고 부른다. 분찐도 당시 이 집회에 참가했다. “타이인들의 생활방식은 다 바뀌어도 교실의 모습은 100년 전 그대로다. 여전히 두발 제한이 있고 교복을 입어야 한다. 고등학생들은 군사훈련 수업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 사회 수업에서는 좋은 국민이 되는 법만 가르친다.” 타이의 젊은 세대들은 SNS를 통해 빠르게 의식화되어갔지만 교육은 과거에 머물렀다. 차일롬은 “타이 교육은 우리를 꼭두각시로 만든다. 우리는 시스템의 로봇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를 표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홍콩 활동가 네이선 로도 타이의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 “세계적인 도시인 방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휴대전화 플래시를 함께 흔드는 것을 보며 2019년 홍콩을 떠올렸다. 시민이 가진 힘을 실감케 하는 강력한 장면이었다.” 그는 두 나라 청년들이 더 큰 민주적 가능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시위의 성격이 비슷하다고 말한다. 홍콩은 올해 국가보안법이 통과되며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었다. 홍콩인들이 온라인에서 타이 시위 소식을 공유하고, 타이인들이 시위 현장에서 “나는 홍콩을 사랑한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연대한다. 네이선 로는 “소셜 미디어로 연결된 가상 공동체가 서로의 시위가 발전되도록 지지하고 돕는다”라고 말했다. 이다은 선임연구원은 “타이 시위에는 SNS를 기반으로 한 초국적 네트워크가 큰 역할을 했다”라고 말했다.

2014년 홍콩 우산혁명의 주역이자 민주화 운동가인 조슈아 웡은 밀크티 동맹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시사IN〉에 전했다. 그는 일정상 이번 회담에 참여하지 못했다. “타이 군사정부는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 안에서 꽤 좋은 경제적 파트너십을 육성해오며 그 대가로 중국 정부가 해외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는 것을 도왔다. 2016년 중국을 비판하는 서적을 판매해온 홍콩의 서점 주인 구이민하이가 납치된 곳도 타이였다. 그는 당시 중국 정부에 넘겨져 지금까지 구금되어 있다. 밀크티 동맹은 중국이 만드는 모든 형태의 권위주의를 막아내기 위한 범아시아적 연대 요구에서 시작되었다. 소셜미디어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연결되어 베이징의 프로파간다(선전)에 대항해 투쟁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타이 시위는 언급 자체가 금기였던 군주제까지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시위들과 다르다. ‘살아 있는 부처’라고 불렸던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과 달리 2016년 왕위를 계승한 마하 와찌랄롱꼰 국왕은 사치스러운 사생활로 신망이 두텁지 않다. 분찐은 “다른 국가라면 ‘우리는 왕과 왕비, 왕실이 필요하지 않다’고 발언할 수 있지만 타이에서는 15년 감옥살이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군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타이인들에게 굉장히 예민하다”라고 말했다. 시위대는 ‘왕, 왕비, 왕실을 모욕하거나 위협하는 자는 최대 15년형에 처한다’는 타이 형법 112조를 폐지하고 타이 왕실에 할당되는 국가 예산이 축소되기를 바란다.

ⓒSirawit Kuwawattananont 제공10월18일 타이 방콕의 시위대가 휴대전화기 손전등을 켜고 있다.

독재자와 싸우는 긴 여정

차일롬은 LGBT 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거리에서 쏟아지는 다양한 목소리가 결국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가 마주하는 문제는 단순히 의회에만 있지 않다. 학교에, 집에, 거리에 산재해 있다.” 타이는 LGBT 인권에 대해 포용적인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차별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최근 타이 의회에서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시민동반자 법안이 승인되었지만, 파트너를 대신해 의료 결정을 할 수 없고 동성 커플을 ‘이등 시민’으로 격하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차일롬은 “타이에서 LGBT 인권은 법에 의해, 혹은 특정 종교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억압받아왔다. 우리는 이성 결혼과 동등한 권리와 젠더 평등을 위한 민주주의를 요구한다”라고 말한다.

타이의 케이팝 팬들은 정치적 목소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내고 있는 집단 중 하나다. 타이 시위대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나 ‘지(Gee)’에 맞춰 춤추고 노래 부르는 영상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분찐은 한국 역사를 다룬 유튜브를 통해 1980년대 광주의 민주화 역사를 알게 되었다. 5·18기념재단 유인례 부장은 학생과 노동자가 주도하는 타이 시위를 보며 1980년대 광주의 풍경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유인례 부장은 타이 활동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겉으로는 용감해 보여도 속으로는 두려움을 느끼고, 때로 의심이 들기도 할 것이다. 우리의 경험을 통해 그게 어떤 것인지 안다. 사회 정치적 변화를 만들어온 건 늘 청년들이었다.”

분찐도 “독재자와 싸우는 긴 여정”이 당장 끝나지 않을 것을 안다. 한국인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타이의 오랜 정치적 혼란은 우리 부모 세대로부터 넘어온 과제다. 우리가 시위 현장에서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우리 세대에서 이 문제를 끝내자’는 것이다. 세 가지 요구안은 지금 현 세대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다만 이 싸움이 우리 세대에 끝날지 확실하게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단지 타이인들만이 아닌, 우리와 함께할 국제 연대가 필요하다. 아시아 국가들끼리 손잡고 함께 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Sirawit Kuwawattananont 제공11월8일 타이 방콕 사남루앙 광장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단속하는 모습.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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