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메신저였던 윤건영 의원(위)은 바이든 시기의 한반도 상황에 기대를 걸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51)은 공식적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가장 많이 만난 남한 사람이다. 2017년부터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내며 ‘문재인의 복심’으로 대통령의 메시지를 북측에 전했다. ‘판문점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사람’과 같은 별명이 붙었다.

2020년부터는 행정부에서 입법부로 필드를 옮겼다. 제21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현재 외교통일위원회·정보위원회·운영위원회에 속해 있다. 바이든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국회 차원에서는 첫 사절단이 11월16일 방미한다. 윤 의원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송영길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과 국정원 출신 김병기 의원,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지낸 김한정 의원과 함께 간다.

바이든 당선자가 공식 대선 승리를 선언한 사흘 후인 11월10일, 윤건영 의원을 국회에서 만났다. 사무실 책장에는 백두산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찍은 사진,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과 악수하는 사진 등 그의 활약을 짐작하게 하는 사진들이 놓여 있었다. 윤 의원은 한반도 정책에서 남북관계를 뒷바퀴, 북·미 관계를 앞바퀴에 비유했다. 한반도 정세에서 남북관계만 앞세워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래서 한반도 평화 여정 전체에 영향을 미칠 ‘미국 운전자’의 변화는 남한에 사는 이들에게도 큰 사건이다. ‘바이든의 시간’이 오면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또 다른 전환기를 맞이할 전망이다. 트럼프 시기를 결산하며 바이든 정부와는 한국이 어떻게 합을 맞춰야 할지 윤 의원에게 물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의 두 민주당이 협력할 수 있는 바이든 시기에 기대감을 보이며 ‘싱가포르 북·미 1차 정상회담을 남·북·미 관계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1년 월드컵 남북 예선전도 관계의 돌파구가 되리라 내다봤다.

청와대에 있을 때보다는 제약이 적어진 윤 의원은 경우에 따라 ‘오프 더 레코드’를 걸긴 했지만, 에둘러 답하지 않았다. 특히 지난 시간에 대해선 솔직하게 이야기를 풀어놨다. 긴급하게 열린 2018년 5월26일 2차 남북 정상회담은 북측의 요청으로 열렸다거나,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위해 한국 정부가 숙소까지 잡았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3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하루 전날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윤건영 당시 실장과 마주앉아 1시간 동안 일정을 알려줬다고도 말했다.

트럼프 시절 리뷰부터 해보자. 2018년 남북, 북·미 관계 진전이 가시적으로 이뤄졌다.

봄은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2018년이 봄이라면, 2017년이 있어서다.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에서 대북정책 구상을 발표했다. ‘북한을 붕괴시키지 않겠다’ ‘흡수통일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6·15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과 맞닿아 있다.

관계 진전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을 꼽자면?

남·북·미 관계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두 가지다. 첫째 2018년 5월26일 ‘판문점 원 포인트 남북 정상회담’이다. 하루 만에 성사됐다. 북측에서 먼저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안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시점에 요청이 왔다. 내일 만나자고. 참모들은 반대했다. 판문점 MDL(군사분계선)을 넘어가면 말 그대로 북한이다. 경호 조치 등을 생각하면 참모로서는 쉽게 권하기 어렵다. 그런데 대통령이 가자고 해서 갔다. 봉고차 하나에 대통령 차, 이렇게 갔다. 김정은 위원장이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역할을 기대했다. 그렇게 5·26 남북 정상회담이 싱가포르 북·미 1차 정상회담으로 연결되었다. 두 번째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이후인) 6월30일 판문점 남·북·미 정상 회동이다. 물론 우리(남한)는 자리를 주선하는 위치였지만, 한국전쟁 이후 70년 만에 남·북·미 정상이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 섰다는 자체로 대단한 의미가 있다. 이 자리를 만든 것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사실 6·30 남·북·미 정상 회동이 될지 안 될지는 당일까지도 몰랐다.

2019년은 앞바퀴(북·미 관계)가 잘 안 돌아갔다. 뒷바퀴(남북관계)도 멈췄던 듯하다.

2018년은 힘겹게 뒷바퀴를 가지고 한반도 비핵화의 차를 끌었다. 2019년은 본격적으로 앞뒤를 다 돌려보자 해서, 앞바퀴가 제대로 구동되길 기다렸다. 뒷바퀴가 고장난 게 아니었다. 지금 와서 결과론적으로 보면 아쉬움이 있다. 앞바퀴가 돌 때 기다릴 게 아니라 같이 돌렸더라면 하는…. 예를 들어 2020년에 제안한 개별 관광을 2019년 초에 치고 나갔으면 어땠을까? 대북 제재 국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보건·산림 협력 등을 조금 더 능동적으로 끌어갔어야 했다. 당시 북한도 ‘선미 후남’ 전략을 취했다. 우리가 뒷바퀴를 돌리려 했더라도 상호작용을 일으켜 제대로 갔을지는 모르겠다. 또 하나 아쉬운 게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다. 김 위원장은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답방을 약속했다. 김 위원장이 대한민국에 답방 온다면 남북관계가 10년 업그레이드된다. 그 시기를 놓쳐버렸다. 숙소까지도 잡았고 상당 수준에 이르렀는데, 아쉽게 성사되지 못했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 상황이 좋아질까?

바이든 정부는 민주당 정부다. 대한민국과 미국의 두 민주당 정부가 직접 만난 적은 2000년 김대중·클린턴 1년이었다.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가고 조명록 북한 인민군 차수가 워싱턴 D.C.를 갔던 시기다. 그런 황금의 시기가 도래했다. 또한 오바마 정부가 ‘전략적 인내’를 펼치던 상황과도 다르다. 북한의 핵무력 수준이 당시와 다르고 대한민국 정부도 다르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초래한 건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 개방 3000(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을 하면 10년 내에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가 되게 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이다. 그간 쌓아왔던 남·북·미 관계의 진전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우선순위에서도 한반도 이슈가 크게 밀리지 않을 것 같다. 북한 핵문제나 미·중 무역 갈등 상황 등을 봤을 때 그렇다. 우리는 최대한 상황 관리를 해서 이 시기를 잘 넘겨야 한다.

ⓒ판문점 조선중앙통신2019년 6월30일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함께 만났다. 이 자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만들었다.

상황 관리가 뭔가?

먼저 미국에 대한 설득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는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인권 문제에 대한 설득도 필요하다. 인권 이슈 제기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지만, 그걸 앞세우면 결과적으로 (대화를) 하지 말자는 얘기가 된다. 포괄적 신고를 앞세우거나, 보텀업(bottom-up) 방식(실무진에서 사전 협의를 하고 정상이 만나는 방식)을 고집하는 것에 대한 설득도 필요하다.

톱다운은,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상 가능했던 것 아닌가?

북한의 정치구조와 상황을 봐야 한다. 북한의 정치구조는 압핀 조직이다. 정점이 핀처럼 치솟아 있다. 최고지도자의 동의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미국에 가서 설득하려는 포인트 중의 하나가 이런 북한 상황을 무시하고 보텀업으로 가면 안 된다는 점이다. 북한은 실무자와 대화하는 게 아니라 실무자 뒤편에 있는 사람하고 대화해야 한다. 평양을 봐야 한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의 트럼프 행정부 정책 리뷰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정책 리뷰를 통해서 보텀업이 유효한지 톱다운이 필요한지 미국 쪽에서 판단할 문제다. 우리는 2018년 경험과 한반도 상황을 정확히 전달하고 피드백해주면 된다.

바이든은 트럼프 정책에 비판적이다.

남·북·미가 출발점을 정해야 한다. 싱가포르 북·미 1차 정상회담이 출발점이다. 지금 바이든·트럼프·문재인·김정은, 어떻게 보면 4축이다. 서로 출발할 수 있는 합의점을 정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내년 1월20일까지 ‘트럼프 대통령-바이든 당선자’ 상황의 전제하에, 선택할 수 있는 출발선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유일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통치권자로서 합의한 부분을 바이든 당선자가 마냥 무시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싱가포르 북·미 정상의 합의 내용 자체가 미국에 나쁘지 않다. 하노이 노딜은 쳐다보지 말고, 북·미가 서로 동의한 합의선이었던 싱가포르 선언에서 공감대를 만들어가야 한다.

ⓒ평양 조선중앙통신10월10일 열병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억제력으로 핵을 보유한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사이 북한 도발에 대한 걱정도 있다.

북한은 도발을 통해 협상의 레버리지를 높여왔다. 다만 북·미 관계에서 ‘우리(북한)가 먼저 합의를 깨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기도 한다. 두 측면이 병존한다. 지금 북한은 바이든 당선에 대해 어떤 메시지도 내지 않고 있다. 10월10일 열병식 때 나온 ‘우리를 건드리지 마라, 억제력으로 핵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라는 게 김정은 위원장의 마지막 메시지다. 북한이 지금 종합적으로 검토를 할 텐데, 잘 알아야 할 게 있다. 도발로 협상의 레버리지가 높아진다고 절대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국과 미국의 두 민주당 정부라는, 최적의 상황에서 도발은 선택의 여지를 더 좁힌다. 또한 평화를 통한 해결 원칙을 강조해야 한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2021년 1월 열릴 예정인) 북한의 8차 당대회가 중요한 고비가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인 내년 1월20일까지는 상황 관리가 1차 급선무다. 2차는 바이든 행정부의 트럼프 한반도 정책 리뷰가 끝날 때까지로 본다.

내년 도쿄 올림픽 남북 동반 입장,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추진 등도 남·북·미 관계의 동력이 될 수 있나?

대단히 의미가 있다. 다만 도쿄 올림픽은 코로나19로 개최 여부가 유동적이다. 2032년은 좀 멀다. 또 다른 계기도 있다. 내년에 남북의 월드컵 예선전이 있다. FIFA가 ‘무조건 하라’고 했다. 스포츠·문화 교류는 일종의 우회로다. 길이 막혀 있으면 우회로로 가는 게 맞다. 다만 언제까지 우회로에 목을 매야 하냐는 문제점이 있다. 남북관계는 지금 희미하지만 길은 있다고 생각한다. 스포츠·문화 교류와 같이 다양한 우회로를 확보한다 해도, 정면으로 가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북한이랑 우리가 왜 잘 지내야 하나?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세대가 늘어난다.

젊은 세대가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게 당연하다. 내게 5·18광주민주화운동은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사변이었지만, 4·19혁명은 멀다. 책에서만 봤다. 지금 20대는 6·25전쟁이 할아버지들 얘기다. 고전적으로 말했던 통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통일을 얘기하면 할수록 남북관계는 어려워졌다. 대신 평화를 얘기하면 할수록 남북관계는 수월해졌다. 저는 통일부를 평화부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20대에게 역사 속 이야기가 되어버린 통일을 당위와 담론으로서가 아니라 평화와 공존으로 접근해야 한다. 북한과 잘 지내지 못하면 우리는 섬이 된다. 대륙으로 가는 길이 없다. 인구도 5000만명에서 더 이상 안 늘고 있다. 북한과 평화 공존의 시대가 열려야 동북3성 연해주까지 2억 시장이 열린다. 평화 경제의 문이 열려야 발돋움이 가능하다. 이런 내용으로 20대들에게 접근하면 평화와 공존에 대해 동의가 있을 거라고 본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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