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11월10일 서울 마포구 소셜디자이너 두잉에서 열린 ‘뮤지션유니온과 함께하는 6411 워크숍’.

“여러분은 개미인가요, 베짱이인가요? 아니면 어떤 통합된 존재인가요?” “베짱이로서 개미처럼 일하는 사람이요.” 순간 웃음을 터트린 일동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11월10일 ‘뮤지션유니온과 함께하는 6411 워크숍(6411 워크숍)’에 모인 독립음악가들은 저마다 고충을 토로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겪어온 어려움이었다. “남들은 음악가가 자유롭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자유가 없어요. 24시간 365일 노동합니다.” “친구들은 나이가 들면 대리·과장으로 직급이 올라가는데 뮤지션은 그렇게 사회적으로 단계를 밟아서 올라가는 게 없어요.” “늘 불안해요. 바쁘면 바빠서 불안하고, 일이 없으면 그것대로 불안하고 미래가 전혀 담보되지 않으니까.”

이번 워크숍은 노회찬재단과 소셜디자이너 두잉(Doing)이 주관하고 마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가 주최했다. 노회찬재단이 추진해온 ‘6411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명칭은 고 노회찬 전 의원의 6411 버스 연설에서 따왔다. 소외되어 눈에 잘 띄지 않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돕는 기획이다. 행사는 뮤지션유니온이 실시한 ‘2020 독립음악인 실태조사’ 결과를 사전에 공유한 뒤 일상에서 겪은 실례를 보태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소셜디자이너 두잉의 최대헌·오진아 디렉터가 질문을 던지고 독립음악인 7명이 참여하는 대담이었다.

최대헌 디렉터는 헌법 제10조(“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를 언급하며 참가자들에게 생각을 물었다. 30년째 음악 분야에 종사해왔다는 한 참가자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음악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공연하는 순간이 행복하긴 한데, 이걸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한 지 10년이 됐다. 음악이 노동이라는 인식이 없었다. ‘딴따라’라고,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최근 음악 창작 이외의 직업을 얻게 됐다는 한 참가자는 “뮤지션이라는 직업을 갖는 사람은 대부분 삶의 질이 저하된다.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더 적극적으로 쓰이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역할극 형태의 다음 순서에서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업을 그만두려고 하는 음악인’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의 상세 프로필은 참가자들이 덧붙였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균적인 독립음악인들의 실태를 도출하는 작업이었다. 진행자가 “이 사람은 몇 살일까요?”라고 묻자 곧바로 여기저기서 “음, 때려치우려면…”이라는 말이 나왔다. 고되고 보상도 적은 일이라도 40대가 넘으면 가정환경 변화나 재취업 제약 때문에 그만두기 어렵다는 것. 하지만 음악활동을 계속하는 것 역시 40대부터 더 어려워진다는 증언도 나왔다. 정부의 창작 지원 대상이 주로 청년이라서 40대는 제외되기 때문이다.

독립음악인들의 답변으로 재구성한 이 가공의 음악인은 30대 중반의 비혼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투룸 월세에 살고 있다. 혼자 살고 있지만 서류상 주소지는 부모님 집이다. 건강보험 등 혜택을 받기 위해서다. 그 결과 정부의 예술인 창작지원금은 받지 못한다. 지급 기준이 ‘가구당 소득’이라 부모의 소득을 합치면 이를 넘어서기 때문. 은행 대출은 없다.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기에 대출을 무서워하기도 하고, 신용등급이 낮아서 못 받는 형편이기도 하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음악으로 번 돈은 0원. 생활은 음악과 무관한 다른 일로 한다. 간이 좋지 않고 위염도 있다. 심한 두통도 찾아온다. 친한 친구들이 있지만 다들 사정은 비슷하다. 마음은 나눠도 경제적 지지는 되지 않는다.

참가자들은 이런 프로필을 가진 사람을 적잖이 봐왔으며 자기 자신의 모습도 있다고 말했다. 이 사람의 기분에 대해 묻자 “비슷한 또래의 잘나가는 사람과 비교하고 ‘나는 왜 이렇지?’ 자괴할 것 같다” “초라한 느낌이 들고 뭘 해도 안 될 거라고 생각할 것 같다” 따위 답이 나왔다. 몇몇 참가자는 “이대로 있으면 더 나빠질 가능성이 훨씬 높으니 뭐라도 해” “방법을 안 찾으면 지금의 내가 될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뮤지션유니온의 ‘2020 독립음악인 실태조사’는 이들의 말을 뒷받침한다. 지난 9월9일부터 27일까지 작곡가·가수· 엔지니어·PD 등 10개 분야 독립음악인을 온라인 설문조사(151명)와 오프라인 간담회, 심층 인터뷰 형태로 조사했다.

독립음악인은 투명 노동자인가

응답자 절반가량(47.3%)은 전업 음악인이 아니었다. 이들이 병행하는 일의 절반 이상(57.8%)은 예술과 관련이 없다. ‘카페 점장’ ‘웨딩사진 촬영’ ‘방문학습지 교사’ 등 다양한 답변이 나왔다. 부업에 나서는 이유는 소득이었다. ‘소득이 적어서(57.1%)’ ‘소득이 불규칙해서(21.4%)’가 주된 답변으로 나왔다. ‘고용이 불안정해서(14.3%)’도 크게 다르지 않은 답이었다. ‘겸업 음악인’들은 본업과 부업이 뒤바뀌기에 이르렀다. 응답자들은 음악활동 직업에 주 평균 14.8시간, 그 외의 직업에 평균 32.1시간을 들인다. 주 28시간 이상 음악활동을 한다는 이들은 11.4%에 불과했다.

음반 수익을 거의 기대할 수 없는 독립음악인들에게 음악활동 수입은 곧 공연 수입이다. 응답자 절반 이상(53.1%)은 지난 1년간 1회 공연에서 들어온 최저 수입이 10만원 미만이라고 답했다. 최저 수입이 50만원 이상이라고 답한 이들은 6.2%였다. 지난 1년간 공연 최고 수입이 50만원 미만이라는 답변이 48.44%로 가장 많았다. 200만원 이상은 4.7%였다. 적게 일하고 적게 버는 편을 선택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공연시간은 30분, 1시간이지만 길게는 수개월 이상 연습한다. 그러나 계약상 노동으로 인정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음악활동 계약을 체결해본 응답자 83.5%는 ‘연습 기간 관련 부문이 없었다’고 답했다. 애초 서면으로든 구두로든 ‘음악활동 계약을 체결한 적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가 절반 가까이(45.2%)다.

정부의 코로나19 관련 예술인 긴급지원 정책의 혜택도 고루 돌아가지 않았다. ‘지원 및 선정되지 않았다’고 답한 이들이 53.5%였다. 3명 중 2명은 ‘지원 자격이 안 됐다’고 했고, 그중 ‘소득수준과 소득 감소 증빙이 어려웠다’는 답이 수위권이었다. ‘건강보험료가 연체되어 있다’ ‘보통 계약서 없이 공연을 했으므로 증빙서류를 만들기가 어렵다’ ‘가난 증명을 하기 싫었다’는 등 기타 의견도 있었다.

워크숍 말미에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없다”라는 말이 나왔다. 이른바 ‘인디 신’ 안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엄청나다. 그렇다고 ‘소속사가 없는 음악인만 보호하자’고 주장하기에는 궁핍한 인디 레이블이 눈에 밟힌다. 지원 정책의 첫걸음으로 정부 차원에서 독립음악인의 실태를 조사하고 등록제를 실시하도록 요구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장기적으로는 등록 음악인들을 ‘예술강사’로 선발해 학교 현장에 투입하자는 것. 워크숍 참가자들은 정부의 온라인 정책제안 플랫폼인 ‘광화문1번가’에 이러한 내용을 올렸다. 제목은 ‘독립음악인은 투명 노동자인가’로 삼았다. 30일 이내 30명 이상 공감을 얻으면 관계 부처에서 논의하게 된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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