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코로나19 이후 소민이네 4남매는 학습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소민이(가명)네 가족은 다섯 명이다. 엄마, 고3 큰오빠, 고1 둘째 오빠, 중1 셋째 오빠, 그리고 초3 소민이. 이전부터 녹록하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이후 소민이네 가족의 삶은 더 힘겨워졌다. 홀로 4남매를 키우는 엄마는 공공근로를 통해 월 130여만원을 벌어 아이들을 먹이고 키운다. 엄마가 일 나간 동안 아이들은 온종일 집에 머물렀다. 집이 교실이 되고 운동장이 되고 급식실도 되어야 하는, 이른바 ‘뉴노멀’이 소민이네 4남매에게도 찾아왔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뉴노멀’은 특히 불평등하다. ‘노멀’이 뜻하는 정상과 평범의 범주가 어떤 아이들에게는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높은 곳에 있다. 등교가 중지된 기간 원격 수업으로 공교육이 계속 이어졌다고 하지만 소민이네 4남매에게는 이 온라인 학교의 문마저 잠겨 있었다.

일단 수업에 접속할 기기가 마땅치 않았다. 친척이 빌려준 오래된 노트북은 자꾸 전원이 꺼졌다. 지난여름 태풍이 심한 날 반지하 집에 물이 새면서 전기 콘센트에 연결돼 있던 모든 전자기기가 망가졌다. 초3 소민이가 학교에서 빌린 태블릿 PC는 태풍 피해로 이사와 전학을 결정하면서 학교에 되돌려줘야 했다. 고3, 고1, 중1 세 오빠는 스마트폰으로 수업에 참여하다 보니 학습 자세도 습관도 무너졌다.

꼭 기기 문제는 아니다. 집에서 과제물을 출력해서 풀고 사진으로 선생님께 확인받아야 할 일이 많아 걱정이었는데, 한 이웃이 고맙게도 커다란 레이저 프린터를 갖다줬다. 그런데 토너 값이 다섯 식구 며칠 치 생활비였다. “저희 집에선 고물이나 마찬가지예요.” 소민이 엄마는 일하는 사무실 직원에게 몇 장 출력을 부탁해 소민이에게 갖다준다. 숙제를 마치기 위해 소민이는 매일 저녁 엄마의 퇴근을 기다린다.

학습은 어쩌면 부차적인 문제일 수도 있겠다. 코로나19로 가장 힘들어진 부분을 물어보니 소민이와 오빠들은 “먹는 거”라고 답했다. 소민이 엄마도 “아이들 간식이나 밥 문제가 가장 걱정”이라고 말했다. “계속 배고프대요. 일부러 구충제를 사서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먹이기도 했는데요.” 이전에는 그래도 점심 한 끼는 학교에서 따뜻하고 다양한 식단의 급식을 먹고 왔다. 코로나19 이후 아이들의 매 끼니는 급식지원카드로 편의점에서 산 컵라면, 달걀, 두부, 참치 캔, 김자반, 시리얼 정도로 단조로워졌다. 누전 피해로 냉장고가 고장 난 뒤에는 신선 우유도 못 사고 멸균우유만 사먹고 있다. 가스레인지가 없어서 중고 거래로 2만원에 구입한 명절 전부치기용 전기그릴에 모든 음식을 익혀 먹었다. 엄마가 퇴근하고 돌아와 보면 아이들은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생라면만 부숴 먹고 있기 일쑤였다.

망가진 일상은 아이들의 안전과 건강도 위협했다. 어느 원격 수업 날, 셋째 동민이(가명)는 전기주전자로 컵라면에 부을 물을 끓이다가 허벅지에 화상을 입었다. 3주간 병원 치료를 다녀야 했다. 늘 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운 뒤 방에 누워 지내는 아이들은 자주 속이 더부룩했다. 원래 천식과 비염으로 가래와 기침을 달고 살던 첫째 정민이(가명)는 등교 개학이 시작된 이후 학교에 가기 위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네 번이나 받았다. 고3이라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이 정민이의 잦은 기침에 예민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또 종종 외로워했다. 낮과 밤이 바뀌고, 조그마한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보고, 밖에 나가 친구들과 교류하지 못하는 날이 길어질수록 무기력해졌다. 언택트 학습, 디지털 전환, 일상과 방역의 조화,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 시대…. 코로나19 이후 사회가 쏟아내는 이런 멋진 말들은 소민이네 4남매의 바뀐 삶을 설명해내지 못한다. 풍요롭고 안정적인 세계가 새로운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나갈수록, 취약한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의 고통은 더욱 다양하고 깊어진다. 기존 체제에서 얼기설기 위태롭게나마 짜여 있던 사회적 안전망이 새 체제에선 제구실을 못하거나 점점 구멍이 커진다. 거기에서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게 아이들의 삶이다.

소민이네의 이야기는 여러 사례 중 하나다. 희망친구 기아대책은 지난 8월10~24일 2주간 취약 가정 8~19세 아동·청소년 988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이후 경험한 일상과 학습의 변화를 묻는 설문조사를 벌였다. 기아대책과 결연을 맺거나 지역아동센터(행복한 홈스쿨)를 이용하는 아이들이라 어느 정도 사회의 손길이 닿는 곳인데도, 조사 결과 코로나19 이후 더 불안하고 위태로워진 아이들의 삶의 변화가 드러났다(아래 인포그래픽 참조).

 

심리적 압박감 해결하려는 아이들의 욕구

조사 대상 아동 41.9%가 지방자치단체의 급식카드(꿈나무카드 등)를 지원받았지만 그 가운데 22.9%는 주 3~6회 이상 편의점 도시락이나 삼각김밥 등의 간편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53.8%가 코로나19 이후 운동시간이 줄었다고 응답했고, 61.5%가 저체중이거나 과체중 혹은 비만 체질량지수를 보였다. 스마트폰 이용이 늘었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도 늘었다. 35.5%가 평일 낮 혼자 혹은 미성년 형제자매와만 집에 머물렀다. 주 5일(41.6%)을 그렇게 지내는 아이들이 가장 많았다.

생활이 망가지니 마음도 불편해졌다. 아이들은 예전보다 ‘생활의 불규칙성에 따른 자책감(52.7%)’ ‘학업과 진로가 불투명함에 따른 불안(41.6%)’ ‘친구들과 멀어질까 봐 생기는 걱정(37.3%)’ 등에 더 시달렸다. 1338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와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3~9월 아동·청소년이 강박·불안·우울 등으로 정신건강 사이버 상담을 받은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0% 가까이 증가했다. 소수연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상담연구부장은 “웬만한 적극성이 아니고는 아동·청소년들이 사이버 상담을 신청하기 쉽지 않다. 오프라인 학교나 상담센터 등 심리적 문제를 토로할 수 있는 공간이 닫히면서 그만큼 심리적 압박감을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절박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11월4일 포럼에서 배재고 명재용 군이 ‘아동과 청소년이 바라보는 시대적 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11월4일 희망친구 기아대책이 연 ‘코로나19 이후, 아동·청소년의 삶의 변화와 미래’ 온라인 포럼에서 배재고등학교 2학년 명재용 군이 아동·청소년 대표로 단상 위에 섰다. ‘포스트 코로나, 아동과 청소년이 바라보는 시대적 과제’를 주제로 명군은 교육격차, 방역 활동, 감염병 시대의 배려와 이타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발표했다. 유튜브 생중계로 포럼을 시청하던 청중과 오프라인 현장의 행사 스태프들에게서 유독 큰 박수가 나온 것은, 코로나19 이후의 변화에 대해 아동·청소년이 직접 사회에 목소리를 낼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삶의 모습이 가장 많이 바뀌고 그것이 미래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그간 사회는 아이들에게 별로 묻지 않았다.

발언 기회를 얻은 명재용 군은 말했다. “아동은 우리의 미래이고, 어른들은 그러한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 어린아이들이 보호받는 사회를 만들 책임이 있습니다. 자라나고 성장하는 아동·청소년들을 위해 코로나 시대 우리 사회가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에 대해서 모두가 더 관심을 더 갖고 지켜봐주시기를 바랍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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