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 - ‘팬데믹 시대 저널리즘의 역할’

코로나19가 전 세계 언론에 묻는다

코로나 시대 기억될 단 하나의 언론

코로나19 최고의 보도는 어떻게 나왔을까

44년차 감염병 전문기자가 말하는 팬데믹 시대 언론의 역할

 

ⓒ Ruth Fremson2007년 맥닐 기자가 인도에서 완화 의료를 취재하던 중 어린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도널드 맥닐(66)은 〈뉴욕타임스〉의 감염병 전문기자다. 44년 차 베테랑 기자가 걸어온 길은 곧 저널리즘의 역사가 되었다. 그는 과학 저널리즘이 도달할 수 있는 수준과 품격을 증명해 보인다. 코로나19 유행 속에서 1년 뒤 미국의 모습을 그리고(The Coronavirus in America:The Year Ahead, 2020년 4월18일),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에 대해 전망(A Dose of Optimism, as the Pandemic Rages On, 10월12일)하며 과학 정보 이상의 통찰을 제공했다. 전 세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감염병 시대에 꼭 읽어야 할 텍스트로 그의 기사가 꼽힌다. 뉴욕 자택에서 재택근무 중인 맥닐 기자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최근에 있었던 큰 뉴스를 먼저 얘기해보자. 미국 대통령이 곧 바뀌게 된다.

지난 토요일(11월7일), 나는 센트럴파크에서 소프트볼 경기를 하고 있었다. 멋진 가을날이었다. 공원은 사람들로 붐볐는데 갑자기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정말 행복해 보였다. 다만 여기가 뉴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여러 지역이 이와 반대로 반응했다. 바이든이 (승리를 선언하는) 연설에서 “비난으로 가득했던 시대를 지금 여기서 끝내자”라고 말해 기뻤다. 기자들을 ‘대중의 적’이라고 부르지 않는 대통령을 갖게 된 것은 안도할 만한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를 적대시했지만 당신들의 코로나19 보도는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사실상 거의 모든 기자가 팬데믹에 대해 쓰고 있다. 보통 때는 나만 감염병 유행을 취재하고 과학팀의 몇몇 동료가 암, 심장질환, 수술, 유전자 치료 등을 다루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팀 기자 중 12명이 이 바이러스에 대해서만 취재하고 있다. 다른 부서의 기자들도 그들이 담당하는 이슈와 관련이 있으면 코로나19 기사를 쓴다.

팬데믹 시대에 언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언제나 동일하다. 진실을 보도하라. 이는 팬데믹 국면에서 특히 중요했는데, 백악관이 (코로나19가) 위협적이지 않다며 거짓말을 하고 보건 당국의 수장들까지 압박했기 때문이다. 나는 다양한 나라에서 질병을 취재했다. 그 나라의 대통령이 실수하는 것, 또는 미래에 발생할 일을 오판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자국민을 죽이는 병에 대해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정권은 단 한 번도(맥닐은 이 대목에서 특별히 대문자 ‘NEVER’를 썼다) 본 적이 없다.

당신의 기사에는 과학자와 의사 등 다양한 전문가가 많이 나와 기사의 깊이를 더해준다.

1월 말 코로나19가 팬데믹이 될 거라고 직감했다(코로나 시대 기억될 단 하나의 언론 기사 참조). 그러나 과학팀 에디터(팀장급 기자)들은 내 예상대로 기사를 쓰는 것이 다소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기사를 쓰기 전에 전문가 10여 명에게 먼저 의견을 들어보라고 했다. 나는 파우치 박사(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소장)를 포함해 12명에게 연락을 했다. 모두 코로나 유행 이전부터 알던 사람들이다. 20년 넘게 감염병 취재를 하면서 믿을 만한 전문가를 여럿 알게 되었다. 당시 연락했던 전문가들은 독감이나 에볼라처럼 빠르게 퍼지는 질병과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을 가진 이들이다. 만약 기생충에 관한 취재였다면 다른 그룹의 전문가들을 접촉했을 것이다. 과학 기자들은 다양한 시각을 가진 여러 전문가를 만나야 한다. ‘1년 뒤 미국의 코로나(The Coronavirus in America:The Year Ahead)’라는 기사를 쓸 때는 30명 넘는 전문가를 취재했다. TV나 라디오 또는 기사를 통해 새로운 전문가를 계속 찾고 있다. 코로나19를 취재하면서 역사 속 감염병을 살펴보는 의학사 연구자, 경제사학자, 그리고 실내 전파 예방을 고민하는 의료 전문 건축가를 알게 되었다.

당신은 어떻게 과학 보도 분야에 전문성을 쌓았나?

1976년 〈뉴욕타임스〉에 입사한 후 나는 사건기자, 환경 담당 기자를 거친 뒤 문화부와 메트로 데스크 에디터로 일했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아프리카와 프랑스에서 특파원 기자로 활동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일하던 시절, 에이즈가 큰 문제가 됐다. 관련해서 많은 기사를 쓰게 됐다.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과학팀으로 발령이 났다. 과학팀 에디터는 내가 의료 분야를 취재하길 바랐다. 당시 과학팀에는 의사 출신 기자 2명이 미국에서 많이 생기는 질환에 대해 이미 쓰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난한 나라를 괴롭히는 감염병과 열대 질병에 대해 쓰겠다고 말했다. 그 분야를 전문으로 취재하는 기자가 한 번도 없었다는 이유로 에디터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실험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나는 잠시 의과대학을 다녔지만 전공을 바꾸었다. 과학을 대학에서 따로 공부한 적은 없다. 지금 아는 것의 대부분은 일하면서 배웠다. 원자 레벨에서 시작해 전체적인 패턴이 작용하는 방식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허락해준다면 이해할 때까지 (전문가들과)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비결이 있다면 내 ‘무쇠 엉덩이(iron butt)’를 꼽을 수 있다.

10월12일 〈뉴욕타임스〉 도널드 맥닐 기자가 쓴 기사.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에 대해 전망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는 무엇인가?

2000년에 썼던 에이즈 치료제 기사다. 당시 아프리카에서 많은 사람들이 1년에 1만5000달러인 에이즈 약값을 부담하지 못하고 죽어갔다. 그러나 서구 제약회사들은 가격을 낮추지 않았다. 그즈음에 ‘국경없는 의사회(MSF)’로부터 값싼 약을 만드는 제약사들이 인도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인도 제약사는 모두 위험한 위조품을 만드는 해적들이라고 생각했는데, MSF는 어떤 회사들은 아주 괜찮다며 내게 제약사 몇 곳을 알려줬다. 나는 인도에 가서 그 제약회사들을 취재했고 인도 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 여러 나라의 검사를 통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뉴욕에 돌아와 기사를 썼고 이는 1면에 실렸다.

두 달 뒤, 기사에 나온 인도 제약사 중 한 곳에서 판매가 보장된다면 에이즈 약을 350달러 단가(1년 치)에 만들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다시 기사를 썼고 이 역시 1면에 실렸다. 그 제안은 약값의 실체를 폭로한 것이었다. 이후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인도 생산) 약들이 안전하다고 인증했고 부시 행정부는 에이즈 구제 계획을 세웠다. 약값도 싸졌다. ‘국경없는 의사회’ ‘기술에 대한 소비자 행동(CPTech)’ 같은 비영리 단체가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인 덕분이다.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내가 쓴 두 기사도 도움이 되었다.

한국의 언론인과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언론 매체를) 돈 내고 계속 구독해주세요.” 의견은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사실(fact)을 수집하는 데는 아주 많은 돈이 든다. 내가 한국 언론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언론사가 스스로의 주인으로서 어떤 정치 세력의 영향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것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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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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