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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에 입사한 이후 제가 가장 무시무시한 아침을 맞은 날은 2016년 6월24일이었습니다. 그해 6월23일(영국 시각)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BREXIT) 여부를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예정된 날이었죠. 한국 시각으로는 6월24일(금) 아침에 결과가 나올 터였습니다. 당시엔 금요일이 마감일이었어요. 커버스토리의 주제는 당연히 브렉시트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주목해온 데다 세계사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었기에 나름대로 많은 자료와 인터뷰로 탄탄하게 준비했습니다. 마감 전날엔 브렉시트 부결을 확신하며 초고의 기승전결을 맞춘 다음에야 잠자리에 들었지요. 그러나 웬걸! 금요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땐 어제의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브렉시트가 통과되어버렸어요. 그렇다고 커버 기사를 작성하지 않겠다고 발뺌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시간에 쫓겨 전전긍긍하며 그동안 취재한 ‘구체적’ 요소들에 대한 개인적 평가를 ‘현실의 결과’에 맞춰 재해석하고 다시 구성했습니다. 과소평가해온 정치세력과 인물, 데이터들이 비로소 새로운 기운을 뿜어내더군요. 그날 자정을 넘기고 2~3시간 뒤에야 기사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이번 미국 대선 개표 결과가 나오기 시작한 11월4일(수) 오후에 강력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유력한 여론조사 기관 및 언론들의 예측과는 딴판으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선전하고 있었거든요. 그때부터 자정을 넘겨 마감일인 5일(목) 새벽까지 〈뉴욕타임스〉 개표 상황판의 ‘새로고침’을 수없이 누르며 아슬아슬한 역전의 역전극을 지켜봤습니다. 표 세다 말고 귀가했다는 개표원들, 개표기 잉크가 떨어져 개표가 늦어지고 있다는 어떤 도시의 선관위 사무원들께는 죄송합니다. 속으로 당신들께 수없이 투덜거렸거든요. 저희들에게 그만한 사정이 있긴 합니다. 기사 작성 시점과 독자의 독서 시점 사이에 며칠 간격이 있는 시사주간지의 경우에는, 해외 사건의 결과가 불투명한 것만큼 두려운 일도 없습니다. 섣불리 결과를 예단하다간 그다음 주에 돌이킬 수 없는 오보가 독자들 앞에 민낯을 드러낼 테니까요. 아무튼 목요일의 동이 튼 다음엔 ‘누가 승자일지’ 잠정 결론을 내리고 관련 기사들의 방향을 정해야 했습니다. 천관율·김은지 기자, 미국 워싱턴 정재민 편집위원 등이 고생하신 끝에 꽤 훌륭한 기사들을 게재할 수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지금도 두렵습니다. 세상엔 가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터지기도 하니까요.

끝으로, 금요일이 아니라 수~목요일에 개표를 진행하도록 대선 일정을 맞춰주신 미국 상하원 의원들, 주(州) 당국자들, 연방 대법원 판사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불안하나마 미국 대선이란 거대한 사건을 이번 호에 다룰 수 있었던 저희의 행운은 여러분 덕입니다.

기자명 이종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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