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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긴축의 시대가 가고 재정정책의 시대가 도래했다. 각국 정부는 팬데믹과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선진국들의 재정적자가 GDP의 약 14.4%가 되고 정부부채 비율도 약 20.2%포인트나 높아질 전망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과 국제기구들은 적극적인 재정확장을 지지한다.

재정정책의 부활은 거시경제정책에서 커다란 변화다. 양적완화를 포함한 통화정책 수단으로는 경제를 살리는 데 한계가 컸고, 남유럽의 경험은 재정긴축의 파괴적 영향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거시경제학계에서도 경제성장률이 국채금리보다 높은 상황에선 정부부채를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재정정책이 효과적이라는 논의가 활발하다. 하버드 대학 서머스 교수는 현재 거시경제학이 1970년대 말 인플레 억제를 위해 통화정책이 대세가 되었던 것과 같은 혁명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치솟는 정부부채는 과연 괜찮을까. 세계의 눈은 이제 2019년 정부부채 비율이 GDP의 238%나 되는 일본의 재정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재정적자가 누적되어, 일반정부부채 비율이 1990년 약 64%에서 2012년 약 229%까지 높아졌다. 1990년대에는 공공사업, 2000년대 들어서는 고령화와 관련된 사회보장 관련 비용이 재정적자를 낳았으며, 전 기간 불황으로 인한 세수 감소가 심각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1990년에서 2012년까지 국채 잔액 증가에 세수 감소가 약 35%, 사회보장비 증가가 약 32%를 차지했다. 장기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일관된 거시경제정책이 실행되지 못했으며, 임금 정체로 총수요가 둔화되어 성장과 재정이 모두 악화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아베노믹스 시기 재정의 변화다. 아베 정부 시기인 2013년 이후에는 기초재정수지의 적자가 줄어들고 정부부채 비율도 안정화되었다. 이는 무엇보다 명목경제성장률이 높아져 1990년 이후 계속 줄어들던 세금 수입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또한 재정지출이 크게 늘지는 않았고 소비세 인상으로 세수가 확충되었다. 한편 일본은행의 2014년 양적완화와 2016년 수익률곡선 통제정책으로 국채금리는 크게 하락했다. 현재 10년물 장기국채금리는 제로 수준이며, 표면금리에 기초한 국채의 가중평균금리도 2019년 0.87%로 낮아졌다. 일본은행은 국채 매입을 계속하여 2020년 6월 국채의 약 48%를 보유하며 재정정책을 떠받치고 있다.

과거 일본의 명목경제성장률은 장기불황과 디플레로 크게 하락하여 1990년대 초반에서 2012년까지 장기국채 금리보다 낮았다. 그러나 아베노믹스와 함께 2013년 이후 마침내 역전되었다. 성장률이 높으면 재정수지에 도움이 되지만 정부부채 비율을 안정화시키는 효과도 크다. 정부부채 비율이 250%인 경우 경제성장률이 국채금리보다 1%포인트 더 높게 유지된다면 기초재정수지가 2.5% 적자라 해도 정부부채 비율은 더 높아지지 않는다.

성장률을 국채금리보다 높게 유지해야

물론 고령화와 함께 미래에는 사회보장비용이 더 늘어날 테니 정부의 재정건전화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출산율을 높이는 것과 같은 정부지출은 장기적으로 성장을 촉진하여 재정에도 도움이 된다. 따라서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블랑샤 교수는 일본 정부가 기초재정수지 균형을 이른 시기에 달성할 필요가 없으며, 생산적인 공공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제언한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에서도 GDP의 10%에 달하는 재정확장을 실시했다. 이는 깊은 불황이 경제에 상처를 남겨 장기적인 성장의 추세를 주저앉게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다.

일본의 경험은 확장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협조에 기초하여 성장률을 국채금리보다 높게 유지하는 것이 재정에 매우 중요함을 시사한다. 과거 일본을 보고 정부부채의 증가를 우려하는 이들이 많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역시 최근 일본의 변화다. 경제가 침체되고 인플레와 금리가 낮은 현실에서는 확장적인 거시경제정책과 적극적인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자명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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