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나이 듦, 질병, 돌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도 없다. ‘존엄한 죽음’은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을 발견하고 해석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시사IN〉은 의사·의료인류학자·환자·보호자·간병인 등 죽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의식과 목소리에서 출발해 ‘죽음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현장까지 두루 살펴봤다. 기사는 총 5회 연재된다.

① 당신은 어디에서 죽고 싶습니까
② ‘아픈 몸’을 거부하는 사회에게
  - ‘아픈 몸’도 아픈 대로의 삶이 있음을

③ 의학은 돌봄을 가르치지 않았다
  - “환자 집에 가면 질병이 작아 보여요”
④ 존엄한 죽음은 존엄한 돌봄으로부터
⑤ 죽음의 미래를 찾아서

 

서울시 강북구 번동에 위치한 ‘건강의집’은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는 곳이다. 국내 최초의 방문 진료 전문 1차 의료기관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공간을 ‘병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실제 의사가 진료를 보는 장소는 환자의 집이기 때문이다. 환자가 병원에서 진료 순번을 기다리는 모습은 익숙하지만, 의사가 환자 집을 찾아가 기다리는 장면은 낯설다. 의사가 큰 가방을 둘러메고 초인종을 누르는 모습에 ‘진짜 의사 맞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있다. 건강의집의원 두 의사 홍종원(대표원장)·김창오씨의 이야기다.

홍종원씨는 의대를 다니며 했던 방문 진료 봉사 경험을 평범한 커리어에서 ‘어긋나기 시작한’ 첫 기억으로 꼽는다. “놀랐죠. ‘여기는 병원이 아닌데 아픈 사람이 있네?’ 의사가 뭘 하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환자가 병원에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그는 요즘도 자주 그때를 떠올린다. 지금 보는 환자도 그때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치료를 해서 눈에 띄게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하는 분들이 아니에요. 노쇠나 장애는 되돌릴 수 없는 영구적인 손상이니까. 그 앞에서 의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예요. 하나는 ‘이런 환자는 안 만나야지’겠죠. 의사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면 무력하잖아요. 다른 하나는 ‘그래도 뭐라도 해봐야지.’ 이분들은 이 상태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으니까요.”

의대를 졸업한 후 그는 건강의집을 차리기 5~6년 전 이 지역에서 지역활동가로 먼저 일했다. 마을 축제를 열고, 청년주택을 지었다. 그러던 중 2018년 5월, 몸이 불편해 외출이 어려운 환자를 위해 의사가 집으로 찾아가는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가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김창오씨와 ‘건강의집’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김창오씨가 의대를 졸업한 2000년은 하필 의약분업 반대 투쟁이 한창인 때였다. “얼마 전 전공의 파업보다 훨씬 강경했어요.” 동료 의사 대부분이 병원 밖으로 뛰쳐나갈 때 그는 홀로 병원에 남는 걸 택했다. 그 일로 병원 내 ‘왕따’가 됐다.

김창오씨는 병원을 그만두고 보건소에서 방문 진료를 나가며 사회복지학 석박사 논문을 준비했다. “방문 진료를 할 때 병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안 해요. 질병은 삶의 아주 작은 부분이니까요. 병원 진료실에 있으면 모든 게 차단돼 있으니 질병이 크게 보이는 거고, 환자 집에 가면 다른 장면들이 보이니까 질병이 작아 보이는 거죠. 대부분 환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더 큰 문제는 빈곤이에요.”

그에게 치료란 질병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승패’의 문제가 아니다.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환자 곁에 있어주는 ‘존재’의 여부다. “의사 면허는 내가 감히 그들의 곁에 다가갈 수 있는 면허증이죠. 여기에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주는 약이나 시술을 할 수 있는 것일 뿐이고요.”

장애인 주치의 사업이 시작된 뒤 홍씨와 김씨는 매주 만나 아이디어를 나눴다. 당시만 해도 방문 진료는 봉사활동이거나 보건소 사업이었다. ‘제도가 생겨도 선뜻 방문 진료를 할 의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과 ‘병원 진료라면 몰라도 이 일이라면 우리가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2019년 3월13일, 건강의집이 문을 열었다. 그해 12월 ‘왕진 수가 시범사업’이 시작된 이후로는 장애인 외에도 좀 더 다양한 환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전에는 왕진을 해도 일반 진료비와 같은 금액만 받을 수 있었지만, 시범사업이 시작된 뒤로는 왕진으로도 지속 가능한 수준의 진료비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수가가 생겼다고 해서 모든 의사가 건강의집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이곳은 일종의 ‘개척 병원’인 셈이다. 건강의집은 의학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돌봄의 가치를 왕진을 통해 배웠다. 이 ‘예외’가 현대의학이 놓치고 있는 돌봄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시사IN〉은 환자 및 보호자의 동의를 미리 얻어 건강의집 방문 진료 현장에 동행했다.

오전 9시55분. 환자 조성대씨(93) 집

운전석에 앉은 김창오씨가 휴대전화로 길 안내 지도를 켰다. 화면에 점점이 표시된 곳이 빼곡했다. 환자가 사는 집 위치를 빨리 찾을 수 있도록 입력해둔 기록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홍종원씨는 차트를 넘겨보며 환자 이력을 파악했다.

의사 두 명이 환자 한 명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지 않으냐는 질문에 김씨가 웃으며 말했다. “효율을 따지면 애초에 방문 진료를 하지 말았어야죠.” 의사 둘은 물론이고 간호사까지 셋이 한 집을 방문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함께 다니면 서로 보지 못한 부분,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잡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 전담하는 환자가 정해져 있지만, 상대가 맡고 있는 환자까지 대부분 알고 지낸다.

ⓒ시사IN 신선영김창오(왼쪽), 홍종원 의사가 치매 환자 조성대씨와 그를 돌보는 딸 조원숙씨의 집을 방문했다.

방문 진료의 특성상 거리가 너무 먼 곳은 가기 어렵다. 환자 대부분은 건강의집이 위치한 서울 강북구 혹은 인근 노원구·성북구·도봉구 주민이다. 이날 첫 방문지는 사무실에서 자동차로 3분 거리였다. 주차 자리를 찾던 김창오씨가 짧게 탄식했다. “항상 저 자리가 비어 있었는데….” 방문 진료 의사는 환자 집 주변의 주차 공간까지 골목골목 꿰고 있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어디에서 무슨 공사를 하는지, 어떤 시설이 들어오고 나가는지 확인할 수 있다. 환자에게 ‘공사 중이던데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시라’ ‘이런 시설이 있던데 한번 이용해보시라’고 권해줄 수도 있다.

다세대주택에 사는 조성대씨는 7~8년 전부터 치매와 파킨슨증후군을 앓고 있다. 1년 반 전 침대에서 내려오다 다리가 부러진 이후로는 거동을 할 수 없어 종일 누워 지낸다. 그의 딸 조원숙씨(57)가 24시간 내내 곁에서 간병을 한다. 그는 요즘 아버지의 소화력이 떨어졌다며 변의 묽기부터 식단의 변화까지 의료진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이틀 전부터 물기 많은 변을 보셔서 소고기 섭취를 줄이고 달걀노른자를 부드럽게 해서 드렸어요. 아버지가 ‘오늘은 엉터리야’ 하시더라고요. 씹을 게 없다는 거지.”

환자 집에 들어간 방문 의사들은 진료를 서두르지 않는다. 환자 혹은 환자를 돌보는 사람의 입에서 ‘혈압’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그제야 혈압계를 꺼내고, ‘숨이 가쁘다’는 말이 나오면 그때 청진기를 꺼내는 식이다. 체온과 혈압, 당뇨까지 체크한 뒤 모든 게 정상이라는 걸 확인하고서도 두 의사는 짐을 챙기지 않고 딸에게 아버지의 일상을 물었다.

거동이 불가능한 아버지의 일상은 곧 그를 돌보는 딸의 일상이기도 하다. 방문 진료 의사에게는 환자의 건강 자체도 중요하지만,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의 건강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처음 방문 진료를 나가는 집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도 보호자가 있는지 여부와 전반적인 돌봄 환경이다. 조원숙씨처럼 하루 24시간 내내 아버지를 돌보느라 집 밖을 나갈 수 없는 보호자에게는 이런 방문 의료서비스가 절실하다. “병원 한번 가려면 시간 빼야지, 기저귀며 담요며 몽땅 챙겨 가야지, 사설 119 불러야지, 좁은 간이침대에서 몇 시간 동안 기다려야지, 기다리다 기저귀에 변이라도 보시면 애도 아닌데 어디 갈아줄 곳도 없지…. 정말 내가 죽겠더라고요.” 사실 그의 아버지는 병원에 자주 갈 필요가 없는 환자다. 약물이나 수술을 통해 다시 건강해질 확률이 낮은, 고령의 만성질환자이기 때문이다.

조원숙씨가 돌보는 사람은 아버지뿐만이 아니다. 아버지를 돌보느라 떨어져 사는 남편과 시어머니에게도 매번 반찬을 장만해 보내주고 있다. “아버지가 주무실 때 얼른 장봐야지, 요리해야지, 반찬 만들어야지, 두 시간마다 자세 바꿔드려야지, 기저귀 갈아드려야지 그때마다 씻겨드려야지…. 밤에도 두 시간마다 알람 맞춰놓고 일어나서 자세를 바꿔드려야 해요. 안 그러면 욕창이 생기거든.” 김창오씨는 만성적인 질병과 고통, 돌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이 결코 수험생이나 대기업 회사원의 노력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24시간 간병이라는 압박 속에서 조원숙씨가 아버지를 집에서 모실 수 있는 건 그나마 환자의 혈압이나 맥박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를 돌보는 일이 ‘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이 말은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입원시켰을 때 자신이 느낄 죄책감에 비해 ‘할 만하다’는 의미다. “내가 집에서 온종일 이렇게 신경을 써도 밤에 알람 소리 한번 놓치면 기저귀는 다 젖고 욕창이 나잖아요.” 그의 바람은 아버지가 앞으로도 ‘순하게’ 집에서 투병하다 편하게 임종을 맞는 것이다.

오전 11시5분. 환자 김창덕씨(73) 집

현재 건강의집에서 주치의 관계를 맺고 찾아가는 환자는 약 150명이다. 이들이 건강의집의원을 찾게 된 경로는 각자 다르다. 장애인복지관이나 사회복지관, 보건소, 주민센터 등 기관에서 주기적인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의뢰한 경우도 있고, 간병사나 요양보호사, 동네 이웃으로부터 ‘이런 의사가 있다더라’는 소문을 듣고 개인이 직접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도 있다.

ⓒ시사IN 신선영김창오 의사가 당뇨병 환자인 독거노인 김창덕씨의 집을 방문해 진료하고 있다.

김창덕씨는 가족 없이 홀로 지낸 지 오래된 전형적인 독거노인이다. 보건소에서 건강의집에 김씨의 정기적인 진료를 의뢰해 방문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불규칙한 식사와 잦은 음주로 한때 혈당 수치가 500~600을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병원에도 입원했지만 ‘답답해서’ 그냥 나와버렸다. 홍종원씨는 이런 환자가 여럿 있다고 했다. “수술을 받으러 병원에 입원하면 오히려 저한테 더 자주 전화하는 환자분도 있어요. 담당 의사한테는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저한테 다 쏟아놓으시는 거죠. 그때마다 ‘선생님이 어련히 잘 해주셨을 거예요’라고 다독이느라 진땀을 빼요.”

방문 진료를 받은 뒤에도 김창덕씨의 건강은 쉽게 좋아지지 않았다. “알고 보니 처방전을 받으시고도 약국에서 약을 못 타오고 있었어요. ‘우리 약국에 그런 약 없다’고 하면 약을 주문해달라고 말해야 하는데 이분이 워낙 무뚝뚝하시거든요. 매번 그 말을 못하시고 그냥 나와버린 거죠.” 결국 의사인 김씨가 환자 집 근처 약국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어디서 약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서 알려주었다. 물론 약을 받고도 제때 먹는 걸 깜빡하는 일도 잦았다. 환자의 동네에 어떤 약국이 있는지, 환자 침대 머리맡에 약 봉투가 얼마큼 쌓여 있는지는 직접 두 발로 가서,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알 수 있다. 방문 진료 의사에게는 질병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환자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일과를 보내며 살아가는지 총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독거노인에게 가장 고역은 ‘제때 챙겨 먹는 일’이다. 약은 물론이고 삼시세끼를 먹는 일도 쉽지 않다. 독거노인을 진료할 때 김창오씨가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도 식사다. “식사 잘 하시죠?” “아휴, 끼니 챙기기가 젤 힘들어.” “요새는 하루에 달걀 몇 개 드세요?” “한 세 개. 달걀 먹고 싶으면 커피에다 타서 먹기도 하고.” “어르신표 영양 커피네. 잘하셨어요. 그렇게라도 꼭 드셔야 해요. 두부는 그냥 숟가락으로 떠서 드셔도 되니까 달걀이 질리면 두부도 드셔보시고요.” 휴대용 혈당검사기로 당 수치를 확인하던 홍종원씨가 덧붙였다. “지난번 보건소에서 왔을 때 영양캔 좀 더 달라고 하시지.” “얘기 안 했어.” “우리가 한번 이야기해볼게요.”

진료를 마치고 나설 무렵 김창덕씨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크게 울렸다. 통화 음량을 최대치로 설정해놓은 까닭에 상대방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지난번 무료로 보내준 관절약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내용의 건강상품 홍보 전화였다. 김창오씨가 손을 내저으며 “아버님, 돈 나가는 건 하지 마세요. 처음에는 다 무료로 준다고 해놓고는 나중에 돈 들어가요”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는 독거노인 환자의 집집마다 볼 수 있는 공통점이 비싸게 주고 산 건강보조식품·기구라고 말했다. 외롭고 가난한 그들이 그나마 지금 당장 살 수 있는 건 따뜻한 돌봄이 아닌 조악한 건강보조용품이다.

오전 11시50분. 환자 한영학씨(83) 집

이날 오전 마지막 방문 진료 환자의 거주지는 국내 최초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였다. 건강의집의원 사무실이 있는 강북구는 2018년 기준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장애인 인구 비율(5.4%)이 가장 높은 지역이고 그 옆 노원구는 임대아파트가 가장 많다. 홍종원씨는 건강의집 위치를 결정할 때 이러한 사각지대 요소를 중요하게 고려했다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김창오 의사가 남편을 떠나보낸 한영학씨가 혼자 사는 집을 방문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

약 40㎡(12평) 남짓한 집 거실로 의료진과 취재진이 들어서니 꽉 찼다. 두 의사가 바닥에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한영학씨가 말을 꺼냈다. “우리 아들 또 행방불명됐어.” 일주일 전 한씨의 남편이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치매를 앓고 있었고 거동을 하지 못해 누워 지낸 지 한 달째였다. 원래 한씨 남편이 건강의집의원에서 진료를 받던 환자였다. 김창오씨는 주치의로서 그의 임종을 지켰다. 15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아들이 장례식장에 찾아왔지만 그뿐이었다. 장례가 끝난 뒤에는 다시 연락이 두절됐다. 두 딸은 외국으로 떠난 지 오래다. 이제 혼자가 된 한씨의 집을 찾아오는 유일한 사람은 건강의집 의료진뿐이다.

63년 동안 함께 지낸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한영학씨가 가장 큰 허전함을 느끼는 순간은 혼자 밥을 먹을 때다. 그는 물을 마실 때에도 남편이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이 컵에 물을 떠 남편 사진 앞에 빨대를 꽂아둔다.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어. 정신이 멀쩡할 때는 우유도 나보고 먼저 마시랬거든. 내가 ‘우유 하나 더 사서 먹을까요’ 하면 장례금 없애면 안 된다고, 아껴야 된다고 해서 우유 하나 가지고 둘이 나눠 먹었는데.” 혼자 잠드는 것도 영 견디지 못할 일이다. “영감이 원래 여기 누워 있었거든. 자꾸 보고 만지고 그랬는데. 지금은 없으니까 약(수면제)을 안 먹으면 미치겠더라고.” 김창오씨는 요즘 한씨 집을 이틀에 한 번꼴로 방문한다. 수면제 부작용은 없는지, 도움이 필요한 일은 없는지 살피고 있다.

물론 부부 사이가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남편은 젊었을 때 ‘난폭’했다. 나이 들고 아픈 뒤에야 아내 한씨에게 잘해주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다들 남편을 요양원에 보내라고 말했지만 ‘불쌍해서’ 차마 보낼 수 없었다. “친정엄마가 아버지 아프실 때 택시에도 안 태우고 구루마(수레)에 이불 깔아 모시고 병원 다녔어요.” 한영학씨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돌봄’의 이미지는 헌신적이었다. 하지만 친정어머니도 그 자신은 편안한 돌봄을 제공받지 못한 채 말년에 자식들의 집을 떠돌아야 했다. 한영학씨 역시 여든이 넘은 나이에 오른팔에 ‘알통’이 생길 정도로 헌신적으로 남편을 돌봤지만 정작 그 자신을 돌봐줄 사람은 없는 상황이다. 자녀와도 연락이 닿지 않는 그가 거동이 불편해지면 갈 수 있는 곳은 요양시설뿐이다.

늙고 쇠약해졌을 때 결국 남은 건 병원에서 홀로 맞는 죽음뿐일까. 홍종원씨는 ‘건강’이라는 개념을 돌봄의 관점에서 재정의한다.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차근차근 잘 맺어놓으면 그들이 나를 도와주고 돌봐줄 수 있어요. 비록 그게 가족이 아닐지라도. 거꾸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도 있고요. 결국 우리는 건강한 관계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죠. 곁에서 돌보는 사람들이 우리를 살아가게 할 거예요. 그 삶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고 힘겨울 수도 있고 희망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실제로 살아갈 수 있어야 건강한 거죠. 그렇다면 거기서 의사의 역할이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볼 수 있고요.” 김창오씨가 말을 이었다. “아플 때 제일 먼저 생각나서 전화하는 사람, 그 사람이 좋은 의사가 아닐까요. 그런 의사로 살고 싶어요.”

ⓒ시사IN 신선영2019년 문을 연 방문 진료 전문 의원 ‘건강의집의원’의 김창오(왼쪽), 홍종원 의사.

 

기자명 글 나경희 기자·사진 신선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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