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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하 이건희)을 애도한다. 사자(死者)에 대해선 욕설과 찬양보다 애도하는 쪽이 산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사라진 대상에 상실감을 느끼다가 아련하게 잊으며 다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그 과정.

이건희는 ‘훌륭한 기업가’였다. 우리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란 것이 긍정적 가치로 통하는 사회에 산다. 이건희는 불리한 외부 환경에 굴하지 않고 기꺼이 리스크를 부담하며 능동적으로 현실에 도전하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 즉 기업가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 충동 없었다면, 이건희가 1990년대 초중반에 간 크게도 삼성의 경쟁 상대로 미국과 일본, 유럽의 거대 기업들을 겨냥하진 못했을 것이다. 2차 전지, LCD, 낸드 플래시 메모리 같은, ‘삼성의 발전 단계에 맞지 않는다’고 평가되던 당시의 글로벌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려 덤벼들지 못했을 터이다. 선진국 완성품 기업의 부품 하청업체로 출발해서 ‘글로벌 생산 피라미드’의 최정상(완성품 생산)으로 등반하는 험난한 행로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희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그 평가자들은 당시 삼성이 고리스크-고수익의 최첨단 기술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했는지에 대해선 입을 다문다. 그 기술은 20~30년 뒤에야 엄청난 수익으로 돌아온다. 이런 부문을 선별해서 투자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건희의 역량이다.

문제는 ‘이건희의 과감한 장기투자’와 ‘삼성그룹이 받아온 격렬한 비난’의 원인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재벌 시스템. 여기서는 교묘하게 엮인 계열사 간의 소유 구조로 인해 창업주 이외의 다른 주주들은 경영권에 도전장을 내밀기 힘들다. 그 덕분에 이건희는 그룹 내의 자금을 주주들 눈치를 보지 않고 위험한 장기투자에 쏟아부을 수 있었다. 이 구조를 유지하고 승계하려는 이건희 일가의 노력이 한국 사회에 드리운 그림자는 짙고 넓다. 불법·탈법적이거나 시민들에겐 낯설기 짝이 없는 금융기법을 통해 자산을 ‘뻥튀기’했고, 정계와 언론은 물론 검찰과 사법기관까지 ‘매수의 네트워크’로 끌어들여 타락시켰다. 이건희 일가와 삼성은 한국 사회의 신뢰지수를 심각하게 무너뜨렸다. ‘원 〈시사저널〉’ 사측의 삼성 관련 기사 삭제에 저항한 기자들이 〈시사IN〉을 창간한 것도 이런 상황의 일부다.

이건희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접어드는 도정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는 그를 억지로라도 애도해야 한다. 이건희를 욕하거나 찬양하며 끌어안고 있기보다 역사 속의 한 인물로 떠나보내야 한다. 한국 사회와 삼성, 나아가 대기업 간의 새로운 관계를 긍정적으로 재설정하고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다. 애도는 산 자를 위한, 산 자의 ‘능력’이다.

기자명 이종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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