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4월2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대표가 유치장에서 나오고 있다.

서울 청담동 ㅍ 룸살롱은 예약제로 운영된다.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지하 1층에 있는 이곳은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다. 2019년 8월21일 공무원들이 룸살롱을 찾았다. 금융감독원 자산운용검사국 검사2팀의 선임검사역 ㄱ씨와 금감원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실로 파견을 간 행정관 김 아무개씨였다. 술값만 650만원이 나왔지만, 계산은 둘의 몫이 아니었다. 다른 룸에 있던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대표가 냈다.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금감원 선임검사역 ㄱ씨는 청와대 행정관 김씨에게 문건 하나를 보여줬다. ‘라임자산운용의 불건전 운용행위 등 검사계획 보고’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다. 라임에 대한 금감원의 검사 계획 및 주요 점검 사항 등 기밀 사항이 적혀 있는 문건이다. 2019년 8월 말은, 한 달여 전에 기사화된 ‘사모펀드 1위 라임자산운용이 돌려막기를 한다’는 의혹에 대해 금감원이 조사에 착수한 시기였다.

2012년 투자자문사로 시작한 라임은 2015년 사모펀드로 변신했다. 사모펀드 규제완화에 따른 행보였다.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총괄부사장이 주도한 펀드 운용이 수익률 고공행진을 이끌었다. 지난해 라임은 6조원을 굴리는 국내 1위 사모펀드로 등극하기도 했다. 강남 부자들에겐 ‘알짜배기’ 상품으로 불렸다. 하지만 라임은 2019년 10월 갑작스레 환매 중단을 선언했다. 피해 규모만 1조6700억원이었다. 금융계 총아에서 사기꾼으로 추락했다.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대표는 2019년 이종필 라임 부사장과 인연을 맺으며 ‘라임 사태’에 발을 담갔다고 주장한다. 스타모빌리티가 400억원가량의 라임 투자를 받았다. 김봉현 전 대표는 룸살롱에서 보고서를 본 다음 날인 2019년 8월22일 또 다른 보안문서를 입수했다. 금감원의 내부 문건인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의 차입현황 및 향후 대응방안’이었다. 전날 룸살롱에서 본 김 전 행정관이 주었다.

이 같은 뇌물 혐의 등으로 김 전 행정관은 지난 9월18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시사IN〉이 입수한 그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김봉현 전 대표는 고향 친구인 김 전 행정관에게 3600만원이 넘는 돈을 건넸다. 현재 김봉현 전 대표는 자신이 라임 사태에 ‘직접’ 개입한 혐의는 김 전 행정관과 연루된 이 사건과 “인간적인 연민으로” 이종필 전 부사장의 도피를 도운 정도라고 주장한다. 자신을 ‘라임의 전주(錢主)·몸통·배후’라고 부르는 것이 억울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현재 김 전 대표는 수원여객의 회삿돈 241억원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김 전 행정관 외에도 라임 사태로 이미 1심에서 세 명이 유죄를 받았다. 금융사기 관련이다. 임 아무개 신한금융투자 PBS본부장은 라임 펀드 부실을 고객들에게 알리지 않고 판매한 혐의(사기)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김 아무개 라임 본부장은 고객들의 투자금을 당초 약속과 다른 용도로 사용하게 도운 혐의(배임·수재)로 징역 5년에 처해졌다. 심 아무개 신한금융투자 PBS본부 팀장은, 라임 돈이 들어간 코스닥 상장사에 신한금융 자금을 투자하고 해당 기업으로부터 대가를 받은 혐의(수재)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시사IN 윤무영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대표가 자신의 변호인을 통해 공개한 입장문.

폭로의 신빙성에 따라 한 명은 크게 다쳐

라임 사태가 정치권을 덮친 와중에, 지난 10월 중순 공개된 김봉현 전 대표의 편지는 순식간에 라임 사건의 성격을 또 한번 바꿔버렸다. 김봉현 전 대표는 “라임을 살리기 위해서 검찰 로비를 했다”라고 주장했다. 검사·수사관에게 룸살롱 접대를 하고 떡값 등을 주었다는 것이다. 여권 비리에서 검찰 비리로 전선이 확대되었다.

A4 용지 다섯 장짜리 첫 번째 편지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이하 ‘※’가 달린 괄호는 ‘편집자 주’. 나머지 괄호는 김봉현 전 대표의 원문을 그대로 옮김). “2019년 7월경 (※김 전 대표가 특수부 검사 출신인) A 변호사와 검사 3명 술접대(청담동 룸살롱) 1000만원 상당, 검사 1명 얼마 후 라임 수사팀 합류” “2020.4.23 본인(※김봉현) 체포 당일 (※A 변호사가) 경찰서 유치장 방문(조사받을 때 A 변호사 얘기나 전에 봤던 검사들 얘기 꺼내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수사팀과 의논 후 도울 방법 찾겠다고 함)” “(※A 변호사가) 본인(※김봉현) 면담 시 남부지검 라임 사건 책임자와 얘기 끝났다고 여당 정치인들과 강기정 수석 잡아주면 윤석열 보고 후 조사 끝나고 보석으로 재판받게 해주겠다 함.”

김봉현 전 대표가 10월21일 쓴 A4 용지 14장짜리 두 번째 글은 좀 더 구체적이다. “최초 라임 이종필 부사장 도피 당시부터 (※김봉현 전 대표가) 검찰 관계자들의 도피 방법 등으로 권유와 조력을 받음(당시 검찰 수사팀의 추적 방법 등. 핸드폰 사용 방법 등). 일도이부삼빽이라는 단어를 쓰며 ‘일단 도망가고, 이번 부인하고, 삼번 부인(※세 번째는 빽을 쓰라는 은어의 오기로 보임)’하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검찰 관계자 용어를 써가면서 도주를 권유. 라임 수사 관련 사항들이 검찰 관계자를 통하여서 생생하게 내(※김봉현 전 대표) 앞에서 전화기로 생중계됨.”

10월19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검사 및 수사관 비리 의혹 1건과 윤석열 검찰총장 관련 사건 4건에 대해서였다. 각각을 맡은 서울남부지검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대검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사하게 했다. 사흘 후인 10월22일 국감에 출석한 윤석열 검찰총장은 “위법하고 부당하다. 대부분의 검사와 법조인들은 검찰청법에 어긋나는 위법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맞섰다.

현재 A 변호사와 접대 대상으로 특정된 현역 검사들은 모두 김 전 대표의 주장 일체를 부인한다. A 변호사는 〈시사IN〉과 통화에서 “조금만 살펴보면 탄로 날 거짓말을 김봉현씨가 한다. 김씨가 접대했다고 주장하는 날짜를 빨리 특정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바로 소명할 수 있다. 현직 검사라는 신분 때문에 직접 말 못하는 후배들을 위해서 내가 적극 나서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10월 말 현재 라임 사태의 전선은 급속하게 ‘추미애 대 윤석열’로까지 이동했다. 김봉현 폭로의 신빙성 여부에 따라, 둘 중 한 명은 크게 다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아직까지 ‘라임 사태’는 끝을 알 수 없는 형국이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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