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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9992명. 올해 수급 자격을 갖고 있음에도 기초연금 신청을 포기한 노인의 수다. 기초연금이 없어도 살 만큼 형편이 넉넉하신 분들이 아니다. 거꾸로 이분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기초생활수급 노인이다.

올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체 기초생활수급 노인 49만명 중 포기자가 12.3%에 달했다. 2017년과 비교해 포기자는 4.3만명에서 6만명으로 늘었고 포기자도 9.8%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다. 단 1만원도 아쉬운 사정일 텐데 왜 빈곤 노인들은 매월 30만원을 스스로 포기할까.

‘줬다 빼앗는 기초연금’ 때문이다. 기초연금 30만원을 받으면 다음 달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이 삭감된다. 생계급여 산정액이 30만원이 넘는 노인은 굳이 기초연금을 신청할 이유가 없다. 기초연금을 받으나 안 받으나 최종 수급액은 동일하니 말이다.

이는 기초생활수급자의 소득인정액 산정 작업에서 기초연금을 포함하기에 발생하는 일이다. 올해 생계급여 기준액이 중위소득 30%, 1인 가구의 경우 53만원이다. 어떤 사람의 소득과 재산을 합산해서 소득인정액이 20만원이면 정부는 53만원에서 20만원을 뺀 금액, 즉 53만원에서 부족한 금액 33만원을 생계급여로 보충해준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보충성 원리에 따른다고 주창되는 이유다. 만약 이분이 기초연금을 받게 되면 생계급여는 3만원으로 줄어든다. 보건복지부는 기초연금 수령으로 소득인정액이 높아졌으니 생계급여로 보충해주는 금액을 삭감했다고 설명한다.

이 원리는 경직적으로 적용하면 노인 간 형평성 문제를 낳는다. 우리나라에서 기초연금은 기초생활보장제도 이후 시행되었고 대통령선거를 거칠 때마다 10만원씩 오르고 있다. 이에 대부분의 노인은 기초연금이 인상될 때마다 가처분소득이 는다. 반면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은 생계급여에서 기초연금 인상분이 추가로 삭감되므로 결국 예전 가처분소득 그대로다. 박근혜 정부에서 기초연금이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오를 때도,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30만원으로 오를 때도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이 감수하고 있는 일이다. 가장 가난한 노인들이 기초연금 혜택에서 배제되는 역설이다.

의료급여 탈락 우려도 문제다. 현재 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 40% 이하면 의료급여 수급권을 얻는다. 이 계산에서도 기초연금이 포함되므로 기초연금 30만원을 받으면 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 40%를 넘어 아예 기초연금을 포기하는 분들이 있다. 병원 이용이 잦은 어르신은 기초연금 30만원과 병원비 본인부담액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후자가 더 크다고 판단되면 기초연금을 신청하지 않는다. 실제 복지 현장에선 사회복지사들이 이러한 방향으로 권고하기도 한다.

정부 의지만 있으면 바로 시행 가능하다

‘줬다 빼앗는 기초연금’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14년 기초연금이 20만원으로 오를 때였다. 청와대, 국회에 달려가 하소연하고 도끼 상소, 거리행진 등 수많은 항의행동을 벌였으나 박근혜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응답했다. 2016년 총선공약집에 “최빈곤층 어르신 40만명에게 실질적인 기초연금 혜택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명시한 것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이 이제는 기초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겠다고 기대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임기 4년째인 오늘까지 아무런 조치가 없다. 게다가 앞으로 어떠한 개선책을 낼 계획도 없다. 공약마저 ‘줬다 빼앗는’ 꼴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소득인정액 산정에서 기초연금을 예외로 두면 된다. 시행령 개정 사안이니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바로 가능한 일이다. 이미 장애인연금, 아동보육료, 국가유공자수당 등은 소득인정액 계산에 포함하지 않고 별도로 지급하고 있다. 근래 당사자 어르신들은 30만원 모두를 지급할 수 없다면 먼저 일부라도 보장해달라고 제안하고 있다. 실제 2018년과 2019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도 10만원이라도 별도 지급하는 방안을 합의했으나 최종 본회의까지 올라가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11월이면 내년 예산안 심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새로 구성된 제21대 국회, 50만 빈곤 노인들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기자명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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