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경북대 화학실험실 폭발 사고 피해자의 아버지가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10월22일 국회에 출석했다.

2019년 12월27일 오후 대구 경북대학교의 화학실험실이 연말 청소에 들어갔다. 오래된 시료를 폐기하는 작업이었다. 순도가 높은 ‘시약’은 전산으로 목록이 보관되는 데 비해 ‘시료’는 실험에 따라 시약을 혼합해 사용한다. 그래서 당시 문제의 시료에 정확히 어떤 성분의 시약이 포함되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시료를 폐기하는 일은 학생들이 주기적으로 해오던 일상적인 업무였다. 이날도 학부생 한 명과 대학원생 4명이 각자 역할을 나눠 작업에 들어갔다.

대학원생 임민정씨(27·가명)도 실험 가운을 입고 고글과 장갑을 착용했다. 당시 가을 학기가 대학원에서 보내는 첫 학기였다. 경북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바로 직장에 취업할지 대학원에 진학할지 고심하다 어렵게 내린 선택이었다. 화학반응을 촉진하는 ‘나노 촉매’ 분야를 좀 더 연구해보고 싶었다. 대학원에서는 하고 싶었던 실험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아버지 임덕기씨는 딸의 대학원 생활을 이렇게 기억했다. “반짝반짝하다고 해야 하나, 애 얼굴에 생기가 돌더라고요.”

자신이 담당한 폐기 작업을 먼저 끝마친 민정씨는 가운과 고글을 벗었다. 자기 자리로 돌아간 그의 등 뒤로 “어어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학생이 담당한 폐기 약품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당황한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민정씨도 몸을 틀어 연기가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순간 그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 자리에 있던 5명 중 4명이 다쳤다. 2명은 중상을 입었다. 폭발 지점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학생은 보호장비를 입고 있었지만 몸의 20%에 2~3도 화상을 입었다. 보호장비 하나 없이 폭발 지점을 향해 다가가던 민정씨가 가장 크게 다쳤다. 온몸의 89%에 3도 화상을 입었다. ‘반짝반짝’ 빛나던 얼굴도 화상을 입었다. 병원에 실려 온 민정씨의 상태를 확인한 담당 의사가 아버지에게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다’고 말했다. 허벅지에 손바닥 크기만큼 남은 피부가 전부였다.

민정씨의 가족은 중환자실 밖 대기실을 떠나지 못했다. 온몸이 타버린 중증의 화상 환자는 하루·사흘·일주일 식으로 조금씩 희망을 가지는 수밖에 없다고,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고 담당 의사가 말한 터였다. 하루 걸러 하루가 고비인 셈이었다. 피부의 90%가 불탔기 때문에 피부호흡을 할 수 없었다. 사망은 가까스로 막았지만 민정씨는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사고가 난 지 사흘이 되던 날에야 김상동 당시 경북대 총장(수학과 교수)이 병원을 찾아왔다.  

피해자 가족과 총장이 마주 앉은 건 병원 로비에 있는 카페였다. 당시 카페는 영업을 마감하고 청소를 하던 중이었다. 경북대학교 관계자들이 우르르 들어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의자를 도로 내렸다. 아버지 임덕기씨는 총장의 첫마디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죄송하다는 말이 아니었다. “학생이 1~2도 화상이라는데 마 괜찮아지지 않겠습니까.”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정씨는 버텨냈다. 7주 동안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넘나들었지만 마침내 의식을 회복했다. 의사도 기적이라며 놀라워했다. 피부이식 수술이 10차례 이어졌다. 이식한 피부를 부드럽게 유지하기 위해 매주 피부재생 수술도 받아야 했다. 피부재생 수술을 받으면 엄청난 통증과 가려움증이 동시에 몰려왔다.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몸의 상처뿐만 아니라 트라우마도 깊었다. 입원 몇 달 만에 겨우 용기를 내서 산책을 나섰다가 병원 로비를 나서기도 전에 까무러쳤다.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라이터 불빛에 충격을 받아 쓰러진 것이다. 민정씨는 트라우마 치료까지 함께 받고 있다.

ⓒ시사IN 이명익10월27일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신정욱 지부장(가운데)과 조합원들이 국회 앞에서 학생연구원 산재보험 가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어떻게 피해자에게 책임을 요구하는가  

수술이 일상인 만큼 병원비도 순식간에 불어났다. 당시 부모는 병원을 오가던 경북대학교 관계자들로부터 “학교에서 치료비를 전액 부담할 테니 치료에만 집중하시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4월1일 학과장과 지도교수가 부모를 찾아와 “학교에서 더 이상 치료비를 지급해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이미 3월부터 치료비 지급이 밀려 있는 상황이었다.

날벼락을 맞은 가족들은 총장 면담을 요청했다. 2주가 지나서야 마주 앉은 총장은 자신이 지급 중단을 지시한 적은 없다면서도 “학교에서 언제까지고 무한정 치료비를 지급할 수는 없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예산이 빠듯하다는 핑계였다. 가족들은 강하게 항의했다. 총장은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치료비 지급 중단 소식이 알려지자 경북대 총학생회가 모금을 주도해 9일 동안 1억5500여만원을 모았다.

일주일 뒤 김상동 당시 총장의 변명은 ‘돈이 없다’는 말에서 ‘규정이 없다’는 말로 바뀌었다. 산재보험법상 대학원생은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민정씨는 산재보험 처리를 받을 방법이 없었다. 대학이 건물 내에서 사고가 날 경우에 대비해 들어놓은 안전보험(최고 5000만원)과 재난보험(피해자가 미래에 거둬들일 것이라 예상되는 수입만큼 지급)만으로는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상황이 진척되지 않고 병원비는 계속 쌓여가자 결국 가족들은 5월6일 총장실에 들어가 총장의 사과와 치료비 지급을 요구했다. 자정이 다 된 시각에야 김 총장은 ‘가족과의 의사소통에서 매끄럽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사과하고 치료비를 바로 지급할 것을 약속했다. 또 앞으로 발생할 치료비도 학교에서 모두 지불하겠다는 ‘지불 보증’을 체결하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로 작성한 지불보증서에 적힌 이름은 총장이나 학교의 이름이 아닌 학생처장 개인의 이름이었다. 직인도 없이 볼펜으로 적은 개인 서명이 전부였다.

달라진 건 없었다. 사고 수습 관련 규정이 없어서 치료비를 지급해줄 수 없다던 학교는 가족들이 총장을 면담한 지 3개월이 지난 8월에야 관련 회의를 열었다. ‘경북대학교 화학관 사고수습 및 위원회 설치에 관한 규정 제정안’이 교수회 평의회에 올라갔다. 교수회를 통과한 제정안이 재정위원회를 통과하는 데 또 2개월이 걸렸다. 그사이 민정씨의 총 입원비는 6억2000여만원(미납 2억1000만원)으로 늘어났다.

사고 발생 9개월이 지난 뒤에야 통과한 제정안은 피해자 가족의 반발을 불렀다. 제6조 3항에 들어간 ‘피해 학생의 책임에 귀속하는 요양비 지급액은 이를 해당 학생에게 구상할 수 있다’는 문구 때문이었다. 피해 학생들에게 사고에 대한 책임이 있다면 지급했던 돈을 도로 받아가겠다는 뜻이었다. 민정씨 아버지는 “어떻게 피해자한테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사고 원인을 조사하던 경찰도 실험실에 있던 학생 5명 모두에게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내린 상황이었다. 화재 현장을 감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고 원인을 ‘미상’으로 판단했다.

실험실 사고는 경북대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2019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집계한 ‘연구실 안전관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그해 신고된 전국 학교·기업·기관 등에 소속된 전체 연구실 사고(140건) 중 62%(87건)가 대학 연구실에서 일어났다. 전체 연구실의 8%에 불과한 대학 연구실에서 절반 넘는 사고가 일어났다. 위험한 약품을 전문업체 직원이 아닌 학생이 폐기하는 관행, 연구실과 사무실이 분리돼 있지 않은 비좁은 실험실 구조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사고가 난 경북대 화학실험실도 20평 남짓한 공간에 연구실과 사무실이 구분 없이 배치돼 있었다.

대학 실험실은 사고 예방뿐 아니라 사고가 발생한 뒤 대처하는 방식도 미흡하다. 대학원생은 대학 캠퍼스 운영을 떠받치는 주요한 노동력이지만 정작 노동자로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민정씨처럼 위험한 작업을 떠맡는 대학원생, 특히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학생연구원’들은 산업재해 보험을 적용받지 못한다. 사고뿐만 아니라 일을 하다 질병에 걸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국 33만명이나 되는 대학원생 사이에서 ‘우리는 노예’라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연합뉴스10월19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상동 당시 경북대 총장은 ‘사고수습 및 위원회 설치에 관한 규정 제정안’의 구상권 청구 조항에 대해 “행정하는 측면에서 어려운 사항이 많다”라고만 대답했다.

‘우리는 노예’라는 전국 33만 대학원생

2018년 2월 출범한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대학원생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그나마 2017년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연구실안전법)’이 개정되면서 상해보험 보상금액이 1억원에서 2억원으로, 의료비 역시 1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연구 활동 종사자’로서다. ‘노동자’로서 보장받는 게 아니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신정욱 지부장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학생연구원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산재보험법 일부 개정안(신용현 의원 대표 발의)’이 통과됐다면 이번 사건도 좀 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총장이 잘못했다’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놓친 국회에도 책임이 있다.”

10월 정기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다뤄졌다. 10월19일 경북대학교에서 열린 국감에 출석한 김상동 당시 총장은 구상권 청구 조항을 질타하는 질문에 대해 “행정하는 측면에서 어려운 사항이 많다”라고만 대답했다. 다음 날인 10월20일 김 전 총장은 퇴임했고, 10월22일 국회에서 열린 국감에는 새로 임기를 시작한 홍원화 총장이 출석해 “노력하겠다”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는 데 그쳤다. 퇴임한 김상동 당시 총장은 치료비 지급을 왜 중단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운전 중이라 잘 들리지 않는다. 현재 총장에게 묻는 게 더 정확할 것”이라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10월29일 현재 경북대는 여전히 미납액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민정씨의 미납액은 2억1000만원에 달한다. 사고를 당한 뒤 아직까지 통원치료를 받는 학부생 ㄱ씨 역시 미납액이 2억3700여만원이다. 민정씨 아버지는 학교에서 아이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고 말했다. “치료비는 더 이상 들어가지 않고 보상금만 한 번 주면 끝날 테니까요.” 담당 의사는 민정씨가 빠르면 2년 반 뒤에 퇴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마저도 모든 치료 과정을 ‘초인적으로’ 이겨냈을 경우다. 퇴원한 뒤에도 중증장애인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아버지 임덕기씨도 10월22일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굉장히 고민 많이 했습니다. 꿈 많고 꽃다운 20대 딸은 몸과 마음이 무너져 있는데 아빠가 국회에 나와서 이야기하는 게 맞을까 싶었습니다. 딸에게 미안하지만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왔습니다. 나라의 미래가 청년이라고 말만 하지 마시고 이 청년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목숨을 담보로 살지 않도록 법을 만들고, 아이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안전까지 찾아서 챙겨주는 게 나라고 국회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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