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놀이터 앞 동네책방.’ 책방산책 SNS 소개문에 적힌 그대로다. 동네 놀이터 맞은편 2층 양옥집이 책방이다. 뛰놀던 아이들이 책방 대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화장실을 찾는다. 책방 창문으로 놀이터를 지키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그림자, 아이들 웃음소리가 스며든다.

4년 전 홍지연 대표가 인천 계양구 낡은 주택가에 책방을 내겠다고 선언했을 때만 해도 지인들 반응은 한결같았다. “이런 동네에 누가 책을 사러 오냐?” 마을학교, 어린이 독서모임 등을 오랫동안 함께해온 이웃들마저 말렸다. “꼭 책방을 해야 해? 밥집은 안 돼?”

홍씨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네 살 적부터 인천 배다리 거리를 누비며 성장한 그녀였다. 학교, 직장을 다닐 때도 어디든 발길 닿는 곳에 책방이 있었다. 책방에서 ‘알바’를 한 적도 있다. 그러면서 온갖 책을 읽어치운 덕분에 “세상 심심할 일이 없었다”라고 홍씨는 말한다. “생각해보면 이만큼 축복받은 인생도 없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만난 요즘 아이들은 이렇게 되묻곤 했다. “책방이 뭐예요?” 그녀가 책방 주인의 길로 들어선 이유다.

물론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개업 초기, 툭하면 스트레스 지수가 치솟았다. 놀이터에서 뒹굴던 아이들이 책방 바닥에 모래를 옮겨놓고 갈 때, 그림책에 난 흠집을 볼 때 속이 탔다. ‘아이들이 마음껏 책을 펼쳐볼 수 있게끔 비닐 패킹은 하지 말자’던 다짐이 흔들렸다. 4년이 지난 지금은 다르다. ‘말괄량이 삐삐’네 집안처럼 책방 내부가 어질러져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책이 파손되어도 마찬가지. “자기네 애가 읽다 간 책이 구겨졌더라. 그냥 사가지?” 아이와 함께 책방을 드나들다 단골이 된 어른들이 늘면서 생긴 변화다.

‘관계’가 있는 주민 모두의 공간

홍씨가 깨달은 바에 따르면 결국 동네책방의 핵심은 관계성이다. 이곳에서 독자들은 책을 주문하고 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책을 매개로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펼쳐놓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이건 어른이건, 독서모임이건 글쓰기 모임이건. 본래는 여름날 집집마다 에어컨을 켜놓느니 전기 요금이나 아끼자며 어른·아이 10여 명이 모인 심야 책방에서는 서로가 놀랐다. 세 시간 넘게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아서다. ‘완독의 기쁨’도 함께하니 색달랐다.

책을 고를 때도 독자들의 개성과 취향이 반영된다. 필사 모임, 책갈피 뜨개 모임, 작가와 북토크 등을 제안하는 것도 이들 독자다. 책방산책에 지난 4년은 “여기서 책이 팔리겠어?”라던 이웃들이 “여기서 무슨 재미난 일을 해볼까?”로 바뀐 세월인 셈이다.

그런 만큼 팬데믹 상황은 뼈아프다. 책방 공간 이용 예약제를 실시하고, 독자가 주문한 책을 집까지 직접 배달해주며, 라방(라이브 방송)을 새로 시작하는 등 온갖 시도를 해보지만 관계망에 난 구멍을 온전히 메우기는 어렵다. 도서정가제 논란도 공포스럽다. 책방산책이 생길 수 있었던 게 도서정가제 덕분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홍씨는 말한다. 전국 어디서나 모든 책을 정가로 팔고 사게 보장하는 이 제도가 2014년 말 도입된 뒤 동네책방 수는 97곳(2015년)에서 551곳(2019년)으로 급증했다.

책방산책은 10% 할인, 5% 적립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독자들은 이곳을 찾는다. 친구 소개로 책방산책을 처음 찾았다가 그날로 단골이 됐다는 이명숙씨는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집 창가에 앉아 책을 읽다 보면 뭐랄까, 그냥 황홀해져요.” 홍씨가 깨달은 동네책방의 존재 이유도 이것이다. 그곳에 가면 행복해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주민 모두의 공간. 그곳을 지켜낸다는 게, 이리 버겁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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