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송지혜10월23일 김영원씨가 일했던 경남 창원 로젠택배 부산강서지점 터미널에서 택배기사가 택배 상자를 정리하고 있다.

10월23일 금요일 오후 3시, 수취인에게 도착했어야 할 택배 상자 수백 개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상자에 부착된 송장에는 ‘○○영업소/김영원’이란 글자가 커다랗게 인쇄되어 있다. 택배기사 김영원씨(가명·50)는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가주동에 위치한 로젠택배 부산강서지점 터미널에서 11개월간 일해왔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이름으로는 택배가 배송되지 않는다.

10월20일 새벽 2시51분, 김씨는 카카오톡 메시지로 한 동료에게 사진을 전달했다. 세 장짜리 유서였다. 새벽 3~4시, 자신이 일해온 강서지점 터미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차량 구입 등 투자한 부분이 있음에도 적은 수수료에 세금 등 이것저것 빼면 한 달 200만원도 벌지 못하는 구역입니다. 이런 구역에서 보증금을 받고 권리금을 만들어 판 것입니다. (…) 다시는 저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시정조치를 취해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올 한 해 택배기사 10여 명이 잇달아 사망했다. 과로나 노동환경 악화로 인한 사망이 10월에만 네 건 발생했다. 지난 10월8일 서울 강북구에서 배송 작업을 하던 CJ대한통운 택배기사가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 10월12일에는 심야 근무를 마치고 귀가한 20대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와 새벽 5시까지 배송업무에 시달린 한진 택배기사가 연이어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리고 10월20일 로젠 택배기사 김영원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택배 시스템을 실용적으로 고쳐야겠다”

업무 도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택배기사는 호소할 데가 없다. 직원이 아닌 개인사업자인 까닭이다. 한 택배사의 지점에서 사용되는 계약서를 보면 ‘상호간 근로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다. 동시에 ‘갑(지점)의 지시에 따라 을(택배기사)이 화물을 인수하고’ ‘갑의 판단에 따라 을의 배송 범위를 조정한다’고 기재돼 있다. 택배기사는 원청의 판단에 따라 원청이 주는 일을 하지만, 수수료율을 협상하고 물량을 조절하는 등의 권한은 없다. 특히 김씨가 남기고 간 흔적을 보면 택배사와 택배기사 간의 불공정한 계약 등 구조적인 문제를 엿볼 수 있다.

김씨는 1년 전까지 경기도 평택에서 살았다. 20여 년 전 컴퓨터 매장에 취업해 컴퓨터 조립과 A/S를 배웠다. 독학으로 프로그램 개발을 익히기도 했다. 모은 돈으로 컴퓨터 매장을 열었지만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파산하고 말았다. 10여 년간 신용을 회복하기 위해 분투했다. 한 교회 목사의 제안으로 교회의 시스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 후에는 한 중소업체에 취업했다. 평일에 출근하면서도 주말에는 피자를 배달했다. 가까스로 신용불량 기록이 삭제되었다.

김씨는 2019년 10월 부산으로 갔다. 당시 계약기간이 20일밖에 남지 않은 평택의 집에서 나와야 할 처지였다. 당초엔 서울이나 경기 용인으로 갈 생각이었다. 과거에 함께 치킨을 배달했던 가까운 동생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일자리를 타진하기도 했다. A씨는 로젠택배 부산강서지점 택배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거기는 자리 있나?” “형님, 여기는 아파트(배송)밖에 없다는데, 힘들대요.” 김씨는 나흘을 생각한 끝에 다시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모든 짐을 싸서 부산으로 향했다.

김씨는 택배업을 하기 위해 먼저 1t 트럭을 할부로 구입했다. 택배 송장을 찍을 스캐너를 샀고 화물운송 종사자 자격증을 땄다. ‘배’ 번호가 달린 번호판을 받아 차량에 달았다. 여기에 더해 해당 구역을 맡았던 영업소장(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라 영업소장이라는 직책을 가진다)에게 권리금 300만원, 지점에 보증금 500만원을 내야 했다. 초기에 택배기사가 되는 데만 1000만~2000만원이 들었다.

상가를 사고팔 때와 같이 택배업계에서도 해당 구역의 재산상 가치를 매기는 관행이 있다. ‘평균 월매출×3배’로 계산된다. 로젠택배 부산강서지점에서는 물량에 따라 구역당 최소 300만원에서 최대 2500만원으로 거래되었다. 김씨가 산 300만원짜리 구역은 물량이 적은 축이었다.

권리금과 별도로 낸 보증금 500만원도 예상치 못한 지출이었다. 지점에서는 보증금을 일종의 ‘안전장치’라고 주장한다. “하루에 택배 상자 100여 개를 실은 영업소장이 도망갈 수도 있으니까 위험을 방지하는 거다”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김씨의 동료는 “어차피 법적 대응을 하면 되는데 왜 불필요한 초기 자금을 만들어 부담을 가중시키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로젠택배 부산강서지점과 김씨가 맺은 계약서를 보면 ‘을(김영원)의 일방적인 해지 요구로 인한 계약 파기 시 갑(부산강서지점)은 보증금 일체를 반환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결국 목돈이 없던 그는 동료 B씨에게 권리금과 보증금 800만원을 빌려서 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에 따르면 권리금과 보증금 관행은 다른 택배사에도 있다. 하지만 로젠택배의 경우가 더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다단계 구조’를 비롯해 큰 금액대의 권리금과 보증금은 로젠택배의 특성 중 하나로 꼽힌다. 영업소장(택배기사)처럼 지점장 역시 권리금 수억원을 이전 지점장에게 주고 수천만원 보증금을 본사에 낸다.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 롯데택배는 물류가 한데 모이는 터미널을 모두 본사에서 관리한다. 부지를 매입해 시설을 설치하고 레일을 깔아 물량을 받는다. 하지만 로젠택배는 개인사업자인 해당 지점장이 모든 것을 투자하고 관리한다. 그러다 보니 조건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부산강서지점은 택배기사들이 직접 손으로 레일을 굴려가며 택배 상자를 옮겼다. 그러다 지난 3월 현재 부지로 옮기면서 전동 레일로 교체했다. 지점장은 부대시설 투자비용을 택배기사에게 전가하려 했다. 2018년 6월께 택배기사의 임금 격인 수수료 25% 중 1%를 시설투자 명목으로 강제 삭감했다. 택배기사들이 이를 문제 삼자 1년이 지나 수수료를 되돌려주었다. 부산강서지점 측은 “동의를 얻었고 상생 측면에서 함께 부담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10월26일 서울 용산구 로젠택배 본사 앞에서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근조 리본을 달고 로젠택배 규탄 및 불공정 계약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가진 돈이 없었던 김씨도 로젠택배 부산강서지점 ‘○○영업소 소장’이 되었다. 실상은 택배기사지만 직책만은 사장이었다. 김씨는 개인사업자(○○영업소) 등록을 하고 역시 개인사업자인 ‘로젠택배 부산강서지점’과 계약을 맺었다. 부산강서지점은 위로는 로젠택배 본사와 위탁계약을 맺고, 아래로는 김씨와 같은 영업소장에게 업무를 맡긴다. 지점마다 수수료율이 다르다. 지점 또한 개인사업자라 본사의 관리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로젠택배는 전국에 지점 311개, 영업소 7469개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다단계 구조’는 김씨 손에 떨어지는 돈을 적게 만들었다. 배송운임 1건당 2500원짜리인 경우, 본사 및 플랫폼 수수료를 제외하고 지점이 800~1000원가량을 받는다. 이 가운데 700~800원이 택배기사인 영업소장에게 간다. 택배기사가 소화해야 할 물량이 많을 경우, 영업소 하부에 취급소를 둔다. 하청의 하청을 두는 식이다. 취급소를 두면 택배기사는 남은 돈 700~800원 중 600원을 또 다른 택배기사인 취급소장에게 줘야 한다.

○○영업소장 김씨의 하루 일과는 아침 7시에 시작됐다. 1t 트럭을 끌고 부산강서지점 터미널로 이동하면 레일을 중심으로 트럭을 나란히 세운다. 11t 간선차(대형 트럭) 서너 대가 전국 각지에서 온 상자를 레일 위에 올린다. ‘까대기’로 불리는 하차 작업자가 간선차에서 물건을 꺼낸다. 로젠택배는 농산물이나 가구처럼 부피가 큰 ‘똥짐’이 들어오기로 택배기사들 사이에서 악명 높다. 영업소장들이 레일에 실려 오는 택배상자에 적힌 주소를 확인하며 분류를 거친 뒤 물건을 싣는다. 보통 정오께 본격적인 배송에 나선다.

김씨는 하루 약 120개를 배송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주 6일 배송에 나섰다. 농산물은 당일 배송, 그 외 제품은 이튿날 배송한다. 수취인에게 배송을 완료하면 한 상자당 25%의 수수료(약 700~800원)를 받았다. 8월 240만원, 9월 320만원을 손에 쥐었다. 이 중 고정 지출로 차량 할부금, 자동차보험, 유류비, 식대, 택배 파손비 등 100만원을 뺀다. 손에 쥔 돈은 200만원 남짓이거나 그보다 적다. 택배업계에서는 “고정 지출을 생각하면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450만원 이상이 돼야만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로젠택배는 다른 택배사에 비해 시장점유율이 낮다. CJ대한통운 47.2%, 한진택배 13.8%, 롯데글로벌로지스 13.2%, 우체국택배 9.4%, 로젠 7.17% 순이다(2019년 한국통합물류협회 기준). 점유율이 높은 택배사일수록 배송에 유리하다. 가령 CJ대한통운이 60세대 아파트 한 동에 20개를 배송할 때 로젠택배는 3개를 넣는다. 20개를 배송하려면 아파트 7개 동을 돌아야 한다. 김씨는 부산 강서구 ㅂ아파트와 ㅇ아파트 총 6개 단지를 맡았다. 구역이 넓고 택배의 부피와 무게가 나가는 짐이 많다 보니 배송 시간은 늘고 휴식시간은 준다.

로젠택배 영업소장으로 성공하려면 “‘집하’를 위주로 일해야 한다”라고 그의 동료들은 말했다. 집하란 택배기사가 해당 구역에서 인터넷으로 옷이나 식품 등의 상품을 파는 업체와 택배 계약을 맺는 일이다. 명함을 찍고 전단지를 돌리며 영업을 뛴다. 거래처를 뚫으면 택배 배송한 후 집하를 하러 간다. 배송 수수료(25%)와 달리 집하 수수료(32%)가 높기 때문에 집하를 선호하는 택배기사가 많다. 영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 모험심이 필요한 일”이다.

집하를 뚫지 못하고, 고정비에다 초기 비용을 생각하면 택배업 시작 후 3개월은 수입이 거의 없다. “넉넉잡아 3개월 치 생활비는 생각해두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1년 발품을 팔아야 한다. 그 시간이 지나야만, ‘이렇게 고생하는데 이 정도는 받아야지’ 싶은 임금이 나온다”라고 한 택배기사는 말했다. 김씨는 집하를 하지 않았다.

ⓒ시사IN 신선영10월26일 부산강서지점 터미널에서 파업 중인 노조원 대체인력이 택배 상자를 정리하고 있다.

“내 구역은 얼마 받을 수 있을까?”

그는 로젠택배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다. 동료 B씨에게 “택배 시스템을 실용적으로 고쳐야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여러 종류의 송장 용지를 쓰는 것, 레일 위를 지나가는 물품에 부착된 송장의 작은 글씨를 보고 매직펜으로 다시 주소를 적는 것 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송장 크기가 규격화돼 있고 주소를 크게 쓰면 하지 않아도 될 원시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파손 상품으로 인해 언쟁하는 일이 있었다. 배송에 불만을 품은 고객을 응대하던 부지점장이 레일을 세우고 김씨를 불러들였다. 이 일을 겪고 그는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1000원 벌고 분실이나 파손이 발생하면 30만원을 배상하는 시스템. 식품은 (배송이) 하루 지나면 (규정상) 바로 사고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식품 수취인에게 다 전화했다. 9월15일을 보니 80통 전화, 40통 문자, 400장 사진촬영, 파손 26건 등록.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겉 상자는 멀쩡하지만 상자 속 물건이 파손됐을 때나 배송이 끝난 택배 상자가 분실된 경우 택배기사가 100% 책임져야 한다.

김씨는 택배업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일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일을 줄였다. 아파트 6개 단지에서 5개 단지로 구역을 축소했다. 대신 게임 프로그래밍 개발 등에 박차를 가했다. 새벽 2~3시까지 프로그램을 짜고 아침 6시에 일어나 배달을 했다. 김씨의 한 동료는 “간혹 개발 아르바이트가 들어오기도 했고, 어플(앱)을 개발하면 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제 사정은 더 꼬이고 말았다. 숨지기 나흘 전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이 힘든 건 견딜 수 있었다”라고 썼다. 저리로 받은 대출금 상환에 원금과 이자를 같이 내게 되면서 예상하지 않은 지출이 매달 120만원 추가되었다. 택배업을 하느라 무리하게 구입한 화물차 할부금, 고정비 100만원, 대출 120만원, 방세를 내면 돈이 모자라는 상황이었다. 그가 남긴 기록을 보면 2019년 택배업을 시작하기 전 10개월 동안 3000만원을 벌었다. 영업소장이 된 이후 10개월 동안 3000만원을 벌고 4700만원을 지출했다. 그나마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번 아르바이트비, 코로나19로 인한 생계지원금 등 기타 수입 2000만원이 생겨 적자를 면했다.

김씨는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최소 치킨을 배달해도 먹고사는 데 문제는 없었는데, 좋은 식당에서 식사할 여유가 있었는데. 휴가 내서 여행도 다녔는데. 그러나 이곳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연체와 신용불량의 악몽이 떠오른다.’ 그는 동료 B씨에게 “300만원짜리 내 구역은 지금 얼마 받을 수 있을까?” 물었다. 그리고 ‘○○영업소장 모집’ 구인광고를 자신의 차량에 붙이고 다녔다.

“추가 지출이 생겨서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한다”라고 동료들에게 말한 그는, 대신 죽음을 준비했다. 지인들에게 차례로 인사를 건넸다. 베트남으로 나가게 돼 연락이 안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친구들에게 얻어먹기만 해서 미안하다며 식사 대접비를 담은 봉투를 건넸다. 추석을 함께 보낸 동료 B씨에게는 일요일 점심 때 만날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떤 결정을 하건 그동안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했다’고 썼다. 가족에게 보낸 유서에 그는 ‘나의 흔적을 지워달라, 모든 것을 없애달라’고 적었다. 김씨가 남기고 간 택배는 주말 동안 다른 택배기사들이 배송을 완료했다. 로젠택배는 뒤늦게 “지점의 부당하고 부조리한 관리가 파악되면 조치를 취하여 개선할 것”이라고 입장을 냈다.

기자명 부산·창원/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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