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19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더럼의 힐사이드 고등학교에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등장했다. 흑백 분리 정책이 시행되던 때부터 흑인 교육을 담당하던 유서 깊은 학교다. 지금도 흑인 학생 비율이 높아, 바이든 유세 앞뒤로 행진곡을 연주한 밴드부도 모두 흑인이었다. 오바마 정부의 부통령으로서 흑인 유권자에게 인기 있는 바이든의 강점을 부각시킨 이벤트였다. 흑인을 비롯해 백인·아시아계 등 다양한 인종이 섞인 행사였지만, 유력 대선주자의 선거운동치고는 800명 정도가 모인 조촐한 자리였다. 유세 후 바이든과 ‘셀카’를 찍기 위해 기다리는 이들의 줄도 금세 줄어들었다.

 

ⓒAP Photo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2월11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지지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확실한 진보 색깔로 수많은 지지자를 몰고 다니며 열정적 환호를 받는 버니 샌더스(주로 밀레니얼 세대)나 엘리자베스 워런(주로 여성, 고학력층) 유세와는 결이 다른 모습이었다. 뜨뜻미지근하지만 상대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는 중도온건파 바이든의 현실을 보여준 행사였다. 당시만 해도 바이든 지지의 추세는 불안해 보였다. 바이든은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버니 샌더스, 경제·법률 전문가 엘리자베스 워런, 인디애나주의 소도시 시장 30대 피트 부티지지 후보 등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심지어 경선의 풍향계로 꼽히는 지난 2월3일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만 참여하는 경선)에서는 4위를 기록하며 경선 레이스를 불안하게 출발했다.

그럼에도 민주당 경선의 최종 승자는 바이든이었다. 2월29일 그는 흑인 유권자가 많은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일반 유권자도 참여 가능한 개방형 경선)에서 처음으로 승기를 잡았다. 3월3일 14개 주 경선이 동시에 치러진 슈퍼화요일에는 10개 주에서 1위를 거머쥐었다. 8월1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조 바이든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후보와 함께 민주당 공식 대선주자로 무대에 섰다. 10월22일 현재 그는 도널드 트럼프 현직 대통령을 꺾고 제46대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아래 인포그래픽 참조).

 

 

열성 지지자도, 거부 세력도 많지 않아

바이든의 기적이라기보다, 2020년 대선을 대하는 미국 유권자의 태도를 나타내는 장면이다. 왜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바이든이 당선되었고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 현재까지 트럼프를 앞서고 있는지, 그러나 안심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먼저 이번 미국 대선의 구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2020 미국 대선의 핵심 구도는 ‘트럼프 대 반(反)트럼프’다. 선거의 최전선에 ‘트럼프 4년에 대한 평가’가 가로놓여 있다. 트럼프 시대를 끝낼 것인가, 연장할 것인가의 싸움이다. 트럼프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감정엔 회색지대가 없다. 트럼프 지지자와 반대자는 각자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트럼프 캠프 구호)’ 하거나 ‘미국 정신을 회복하기 위해(바이든 캠프 구호)’ 격렬히 대립하고 있다.

숫자가 증명한다. 10월9일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지지자의 63%는 트럼프가 싫어서 바이든을 뽑을 예정이다. 36%만이 바이든이 좋아서 그를 지지한다. 트럼프 지지자는 정반대다. 트럼프 지지자의 71%는 트럼프를 위해서 그에게 투표할 예정이다. 29%만이 바이든을 반대해서 트럼프에게 표를 준다. 바이든의 가장 큰 경쟁력은 ‘반(反)트럼프 진영을 널리 아우를 수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바이든에 대한 열정적 지지 그룹이 적은 대신 비토(거부) 세력 역시 많지 않다. 중도 성향의 민주당 온건파로서 중도층과 공화당 일부에게까지 표심을 호소할 수 있다는 기대가, 바이든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만들었다. ‘트럼프가 싫지만 힐러리도 싫다’는 정서가 작동해 지지층의 투표율이 떨어졌던 2016년 대선의 기억은 민주당으로선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실제로 바이든은 트럼프가 상대적으로 각을 세우기 어려운 후보다. ‘네거티브의 강자’ 트럼프가 주로 바이든 자체를 공격하는 포인트는 나이와 중국과의 연관성 정도다. 바이든은 1942년생으로 78세, 트럼프는 1946년생으로 74세다. 네 살 어린 트럼프는 공개석상에서 수시로 바이든을 ‘졸린 조(Sleepy Joe)’라고 부르며 고령을 강조한다. ‘조진핑(조 바이든+시진핑)’이라는 조어로, 바이든은 친중국이고 자신은 강력하게 중국을 제재한다는 프레임을 짠다.

이념 공격도 시도하지만, 대상은 바이든이 아니다. 버니 샌더스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같은 민주당 내 진보 그룹이 트로이 목마처럼 바이든 캠프에 들어가 있다는 식이다. 이 때문에 바이든이 당선되면, 민주당이 과격한 좌파 정책을 실행할 것이라고 트럼프는 주장한다. 지금까지는 딱히 효과적이지 않았다. 36년 상원의원, 8년 부통령을 지내며 바이든이 보여준 중도온건파의 궤적이 있어서다. ‘심심한’ 바이든이 민주당원의 선택을 받은 이유다.

하지만 올해 초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전망하는 목소리가 컸다. 지난해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경제호황을 기록했다. 백악관은 이를 ‘트럼프 호황’이라는 이름을 붙여 발표했다. 50년 만의 최저 실업률(3.5%)에다, 다우존스와 나스닥은 각각 21.9% 34.2% 상승했다. 트럼프 취임 후 3년 동안 700만 개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밝혔다. 미국인들의 체감도 비슷했다. 지난해 12월 CNN 조사에 따르면, 76%가 ‘미국 경제가 좋다’고 대답했다. 트럼프 지지율을 뒷받침하는 핵심은 경제였다. 트럼프는 탄핵소추안이나 우크라이나 게이트같이 자신에게 불리한 이슈를 워싱턴 D.C. 안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문제가 있어도 경제성과를 내는 대통령’ 이미지를 구축했다. 저학력 백인 노동자의 지지를 기반으로 폭스뉴스와 같은 미디어의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았다.

문제는 코로나19였다. 올해 초,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전염병이 세계를 강타했다. 미국도 코로나19를 피해가지 못했다. 지난 3월 중순부터 미국 곳곳이 봉쇄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다중이 모이는 식당·운동장·쇼핑몰 등이 모두 문을 닫았다. 시카고 같은 대도시가 텅텅 비면서 산짐승인 코요테가 출몰할 정도였다. 4월 초까지 뉴욕의 누적 사망자(3202명)만으로도 2001년 9·11 테러의 희생자 규모(뉴욕시에서만 2753명, 전체 2977명)를 넘기게 되었다.

코로나19 초기 트럼프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맡겼던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의 지휘대에 올랐다. 거의 매일 한 시간씩 생방송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평균 시청자 850만명을 텔레비전 앞으로 모이게 했다. 미국의 국민 스포츠 프로풋볼(NFL)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먼데이 나이트 풋볼〉이나 공개 구혼 리얼리티 쇼 〈베첼러(The Bachelor)〉 마지막 회만큼이나 시청률이 나왔다고 트럼프가 자랑할 정도였다.

이슈의 전장에서 바이든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트럼프는 중국, 세계보건기구(WHO), 아시아계 미국인 기자, 민주당 주지사 등을 대상으로 그의 특기인 ‘적 만들기’를 구사하면서 뉴스를 장악했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할 때 현직 지도자를 중심으로 시민들이 뭉치는 경향이 더해지면서 트럼프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국기 결집 효과’까지 나타났다. 코로나19 환자와 사망자가 증가하는 가운데서도 트럼프 지지율은 4월 초까지 지속적으로 올랐다.

 

ⓒEPA3월30일 미국 뉴욕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을 냉동트럭에 싣고 있다.

트럼프의 적은 트럼프였다. 코로나19가 더 확산되는 상황 속에서 트럼프는 기자회견 생방송 때 근거 없는 정보를 퍼뜨렸다. “주사로 살균제를 몸 안에 집어넣는 방법 같은 것은 없나”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말라리아 치료제가 좋다고 생각해서 일주일 넘게 매일 먹고 있다.” 거센 비판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는 마스크를 쓰기 싫어하는 티를 노골적으로 내면서, 마스크를 정쟁의 소재로 둔갑시켰다. 가장 기본이자 쉬운 방역인 마스크 쓰기를 민주당원 혹은 연약한 사람이나 한다는 분위기를 조장했다.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에 기여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무엇보다 경제가 곤두박질쳤다. 덩달아 트럼프 지지율도 떨어졌다. 코로나19가 트럼프 최고 저격수로 떠올랐다. 올해 2분기(4~6월)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73년 만의 최악을 기록했다. 유례없는 호황에서 유례없는 불황으로 급반전됐다. 3~4월에만 2220만 개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중 1150만 개는 10월 말 현재까지도 복원되지 않았다. 11월3일 대선 즈음의 3분기 경제 실적이 가장 중요한 트럼프로서는 최악의 상황에 부딪혔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이 트럼프의 지지율에 미치는 악영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사회적 분노

트럼프는 ‘V자 반등(불황이 급격히 호황으로 전환되는 경기회복 국면)’이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회복된다고 해도 그 형태는 ‘K자 반등’일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중상층 위 소득은 다시 급격히 상승하는 반면 중하층 아래로는 실업과 빚의 악순환이 심화되리라는 전망이다. 경제회복의 양극화다.

 

ⓒAFP PHOTO10월7일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의 주범이 보석으로 풀려나자 항의하는 시민들.

5월25일 벌어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또한 트럼프에게 불리한 이슈였다. 백인 경찰이 비무장 흑인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그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하다 서서히 죽어가는 조지 플로이드의 영상이 공개되자,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약탈하면 발포한다”라는 트위터를 남겼다가, 트위터 본사로부터 폭력을 부추길 수 있다는 딱지(배너)를 받았다. 코로나19의 피해 또한 백인보다 흑인에게 더 가혹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백인보다 흑인의 코로나19 감염 확률이 2배 높다고 밝혔다. 흑인의 낮은 사회경제적 상황을 보여주는 수치다.

투표를 다짐하는 흑인 유권자가 늘었다. 미국 유권자의 13%가 흑인이다. 백인 67%, 히스패닉 13%, 아시아계 4%(2018년 퓨리서치센터)와 비교하면, 절대다수는 아니지만 흑인 표가 선거의 당락을 결정할 때가 많았다. 전통적으로 흑인 표는 민주당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투표율이 낮은 편이었다. 특히 흑인의 투표율이 2012년 대선(오바마)에서는 66.2%였던 반면 2016년 대선(힐러리)에선 59.6%에 불과했다.

10월20일 현재 진행 중인 사전투표(우편 혹은 조기 현장 투표)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만 흑인 투표율이 4년 전보다 7%포인트 높다. 흑인뿐 아니라 전반적인 투표율이 높다는 점도 트럼프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요소다. 대선을 2주 정도 앞둔 10월20일까지 사전투표를 마친 이들이 3140만여 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캠프는 선거 결과에 대해 쉬이 낙관하지 않는다. 미국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도 마찬가지다. 말미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2016년 힐러리 낙승을 예상했다 크게 망신을 당한 적이 있어서다. 결과는 트럼프의 신승이었다.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 때문이다. 전 국민 득표에서는 힐러리(48%)가 트럼프(46%)보다 2%포인트 앞섰지만, 선거인단 확보에서 졌다.

ⓒAFP PHOTO트럼프 대통령이 10월14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쓰인 모자를 지지자에게 던지고 있다.

2016년 대선에서는 미국 북동부의 쇠락한 제조업 공장들의 집결지인 ‘러스트 벨트’가 당락을 결정했다. 펜실베이니아(선거인단 20명), 미시간(16명), 위스콘신(10명)주에서 각각 0.7%포인트, 0.3%포인트, 0.7%포인트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트럼프가 이겼다. 해당 주에서 1표라도 더 얻는 후보가 전체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방식의 덕을 봤다.

전통적 민주당 지지 지역들이었지만, 세계화·자동화로 과거와 같은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된 백인 저학력 노동자들의 표가 트럼프 쪽으로 움직였다. 이들에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2016년 트럼프 캠프 구호는 강력했다. 2020년 트럼프 캠프 구호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Keep America Great)’는 2016년의 연장 버전이지만, 트럼프조차도 2020년 10월 자신의 재선 유세에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가 아니라 2016년 MAGA 모자를 쓰고 나온다.

격전지가 전체 결과를 좌지우지하리라는 전망은 2020년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2016년 트럼프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한 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미시간을 비롯해 노스캐롤라이나·애리조나·플로리다·오하이오·아이오와에 대한 미국 전역의 관심이 쏟아진다(위의 인포그래픽 참조).

트럼프의 열세가 지속되면서 반트럼프 진영에서는 새로운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가 자신에게 불리한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다. 코로나19로 우편투표를 할 의향을 밝힌 유권자들이 늘어나면서, 11월3일 선거 당일엔 승패를 확정하기에 애매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우편투표는 개표에 시간이 더 걸린다.

상대적으로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이 큰 민주당 지지자들이 우편투표를 더 할 것으로 예측된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당일 현장 투표를 할 가능성이 크다. 우편투표가 사기라고 주장하는 트럼프의 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다. 이럴 경우, 우편투표 결과 합산 전에 트럼프가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펼쳐지면 곧바로 승리를 선언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미국은 거대한 혼란에 빠지고, 길고 지난한 법적 다툼이 벌어지리라는 걱정이다.

현직 대통령이 트럼프이기 때문에 나오는 ‘노파심’이다. 미국인들은 기존 규칙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파괴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해온 트럼프를 지난 4년 동안 지켜봤다. 그래서 반(反)트럼프 쪽에서는 투표를 강조한다. 선거 당일 11월3일 트럼프가 이의를 제기할 수조차 없을 만큼 크게 이겨야 한다는 뜻이다.

트럼프라는 ‘예측 불가능한 인물’에게 베팅했던 미국이 지난 4년의 비용을 어떻게 정산할 것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놀랍지 않다는 게 미국 대선을 바라보는 이들의 심정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망자가 22만명에 이르는 상황에 대한 책임을 추궁한 기자에게 트럼프가 한 대답을 빌려보자면, 미국 대선 또한 어떤 결과가 나와도 “그게 현실(It is what it is)”인 셈이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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