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원

작년 이맘때 페이스북에서 꽤 놀라운 게시물을 봤다. 페이스북 친구 중 한 명이 미국에서 엽기적인 일이 발생했다며 클린턴 전 대통령, 빌 게이츠, 그리고 할리우드 배우들이 소아성애 및 사탄 종교의식에 연루된 것 같다는 포스팅을 한 것이다. 쇼킹한 뉴스인 만큼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어디서 보셨어요?” “진짜예요?” 등등. 그러자 원글 작성자는 이미 트럼프가 수사까지 지시했다는 코멘트와 함께 기사 하나를 링크했다. 읽어보니 포스팅 내용과는 크게 관계없는, 한 유명인이 투옥 중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당연히 헛소문일 게 뻔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 상황이 매우 흥미로웠던 것은 가짜뉴스가 만들어지고 전파되는 과정을 생생히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 누군가는 이걸 진짜로 믿겠구나. 그러고서 어딘가 퍼다 나르고, 그걸 또 누군가 믿으면 그게 가짜뉴스가 되겠구나. 물론 원글 작성자가 일부러 가짜뉴스를 퍼트리기 위해 그런 게시물을 올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단순하게 매우 흥미롭고 자극적인 소식이기에, ‘좋아요’를 받기 쉽다고 판단해서 가져왔을 터이다. 그리고 거기에 바로 가짜뉴스의 비밀이 있다. ‘흥미’ ‘재미’ ‘자극’ 등등.

리 매킨타이어의 〈포스트트루스〉는 탈(脫)진실과 가짜뉴스를 다루는 책이다. 가짜뉴스의 정의, 가짜뉴스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왜 사람들이 가짜뉴스를 무분별하게 믿고 거기에 빠져드는지, 거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까지 나아간다. 230쪽의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챕터별로 나뉘어 압축적이고 체계적으로 쓰여 있는 데다 다양한 사례가 등장하여 읽기 쉽고 재미도 있다.

인류는 소문을 좋아하기에 가짜뉴스와 음모론은 오래전부터 늘 있어왔지만, 책에 따르면 지금처럼 가짜뉴스가 본격화된 것은 2016년 트럼프와 힐러리의 대선이 기점이었다고 한다. 언론이 우연히도 대중이 힐러리보다 트럼프에게 훨씬 더 강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아내면서부터. 그때부터 언론은 점차 힐러리보다 트럼프 쪽을 더 많이 다루기 시작하고, 동시에 온갖 가짜뉴스 사이트들이 생겨난다.
말 그대로 ‘찌라시’, 음모론 사이트들이었는데,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대중의 클릭을 유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무 말이나 던지고 본다. 그리고 소셜미디어의 헤비 유저들은 다른 이용자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이러한 자극적인 소식을 퍼다 나르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대중은 어떻게 믿게 되었을까? 그것은 인간이 본래 비합리적인 데다가 소셜미디어 자체가 굉장히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친구 추가와 삭제, ‘팔로’와 ‘언팔로’가 비교적 자유로운 소셜미디어에서 이용자들은 대개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과 언론으로만 타임라인을 구성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이 ‘원하는’ 소식만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진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 역시 비슷한 지적을 한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사이 우리의 뇌는 점차 ‘좋아요’ 버튼과 ‘하트’ 등이 주는 즉각적인 보상(도파민)에 익숙해지는데, 그러한 도파민은 마치 마약처럼 작용해 소셜미디어 자체에 중독되는 현상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결국 사용자들은 더욱 많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 점차 자극적인 게시물, 눈에 띄는 흥미 위주 게시물을 올리게 되고, 사람들의 이용시간이 늘어날수록 큰 보상을 얻게 되는 소셜미디어 회사들 역시 사람들이 반응하기 쉬운 자극적인 정보 위주로 노출해서 결국은 가짜뉴스가 범람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뻔하지만 해결책은 하나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어차피 음모론인데 뭐 어떠냐고, 그냥 일부의 문제일 뿐이라고, 무시하면 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짜뉴스들은 단순히 불쾌한 헛소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직접적인 영향을 일으키기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어느 피자집이 힐러리의 소아성애 조직의 자금줄로 사용된다는 가짜뉴스를 듣고 흥분한 남성이 총을 들고 해당 피자집에 쳐들어가 마구 갈긴, 일명 ‘피자 게이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페이스북이 곧 뉴스의 대명사인 미얀마에서는 페이스북 내의 혐오 발언에 휘말린 미얀마 사람들이 이슬람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배척하다 결국 대규모 학살을 자행하기도 했다.

어쩌면 오늘날 전 세계에 극우적인 흐름이 자꾸 꿈틀대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 지난해 여름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난민을 받아들이는 문제로 매우 말이 많았는데, 당시 내게는 20~30대 젊은 여성들이 난민에 대해 아주 부정적이라는 것이 굉장히 놀라운 지점이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는 난민에 의한 강간의 두려움을 호소하는 여성들, 맘카페에서는 아이들 걱정을 하며 몸을 사리는 엄마들이 넘쳐났다. 이들은 ‘난민 남성이 어린아이와 여성을 성폭행한다’는 가짜뉴스를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간혹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단칼에 제거되었다. 그러면서 편향은 점차 강해졌다. 전부 가짜뉴스가 불러온 비극이다. 결국 소셜미디어의 발전, 가짜뉴스의 횡행, 집단적 사고와 편향이 모두 이어져 있다.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을 믿을 것인가’인데, 이에 대해 책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믿을 만한 언론을 선정해서 이들이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도록 후원할 것. 둘째, 문해력을 기를 것.

뻔한 말이지만 이것 말고는 대안이 없기도 하다. 이에 더해 소셜미디어에서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골라서 하는 이들을 주의해야 한다. 사실 어디에서나 그렇다.

기자명 한승혜 (작가·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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