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고기잡이가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던 아이슬란드. 2000년대 초중반, 당시 전 세계를 넘나들던 외국자본은 이 북유럽의 섬나라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주식과 부동산 투기 열풍이 이 조그만 나라를 휩쓸기 시작했다. 은행들은 넘쳐나는 현금을 들이대며 대출 경쟁을 했고, 쉽게 돈을 빌린 국민들은 끝도 없이 오르는 자산시장에 투자해 톡톡히 재미를 봤다.

어부들은 더 이상 고기를 잡으려 하지 않았고 젊은이들은 모두 금융경제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빅숏〉 〈머니볼〉의 저자 마이클 루이스는 그의 또 다른 저서 〈부메랑〉에서 당시 “사람들이 모두 블랙·숄스 공식(옵션 가격을 산정하는 공식)을 배우고 있었다”라는 아이슬란드 수산경제학과 교수의 말을 전한다. 지독한 증시 과열기의 한 풍경이다. 그 무렵 금융공학을 공부하던 아이슬란드 어부들을 이르는 별다른 이름은 없었다. 그러나 팬데믹 시기, 한국의 개인투자자들은 ‘동학개미’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팬데믹 선언 이후 올해 6월 말까지 개인투자자들이 투자한 누적 순매수 규모는 22조원에 달한다. 홍지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개인투자자들의 시장 참여가 늘어난 이유를 다음의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선언 직후 주가 폭락으로 인한 저가 매수 기회 발생. 둘째, 록다운으로 인해 외부 활동이 줄어들면서 늘어난 투자에 대한 관심. 셋째, 특히 미국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로빈후드’ 등 온라인 거래 앱의 활성화.

개인투자자들은 펀드 등을 이용한 간접투자보다 자신이 직접 종목을 골라(stock picking) 투자하고 매입과 매도 시기(timing)를 스스로 결정하는 직접투자 또는 액티브(active) 투자를 선호하는 뚜렷한 경향을 보인다. 개미라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은 주로 단기차익을 노리고 단타 위주로 거래하며 위험을 무시하고 대박 수익률만 추구하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이번엔 달라 보인다. 더 똑똑해졌다고 한다.

개인투자자들의 액티브 투자 전략은 성공적일 수 있을까? 경제학계에서는 꽤 오래 전에 제기되었던 문제다. 대답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이 분야를 깊이 연구했던 바버(Brad Barber)와 오딘(Terrance Odean)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개인들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액티브한 투자로 인해 엄청난 페널티를 물고 있었다. 가장 거래를 많이 하는 투자자들의 경우 수익률은 11.4%였는데 이는 시장수익률인 17.9%에 한참 못 미치는 성과였다. 더구나 이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종목의 75%를 매년 갈아치울 만큼 자주 거래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거래 빈도가 높다 보니 거래비용이 상당했을 것은 당연하다. 논문은 성과가 저조한 이유를 잘못된 종목 선택이라기보다 잦은 거래로 거래비용이 늘어난 탓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거래량 증가로 인한 거래비용 상승은, 코스피지수를 쫓는 펀드나 인덱스 ETF(상장지수펀드. 거래소에서 보통주처럼 거래되는 펀드)를 사두고 오랫동안 투자하는 패시브(passive) 투자에서는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계속된 연구에서 바버와 오딘 교수는 개인투자자들이 손해를 보면서도 왜 그토록 액티브하게 자주 거래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내려 애썼다. 이들은 투자자들의 자기 과신(overconfidence)에 주목했다. 자기 과신이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가 남들이 알고 있는 정보보다 확실한 것이라고 믿는 심리적 편향을 말한다. 좋은 정보를 갖고 있으니 투자를 통해 이익을 실현해야 했던 것이다. 저자들은 자기 과신에 찬 투자자가 그렇지 않은 투자자들보다 거래를 더 많이 한다는 이 가설을 실증적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한 심리학 연구가 빛을 비춰주었다. 그 연구에 따르면 관련된 일이나 사건의 성격에 따라 자기 과신 편향의 정도가 남녀 간에 다르게 나타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예측 가능성이 낮거나, 피드백이 모호하며 더디고, 난이도가 높은 일의 경우 여성보다 남성에게 자기 과신 편향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주식 투자가 바로 그런 분야였다.

그렇다면 주식 투자를 할 때 남성이 여성보다 더 자기 과신이 클 것이다. 따라서 만약 남성이 여성보다 유의하게 더 자주 주식을 거래한다는 증거를 실질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면 자기 과신에 찬 투자자일수록 더 자주 거래한다는 가설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는 기대한 대로였다. 남성 투자자는 여성 투자자보다 무려 45%나 더 자주 거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2.65%의 손실을 보고 있었는데 이는 여성 투자자들의 손실인 1.72%보다 월등히 큰 것이었다.

ⓒAP Photo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대표적인 가치투자자이자 장기투자자다.

시장을 이기는 투자는 없다

사실 이 같은 결과는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주가가 정보를 빠르고 정확히 반영하는 효율적 시장(efficient market)에서는 사실상 ‘시장을 이기는’ 투자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시장에서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액티브 투자를 통해 시장수익률(예를 들어 코스피지수의 수익률)보다 더 나은 수익률을 꾸준히 얻는 것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그러니 주식 분석을 통해 투자할 주식들을 골라내거나 사고파는 타이밍을 조절해 수익률을 극대화하려는 액티브 투자 전략은 헛된 일이 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굳이 시장을 이기려고 노력할 필요 없이 그저 시장을 따라가는 전략을 선택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다시 말해 패시브 전략이 훨씬 나은 투자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삼성전자나 항공업, 자동차 주식 등에 선별적으로 투자하는 동학개미들은 최적과는 한참 거리가 먼 투자를 하는 셈이다. 그러나 액티브 전략이 패시브 전략보다 열등하다면 동학개미들이 내고 있는 성과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많은 동학개미들이 액티브한 투자로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은 축하받을 일이지만 그다지 많은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은 누구에게든 이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성과를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낼 수 있느냐다. 지속적으로 시장수익률 이상을 달성하는 투자자들을, 농구에서 백발백중의 슈팅을 보여주는 선수들에게 빗대어 ‘핫핸드(hot hand)’라고 부른다. 실제로 이런 투자자들이 존재하는지는 심리학계뿐 아니라 경제학계에서도 오래된 주제다. 김연아처럼 줄기차게 자신의 라이벌을 계속 이기는 선수가 주식시장에도 있을까? 만약 핫핸드들이 실제로 다수 존재한다면 이는 시장효율성에 대한 믿음에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종목을 자주 교체해 투자하는 액티브 투자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대표적인 장기 투자자 워런 버핏은 2008년에 한 헤지펀드 매니저와 100만 달러짜리 내기를 걸었다. 자신이 선택한 패시브 펀드(버핏은 뱅가드 펀드 중 하나를 골랐다)가 향후 10년 동안 상대가 고른 복수의 액티브 펀드들 중 어떤 것보다도 높은 수익률을 내면 이기는 내기였다. 10년 뒤인 2017년 12월, 버핏의 상대는 깨끗이 패배를 인정했다. 패시브 펀드는 10년 동안 연평균 7.1%의 수익을 올렸으나 액티브 펀드의 경우 수익률이 평균 2.2%에 그쳤다. 핫핸드는 없었다. 버핏은, 여자 청소년들에게 교육과 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영리단체에 내기 판돈을 전액 기부했다.

1973년에 출판된 〈시장변화를 이기는 투자:랜덤워크(A Random Walk Down Wall Street)〉의 서문에서 저자인 버턴 맬킬 교수는 한 가지 코믹한 예측을 언급했다. 눈 가린 원숭이로 하여금 경제지들의 주가 페이지를 향해 다트를 던지게 한 다음 다트에 찍힌 종목들에 투자하면 전문가들이 액티브하게 꾸린 포트폴리오(주식 등 금융자산들의 묶음)에 뒤지지 않는 수익률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전문가들이 공들여 만들어낸 포트폴리오라도 효율적인 시장에서는 그저 무작위로 주식을 선택해 만들어진(즉, 원숭이들이 다트를 던져 만든) 포트폴리오 이상의 성과는 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2년 〈포브스〉는 이에 관한 재미있는 기사를 실었다. 원숭이들의 포트폴리오 수익률이 시장수익률(전문가들이 만든 포트폴리오가 이길 수 없었던)을 지속적으로 앞섰다는 실증적 증거를 연구자들이 찾아냈다는 것이다. 핫핸드는 전문가들이 아니라 오히려 마구잡이로 다트를 던지는 원숭이들이었던 셈이다. 연구 결과에 많은 의문점이 달리긴 했지만 당시엔 꽤 선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결과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새뮤얼슨 교수가 훨씬 이전인 1974년 어느 칼럼에 실었던 글의 내용과 통했다. 그는 액티브 펀드매니저들이 앞으로 직업을 잃게 될 것이라고 썼다.

 

ⓒGoogle 갈무리미국의 대표적인 전문 투자자문사인 뱅가드 그룹.

액티브한 핫핸드는 없었지만 패시브 펀드들의 성과는 눈부셨다. 지난해 1월 타계한 전설적인 투자자 존 보글은 투자회사인 뱅가드(Vanguard) 그룹을 설립하고 1975년 패시브 투자 전략을 따르는 인덱스 펀드를 내놓았다. 그러나 당시 이 세계 최초 패시브 펀드의 인기는 형편없었다. 세상에 나온 지 5년이 지난 후까지도 겨우 1700만 달러의 자금이 설정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뱅가드의 패시브 펀드들은 이후 수십 년간 눈부신 성과를 보였다. 뱅가드 그룹은 2020년 1월 말 기준, 전 세계를 무대로 1만7600명을 고용하고 400개 이상의 펀드를 통해 6조2000억 달러 이상을 운용하는 초대형 글로벌 금융투자회사다.

아마도 장기적인 패시브 투자가 엄청난 성과를 낸다는 실증연구로 가장 유명한 책은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의 제러미 시걸 교수가 쓴 〈장기투자 바이블(Stocks for the Long Run)〉일 것이다. 주식 관련 데이터가 존재하기 시작한 1802년부터 무려 200년 가까이 분석했다. 그동안 주식시장에서 패시브 전략을 고수했다면 금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경우보다 월등히 뛰어난 수익률을 얻었을 것이라는 실증적 증거들로 패시브 전략의 우수성을 밝혔다.

이 책이 보여준 결과는 이후 여러 연구에서도 지지되었다. 이를테면 펀드 평가사인 모닝스타(Morningstar)는 지난 20년 동안 겨우 5개 연도에서만 다수의 액티브 펀드 매니저들이 시장지수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코노미스트〉는 2013년 3월까지 1년 동안 가장 뛰어난 성과를 보인 상위 25%의 주식공모 펀드들을 추려낸 뒤 이들이 향후에도 계속 지속적인 성과를 내는지 추적한 결과를 내보냈다. 이 펀드들 중 1년 뒤에도 성과가 상위 25%에 드는 펀드는 실망스럽게도 고작 4분의 1에 불과했다. 2년 뒤에는 겨우 4% 정도가, 3년 뒤에는 겨우 0.5%의 펀드가 상위 25%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말하자면 성과가 아주 좋았던 펀드 1000개 중 이후 3년 동안 줄곧 좋은 성과를 유지하는 펀드는 겨우 5개에 불과했던 셈이다.

ⓒAP Photo미국의 대표적인 전문 투자자문사인 뱅가드 그룹의 창업자인 존 보글은 ‘인덱스 펀드의 아버지’라 불린다.

‘초심자의 행운’에서 ‘몰입 상승 편향’까지

이처럼 액티브 펀드 매니저들도 핫핸드를 갖고 있지는 않다. 동학개미들의 활약이 인상적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전문적인 액티브 펀드 매니저들보다 더 핫한 손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전문가들도 액티브 전략으로 그다지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자주 미래를 예측하는 데 실패하는 재무 금융 관련 어드바이스를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는 이유는 뭘까? 몇 가지 이유 중 꽤 설득력 있는 것은 이렇다. ‘실질적으로 도움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심리적 이유가 크다.’ 정확히 말하자면 후회 회피(avoidance of regret)를 위해서다. 혼자 연구해서 투자해 실패하면 자기를 탓할 수밖에 없지만 컨설팅 후 실패하면 내가 아닌 컨설턴트 잘못이라며 위안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서울대 인류학과 김수현 학생이 쓴 석사학위 논문이 얼마 전 화제가 되었다. 이 똑똑한 학생은 개인투자자가 주식투자에 ‘중독’되는 과정을 ‘초심자의 행운’의 첫 단계(처음에 투자로 약간의 재미를 본다), ‘과신과 확신 편향’의 두 번째 단계(할 수 있다는 과신 또는 확신이 생긴다), 그리고 ‘몰입 상승 편향(더 크게 벌기 위해 빚내서 투자한다)’에 의해 손실이 커지는 결과까지 모두 세 단계로 설명한다. 개인투자자들은 실패를 하더라도, 이를 성공을 위해 수업료를 지불한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다시 매매를 실행한다. 이러한 행태가 반복되며 주식투자에 ‘중독’되면 결국 ‘주식의 노예’가 되어간다는 내용이다. 끔찍한 얘기지만 석사논문이 급작스럽게 수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을 터이다.

최근 자본시장연구원의 홍지연·김민기 두 연구위원이 각각 발표한 두 편의 보고서를 보면 동학개미들의 투자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나 위험요소 또한 적지 않은 듯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개인투자자들은 재무건전성과 재무성과가 악화된 기업의 주식을 기초 여건이 양호한 기업에 비해 더 많이 순매수했다. 그리고 주식투자를 위해 빌려준 돈인 신용공여 잔고는 6월 기준 11조5000억원 이상으로 지난 3월 6조5000억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개인투자자 순매수의 약 35%는 신용융자를 통한 매수, 즉 빚내서 실행한 투자였다. 이 같은 사실은 김민기 연구위원이 지적하듯 개인투자자들이 투자위험을 더 절실히 깨닫고 레버리지 활용에 주의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주식투자에는 ‘불완전 판매’가 없다. 투자 결과는 손실이든 이익이든 온전히 자신의 책임이다.

동학개미들을 응원하는 마음 한편으로 떠오르는 증시 격언이 있다.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아라.” 키가 클수록 수익률이 높을 거라는 우스개가 아니다. 그저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더라도 무리하지는 말라는 뻔한 얘기다. 수익은 위험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익률의 향기에 묻혀 위험을 간과하면, 무리한 투자를 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성과를 유지할 수 있느냐다. 인생은 팬데믹보다 훨씬 더 길다.

기자명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