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몇 년 전, 중국 베이징에서 쓰촨으로 향하던 항공기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책 한 권을 뒤적거리던 중이었는데, 옆자리의 중국인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한국 사람이냐?” 그렇다고 하니, 쓰촨의 관광지와 먹거리를 친절하게 소개해주었다. 호감을 느꼈다. 그가 “일본은 싫지만 한국은 좋아”라며 그 이유를 밝히기 전까지는. “우리가 아주 옛날엔 같은 민족이었거든.”

순간적으로 발끈했다. “난센스. 우리와 당신네들은 고대부터 엄청난 전쟁까지 치르며 오늘까지 왔다고….” 한(漢), 수(隋), 당(唐)의 중국어 발음을 몰랐기 때문에 구체적 사례로 반박하지 못해서 지금도 안타깝다. 작가 안수길의 장편소설 〈북간도〉에는, 중일전쟁 당시 중국국민당 군사학교의 의식이 묘사된다. 교관이 ‘대만(타이완), 만주, 조선은 원래 누구의 땅이냐’라고 외치면, 학생들은 ‘중국의 땅이다’라고 답한다. ‘누가 빼앗아갔는가?’ ‘일본 놈들이다.’ 중국인이 일본으로부터 조선을 되찾겠다 하니, 조선인 학생들은 분노한다.

지난 10월 초,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밴플리트상’ 수상소감(“우리는 양국-한국과 미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와 수많은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으로 중국에서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오죽하면, 삼성과 현대차의 중국 법인들이 BTS 관련 게시물들을 홈페이지에서 내려야 했을까. 글로벌 최강국인 이웃 나라에서 가끔씩 ‘한국에 대한 감정’이 노출될 때마다 오싹해진다. 이런 중국이 실제로 미국을 제친 글로벌 패권국가로 떠오르면 어떤 짓을 할까. 중국은 법치주의의 성숙도가 높은 나라가 아니다. 다른 나라의 주권을 형식적으로나마 존중해주는 국제규범에 익숙하지도 않다. 심지어 한반도를, 19세기 중엽 이후 100년에 걸친 ‘치욕의 역사’에서 잃어버린 땅 정도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

중국공산당의 야망은 글로벌 패권국가다. 그러나 미국은 단지 경제력과 군사력만으로 패권국가 지위에 오른 것이 아니다. 적어도 20세기에는 정치체제, 생활양식, 문화, 언론 자유 등의 측면에서 다른 나라 시민들을 매혹시키며 부러움을 샀기 때문에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의 중국은 이웃 나라 선량한 시민인 나에게 두려움과 공포심을 일으킬 뿐이다. 아시아 다른 국가의 시민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BTS가 중국의 존엄성을 해쳤다’며 인민들을 선동한 관영 매체 〈환구시보〉에 대해 예전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관영’ 매체인 만큼 ‘언론 자유’는 언감생심이겠지. 그러나 ‘관영’답게 최소한의 품위는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지나친 호전성의 노출이나 막말은 삼가기 바란다. 한국에서는 유튜브의 ‘가짜뉴스 메이커’들이나 하는 짓이다.

기자명 이종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