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추석을 앞둔 9월3일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물류센터에서 택배 처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옥의 알바, 현대판 노예 생활, 남한의 아오지 탄광…. 인터넷에 ‘택배 상하차 알바’를 검색하자 범상치 않은 표현들이 쏟아졌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상하차 추노 후기’라는 글들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작업하다가 중간에 도망간 것을 두고 쫓기는 노비 신세에 빗댄 것이다. ‘일당보다 병원비가 더 나왔다’ ‘석 달 일하고 20㎏ 빠졌다’는 식의 후기가 수두룩하다. 쿠팡부터 CJ 대한통운, 로젠택배 등 택배 회사와 지역은 다 달랐지만 후기의 마지막은 대부분 이런 문장으로 끝난다. ‘돈 궁하다고 상하차 절대 하지 마라.’

‘허브(Hub)’라 불리는 택배 물류센터는 각 지역에서 배송한 상품들이 한데 모이는 곳이다. 25t 화물트럭에서 하역장으로 쏟아진 물건들은 지역마다 배정된 택배 차량에 다시 옮겨진다. 화물트럭 한 대에 담겨 있는 택배 상자는 1000여 개. 분류 작업은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자동으로 이뤄지지만 물건을 내리고(하차) 다시 싣는(상차) 일은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의 사람 손에 맡겨져 있다. 흔히 ‘까대기’라고 알려진 작업이다.

김준명씨(26·가명)는 대전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까대기를 한다. 2인 1조로 하루에 화물트럭 18대를 ‘깐다’. 생수부터 쌀, 냉장고처럼 중량이 나가는 물품도 많은 데다 컨베이어벨트 속도가 빨라 택배 상자들이 금세 산더미처럼 불어난다. 매일 저녁 8시30분부터 새벽 6시30분까지 일하고 일당 9만5000원을 받는다. 추석 연휴 이후 ‘택배 대란’이 빚어지자 오전 8시30분까지 추가로 일하고 2만6000원을 더 받았다. 밥버거나 컵밥이 주어지는 저녁 시간 30분이 휴식 시간의 전부다. “하루하루 먹고살아야 하니까. 막노동도 뛰었고 고깃집에서도 일해봤는데 자꾸 택배로 돌아오게 되더라.” 알바로는 벌기 어려운 금액 탓이었다.

상하차 일을 시작한 지는 올해로 4년째. 고등학교를 자퇴한 김씨에게 가장 쉽고 간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상하차 인력 대부분은 김씨처럼 하청업체를 통해 단기 일용직 형태로 고용된다. 알바천국, 알바몬 같은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당일 지급’ ‘학력 무관’ ‘초보 가능’이 붙은 택배 물류센터 상하차 구인광고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장시간 중노동을 요하는 탓에 ‘화장실 다녀온다’ ‘물 마시러 간다’며 사라지는 사람도 매번 생기지만, ‘짧고 굵게’ 일하면 일급 10만원을 바로 받을 수 있어서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하면 할수록 병원비가 더 나온다’는 소문은 사실에 가까웠다. 무거운 짐을 옮기다 보니 김씨는 손목, 허리, 무릎에 통증을 달고 산다. 아찔했던 순간도 많았다. 2017년 부산의 물류센터에서 일할 당시 화물트럭의 튀어나온 패널 부분에 다리를 부딪혔다. 당시 김씨는 허벅지가 찢어져 12바늘을 꿰맸고 2주 동안 입원했다. “(고용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회사에 말했더니 해당 차주인 기사에게 문제를 제기하라고 하더라.” 택배 기사는 택배 회사와 계약을 맺은 특수고용 노동자 신분이었다. 시설을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는 원청인 택배 회사와 김씨를 고용한 하청업체가 서로 책임을 떠미는 상황이었다. 결국 김씨는 병원비를 자비로 냈다. 그 이후로 손가락이 붓고 인대가 늘어날 때마다 병원에 가는 대신 ‘파스칠’만 한다. “(하청업체) 관리자가 ‘마음에 안 들면 그만둬라. 너네 말고 다른 사람 구하면 된다’는 식으로 나오니까 문제 제기를 하기가 어렵다. 일용직은 사람 취급을 잘 못 받는다.”

산재보상을 왜 신청하지 않았는지 묻자 김씨는 “산재 하면 일 못 구한다”라며 난색을 표했다. 산재보험 보상 경험이 있으면 추후 구직활동에 제약이 크다는 이유였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노동자가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신청이 가능하고 그 책임 또한 사업주가 져야 한다. 그러나 김씨가 일용직 일자리를 찾을 때마다 현장 관리자들은 ‘3개월 안에 산재보상을 받은 적이 있는지’ 물었다. 암암리에 출근을 막는 경우도 있었다. 산업재해 사건을 담당해온 권동희 공인노무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하청업체나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자들 대상으로도 일종의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최근에는 일용직 대다수가 물류센터로 넘어오면서 산재 처리 경험에 불이익을 주는 관행이 이어져온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도시괴담’처럼 떠돌던 이야기들이 통계수치로 드러났다. 〈시사IN〉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실이 9월24일부터 10월3일까지 실시한 ‘택배 물류센터 노동 실태’ 설문조사 결과를 입수했다. 설문결과에 따르면 상하차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사람(104명) 중 절반 이상(57.7%)이 일하다 다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넘어짐·부딪침·충돌(41.7%), 근골격계 질환(35%), 절단·베임·찔림·끼임(20%) 순서였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응답자는 “상하차 하면서 다치지 않는다는 건 일을 오래 한 베테랑이거나 일을 설렁설렁 한 사람일 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물류센터에서 발생하는 산재사고는 일상적이었다. 그러나 산재보험으로 병원비를 처리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산재보험제도 등 다른 방법을 모르는 사람도 59.5%(25명)였다.

상하차 알바가 ‘현대판 노예’로 불리는 것은 빈번한 산재사고 때문만은 아니다. 김씨는 4년간 일하면서 자신의 근로계약서를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일하다가 중간에 사인하러 가는데 읽을 정신이 어디 있겠어요.” 장철민 의원실의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일했다는 응답자가 60.6%(63명)나 되었다. 근로계약서 사본을 받지 못했다는 사람은 76.9%(79명)에 이르렀다. 야간수당을 받는지, 연장근로에 동의를 했는지, 4대 보험이 적용되는지 등 근로조건을 모른 채 일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였다.

화장실 가지 못해 야외에서 볼일 본다

‘4시간 일하면 30분 휴식’이라는 법정 휴게시간도 먼 나라 이야기다. 하청업체 관리자들은 ‘몇 번 레일(컨베이어벨트), 속도 빠르게’ ‘까만 옷, 딴짓하지 말라’고 윽박지르곤 했다. 설문조사에 응답자들이 남긴 의견 중에는 ‘아웃소싱 업체들의 폭언과 욕설을 견딜 수 없다’는 내용이 다수를 차지했다. 대학생 때 상하차 일을 했던 김도경씨(27)는 “속도가 느려지거나 힘이 빠진 것 같으면 바로 쌍욕이 날아온다. 눈치 보여서 2분도 못 쉬었다”라고 말했다. 화장실을 가지 못해 결국 야외에서 볼일을 본 적도 있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76.9%(80명)였으며, 64.4% (67명)가 안전교육을 받지 않고 일을 한 경험이 있었다.

이동규씨(30·가명)는 택배 물류센터를 “권리 주장도 할 수 없게끔 근무자들을 열악한 사각지대에 밀어넣는 곳”이라고 말한다. 상자를 나르다 엄지손가락 일곱 바늘을 꿰맨 후로 ‘다시는 가지 말아야지’ 생각하다가도 막상 돈이 필요할 때 찾을 수밖에 없었던 곳이다. 상하차 알바는 택배 기사와 건설 현장 노동자처럼 장기간 일하며 조직화된 직군이 아니다. 단기 아르바이트로 이합집산하는 노동의 성격 탓에 매일 깨지고 다쳐도 공식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다. 장철민 의원은 “노동 경험이 짧고, 조직화되지 않은 청년 일용직들은 제대로 된 노동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불나면 119’처럼 ‘일하다 다치면 산재보험’이라는 전 국민적 인식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절대 하지 말라’는 후기가 쏟아지지만 ‘택배 대란’을 잠재울 새로운 인력은 늘 메워지고 있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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