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 PHOTO10월9일 터키 이스탄불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3단계 임상시험 중인 코로나19 백신을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이 나오면 당신은 그 백신을 맞을 것인가? 지독한 팬데믹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인류가 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갖춰야 한다. 코로나19에 걸리지 않고 면역을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은 백신뿐이다. 그런데 왜 기사 첫 문장같이, 굳이 물을 필요가 없어 보이는 질문이 나왔을까?

여기 꽤 의미심장한 설문조사 결과가 하나 있다. 미국 연구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는 지난 5월과 9월 각각 두 번에 걸쳐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을 조사했다. 그 결과 코로나19 백신을 맞겠다고 답한 사람 비율은 5월 조사에서 72%, 9월 조사에서 51%였다. 맞지 않겠다는 답변은 5월에 27%, 9월에 49%였다. 4개월 사이 점차 불어난 ‘코로나19 백신 불신론자’들은 이제 미국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게 되었다(〈그림 1〉 참조).

‘카이저 패밀리 재단’에서 시행한 또 다른 코로나19 설문조사에서 미국인들의 62%는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이 확실히 입증되기 전에 트럼프 행정부가 백신 승인을 압박할까 봐 걱정스럽다”라고 답했다(〈그림 2〉 참조). 물론 이런 미국인들의 인식은 미국의 정치사회적 특수성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백신 헤지턴시(vaccine hesitancy)’라 불리는 백신 거부 현상이 비단 미국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한국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다.

김영택 충남대학교병원 교수는 질병관리청에서 다년간 백신 예방접종 사업을 담당했던 방역 전문가다. 김 교수는 동전의 양면처럼 백신에 과학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이 동시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아픈 환자에게 치료제를 주면 순응도가 거의 100%이다. 그러나 백신은 아직 닥치지 않은 감염에 대비하는 목적이기 때문에 치료제에 비해 순응도가 낮다. 예방접종에서 인구의 절반을 넘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과학적으로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하는 것 못지않게 백신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중요하다.”

치료제는 개인 한 명을 낫게 하지만 백신은 접종자뿐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 보호한다. 백신을 접종한 사람이 인구집단에서 일정 수준 이상에 이르면 감염병 유행이 통제되는데 이것이 바로 흔히 말하는 ‘집단면역’이다. 각국 정부가 예방접종 사업을 벌이며 대규모로 백신을 접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이 잦아드는 집단면역 수준은 인구의 60%라고 알려져 있다.

집단면역 60%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백신 접종률이 60%보다 높아야 한다. 백신의 효과가 완벽하다면 백신을 맞는 사람들이 모두 면역을 획득하겠지만 세상에 그런 백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은 인구의 60% 이상을 목표로 하고, 개발된 백신의 효능이 낮을수록 접종률은 높아져야 한다. 물론 백신만으로 감염병을 통제하는 것은 아니다. 마스크나 손씻기 같은 개인위생 수칙과 치료제 등이 결합되면 집단면역 60%가 형성되기 전에 코로나19를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대규모의 예방접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시사IN〉 제680호 기사 ‘감시망 있다 해도 백신 신뢰는 분명하게’에서는 코로나19 백신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과학적 절차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번 기사에서는 백신 신뢰의 또 다른 한 축인 사회적 신뢰에 대해 다룬다. 이는 과학적 신뢰를 얻는 것보다 더 까다로운 일이다. 백신 승인부터 배송·보관·접종까지 백신을 둘러싼 일련의 제도가 탄탄하게 만들어져야 하고 방역 당국에 대한 신뢰, 정부에 대한 믿음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난 9월 독감 백신 예방접종이 중단되면서 이어진 혼선과 불안에서 우리는 백신의 사회적 속성을 일면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코로나19 백신을 믿고 맞을 수 있을까? 백신이 개인을 넘어 사회의 건강을 지키는 수단이라면 그 준비 또한 사회가 해야 할 몫이다.

■ 제약사들이 “성급히 백신 출시 않겠다”라고 선언한 까닭

미국의 설문조사 결과에서 본 것처럼, 코로나19 백신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졸속으로 개발되고 성급히 승인될지도 모른다는 대중적 불안이 존재한다. 각국의 규제 당국은 코로나19 백신에 대해서는 임상 3상(백신 개발의 마지막 시험 단계)이 완료되기도 전에 ‘긴급사용승인(EUA)’을 내줄 방침이다. 이미 해왔던 절차대로 임상 3상이 끝나기를 기다려 승인한다면, 백신이 나오기까지 최소 2년에서 4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임상 3상이 시행되는 도중에 ‘중간분석’을 통해 허가를 내주는 긴급사용승인 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대신 기준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연말까지 미국에 코로나19 백신이 보급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장담해왔다. 사실상 규제 당국에 백신의 긴급사용승인을 압박한 것이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제약회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백신 개발을 재촉했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백신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자,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9월10일 이례적으로 코로나19 백신 승인과 관련해 성명을 냈다. 성명에 이름을 올린 FDA 고위 공직자 8명은 “우리는 증거에 입각해 결정할 것이다. 우리의 접근방식은 모든 사람이 신뢰할 수 있는 골든 스탠더드(표준규격)였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10월6일 FDA는 코로나19 백신 긴급사용승인에 대한 최종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앞선 성명은 헛된 다짐이 아니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이 승인을 받기 위해선 효능이 50% 이상이어야 하며, 제약사 측은 임상 3상 지원자에게 백신을 접종한 이후 최소 2개월간 그 안전성을 관찰해야 한다. 이후에야 FDA에 승인심사를 신청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백신 임상 3상이 지난 9월부터 시작됐다. 또한 현재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두 차례에 걸쳐 접종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코로나19 백신은 미국 대선(11월3일) 이전에 나오기가 어렵게 되었다.

임상 3상에 들어간 제약회사들은 하나둘씩 임상시험 청사진을 대중에 공개하고 있다. 제약사마다 제각기 ‘중간분석’ 및 ‘승인신청’ 기준을 청사진에 제시하고 있다. 제약회사가 임상시험 도중에 그 방법을 공개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백신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급격히 흔들리는 상황이 제약사들을 비상한 행보로 이끌었다.

앞서 9월 초, 코로나19 백신 개발에서 선두에 선 9개 제약사는 “과학에 충실하며 안전성과 효능이 철저히 검증될 때까지는 백신을 내놓지 않겠다”라는 공동 서약서를 발표했다. 이 서약에는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화이자,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존슨앤드존슨, 머크, 노바백스, 사노피, 바이오엔테크(화이자와 공동개발) 등이 참여했다.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예방의학과 전문의)은 “한쪽이 빨리 내놓으면 다른 쪽도 서두르게 될 수밖에 없다. 백신업계에서도 경쟁이 과열되면 검증 절차가 부실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기 때문에 이런 서약서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다고 해서 국내에 바로 들여올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제약사들로부터 개발 단계의 모든 데이터와 서류를 입수해 독자적으로 백신 승인 여부를 검토한다. 한국 식약처는 아직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긴급사용승인 가이드라인을 정하지 않았다. 백신 심사·허가 과정을 잘 아는 한 전문가는 “우리나라 기준도 미국과 유럽에서 나오는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에서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AP Photo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월12일 플로리다의 대선 유세장에 도착하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 ‘콜드체인’ 모의고사에서 오답노트를 쓰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간한 ‘백신 콜드체인 가이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콜드체인(cold chain)은 백신을 양호한 상태로 보관하는 시스템이다. 콜드체인은 제조부터 접종까지 WHO 권장 온도 범위 내에서 백신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일련의 링크로 구성된다.” 백신의 효능을 유지하고 운송 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변질을 막기 위해서는 백신 콜드체인이 끊김 없이 이어져야 한다. 백신마다 콜드체인에 요구되는 온도가 다른데, 이번에 문제가 되었던 인플루엔자 백신의 경우 적정 온도가 2~8℃였다.

이 범위를 벗어난다고 곧바로 백신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규제 당국의 허가를 받기 위해서 백신 제조사들은 안전성 검사 중 일명 ‘가혹시험’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콜드체인이 지켜지지 않는 환경에서 얼마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시험이다. 이번에 독감 예방접종에 사용된 8개 제약사의 백신은 25℃ 이상에서 최소 14일부터 6개월까지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제품들이다.

질병관리청은 지난 9월 상온에 노출되었던 백신들을 수거해 표본조사를 수행한 결과 인플루엔자 백신의 효능과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10월6일 발표했다. 다만 유통 도중 일시적으로 바닥에 놓았던 물량, 적정 온도 이탈 시간이 800분으로 비교적 긴 물량, 운송 과정에서 온도가 확인되지 않는 물량 등 48만 도스는 수거한 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WHO는 민감성에 따라 백신을 A~F까지 6개 그룹으로 나누는데 인플루엔자 백신은 온도변화를 비교적 잘 견디는 B 그룹에 속한다. 온도변화에 가장 잘 견디는 A 그룹에는 경구용 소아마비 백신이 들어간다. 이런 사정들을 고려하면 독감 백신 유통 중 일어난 콜드체인 사고는 내용 자체로는 그리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심각했다. 방역 당국에서 국가 예방접종에 쓰이는 인플루엔자 백신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많은 사람들이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국가 예방접종이 아닌 유료 백신 접종으로 발길을 돌렸다. 상온에 노출된 백신의 부작용을 우려해 접종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백신에 대한 신뢰는 과학적 증거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사회·심리적 요인 역시 백신 접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백신 접종률이 떨어지면 집단면역이 형성되지 못해 백신이 의도하는 효과를 내지 못한다. 결국 백신의 효능은 백신에 대한 신뢰에 따라 달라진다.

새로 개발되는 코로나19 백신은 WHO 민감도 그룹에서 A에 속할지 F에 속할지 알 수 없다. 다양한 방식으로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고 있기에 백신마다 다르겠지만, 모더나와 화이자에서 개발 중인 RNA 백신은 각각 영하 20℃와 영하 70℃에 달하는 극저온 배송을 필요로 한다. 독감 예방접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이번 콜드체인 사고는 독이지만, 코로나19 백신의 대규모 접종 이전에 국내 콜드체인 유통망을 재정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약이기도 하다.

콜드체인의 연결점은 크게 ‘제약회사 냉장창고→냉장 트럭’ ‘냉장 트럭→냉장 트럭’ ‘냉장 트럭→병원’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눠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일명 ‘차 대 차’라고 불리는 두 번째 단계에서 문제가 생길 위험이 높다고 설명한다. 조사 결과, 이번에도 ‘차 대 차’ 단계에서 인플루엔자 백신이 상온에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11t 냉장 트럭으로 이송한 백신을 전라도 지역에서 1t 트럭으로 옮겨 싣는 도중 야외 주차장 바닥에 내려놓은 것이다.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백신 보관 온도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조사도 있다. 지난해 오명돈 서울대 의대 교수팀은 정부의 의뢰를 받아 ‘국내 생백신 콜드체인 유지관리 현황 및 개선방안’을 조사했다. 연구팀은 보건소 38개소와 의료기관 2200곳을 대상으로 백신 보관 냉장고의 온도를 모니터링했는데, 모니터링 기간 내내 적정 온도(2~8℃)를 유지한 비율은 보건소 38.5%, 의료기관 23.4%에 그쳤다. 1회 정도 적정 온도를 벗어난 곳까지 합치면 보관 상태가 양호한 곳은 보건소 71.8%, 의료기관 48.9%였다.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간 허술했던 부분들이 가시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예방접종을 많이 확대해오면서 백신 제조부터 공급, 보관, 접종까지 전 과정이 부처나 부서별로 나뉘어 있다. 식약처, 질병관리청, 민간 유통업체, 보건소로 업무가 뿔뿔이 흩어져 있다.” 김 교수는 백신 콜드체인에서 일종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러 부처에서 하는 업무들이 하나로 통합돼야 한다. 정부가 민간에서 하는 백신 유통을 모두 떠맡을 수는 없다. 다만 백신 조달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망하고 통합적으로 관리할 단일한 기구가 있어야 한다.”

ⓒ연합뉴스9월22일 세종시의 한 병원에서 인플루엔자 백신 무료접종을 일시 중단한다는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 이상반응 감시체계,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백신은 임상 1상, 2상, 3상에 걸쳐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받은 뒤 출시된다. 백신의 부작용 기준은 치료제보다 훨씬 엄격하다. 건강한 사람에게 예방용으로 투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신도 의약품이니만큼 부작용이 0%일 수는 없다. 제약사들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서 통상적인 임상 3상보다 훨씬 많은 참가자를 동원하고 있다. 다른 의약품 개발에선 통상적으로 수천 명에 불과했던 참가자 수를 3만명 규모까지 확대했다. 문제는 이렇게 해도 확인되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100만명 중에 한 명꼴로 생기는 어떤 부작용이 있다고 하자. 이런 부작용은 임상 3상에서 걸러내기 어렵다. 물론 아주 드문 부작용이다. 그런데 2000만명이 예방접종을 한다고 하면 통계적으로 20명에게 그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백신의 안전성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지만,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래서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 감시체계’가 중요하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지만 정부가 이상반응 모니터링을 하고 있으니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야 시민들이 안심하고 백신을 맞을 것이다.”

백신 접종 후 나타나는 이상반응은 공중보건 분야에서 ‘AEFI(Adverse Event Following Immunization)’라고 불린다. AEFI를 감시하는 시스템은 예방접종 사업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국내에도 국가 예방접종에 대해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 감시체계’가 마련되어 있다. ‘질병관리청 예방접종도우미’ 홈페이지를 통해 백신 부작용으로 의심되는 이상반응을 직접 신고할 수 있다. 중증의 이상반응 신고가 들어오면 보건 당국은 백신과 이상반응 사이에 연관성을 찾는 역학조사를 시행하고, 인과관계가 확인되면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예방접종 피해 국가보상제도’를 시행한다.

김명희 상임연구원은 코로나19 백신이 도입돼 예방접종에 들어가면 이상반응 신고 기준을 지금보다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20년 동안 썼던 홍역 백신과 달리 코로나19 백신은 새로 나온 것이다. 백신을 맞으면 미열이 나고 몸이 찌뿌둥한 건 흔한 증상이지만 코로나19 백신은 이런 작은 증상까지도 유심히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혹시라도 문제가 발견되면 즉각 접종을 중단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국내에서 돌아가는 이상반응 감시체계로 이처럼 면밀한 모니터링을 할 수 있을까. 김홍빈 교수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백신 역학조사는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해야 하고 인력도 여럿 필요하다. 역학조사관이 조사한 결과를 이상반응위원회에 올리면 위원회의 전문가들이 이를 검토한 뒤 ‘이 증상은 백신과 인과관계가 있다’ 혹은 ‘인과관계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관련이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 같은 식으로 분류한다. 코로나19 역학조사와 비교해도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역학조사관들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일만으로도 바쁘지 않은가.”

김영택 충남대병원 교수 역시 지금의 체계만으로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을 체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에 대해 우리는 완벽하게 알지 못한다. 이를 ‘지식격차(knowledge gap)’라고 한다. 이런 지식격차로 인해 코로나19 백신의 경우엔 이상반응 신고가 더 빈번하게 들어올 것이다.” 오랫동안 예방접종을 시행해온 백신들은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나름 예상할 수 있다. 예방접종도우미 사이트에도 백신별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 안내되어 있다. 코로나19 백신도 임상시험 단계에서 일정 부분 부작용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전부를 알 수는 없다. 김영택 교수는 이어서 말했다. “코로나19 백신은 거의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접종해야 한다. ‘지식격차’와 ‘높은 접종률’이 맞물리면, 이상반응 신고가 폭증할 수 있다. 지금 인력과 자원과 시스템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백신 예방접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 주도로 움직이는 사업이다. 정부가 검증된 역량을 보여주어야 국민들이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9월11일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

■ 방역 신뢰에서 백신 신뢰로

제도적 준비를 단단히 해도 빈틈은 남는다. 국제 공중보건 분야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백신 헤지턴시’는 잘못된 정보에 근거해 퍼지는 음모론이나 가짜뉴스에 기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5년 미국에서 벌어진 홍역 백신 반대운동은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의학 논문이 발단이었다. 이후 이 논문의 데이터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예방접종이 자폐를 불러온다는 부모들의 의심은 멈추지 않았다. 국내에도 인공적인 약품은 모두 몸에 나쁘다는 맹신에 사로잡혀 백신을 거부하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혁민 신촌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백신 헤지턴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학이나 과학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심리나 정치적인 신뢰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라고 말했다.

다시 〈그림 2〉(43쪽)로 돌아가 보자. 미국인들은 전반적으로 안전성과 효과가 입증되기 전에 코로나19 백신이 승인될까 봐 염려했다. 그런데 이 결과가 지지 정당에 따라 크게 갈린다. 민주당 지지자의 86%는 걱정스럽다고 답했지만,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는 35%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공화당 지지자의 65%는 트럼프 행정부가 백신 승인을 압박하리라고 보지 않았다. 코로나19 유행 국면에서 방역에 대한 태도는 미국 내 첨예한 정치쟁점이었다. 이러한 갈등과 불신이 코로나19 백신 신뢰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방역 당국에 대한 높은 신뢰는 한국이 가진 자산이다. 2020년 〈시사IN〉 신뢰도 조사에서 질병관리청은 10점 만점에 7.39점을 얻었다. 한국 사회의 공적 기관 가운데 가장 높은 신뢰도다. 이는 〈시사IN〉이 13년간 창간기념호마다 시행했던 모든 조사를 통틀어 가장 높은 점수다. 정치 성향에 따라 점수가 달랐지만 가장 낮은 보수층에서도 6.74점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 첫해인 2017년과 2013년 각각 6.67점과 6.59점을 받았던 것에 비춰보면 질병관리청에 대한 신뢰도는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뢰는 몹시 깨지기 쉬운 자원이다. 지난 8월 광화문 집회에서 한국 사회에도 방역 자체를 불신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백신 예방접종은 매우 고도화된 제도적 대비와 이행을 필요로 한다. 지난 8개월 동안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던 방역 당국도 독감 백신 유통과정에서 허점을 노출했다. 코로나19 백신은 이보다 난도 높은 과제가 될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을 접종시키고,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 신뢰가 쌓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한순간에 추락할 수 있다. 방역에서 쌓은 높은 신뢰를 코로나19 백신이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단단한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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