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앉아서 갈 것인가? 지하철 교통약자석은 상징적인 자리다. 1980년 등장한 노약자석은 2005년부터 임산부·장애인·아동 등을 폭넓게 배려하는 교통약자석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지금도 ‘교통 약자’들을 향해 “비키라”며 폭언을 하는 노인들의 사례가 종종 도시 괴담처럼 떠돈다. 관련 민원도 매해 100건 이상 나온다. 젊은이들이 무임승차 대상인 65세 이상 노인 전반에 대해 편견을 가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전국의 도시철도(지하철) 운영기관들은 2010년대 초반부터 노인의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을 국비로 보전해달라고 요청해왔다. 손실이 최근 4년 동안 연평균 5814억원에 이르러 경영 여건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대안은 경로우대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높이는 것이다. 정부도 지난 8월, 경로우대 연령 65세의 상향 조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반기엔 ‘경로우대 개선 TF’를 만들어 제도개선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런 방안까지 나오는 이유가 어쩌다 한 번씩 교통약자석 주변에서 벌어지는 민망한 승강이 때문은 아니다. 지난 십수 년 동안 급변한 한국의 인구구조를 기존 도시철도 운영 시스템이 지탱하기 힘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임승차 혜택을 받는 65세 이상 노인의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도시철도 운영기관들은 수지를 맞추지 못하게 됐다. 도시철도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비틀거리고 있다.

경로우대 제도의 ‘노인 기준 연령’은 65세다.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을 근거로 1982년부터 철도와 지하철 요금을 절반으로 할인해줬다. 65세 이상 인구가 약 4%였던 시절이다. 지금은 전체 인구의 15.7%다. 지하철과 국공립 박물관, 미술관, 고궁 등이 무료다. 기차는 주중 기준으로 승차비의 30%를 깎아준다. 이 같은 제도의 기원은, 독일이 최초로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하며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를 65세로 정한 1889년이다. 1950년 유엔이 고령 지표를 만들며 이 사례를 참고했다.

지난 40년간 한국의 인구구조는 급격히 변해왔다. 1970년 평균수명은 61.9세로 환갑과 고희는 집안의 경사였다. 더는 그렇지 않다. 2018년 기준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2.7세다. 2000년에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한국은 2018년의 ‘고령사회’를 지나 2025년 ‘초고령사회’로 진입을 앞두고 있다(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넘으면 고령사회, 20%를 넘어가면 초고령사회로 규정한다. 〈그림 1〉 참조).

장래인구특별추계(2017~2067년)를 보면 15~64세인 생산가능인구의 비율이 2020년 총인구의 72.1%에서 2040년 56.3%, 2060년 48%로 급격히 줄어들 전망이다. 반면 노인 부양비(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부양해야 하는 65세 이상 노인의 수)는 현재 21.7명에서 2040년 60.1명, 2060년 91.4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한다(〈그림 2·3〉 참조).

‘노인’이 1700만명에 이르는 사회

특히 올해(2020년)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시작인 1955년생이 65세에 접어드는 시기다. 1955~1963년생인 1차 베이비부머는 727만명 이상으로 현재의 65세 이상 전체 고령 집단과 비슷한 규모다. 13년 뒤에는 2차 베이비부머(1968~1974년생) 635만여 명이 ‘노인’ 집단에 합류한다. 1, 2차 베이비부머 사이의 출생자들까지 합치면 ‘노인’ 집단이 약 1700만명에 이르게 된다. 지금의 50·60 세대다.

이와 함께 복지예산 부담도 대폭 늘어난다. 지난 3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발표한 ‘현 정부의 노인정책이 재정건전성과 국가부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올해 노인복지 예산은 약 16조5000억원인데, 지금 같은 추세가 계속될 경우 2029년에는 지금의 두 배쯤인 30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 기준 연령을 올리는 것이 단지 교통 복지의 문제만은 아니다. 현재 ‘직장에서 노인 기준 연령(=법률적 정년)’은 60세다. 이후부터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에 지원할 수 있다. 2020년 현재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는 62세이지만 5년마다 1세씩 올라가 2033년부터는 65세가 되어야 국민연금을 받게 된다.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 대상의 범위는 지금도 65세 이상이다. 2차 베이비부머가 노인이 되는 2033년부터는, 60세에 퇴직해서 소득이 끊기는데, 5년 뒤부터야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5년을 ‘소득절벽’으로 표현할 수 있다.

법률적 정년을 올리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 당장 젊은 세대의 일자리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이처럼 노인 기준 연령은 직장의 법적 정년, 연금제도, 일자리, 세대갈등 같은 여러 가지 첨예한 이슈가 연동된 문제다. 미래 한국 사회의 윤곽을 결정짓는 일이기도 하다.

최근 법정 노인 연령을 높이자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처음은 아니다. 2015년에는 대한노인회가 노인 연령 기준을 65세에서 70세로 올리는 안건(65~69세가 ‘노인’으로 누리던 복지 혜택을 포기한다는 것)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바 있다. 노인회는 “정년이 늦춰지고 평균수명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노인들이 젊은 세대와 상생을 하겠다고 결심을 했다”라고 밝혔다. 그해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44년 적자로 전환되고 2060년엔 기금 고갈이 예상됐다. 연금 개혁의 필요성이 강조된 시기였다. 이로부터 5년 뒤인 지난 9월 발표된 ‘2020~2060년 장기재정전망’을 보면 국민연금 적립금의 고갈 시기는 2056년이다. 그사이 4년이나 앞당겨졌다. 정부는 ‘제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세워 노인 연령 올리기를 중장기 과제로 설정했다.

ⓒ시사IN 조남진10월7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모습. 노약자석이 텅 비어 있다.

사회적 변동이 제도 변경으로 공식화되는 주요 계기 중 하나는 사법부의 이례적인 판결이다. 그런 판결이 지난해 나왔다. 2015년 수영장에서 4세 어린이가 익사 사고로 숨졌다. 유족은 수영장 운영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그 아이가 살아 있다면 몇 살까지 일해서 소득을 벌었을까’라는 질문에 먼저 대답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의 사망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산정할 수 있다. 당시 재판부는 “일반 육체노동에 종사할 수 있는 연한은 보통 60세가 될 때까지로 하는 것이 경험칙”이라는 기존 관행을 깨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만 60세를 넘어 만 65세까지도 가동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합당하다”라고 판단했다.

사망하거나 노동력을 잃은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계산할 때 기준이 되는 육체노동자의 ‘노동 가동연한’을 기존 60세에서 65세로 올려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노동 가동연한이 60세였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나고 경제규모도 커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노인’의 의미는 ‘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노동 가동연한을 65세로 올린 대법원 판결은 법률적 차원에서 노인의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올린 것과 마찬가지다. 대법원의 이 같은 판단은 이후 다른 판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보다 앞서 고령화사회를 맞이한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직장에서의 정년을 높이는 대응이 눈에 띈다. 고령화사회에 대처하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특징을 분석한 책 〈젊은 노인의 탄생〉에 따르면 초고령 국가인 일본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정년을 연장했다. 미즈호 은행, 혼다, 산토리홀딩스 등은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높였다. 도요타는 정년은 그대로 둔 채 5년간 더 일할 수 있게 했다. 현재는 정년 70세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독일은 현행 65세인 정년을 순차적으로 올려서 2029년에는 67세로 맞추기로 했다. 독일 중앙은행은 정년을 69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은 정년 자체가 연령 차별에 해당된다며 폐지했다. 정년을 연장하거나 폐지함으로써 경제활동이 가능한 생산가능인구를 늘리는 전략이다.

‘젊은 노인’은 무엇이 다른가

한국의 여건과는 거리가 있다. 한국의 직장인들은 대다수가 법정 정년보다 일찍 퇴직하고 재취업에 나선다. 2019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직장인은 평균 49.5세에 퇴직한다. 한국 50대 이상의 노후 준비 방법은 주로 국민연금이다(〈그림 4〉 참조). 은퇴는 빠르고 국민연금 지급 시기는 점점 늦춰지고 있어서 ‘소득절벽’ 기간도 길어지는 추세다. 재취업하는 60대가 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60세 이상 경제활동인구는 2000년 199만1000명에서 2010년 281만8000명, 2019년은 486만7000명으로 9년 새 2배 이상 늘었다(〈그림 5〉 참조). 노인들이 일하는 이유는 대부분 생계비 마련(73%) 때문이다. 이후 용돈 마련(11.5%), 건강 유지(6%), 시간 보내기(5.8%) 등의 순서다(〈그림 6〉 참조). 한국의 노인 빈곤율도 2018년 기준 45.7%로 OECD 평균(12.9%)의 3배가 넘는다.

노인 기준 연령을 올린다는 것은,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던 65~69세 노인이 요금을 내야 한다는 의미다. 노인복지의 축소다. 당사자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노인 기준 연령을 올리려면 정년 연장 같은 대안을 함께 꺼내야 한다. 기준 연령을 70세로 올리는 경우,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들어가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전제가 필요한데, 이에 대한 선결적 논의는 없는 상태다. 연령을 늘리면 생산가능인구는 늘어나겠지만, 일자리가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 노후의 격차가 더 커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문제는 일자리다. 전문가들은 특히 50·60의 일자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반드시 정년 연장으로 유지되는 일자리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생애 동안 주로 종사해온 일자리와 다른 성격의 일자리도 가능하다. 이때 베이비부머 세대의 특성이 강조된다. 교육수준, 건강상태, 경제적 여건 등 여러 면에서 이전의 노인 세대와 다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고도의 성장기를 겪으며 사회적 성취를 이룬 집단이라는 점에서 ‘부양의 대상’이 아니라 ‘자립의 주체’로 보는 시선도 감지된다. 정부 정책 관련 문건에서도 50·60은 ‘중장년’ ‘신중년’ ‘장년’ ‘예비 노년세대’ 등 다양한 용어로 호명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20년의 세계경제 대전망’에서 각국의 베이비부머를 욜드(Young Old)라고 부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젊은 노인’이다.

이 50·60 세대의 특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휘하게 만들 수 있다면, 미래에 예상되는 공적 지출이 비관적일 정도로 부풀려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젊은 노인들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면, 복지 부담 역시 그만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와 달리 베이비부머는 노인이 되어도 “취업이나 소득 활동은 물론 새로운 학습을 통해 자기실현도 가능한 세대”라고 보기 때문이다. “베이비부머들이 노후 부담을 어느 정도 자기 세대 내에서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다면 후세대의 부양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최근 일자리를 둘러싸고 불거지는 세대 간 갈등을 세대 간 타협으로 반전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26~29쪽 기사 참조).

ⓒ연합뉴스새로운 50·60 세대는 주로 종사해온 일자리와 다른 성격의 일자리를 얻는 게 가능하다.

‘젊은 노인’이 될 세대의 일자리를 위해 고용노동부는 재취업 지원 서비스와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50~64세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사회공헌 일자리 등을 제공하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도 있다. 경기도는 최근 중장년 일자리 지원센터를 설치해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젊은 노인’이 65세 이상이 되어도, 원하면 일할 수 있는 ‘노동의 라이프사이클’도 필요하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연성(軟性) 일자리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한다. 노동시장에서 경쟁에 노출되는 힘든 일이 ‘경성(硬性) 일자리’인 반면, 지역공동체 유지에 필요하지만 젊은이들은 종사하지 않으려 하는 ‘연성 일자리’도 있다. 마을 문화시설의 운영, 세대별 대화가 오가는 프로그램 주관, 노인 서로 돌봄, 마을 관리 자원봉사 등이다. 오 위원장은 “지역사회 공동체를 복원시켜 고령에 적합한 사회적 역할을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평균 퇴직 연령에서 평균수명까지 약 30년이다. 노인의 평균은 그 사이 어디쯤일까. 노인임을 자각하게 되는 시기는 개인마다 다르다. 정부는 노인 연령 상향 조정 논의의 근거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7년 노인실태조사’ 결과를 들었다.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가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연령은 평균 71.4세다. 이들 중 86.2%는 70세 이상을, 12.1%는 80세 이상을 노인의 기준이 되는 나이로 인식하고 있다. 법정 노인 연령이되 노인이라고 자각하지 않는 ‘젊은 노인’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노인 연령 상향 논의는 지하철 교통약자석처럼 누가 앉아서 갈지를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해야 같이 타고 갈 수 있을지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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