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꼴42에콜42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코딩)을 하고 팀을 짜 서로에게 배운다.

2016년 ‘알파고 충격’으로 인공지능(AI)이라는 단어가 대중 앞에 훅 던져졌다. 먼 미래의 일이 바로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느낌이었다. 그 후 4년이 지났다. 누구나 AI 시대를 말하지만, 정작 이를 구현할 소프트웨어(SW) 개발자는 부족하다. 이런 인력난을 타개하기 위해 AI·SW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할 때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기관이 있다. 바로 프랑스의 비영리 정보기술(IT) 교육기관 에콜42(Ecole42)다.

에콜42는 2013년에 설립되었다. 프랑스의 이동통신회사 ‘프리(Free)’의 그자비에 니엘 회장이 사재를 털어 설립했다. 프랑스도 한국처럼 AI·SW 인력난을 겪었다. IT 인력 양성에 관심이 많았던 그자비에 니엘 회장이 공동창립자 니콜라 사디라크에게 의뢰해 에콜42를 만들었다.

에콜42는 매년 학생(18~30세) 1000명가량을 선발한다. 선발 과정으로 온라인 테스트와 1개월 동안의 집중 교육기간을 거친다. 이 한 달 동안을 ‘수영장(La Piscine)’이라고 부른다. 이 기간에 학생들은 곧장 실습에 돌입하게 되는데, 공동창립자 니콜라 사디라크는 ‘누가 가라앉고 누가 수영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수영장’을 통과한 학생은 3년 동안 에콜42에서 스스로 공부하게 된다.

에콜42에는 없는 게 많다. 교수가 없고, 교재가 없다. 학비도 없다. 이 학교를 마친다고 해서 학위가 주어지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공부’를 어떻게 할까? 학생에게 과제가 주어지고, 학생들은 팀을 짜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를 평가한다. ‘동료 학습’ 방식이다. 이 과제를 마치고 나면 좀 더 어려운 프로젝트를 받게 된다.

독특한 교육 방식으로 이 학교는 설립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니콜라 사디라크 에콜42 초대 교장은 “초창기에 많은 사람들이 에콜42의 교육 방식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라고 말했다. IT 분야의 취업을 원하는 학생은 100%에 가깝게 취업하고, 이곳을 졸업한 이들이 만든 여러 스타트업이 꽤 성공을 거두면서 에콜42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에콜42에서 42는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따왔다.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답은 42다’라는 대목에서 따왔다. “우리의 새로운 가치를 담은 이름을 원했기 때문에, 학교 이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니콜라 사디라크)라고 한다. 이 낯선 이름을 이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한국 등 여러 나라에 에콜42의 교육 방식을 차용한 협력 교육기관이 20여 군데 생겼다.

〈시사IN〉은 에콜42의 교육 모델을 설계한 에콜42 공동창립자 니콜라 사디라크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사디라크는 2018년에 에콜42를 떠나, 현재는 에콜42 교육과정과 유사한 새 프로젝트 ‘존 01’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10월19일에 열리는 〈시사IN〉 온라인 포럼 ‘팬데믹 시대, 인공지능(AI)과 교육’에 발제자로 참여한다.

IT 교육기관 ‘에콜42’를 공동 설립하고 초대 교장으로 일했다. 에콜42를 설립하게 된 과정은?

에콜42는 현대식 IT·코딩 교육기관이다. 교수가 없다. 대신 ‘동료 학습’(peer-to-peer learning)으로 이뤄지고,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창의적 인재로 거듭난다.

사실 나는 IT가 아니라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사이버보안 업계에 종사하던 중에 ‘고객’은 넘쳐나는데 인재가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 후 프랑스에 있는 컴퓨터과학·소프트웨어공학 사립대학교 에피타(EPITA)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교육 방식을 고안해 에피텍(EPITECH)이라는 특수목적 대학원을 설립했다. 대학원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전부 부유한 가정의 자녀였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과도 똑같이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가난한 학생도 교육받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그래서 고교 자퇴생 50명과 함께 커리큘럼을 시작했다. 그 결과 졸업생 전부가 컴퓨터공학 4년제 학사학위를 취득한 학생들과 같은 수준의 일자리를 얻는 데 성공했다. 그자비에 니엘 회장이 이 소식을 접하고 연락해왔다. 그는 더 많은 학생에게 같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렇게 에콜42가 탄생했다.

에콜42에는 ‘수영장’이라는 독특한 입학 과정이 있는데, 왜 그런 선발 과정을 두었나?

수영장(La piscine) 테스트는 사실 시험이라고 볼 수 없다. 학생들은 곧장 실습에 돌입하게 되고, 결국 누가 가라앉고 누가 수영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선발 인원은 1000명인데, 신청 인원은 10만명에 이른다. 그래서 먼저 온라인으로 논리력과 수리력 테스트를 진행해 일정 인원을 선발한다. (선발 과정의) 인터뷰에서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좋은 면만 보여주기 때문에, 평소 모습을 살펴봐야 한다. 수영장 테스트를 한 달 동안 진행하면서 ‘완전히 전념하는 학생, 도전 정신을 갖춘 학생’을 파악한다. 선발된 인원 중 97%가 3년 과정을 완수하는 걸 보면, 선발 과정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완수하지 못한 학생도 교육과정을 따라가지 못해서가 아니라, 가정 상황과 같은 외부 요인 때문에 중도에 그만두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에콜42 학교 사진을 보니 건물 곳곳에 예술 작품이 걸려 있는 게 인상적이다.

에콜42는 기존 교육기관과 다르다. 우리 학생들은 기술자보다는 아티스트에 가깝다고 믿는다. (에콜42 과정을 마치면) 증서를 수여받지만 공식 학위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역량을 갖추었는지 증명해준다. 이 증서가 학생들의 성과를 보여준다. 에콜42는 최고의 IT 기업인들에게 인정받기 때문에 업계에서 증서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에콜42는 교육과정에서 ‘협력’을 강조하므로 실제 기업 현장에서는 더욱 역량을 발휘한다.

에콜42는 학비가 없다. 에콜42를 만들기 전 ‘교육 불평등’ 문제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것으로 안다.

교육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많다. 우리는 전통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너무 자주 사람을 배척한다. 기존 방식으로 교육했는데,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보는 거다. 하지만 기존 제도의 수혜자는 대다수의 경우 부유층이다. 또 그렇게 힘을 갖게 된 부유층은 더욱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제도를 바꾼다. 그런데 최상위 계층이 아니지만 뛰어난 인재들이 정말 많다. 나는 이런 인재를 살리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AI 시대에는 ‘교육의 불평등 문제’나 ‘교육 격차’ 문제가 더 심화될 것으로 보는가, 아니면 AI로 인해 이러한 교육 격차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더 커질 것으로 보는가?

인공지능(AI)은 불평등을 해소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다만 풀어야 할 여러 숙제가 있다. 프랑스만 해도 OECD 국가 중에서 사회 이동성(social mobility)이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따라서 AI 교육 방식이 관건이다. 부유층에게 유리한 기존 교육 방식을 고수한다면, 부익부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사회의) 비주류도 AI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창의적 교육 방식이 필요하다. 다양한 계층이 AI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반드시 노력해야 한다.

ⓒ에꼴42니콜라 사디라크 에콜42 초대 교장은 “15년 안에 인재 100만명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학생들끼리 서로 협력하면서 배우는 과정의 장점은 무엇인가? 예전 인터뷰에서 ‘마라톤 효과’라는 표현을 썼던데.

우리는 혼자 연습할 때보다 여럿이 마라톤을 뛸 때 가장 좋은 성적을 내곤 한다. 마라톤을 하면서 군중으로부터 힘을 얻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팬데믹 시대에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비대면 교육’을 많이 하고 있다. 이런 환경이 컴퓨터공학 분야의 교육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가령 당신은 학생 상호 간의 협력을 강조했는데, ‘협력’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될 수도 있는데….

현재 효율성은 조금 떨어졌지만, 협력은 여전히 가능하다. 교육에는 당근과 채찍 두 가지가 있다. 나는 ‘당근 교육법’을 선호한다. 우리는 인정받고 지지받는다고 느낄 때 학습능력이 향상되며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런데 전통적 교육 방식은 두려움을 이용한다.

코로나19로 불안하기 때문에 ‘지지받는다’고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유연하게 적응할 줄 알고, 이미 적응한 부분도 있다. 우리가 어떻게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있나? 한 번도 본 적 없고 만난 적도 없는 전 세계 사람들과 게임을 즐기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다. 또한 코로나19는 영원하지 않다.

2018년 에콜42를 그만두고 새 프로젝트 ‘존 01(ZONE 01)’을 준비하고 있다. 에콜42와는 어떤 점이 다른가?

내 목표는 15년 안에 인재 100만명을 양성하는 것이다. 존 01(Zone 01)은 먼저 학생을 선발하여 교육비를 지원해주고, 후에 학생이 취업하면 소득의 일정 부분을 돌려받는 식으로 운영비를 충당하려 한다. 교육 일정은 에콜42보다 느슨하며 유연하다.

카자흐스탄에 첫 번째 존 01 기관을 세웠던데, 왜 카자흐스탄인가?

카자흐스탄은 ‘존 01’ 프로젝트에 즉각적으로 응해주었고 덕분에 함께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올해 12월에 두 번째 ‘존 01’이 카자흐스탄에 설립된다.

이후 존 01을 아프리카에 집중적으로 세울 계획이라고 하던데 그 이유는?

2050년이 되면 아프리카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다. 세계 인재의 절반이 아프리카에 있다는 뜻이다. 아프리카는 현재 IT 발전이 더딘 편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IT 분야의 발전을 가속화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아프리카는 IT 중심지(tech hub)가 될 수 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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