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타이 시위대가 8월16일 방콕의 민주주의 기념비 앞에서 정치와 군주제의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9월19일, 방콕 왕궁 인근의 사남루앙 광장에 시위대 수만 명이 모였다. 2014년 쁘라윳 짠오차 당시 육군 참모총장(현 타이 총리)이 일으킨 쿠데타 이후 6년 만에 열린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이들은 검지, 중지, 약지 세 손가락을 하늘 위로 치켜든다. 독재에 맞선 혁명을 그린 영화 〈헝거 게임〉의 ‘세 손가락 인사’를 차용한 것이다. 2014년 개봉 당시 일부 지역에서 상영 취소가 된 이후 반정부 시위대의 상징이 되었다. 이날 광장에는 ‘우리는 진짜 민주주의를 원한다’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이미 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타이에서 민주화 시위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1932년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바뀐 이후 타이에서는 90여 년간 쿠데타가 19번이나 발생했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마다 군부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시사IN〉 제141호 ‘트위터로 무장한 레드셔츠,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기사 참조). 그러나 2014년 5월22일 쿠데타 이후부터 침묵의 시기가 찾아왔다.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이끄는 군사정부하에서 사실상 집회의 자유가 사라졌다. 시위대는 6년 동안 군부독재의 억압 아래 살아왔다고 말한다. 의회 해산, 헌법 개정, 정치적 탄압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정부의 존재 이유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이번 시위는 타이 역사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9월19일 시위에 참가한 네띠윗 초띠팟파이산 씨(24)는 이렇게 말했다. 타이 쭐랄롱꼰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는 학생이자 군사정권에 반대해온 운동가다. 그는 열여덟 살이던 2014년, 징병제 국가인 타이에서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했다. “그들은 비판을 금지하고, 학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며, 학생운동가를 심문했다. 국가주의와 군대에 대한 존경심을 고취하기 위해 교과서를 통제했다(초띠팟파이산의 병역거부 선언문 중).” 이후로도 학생에게 강요되는 애국가 제창, ‘와이 크루(스승의날에 학생들이 교사 앞에 무릎을 꿇고 꽃을 바치는 행사)’를 거부하고 비판했다.

이번 시위를 주도하는 이들도 초띠팟파이산과 같은 10·20 젊은 세대다. 트위터 해시태그를 통해 광장에 모인 이들은 의회를 넘어 군주제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왕권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타이에서 왕실을 겨냥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왕을 모욕한 이들은 왕실모독법에 따라 최대 15년형의 엄벌에 처할 수 있다. 왜 타이의 학생들은 형사처벌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오게 되었을까. 군부독재 아래 타이 청년들의 정치참여는 어떻게 움트고 있을까. 중화권 민주 인권운동가들로 구성된 연구 단체 ‘다이얼로그 차이나’의 한국대표부를 통해 초띠팟파이산 씨와 연락이 닿았다. 그와 와츠앱 메신저를 통해 이번 시위의 의미와 현지 사정을 물었다.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한 지 6년이 지났다. 그동안 처벌이 있었나?

아직까지 처벌받지는 않았다. 군복무를 연기할 수 있는 최대 나이가 26세라서다. 26세가 되면 군대 대신 감옥에 2년간 가게 될 것이다. 6년이 지났지만 나는 타이에서 병역을 거부한 유일한 사람이다. 그만큼 타이의 교육과 정치는 ‘다른 생각’을 가지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세뇌시킨다. 국왕과 군사정권을 두려워하고 복종하도록 말이다. 실제로 군대에서 많은 청년들이 죽어 나가지만 군사정권은 인권에 대해 일말의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타이 시위는 현재 어떻게 전개되고 있나?

3월부터 시작된 시위가 8월 들어 점차 규모가 커졌다. 오늘(9월19일) 시위는 우리가 본 것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정부는 시위를 제압하기 위해 반정부 인사들을 계속 체포하고 있다. 두렵지는 않다. 이제는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자유가 억압받는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광장에 모인 인파가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가 시작된 계기는 무엇인가?

14년 전 오늘(9월19일)은 군사쿠데타가 발생한 날이기도 하다(2006년에 발생한 18번째 쿠데타. 당시 민간 정부를 이끌던 탁신 친나왓 총리가 축출되고 군사정부가 집권했다). 그 쿠데타 이후 타이 민주주의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번 시위는 해마다 쌓여왔던 정부에 대한 불신이 결국 임계점에 다다른 것으로 봐야 한다. 지난 2월21일 타이 헌법재판소가 신생 개혁 정당인 미래전진당(퓨처포워드당) 해산 결정을 내린 것이 시위의 첫 도화선이었다(〈시사IN〉 제642호 “‘사법 쿠데타’에 술렁이는 방콕 거리” 기사 참조).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2016년 개헌을 통해 군부 통치를 현실화했고 이를 바탕으로 연임에 성공한다. 군정이 임명한 판사들로 구성된 헌재의 이번 결정을 두고 현 정권의 정치적 탄압이라고 보는 이유다. 2014년 쿠데타 발발 뒤 캄보디아로 도피한 반정부 인사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지난 6월 국제인권단체에 의해 알려지면서 시위에 기름을 부었다.

초띠팟파이산 씨는 2018년 반정부 시위를 계획했다는 혐의로 타이 검찰로부터 기소되었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될 경우, 5년 이상 징역형에 처해진다. 그는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이끄는 군사정부가 “국가를 비판하는 이들을 끊임없이 탄압하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타이는 계급사회 경향이 강하다. ‘하이쏘’로 불리는 사회적 부유층의 존재가 공고하고, 이들에 대한 특권과 편의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번 반정부 시위의 또 다른 도화선이 된 사건도 ‘부유층 자제’로부터 불거졌다. 2012년 세계적인 스포츠 음료 브랜드인 ‘레드불’ 창업주의 손자 워라윳 유위타야가 일으킨 음주 뺑소니 사건이 타이 청년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당시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순찰 중이던 경찰관을 치어 숨지게 한 뒤 그대로 도주해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처벌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타이 검찰은 끝내 그에 대해 불기소를 결정했다.

‘레드불’ 창업주 손자의 음주 뺑소니 사건도 시위 확대에 영향을 미쳤나?

그렇다. 부패한 권력의 모습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지난 7월, ‘레드불’ 창업주 손자인 워라윳 유위타야가 일으킨 뺑소니 사건에 대해 검찰이 8년 만에 최종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재벌가 손자의 범행에 대해 면죄부를 준 정황이 밝혀지면서 시민들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었다(워라윳에 대한 검찰 불기소로 인해 시위 움직임이 격화되고 ‘유전무죄’ 비난이 일자, 타이 검찰 특별조사위원회는 8월10일 그에 대한 코카인 복용 혐의 부분만 따로 분리해 재수사 지시를 내렸다).

10·20대 학생들이 시위의 주축으로 등장하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양상인데 이렇게 된 데는 어떤 이유가 있나?

타이의 젊은 세대는 경제적 불안정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정치적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사람들의 분노를 모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코로나19로 고통을 겪는 와중에 정치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뉴스를 보면 어떻겠나. 젊은 세대들은 누구보다 재빨리 트위터를 통해 상황을 공유하고 의견을 모았다. 트위터의 익명성과 해시태그 기능이 반정부 시위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에 용이했다.

ⓒEPA타이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네띠윗 초띠팟파이산.

구체적으로 어떤 해시태그를 공유하나?

타이 학생들은 ‘보이콧 레드불(#Boy cottREDbull)’ ‘지금 타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WhatsHappeninginThailand)’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우리의 상황을 온라인에 알리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마하 와치랄롱꼰 타이 국왕이 코로나19를 피해 독일의 호텔에 머무르고 있다는 내용이 외신 보도로 알려졌을 때 트위터에는 ‘우리에게 왜 왕이 필요한가(#WhyDoWeNeedaKing)’라는 해시태그가 확대됐다.

타이에서 왕에 대한 비판은 금기시되고 있다. 왕실은 어떻게 신뢰를 잃었나?

코로나19로 사람들이 고통받는데 정부나 국왕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신뢰를 잃었다. 국민들은 국왕을 위해 많은 세금을 내지만 국왕은 코로나19가 발생하는 와중에 외국에 나가 있었다. 국민을 보호하지도, 상황을 해결하려 하지도 않았다. 비단 이번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군사정권의 폐단을 왕실이 묵인하고 방조하면서 이미 많은 학생들이 군주제에 의문을 품고 있다. 중장년층들은 군주제 개혁이라는 구호에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지지하고 있다.

초띠팟파이산 씨는 9월 초 영화 〈뮬란〉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트윗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밀크티 동맹(#MilkTeaAlliance)’이라는 해시태그가 함께 붙은 이 트윗은 9월22일 기준 5만3600회 리트윗될 만큼 타이와 세계 곳곳에서 호응을 얻었다. 밀크티 동맹은 홍콩, 타이완, 타이를 중심으로 확산 중인 새로운 연대의 모습이다. 이들 국가가 밀크티를 즐겨 먹는다는 공통점에서 따온 이름이다. 영화 〈뮬란〉을 보이콧하거나 중국의 메콩강 댐 건설을 비판하기도 하고, 타이 반정부 시위에 대해 응원과 지지의 메시지를 보낸다. 홍콩 우산혁명의 주역인 조슈아 웡은 ‘다이얼로그 차이나 한국대표부’를 통해 “네띠윗은 2016년 방콕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되었을 때 나를 도와줬던 고마운 친구”라고 전했다. 둘은 1996년생 동갑내기다.

타이에서 영화 〈뮬란〉 보이콧 운동을 직접 펼치고 있는데.

홍콩의 시위를 보며 나를 포함한 타이의 많은 젊은 층이 영향을 크게 받았다. ‘타이도 홍콩처럼 무너지고 있는데 우리는 왜 계속 침묵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영화 〈뮬란〉의 주연배우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홍콩 시위대에 대한 경찰 폭력을 지지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홍콩을 보며, 신장위구르와 티베트를 보며, 우리의 운명도 이들과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한국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는 한국과 굉장히 가까이 살고 있다. 한국인들이 1970~80년대에 독재자와 싸워낸 역사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한국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한국인들이 쟁취한 자유를 얻도록 타이인들을 도와달라. 국가에 의해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일은 끝나야 한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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