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김한민씨는 코로나19의 원인이 공장식 축산업이라며, “사회적 거리두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연과 거리두기’”라고 말했다.

김한민씨는 책을 몇 권 낸 작가이자 만화가다. 칼럼니스트이며 번역가다.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에서 활동하는 비건(vegan)이기도 하다. ‘비거니즘(veganism)’은, 고통을 지각하는 동물로부터 나온 육고기는 물론이고 관련된 각종 제품이나 서비스를 거부하는 철학이자 사상이다.

김씨는 2018년부터 각 지자체 단위로 열리는 각종 ‘동물축제’에 반대하는 축제를 기획·추진해왔다. 최근에는 창작집단 ‘이야기와 동물과 시(이동시)’를 만들었다. 작가, 예술가, 활동가들이 모여 동물의 처지에서 ‘동물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곤 한다.

“얼굴이 있는 것을 먹지 않는다”라는 마음으로 채식을 시작한 김씨는 “팬데믹으로 혼란한 지금이,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재정립할 마지막 기회”라고 믿는다. 그에 따르면, ‘비거니즘’이야말로 평범한 개인들이 지구와 동물 그리고 인간을 효과적이고 강력하게 돕는 운동이다.

인류의 육식 생활이 코로나19 팬데믹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보나?

범죄가 일어나면 누가 왜 그랬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처럼 코로나19 발생 초기에는 그 원인을 탐색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분석과 반성의 분위기는 빠르게 식고 말았다. 중국인 혐오(‘박쥐 먹는 인간들’)와 중국 봉쇄가 이슈로 부상하더니 어느새 마스크, K방역, 비대면 경제 활성화 등으로 옮아갔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코로나19는 박쥐에서 천산갑을 매개로 사람에게 전파됐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서 박쥐는 식용으로 쓰인다. 멸종위기 동물인 천산갑은 한약재와 식재료로 밀거래된다. 동물의 서식지를 무분별하게 파괴해온 것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이번 팬데믹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없다. 지난 7월, 유엔은 ‘본질적인 문제를 찾지 못하면 제2, 제3의 코로나19가 온다’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국제사회가 코로나19의 전 세계 확산에 따른 경제적 피해와 환자 치료에만 집중하면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놓치고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인들은 K방역을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성공적 방역 때문에 근본적인 성찰을 놓친다면 우리는 (코로나19가 지나간 뒤에도) 일련의 ‘감염병X’들을 계속 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감염병이 결국 ‘인간과 동물 간 잘못된 관계’ 때문이라는 말로 들리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연과 거리두기’다. 야생동물이 서식하던 곳을 농지, 목축지, 공장부지 등으로 바꾸면서 동물과 인간의 접점이 늘어났다. 결국 종간 접촉이 잦아지고 특정 동물에게만 감염되던 병원체가 사람에게 직간접으로 감염을 일으키게 되었다. 동물 서식지 파괴의 대표 사례가 아마존이다. 지난해 아마존에 가서 불법 벌채 현장을 보았다. 마치 거대한 골프장에 있는 것 같았다. ‘밀림’ 아마존은 없었다. 벌목의 가장 큰 이유는 식탁에 오를 소를 키우거나 가축 사료용 대두를 재배할 땅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인간을 위한 생태계 파괴가 인수공통감염병의 유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최근 사람에게서 발병하는 신종 감염병의 75% 정도가 동물에서 유래하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와 중동·한국에서 유행한 메르스도 인수공통감염병이었다. 동물은 바이러스와 수만 년 동안 공진화해왔다. 반면 인간은 신종 감염병에 대한 면역력이 없다. 운송수단이 발달하고 인구이동이 늘어나면서 감염병은 더욱 빠르게 퍼진다. 농축산 식품 무역의 증가도 감염병 확산의 요인이 되고 있다. 인수공통감염병은 사람과 동물, 환경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팬데믹은 예견된 사건이었을까?

바이러스 자체는 인류의 기원과 궤를 같이한다. 문제는, 인구의 증가와 거대 농축산 기업이 만든 유통망이 팬데믹을 더욱 촉진한다는 점이다. 팬데믹의 중요한 고리 가운데 하나가 거대 농축산 기업이다. ‘팬데믹을 원하는 신이 있다면, 공장식 육류 공장은 신이 만든 가장 완벽한 발명품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미국·브라질·캐나다·독일에서는 대형 육가공 업체 직원 수천 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지난 6월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퇴니에스 육가공 업체에서 1500여 명이 확진 판정을 받고 7000명이 자가격리되었다. 직원 상당수는 터키 등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였다. 비위생적인 생활공간이 바이러스 확산의 원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육가공 공장은 고기뿐 아니라 직원들로 빽빽이 채워져 있다. 동물에게 비위생적인 공간이 인간에게 위생적일 수는 없다. 진화생물학자 롭 월러스는 저서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에서 바이러스성 전염병의 기원을 거대 농축산업에서 찾았다. 커다란 농장을 짓기 위해 울창한 숲을 베고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침범하는 과정에서 생태계에 있던 병원균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병원균은 거대 농축산 기업이 만든 유통망을 따라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아주 특수하거나 희귀한 사건이 아니란 말인가?

〈스필오버〉와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쓴 데이비드 콰먼 등 과학자들은 이미 10년 전부터 ‘새로 등장할 바이러스는 야생동물에서 비롯되고, 그것은 아마도 박쥐일 것’이라고 경고해왔다(실제로 에볼라바이러스, 헨드라바이러스, 니파바이러스, 사스, 메르스 등 병원균은 모두 박쥐에서 출발했다). 전문가들은 인간이 동물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 한 감염병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미래에 올 감염병X는 곧 동물X의 문제와 다름없다. 인류는 앞으로 더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화상통화를 주된 소통 수단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동시 제공2018년 7월 ‘제1회 동물의 사육제-동물축제 반대 축제’에서 동물 후보 대토론회가 열렸다.

한 매체에 ‘육식을 즐기는 지식인을 의심하라’는 내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현대사회는 공장식 사육을 통해 고기를 대량으로 찍어낸다. 이런 시스템으로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고, 기후와 땅, 물과 숲을 훼손한다. ‘육식’을 단지 개인의 선택이자 취향의 문제로만 봐도 되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이미 오래전에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인간은 동물의 고통을 경감시킬 윤리적 의무를 지닌다. 비거니즘은 인간을 넘어 ‘동물의 소수자성’을 인식하는 사고의 전환을 이끌어낸다. 특정 인종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동물에 대한 그것과 서로 연관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상호 교차한다.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고열량 육식 위주의 식생활로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고 있다. 영양과잉이 암·당뇨·고혈압·비만의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식인이라면 지금 같은 방식으로 육식을 즐기는 게 옳은지,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 ‘정의’ ‘윤리’ ‘평등’ ‘가치’를 말할 마이크와 지면을 가진 지식인이라면 기후변화와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복지농장(동물에게 미치는 고통이나 스트레스를 최소화한 사육 환경)에서 나오는 육고기를 소비하는 것은 그나마 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되묻고 싶다. 당신이 실제로 ‘복지농장’에서 나온 육고기를 먹고 있을까? 소·돼지 복지농장은 전체의 0.5%에 채 미치지 못한다. 복지형 육계 농장은 많이 잡아도 5% 정도다. 이마저도 신뢰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또, 소와 돼지가 뛰어다니기에 충분한 목초지에서 일생을 보내다가 마지막 순간에 어쩔 수 없이 도살당한다고 치자. 동물들에게 그런 (복지) 환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지금 같은 육고기 수요를 만족시키려면 지구가 세 개 내지 네 개 정도 더 필요할 것이다. 결국 수요를 극적으로 줄이는 수밖에 없다. 전 세계에서 육식이 낯선 정도가 되면 복지농장이 실제로 가능할 수도 있겠다.

유례없는 장마를 겪으며 축사에 있던 소가 물에 휩쓸렸다가 다시 농장주 품으로 돌아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생명의 위대함을 전해주었지만 결국 도살될 운명임이 자명해서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있다.

겉으로 보면 비거니즘은 ‘이것저것 안 먹는다’ ‘안 쓰겠다’는 거부운동으로 보인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동물과 인간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깨우는 운동이다(김씨의 저서 〈아무튼, 비건〉의 부제는 ‘당신도 연결되어 있나요?’이다). 농장주는 자식같이 기른 소가 돌아왔다는 기쁨을 말하지만, 그 소가 도살될 운명을 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느 부모도 수익을 얻으려고 자식을 죽이지 않는다. 보는 입장에서 인지 부조화가 오는 것이 당연하다. 어린이들은 접시에 놓인 고기가 옆 농장에서 본 동물이라는 걸 깨닫고 나면 먹지 못한다. 아직 동물을 타자화하지 않은 거다. 어릴 때는 동물과 나를 연결시키는 능력이 있는데, 성장하면서 외면하고 만다. 그러니까 물에 떠내려간 소가 구출된 영상을 보고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면서 소고기국밥을 먹어도 아무렇지 않다. ‘구출된 소가 어떻게 될까?’ ‘에이, 모르겠다’에서 그친다. 동물권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최소한 도망 간 동물을 다시 잡아들이지는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외에는 도살장에서 구출한 소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동물 쉼터(animal sanctuary)가 있다. 동물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를 시각화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행복하게 사는 소가 존재하고 그게 내 눈앞에 보인다면, 지금의 환경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도 선명해진다.

‘어차피 지구는 망한다’ ‘나 하나쯤이야’ 하고 비관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비관하는 법이다.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전망이 좋아서 환경운동을 하는 걸까? 뭐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어차피 끝났다’고 비관하는 쪽을 ‘어차피족’, ‘최소한 뭐라도 해보자’고 희망을 말하는 쪽을 ‘최소한족’이라 부른다. 환경운동은 ‘어차피족 대 최소한족’ 사이의 투쟁이다. ‘최소한’에서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최소한족’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는가?

최근에 확실히 더 늘어났다. 여러 경로로 반응을 느낀다. 지난해 말에는 군대와 병원, 학교처럼 공공급식을 시행하는 곳에서 채식 식단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쟁이 불붙었다. 또 서울시교육청은 ‘채식 선택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매우 긍정적이다. 하지만 기후위기를 인식한 청소년들이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서 얻어낸 성과일 뿐, 정치권에서 먼저 반응한 건 아니다. 자연은 투표권이 없기 때문에 자연을 대변할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정치권의 변화를 독촉해야 한다. 또 환경세와 비슷한 맥락에서 육류세 도입이 필요하다. 육류를 못 먹게 할 수는 없지만 ‘어떤 육류’를 먹는지 의식해야 한다.

ⓒ시사IN 신선영창작집단 ‘이야기와 동물과 시’가 8월20일 ‘절멸, 질병X 시대 동물들의 시국선언’ 행사를 열었다. 비대면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의 사진은 참가자의 발언 모습을 추후 합성한 것이다.

동물축제를 반대하는 축제를 해왔다. 어떤 내용인가?

‘산천어 축제’ ‘고래 축제’ ‘오징어 축제’ 등을 반대하는 축제다. 대다수의 동물축제에서 하이라이트는 ‘손으로 잡기’이고 최종 목적은 ‘먹기’이다. ‘산천어 축제’를 냉정하게 보면, 강원도 화천군에 살지 않는 산천어를 일부러 양식해서 얼어붙은 강 아래에 가둬놓고, 죽이고 구워 먹는 행위 아닌가? 2018년 서울대 천명선 교수 연구팀이 조사한 86개 지역 동물축제 실태를 보면, 84%에 이르는 축제가 동물에게 폭력적이다. 2018년에 열린 강원도 주문진 오징어 축제에서는, 주최 측의 요청으로 동료들과 함께 오징어의 신비를 알리는 과학 콘서트를 선보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오징어도 만지면 고통을 느낀다’는 내용이 도마 위에 올랐다. ‘오징어 잡기’ 행사가 비판적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관광객 감소를 이유로 과학 콘서트가 취소되고 ‘오징어 맨손잡기’ 행사 횟수는 이전에 비해 늘어났다.

최근 창작집단 ‘이동시(이야기와 동물과 시)’가 ‘절멸, 질병X 시대 동물들의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동시’는 올해, 형인 김산하 박사(야생 영장류 학자)와 함께 기후위기와 동물권 이슈를 예술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꾸린 창작집단이다. 동물의 입장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동물이 직접 말하는 형식을 취했다.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려면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작가·과학자·시인·활동가 등 서른 명이 천산갑·박쥐·사육 곰·개·소 등 17종의 동물이 되어 인간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했다. 동물이 죽기 전에 남긴 유언은 서식지 파괴 중단, 야생동물 거래 퇴출, 공장식 축산 시스템의 퇴출 등이다. 요조, 이슬아, 김탁환 등 작가들이 동물의 시각에서 글을 쓰고 낭독했다. 동물 선언문은 이동시 SNS 채널에 연재된다(www.instagram.com/edongshi). 이 퍼포먼스의 이름은 ‘절멸’이다. 이래도 바꾸지 않는다면 공멸뿐이라고. 서로가 서로를 잃고 말 거라는 메시지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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