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팔이 의학의 역사
리디아 강·네이트 페더슨 지음, 부희령 옮김, 더봄 펴냄

“도대체 의사가 어떻게 환자들에게 그런 고통을 줄 수 있는지, 혹시 괴물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것이다.”

읽을 때는 박학다식해지는 기분이 들지만, 책장을 덮으면 어떤 허무함이 몰려든다. 책 부제는 ‘엉터리 만병통치약에 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 라듐, 거머리, 두개골 등 과거 유행하던 엉터리 치료법을 총망라했다. 각국 최고의 의사들이 신봉하던 처방 다수가 아무 효험이 없었고, 수은이나 단식, 담배처럼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것도 적지 않았다. 당대의 ‘비법’을 철석같이 믿었던 옛사람들의 안타까운 말로는 현대의 독자를 겸허하게 만든다. 기상천외한 사례들은 언젠가 잊더라도, 교훈 하나는 오래 새길 만하다. 의사도, 의학도 틀린다는 것. 100년쯤 뒤에 쓰일 비슷한 책에 2020년 한국 이야기가 들어간다면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 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 항목이 있을지도 모른다.

 

 

 

 

 

 

 

 

주역의 정석
쩡스창 지음, 박찬철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자신의 분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주역을 현대적인 언어와 일상적인 사례로 풀이해 14억 중국인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은 책. 주역의 개념을 설명하고 뜻을 풀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치를 이용해 성공하는 법, 조직을 관리하는 법,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는 법 등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가령 건괘의 효 풀이를 통해 조직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다면 무엇을 경계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수괘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다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지적하면서 욕구를 다스리는 법을 깨닫게 도와준다. ‘중국 여유위성TV’에서 방송한 강의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스테디셀러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으며, 유튜브에서 100만 회 이상 조회를 기록하며 그 열기를 이어가는 중이다.

 

 

 

 

 

 

 

 

팬데믹 1918
캐서린 아놀드 지음, 서경의 옮김, 황금시간 펴냄

“1918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전차를 탈 수 없었다.”

책의 첫 장에 쓰인 헌사는 다음과 같다. “나의 조부모님 오브리 글래드윈과 랠리지 배글리 글래드윈, 그리고 그분들처럼 1918~1919년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 대유행병으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분들을 기리며 이 책을 바친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건 2015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100년 전 팬데믹 상황이 다시 전 세계를 강타할 거라고, 그래서 자신의 책이 이토록 시의적절한 것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덧붙여 그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유용한 정보와 반면교사를 얻게 되기를 바란다고 서문에 적었다. “우리가 스페인 독감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극한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게이머입니다, 아 여자고요
딜루트 지음, 동녘 펴냄

“유저들끼리 싸우는 게임에서 상대방이 여자라는 걸 알고 나면 게임 속 분위기가 쉽게 지저분해진다.”

‘하드코어 게이머’들은 종종 떠올리는 저마다의 추억이 있다. 25명이 10시간 이상 함께 도전해 몬스터를 쓰러트렸을 때의 성취감, 다른 플레이어와의 캐릭터 싸움에서 이겨 높은 순위를 기록했을 때의 자부심 따위다. 그런데 ‘여성 게이머’는 좀 다르다. 오랫동안 게임을 해온 저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는 불유쾌한 일들을 소개했다. 음성 채팅을 하는 게임에서는 ‘목소리 버프(여성의 목소리로 응원하는 것)’를 요구받고, 난이도가 낮은 특정 캐릭터만 추천받으며, 성적인 멸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여성들은 성희롱이 일상화된 게임을 오래 즐기지 못하고, ‘남초 집단’이 된 게임에서 성적 비하가 더욱 판치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담론이 아니라 일화를 토대로 풀어내 어렵지 않게 읽힌다.

 

 

 

 

 

 

 

 

폭력의 진부함
이라영 지음, 갈무리 펴냄

“사회적 약자들은 우선 ‘보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020년 7월 둘째 주’를 언급하며 책은 시작된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모친상에 온 정치인들의 조문부터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5일장이 있었다. 애도와 조문이 권력이 되는 사이, 성폭력 피해자의 말은 쉽게 의심받았다. “본인이 떳떳하면 이름과 얼굴을 공개해라” “왜 그때 거절하지 않고 4년이 지나서 말하느냐”…. 미투 운동 이후 매년 고발과 폭로가 계속되고 있지만 성폭력 피해자를 탓하는 언어는 늘 진부하고, 그래서 더 강력하다. 저자는 얼굴과 이름, 목소리를 가진 살아 있는 개인들의 발화를 독려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일상적인 차별과 폭력을 복기하며 가해자들은 어떻게 복합적인 서사를 가지게 되고 소수자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뭉개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나는 달린다
강명구·송인엽 지음, 넥센미디어 펴냄

“지구를 한 바퀴 삥 돌아보자.”

강명구 마라토너가 네덜란드 헤이그부터 중국 단둥까지 16개국, 1만5000㎞를 526일 동안 달렸다. 앞서 미국 대륙 5200㎞를 뛰기도 했던 그는 ‘평화 마라토너’라고도 불린다. 평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뛰기 때문이다. 1년3개월의 유라시아 대륙 횡단이 가능했던 것도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강명구 마라토너와 그를 응원하는 송인엽 국제협력 전문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구 한 바퀴를 달리며 목격했던 풍경과 각 지역의 역사 이야기를 담은 여행문학이기도 하다. 그의 달리기는 중국 단둥에서 멈춰야 했다. 북한 당국이 허락하지 않아 압록강을 넘지 못했다. 신의주-평양-서울로 이어지는 달리기는 미완의 숙제로 남았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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